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세대에게 익숙한 ‘환갑’은 60세 이후까지 생존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전통적인 행사였다. 그런 환갑이라는 행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다수가 60세 이상을 사는 세상이 되다 보니, 환갑이라는 특별한 행사를 치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에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는 세상이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머 사피엔스와 다른 인류가 나타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유엔에서 ‘호머 헌드레드’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익숙해진 용어다.
우리 공무원연금이 처음 도입되던 1960년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52.4세였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후 12년이 지난 2000년, 지금부터 22년 전에 이미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75.9세로 늘어났다. 공무원연금이 도입된 이후 40년 사이에 무려 23.5세가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1960년 공무원연금이 도입될 당시에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는 60세였다. 연금액도 근로기간의 소득수준 대비 40%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어서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액수를 지급하는 제도로 도입되었다.
그런데 제도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20년만 가입하면 퇴직 즉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바뀌었다. 급여수준도 제도 도입 당시에 비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인상되었으며, 1990년대 초에는 퇴직 시점에 일시금으로 지급되는 퇴직수당(민간대비 최대 39%)도 도입되었다. 외국에서 연금재정 불안정에 대처하기 위해 제도 개편을 서두를 때,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공무원 사기진작이란 명목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사회갈등의 뇌관, 공무원연금
1990년대 중반부터 공무원연금 재정 불안정이 본격화되면서 연금개혁은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김중양·최재식 공저의 <공무원연금제도(2004, 법우사 발간)>의 연금수익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익비란 연금급여 현재가치가 부담 현재가치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통 퇴직시점 기준의 가격을 기준으로 비교한다. 2000년 제도 개편에도 불구하고 과거 재직세대의 수익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20년 가입자 중에서 9급에서 7급으로 20년 재직한 공무원의 수익비는 6.61배, 5급에서 4급으로 20년 재직한 공무원의 수익비는 5.84에 달하고 있다. 현세대의 수익비 역시 높은 수준이다. 20년 가입자 중에서 9급에서 7급으로 20년 재직할 공무원의 수익비는 2.51배, 7급에서 5급으로 25년 재직할 공무원의 수익비는 2.65배, 5급에서 5급으로 30년 재직할 공무원의 수익비는 2.91배에 달한다.
이후에 2009년과 2015년 두 차례의 연금개편이 있었으나, 2009년 공무원연금개편 당시에 재직자 56%는 연금액이 줄어들지 않았다. 연금개편의 고통 대부분이 신규 입직자에게 전가되어서다. 2015년 연금개편 역시 제도 개편 이전의 기득권이 그대로 유지되다보니, 여러 차례 제도 개편이 있었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공무원연금 재정 불안정은 심화되고 있다.
“연금은 복된 돈이며, 피와 땀이 어린 일생의 돈이요, 향기로운 돈이요, 존경스러운 돈이요, 고귀한 돈이요, 생명의 돈이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발간한 <공무원연금 재정현황과 전망>의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조병화 시인의 글이다. 조병화 시인이 ‘존경스러운 돈이요’라고 했음에도, 그 소중한 연금이 우리 사회 갈등의 뇌관이 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우리도 이제는 할 만큼 했다
반면에 공무원 사회에서는 우리도 이제는 할 만큼 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2009년과 2015년 제도 개편을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이다. 공무원 사회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정녕 할 만큼 한 개혁인지를 가장 최근의 공무원연금기금 결산보고서를 통해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인사혁신처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발간한 <2021 회계연도 공무원연금기금 결산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해 보자. 2021년 12월 말 기준으로 공무원 재직자가 126만 여명이다. 퇴직연금수급자가 52만 명, 유족연금수급자는 7만 3천 명이다. 그런데 2021년 126만 명을 대상으로 한 공무원연금제도 운영에 따른 당기근무원가가 29.6조 원에 달하고 있다. 공무원 1인당으로 환산하면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운영원가가 2,348만 원에 이르고 있다.
반면 2021 회계연도 재직자 126만 명이 납부한 수납액 14.2조 원을 1인당 납부액으로 환산하면 1,128만 원이 되며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월 94만 원에 달한다. 공무원 자신과 국가가 공동 부담하고 있는 기여금이 평균적으로 1인당 월 94만 원에 달하는 많은 금액임에도, 공무원연금제도 운영원가의 48%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이 격차로 발생하는 적자는 정부보전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기금 지출결산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총 지출액은 37조 원이며, 공무원연금 급여지출은 19조 원에 달한다. 이 중에서 공무원연금 퇴직급여가 16.6조 원, 퇴직수당은 2.2조 원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최신 보고서는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액이 2022년 3.5조 원, 2030년 7.9조 원, 2040년 12.5조 원, 2070년에는 19.3조 원에 달해, 2021년 한해의 공무원연금 급여와 퇴직수당 지출 총액보다도 더 많은 금액을 국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야 하는 형국이다. 1인당 국가보전금 역시 2022년에는 726만 원이지만, 2060년에는 1,795만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는 우리나라 공적연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모수 개혁의 장점을 활용하되 재정적자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한계를 고려하여 중장기적으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개혁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공무원 및 군인연금의 재정적자는 수입 증가 등을 가정한 분석에서 일정 규모 개선은 되지만 모수 개혁으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적연금 재정적자에 대한 해결을 미룰수록 국민들의 재정적 부담이 가중되므로 중장기적으로는 공적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과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모수 개혁과 함께 다른 방향의 개혁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그리스 약사가 줄어든 연금을 비관하여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결국 그리스는 고액 연금자들의 연금액을 50% 삭감하였다(윤석명, OECD Korea Policy Centre 2020 보고서). OECD 2022년 한국연금 보고서에서는 공적연금을 분리 운영하는 국가가 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을 포함하여 단 4개국임을 적시하며, 공적연금의 통합 운영을 권고하고 있다. 통합 운영이 대세라는 거다.
지금처럼 서로 남 탓만 하다가는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가장 불행한 일은 나이가 들어 아무런 대책이 없을 때, 나라도 여력이 없어 연금액을 대폭 삭감하는 상황이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하루빨리 지속가능한 방향으로의 제도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공무원연금 지급보장 조항이 있다고 한들, 나라에 돈이 없으면 방법이 없다. 신규 입직자와 미래 공무원 세대의 고통이 어느 정도에 달할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