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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의 본질은 수업개선, 기본으로 돌아가야

장학의 위기

 


장학이 외롭다. 언제부터인가 학교평가·수업평가·교원능력평가가 위세를 떨치더니 ‘장학’이란 용어가 안 보이기 시작하고, 멘토링과 컨설팅과 코칭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기 시작했다(천세영, 2018). 물론 학교현장에서 장학이 부담스러운 존재로 취급을 받아온 것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요즘처럼 그 존재 의미를 찾기 힘든 경우도 드물다.


장학(supervision)은 어원적으로 super와 vision의 합성어로 ‘우수한 사람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감시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inspection(사찰 혹은 점검)은 in과 spect의 합성어로 ‘안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장학은 어원상 교육활동을 감시·감독하는 형태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inspection에 가까운 시학(視學)·교학(敎學)·독학(督學) 등을 사용하다가, 1945년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배움을 장려한다는 의미의 ‘장학(獎學)’을 사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가 사용한 장학은 주로 지도·조언의 의미였다. 다만 무엇을 지도·조언해 줄 것인가 하는 내용만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었을 뿐이다(이상갑, 2001: 9). 민주화와 자율화의 시대적 발전에 따라 오늘날 장학 개념은 크게 변모되었으며,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이윤식, 1999). 이렇다 보니 장학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명확한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주삼환, 200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학의 개념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요소를 찾아보자면 ‘교육활동의 개선’과 ‘지도·조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메타버스 등 교육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고, 장학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해방 이후 우리 교육사에서 장학정책이 걸어온 길을 반성적으로 검토해보고, 장학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해보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방 이후 장학정책의 변천
행정기관의 장학활동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일제는 조선총독부와 내무부 아래 교육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학무국을 두어 동화정책과 우민화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를 시행하기 위해 학무국(과)에 시학관(視學官)을 두고 교육 전반을 감독하였다.

 

이후 해방이 되어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장학(獎學) 개념이 도입되고, 과거의 감독·통제에서 지도·조언으로 바뀌는 등 민주적인 장학행정이 시작되었다. 미군정은 학무국을 문교부로 개편하고 1946년 1월에 개편된 문교부 조직의 4실 7과 중·초등교육과와 중등교육과에 장학사를 1명씩 배치함으로써 일제의 시학(視學)이란 명칭을 대신하여 장학(獎學)이란 새로운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강영삼, 1997: 4). 이 시기 장학정책의 기본방향은 일본 식민지교육의 잔재를 청산하고 미국 민주주의 교육의 이념 보급과 민주주의 교육체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는 6.25 전쟁으로 인해 국방교육의 필요성과 전후 복구를 위한 생산교육·과학기술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다. 이러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여 장학정책은 전후 흐트러진 사회분위기 일신을 위한 도의교육·반공교육·과학기술교육 등에 역점을 두었다. 전후 복구사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장학방침의 전국 시달과 지도·조언 위주의 민주장학 개념 도입, 그리고 교육자치제 실시 등을 통해 체계적이고 민주적인 장학에 한발 다가서게 되었다.

 

1960년대는 자력에 의한 경제건설·자주국방·자주외교를 통하여 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한 의욕이 강한 시대였다. 이렇게 경제 위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교육을 통해 확산을 꾀하다 보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고, 교육의 본질이 침해되는 일이 많았다. 1968년 12월 5일에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었고, 그 이념은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장학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문교부 직제에 장학실이 신설되어 그 어느 시기보다 강력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장학정책이 실행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1970년대 장학의 핵심과제는 국민교육헌장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한국적인 교육이념을 어떻게 이른 시일 내에 일선 학교현장까지 침투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또 1972년에 단행된 10월 유신으로 일선 학교에까지 유신교육체제 확립을 시도했고, 전국적으로 번져갔던 새마을운동에 발맞춰 새마을교육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장학정책은 결국 교육이 정권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 생산에 이용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과 함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시기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이때는 ‘잘살아 보자’란 구호 아래 국가정책의 중점을 교육에 두고 많은 관심을 기울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 결과 교육의 영향력이 크게 발휘되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시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이상갑, 2001: 75).
  
1980년대 초에 출범한 제5공화국은 교육혁신을 국정지표로 내세운 후, 강력한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다분히 인위적이고 정치논리에 따른 급속한 개혁이어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다만 1982년부터 시작된 장학방침의 폐지는 지방화 시대에 부응하고 다가올 교육자치 시대를 대비하는 조치로 평가될 수 있다. 교육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장학지도 방식도 종전의 지시·지도에서 상담·협의하는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등 장학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문교부가 교육부로 개칭되고 장학실 폐지에 이어 장학 요원의 대폭 감축으로 장학정책은 혼돈과 취약상태를 보여 침체기에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초·중등교육 관련 업무의 많은 분량을 시·도교육청으로 이양, 지방화·자율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95년부터는 학교단위 책임운영제와 같은 학교장 자율권 확대 방침에 맞추어, 장학협의 또는 협의중심 장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1995년 5월 31일 정부는 ‘세계화·정보화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서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고, 도덕성·사회성·정서 등 인성 및 창의성을 최대한 신장시키는 교육체제를 갖춤으로써 모든 학습자의 잠재능력이 최대한 계발되도록 하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장학도 이러한 교육개혁과 궤를 같이하면서 추진되었다.


