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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경영

유아에게 필요한 건 유아를 위한 교육

전 세계적으로 유아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곤 한다.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일은 잘해야 할 가치도 있다. 국가마다 상황에 따라 저소득층 유아에 집중할 것인가, 모든 유아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의무교육으로 할 것인가, 보편 무상교육으로 할 것인가를 비롯하여 유아를 위한 교육과정과 방법, 교사양성체제, 행·재정적 구조문제 등을 검토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당기거나 늦추는 것도 그러한 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존 학교체제를 활용함으로써 추가예산이 크게 들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정책자문 집단이나 정치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학부모와 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삶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로, 충분한 숙고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지난 7월에 발표되었던 ‘만 5세 초등학교 조기입학 교육정책(2022.7.29.)’은 비민주적인 절차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유아기 발달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 경제 논리에 의존한 교육의 본질 간과, 돌봄공백과 사교육 증가로 인한 교육격차 심화 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로 철회되었다. 그렇지만 동일한 문제가 거듭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이루어진 학교 입학연령 관련 연구결과들을 분석하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훈을 종합화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세계적 동향은 오히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늦추는 추세
먼저 세계적 동향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국가는 우리나라처럼 6세에 초등학교 입학이 이루어진다. 영국처럼 4~5세인 경우도 있지만, 핀란드·스웨덴·스위스 등 교육시스템 및 성과가 우수한 국가들이 7세에 입학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서구 유럽국가들이 학업성취도 향상을 위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늦추는 추세에 맞춰 미국도 입학 기준일(cut-off date)을 1월 1일에서 9월 1일로 늦춤으로서 몇 개월 더 늦게 입학하도록 변경하였다(Dee & Sievertsen, 2015; Dhuey, 2016). 실제로 6세의 상당수가 초등학교 입학을 지연하고 유치원 교실에 있으며, 생일이 입학 기준일에 가깝거나 발달이 늦는 경우를 비롯 남아·대도시·사회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더욱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적절한 초등학교 입학연령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일반적인 연구방법으로 부모의 선택에 따라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지연한 집단과 지연하지 않은 집단, 학년이 동일하나 생일이 다른 학생들, 연령이 동일하지만 학년이 다른 집단들, 특히 입학 기준일에 따라 생일이 하루 차이 나지만 학년에는 1년 차이가 있는 집단을 대상으로 한 횡단 혹은 종단연구가 있다. 물론 모든 연구는 제한적임을 유념해야 하고, 국외 연구는 해당 국가의 유아교육·보육의 질적 수준, 교육철학과 접근방식, 사회 제반 시스템과 문화·국가 경제력 등을 함께 고려하여야, 우리 상황에 적합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먼저 입학 시 연령이 높은 것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학업성취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가? 수많은 연구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호주에서 1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Hanly et al., 2019)에서도 입학연령이 초등학교 학업성취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생일이 한 달 빠를수록 모든 영역(신체건강과 행복감, 사회적 유능감, 정서적 성숙도, 언어 및 인지기능, 소통능력 및 일반 지식)에서 상위 25%에 들어갈 확률이 평균적으로 3%가량씩 증가하며, 1년 누적되면 그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시 연령이 더 높은 학생들이 인지능력(Black et al., 2011; Herbst & Paweł, 2016; McEwan & Shapiro, 2008), 학습에 중요한 자기조절력과 사회적 행동(Datar & Gottfried, 2015; Dee & Sievertsen, 2015; Frazier-Norbury et al., 2015), 정신건강(Dee & Sievertsen, 2015; Goodman, Gledhill, & Ford, 2003; Morrow et al., 2012) 등에서 더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누적되어 있다. 