또 1998년 3월 1일 발효된 「초·중등교육법」(제7조)에 ‘장학지도’ 항목을 설정하여, ‘교육부장관 및 교육감은 학교에 대하여 교육과정운영 및 교수·학습방법 등에 대한 장학지도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초·중등교육법」 시행 후, 교육당국은 적발이나 문책위주의 장학활동을 지양하고, 협의나 대안 제시 등의 방향으로 장학방법을 개선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볼 때, 1990년대는 종래 행정적인 장학에서 학교현장 중심의 자율성을 지향하는 장학으로 전환을 이루는 시기라 하겠다(이윤식, 1999, 2001).

 

 

2000년대 이후에는 장학이 학교현장을 더욱 중시하는 흐름으로 전개됐다. 장학이 교육행정기관 중심에서 학교중심의 장학으로, 주어지는 장학에서 함께하는 장학으로의 전환이 추구됐다. 종래의 교육청 주도의 종합장학이 사라지고, 학교현장의 조건과 요구를 반영하여 자율장학·요청장학·맞춤장학·컨설팅장학 등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2010년 교육부는 ‘선진형 지역교육청 기능 및 조직개편’을 발표하였다. 교육청의 기능면에서는 관리·감독·규제업무 축소·이관, 지역청·본청 간 기능의 합리적 재배분, 학교·교육수요자 지원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졌다. 조직면에서는 지역교육청을 ‘교육지원청’으로 변경하고, 그동안 시행되던 점검 위주의 장학을 축소하여, 지원 중심의 컨설팅장학을 도입하였다. 그동안 시·도교육청이 담당하던 일반고 대상 장학을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였다.


2012년에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에게 주어졌던 장학지도 권한을 교육감에게 이양했다. 또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제8조 장학지도)을 ‘교육감은 법 제7조에 따라 장학지도를 하는 경우 매 학년도 장학지도의 대상·절차·항목·방법 및 결과처리 등에 관한 세부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장학지도 대상 학교에 미리 통보하여야 한다’로 규정했다. 학교중심의 장학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법적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내일의 장학을 향하여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학정책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변화의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장학의 초점(목적)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장학의 초점이 ‘학교조직 유지’에 맞추어져 있었다. 효과적인 학교조직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 과거에는 장학의 평가적 기능이 중시됐다. 그러나 지금의 장학은 교육활동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교실현장에서 교사들의 수업향상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촉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민주적 장학을 지향하고 있다(이윤식·유양승, 2016). 교사의 전문성 향상과 능력개발을 강조하고, 일반장학에서 수업장학으로(거시에서 미시로의 접근)의 변화(주삼환 등, 2022: 479-480)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장학의 주체, 주관 기관이 변하고 있다. 교육부의 장학담당 조직의 변천으로 장학의 주관 기관이 교육부·교육청 중심의 행정적 장학에서 단위학교 중심의 장학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전 교육청 주도의 종합장학·담임장학을 폐지하고, 학교현장 중심의 지원장학이 활성화되고 있다. 또한 학교주도의 컨설팅장학 등장, 각 개인별 수업컨설팅 실시 등 교육행정기관 중심의 일방적인 장학이 아닌 학교중심·교사중심의 장학이 확대되고 있다.
  
셋째, 장학의 관점이 ‘역할(role)로서의 장학’에서 ‘과정(process)으로서의 장학’으로 변하고 있다. 역할로서의 장학은 장학을 누가 하는가?에 초점이 있으며, 장학을 제공하는 사람과 장학을 받는 사람의 상하관계가 전제된다. 이러한 장학에서 교사는 장학의 객체로서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입장에 있게 된다. 반면 교사의 입장에서 보는 장학은 ‘주어지는 장학’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정(process)으로서의 장학은 장학을 어떻게 하는가?에 초점이 있으며, 장학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협동관계가 전제된다. 이는 교사를 장학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만든다. 교사 입장에서 보면 장학은 ‘함께하는 장학’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이윤식, 2001; 이윤식·유양승, 2016).

 

이러한 세 가지 특징으로부터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장학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그 지향점을 장학의 목적·내용·방법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첫째, 장학의 목적을 교사의 발전에 두어야 한다. 학교나 교사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교사의 발전정도에 따라 다른 장학방법을 적용하고, 발전수준을 높여 나가도록 하여 교사의 발전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발전적 장학(developmental supervision)을 추구해야 한다.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발휘하게 하여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자는 ‘인간자원 장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교사를 부려 먹자는 과거의 접근(인간관계 장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주삼환 등, 2022: 480).


둘째, 장학의 주요 내용을 수업장학에 두어야 한다. 장학의 본질에 대해 다양한 이론(異論)이 있지만, 학교가 왜 존재하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장학의 본질이 수업개선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장학은 교사로 하여금 잘 가르칠 수 있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학교와 교사가 존재하지 않고 가르치는 일이 없다면 장학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다(주삼환 등, 2022: 476). 장학론의 발달사는 결국 교사의 수업개선을 위한 제도의 전개 과정일 것이다(천세영, 2019)
  
셋째, 장학의 초점이 교사의 수업전문성 신장에 있다면, 그 방법으로는 장학의 개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학생에게 개별학습, 개별화수업이 바람직하다면, 교사의 실질적 수업능력 향상을 위해서도 개별화 장학(individualized supervision)이 필요하다. 이는 교사를 집단으로 묶어두지 않으려는 민주장학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주삼환 등, 2022: 481). 현실적으로 모든 교사를 위한 완전한 개별화 장학이 어렵기에, 몇 가지 장학의 대안 중에서 각 교사에게 맞는 장학을 선택하게 하는 선택적 장학도 이런 방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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