입학연령 효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들은 횡단설계로 이루어졌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에 미국 NICHD 연구진(2007)은 900명의 K학년(5세)을 대상으로 종단연구를 실시하였다. 가정배경이나 개인차 요인을 통제하고도 연령이 더 높은 집단의 학업이 더 빨리 향상되어 우드콕-존슨(Woodcock-Johnson) 검사의 모든 하위영역(문자·단어 인식, 응용문제 해결, 문장 기억력, 그림 어휘력) 점수가 더 높았다. 또한 초등학교 3학년까지도 효과가 지속되어, 응용문제와 그림 어휘력을 비롯하여 교사가 평가한 언어 및 문해력, 수학적 사고 척도에서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하였다. 이탈리아 연구진(Ponzo & Scoppa, 2014) 역시 연령이 높은 집단이 연령이 낮은 집단보다 4·8·10학년의 학업성적이 훨씬 높았으며, 이러한 절대적 연령의 혜택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음을 밝혔다. 


더 나아가 초등학교 입학연령의 효과가 대학입학이나 성인기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 독일 연구진(Puhani & Weber, 2007)은 6세 대신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지속적으로 더 우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중등학교(Gymnasium)로의 진학률이 12%나 더 높았다고 말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Bedard & Dhuey, 2006)에서도 동일 학년에서 연령이 어린 학생들의 대학진학률과 우수한 주요 대학에 입학하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더 낮았다. 또한 생일이 각각 12월 31일과 1월 1일로 단 하루 차이 나지만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서는 1년의 차이가 있었던 4만 5,000여 명의 데이터를 통계 분석한 브라질(7세 입학) 연구(Matta, Ribas, Sampaio, & Sampaio, 2016)에 따르면 학교 입학이 1년 지연된 경우 대학입학·대학성적뿐 아니라 취업·임금 등에서도 긍정적 혜택을 얻었다. 엘리자베스 듀이(Elizabeth Dhuey, 2016)는 특히 남아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연령이 한 달씩 늦어질 때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시간당 소득이 평균 0.6%씩 높아졌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조기입학은 누구에게 이득인가
그렇다면 초등학교 조기입학은 사회적 교육격차를 줄이고 형평성을 높이는가, 혹은 그 반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의무교육을 시작하는 연령을 낮추는 것은 더 어린 시기부터 사교육을 조장하고 무한경쟁 속으로 유아들을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발달이 느리거나, 문화적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2008년 이래로 유아교육을 체계화한다는 명목으로 입학연령을 낮춘 영국은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인종·성별 등에서 더 불리한 위치에 있는 학습자들에게 학습부진아 꼬리표를 일찍부터 달게 하여 교육격차를 심화시켰다(Bradbury, 2014)는 비판을 받았다. 입학지연이 부모의 교육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더 큰 효과를 준다는 연구결과(Altwicker-Hámori & Köllő, 2012; Fredriksson & Öckert, 2006) 역시 형평성 측면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모든 교육정책은 누구에게 이득인가, 누가 심각한 손해를 입는가를 섬세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입학연령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들과 유아의 행복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교육시기를 점점 앞당겨서 4세에 초등학교 교실(reception class)에서 딱딱한 책상에 앉아 학습하고 평가받게 하는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케임브리지대학교 화이트브레드(David Whitebread) 교수는 교육학·인류학·여성학·심리학·사회학·뇌과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 등에서 형식적 교육의 이른 시작이 아동기뿐만 아니라 청년기와 성인기의 삶까지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수많은 증거(Whitebread, & Jarvis, 2013)를 제시하며 진지하게 고려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와 더불어 유치원 교육과정이 인지학습 중심, 교사 중심 접근으로 변하는 현상 역시 심각한 문제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들(Carlsson-Paige, McLaughlin, & Almon, 2015)은 선행연구를 토대로 유아들에게 놀이 중심의 즐겁고 능동적인 교육경험이 아닌 교사 중심의 형식적인 읽기 학습을 시켰을 때 읽기 능력에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유능한 학습자로서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저하시키고 정서적 불안감과 학업스트레스 등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요컨대 ‘얻는 것은 거의 없고, 잃는 것이 훨씬 더 많다(little to gain and much to lose)’라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뉴질랜드에서 실시된 연구(Suggate, Schaughency, & Reese, 2013)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5세(일반학교)와 7세(슈타이너 대안학교)에 각각 형식적 문해교육을 시작했던 집단을 2년간 종단 연구한 결과, 초기에는 일찍 읽기학습을 시작한 집단이 유리하였지만, 2년이나 늦게 읽기를 배운 집단이 따라잡아 유창하게 읽게 되어 차이가 없어졌다. 더구나 중학교 때(7학년) 실시한 검사에서는 늦게 시작한 집단의 읽기 이해력이 오히려 더 뛰어났다. 유아기에 학습자 중심, 놀이기반 교육과정이 가지는 장점은 충분히 누적되어 있다. 


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Alison Gopnik, 2017)은 생물학적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인지능력과 문화가 탁월할 수 있었던 것은 유아기의 자유로운 탐색, 더 폭넓은 가설 설정, 모방이 아닌 창의적 생성에 있다며 놀이기반 유아교육을 지지한다. 그는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유아들이 성인에 비하여 정보기억 등에서 더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물리적·사회적 인과관계에서 패턴을 읽어내고 가설을 추론하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수정하는 측면에서 더 유능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즉 지시받은 목표에만 집중하며 기존 지식이나 신념에 의존하는 성인보다 유아는 정보를 훨씬 폭넓게 탐색하며 관계를 추론하고 합리적인 가설을 설정하거나 새로운 정보에 따라 수정해가는 강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아는 보호받거나 관리되어야 하는 결핍된 존재가 아니라 웃고 뛰어놀면서 세상을 배우고 변화시켜가는 유능한 존재이며(이진희, 2022), 놀이는 유아기에 가장 자연스럽고도 의미 있는 배움의 방식이다. 


초등학교 조기입학 논쟁의 교훈
오늘날의 어른들은 자신이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그릇되게 준비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착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일찍 한글을 익힐 수도 있고, 한자나 영어단어를 외울 수도 있고, 꽤 어려운 계산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기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이 시기에 마땅히 해야 하는 것, 유아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여름, 그 뜨거웠던 초등학교 조기입학 논쟁은 어쩌면 우리 모두로 하여금 유아기에 가장 좋은 교육과 아이들의 미래 모습에 대하여 더 진지하게 토론하고 숙고하여 합의해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이 가장 부실한 국가 중 하나다. 변화에 대비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권귀염, 2017; 이선영, 2017). 주어진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공장식 대량생산 중심의 산업사회에서는 효율적이었을 수 있으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아주 작은 것에 주목할 줄 아는 것, 통섭적으로 사유하며 새롭고 특별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 지구의 공동거주자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유아교육과 의무교육의 관계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유아교육은 강제성을 가지는 의무교육이 아니라, 유아의 교육적 요구와 발달의 역동성, 학부모의 선택 권리, 교육의 자율성·다양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접근성이 보장되어 누구든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무상교육이 적절하다. 무엇보다 유아교육을 학교교육을 위한 ‘준비’라는 편협한 도구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유아교육의 ‘학교화(schoolification) 현상’을 발생시켜 유아들과 유아교육과정 모두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Moss, 2013/2017). 유아를 학교에 맞추어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유아의 특성과 요구에 맞추어 준비되어야 한다. OECD의 Starting Strong II 보고서(2006)는 기존 ‘학교교육 준비’ 중심의 관점을 버리고 유아교육과 의무교육 간의 ‘강하고 동등한 동반관계’를 구축할 것을 강조한다. 이를 위하여 유아교육과 의무교육의 관계자들이 함께 만나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어린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을 만들어가야 한다. 학습자의 연속적 교육경험을 고려하지 않는 현재의 유·초 연계 절벽 교육과정(임부연, 2022)을 도외시하거나 ‘학교준비’라는 이름으로 유아교육을 학교화하여 유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한 놀이와 능동적 배움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유아교육의 학습자 중심 페다고지가 초등학교 저학년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OECD(2006)의 제안을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조기입학문제가 일단락되었지만, 건강한 논쟁과 사회적 합의, 지혜로운 실천이 요구되는 문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 새로운 미래를 살아갈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을 위하여 어른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로부터의 교훈을 새기며, 우리는 어린이들과 함께 그들을 위한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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