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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On The Road, IN The Art, 세화 & 성곡미술관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광화문은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이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비추던 큰 덕을 지금은 온 백성이 함께 밝혀나가고 있으니 1,000년을 멀리 보신 혜안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열정과 함성, 휴식과 만남 등으로 시시각각 얼굴이 변하는 광화문은 중심축부터 동심원 곳곳에 포진한 고궁·박물관·미술관으로 아트산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기도 하다. 광화문 거리를 걷다 휴식을 겸하여 둘러볼 수 있는 미술관 두 곳을 추천해본다.

 

쉴 새 없는 망치질의 해머링맨

조나단 브로프스키는 미국 보스턴 출생의 세계적인 조각가이다. 그가 시애틀·베를린·프랑크푸르트 등에 이어 광화문에 키 22m 몸무게 50t의 거구 ‘해머링맨(Hammering Man)’을 탄생시켰다. 2002년부터 35초마다 한 번씩 해머를 들었다 내리치는 해머링맨은 모던 타임스의 컨베이어벨트 나사 조임공 찰리 채플린처럼 늘 열심이다. 2010년부터 하루 17시간을 2015년부터는 14시간을 일했단다. ‘갓물주’나 ‘금수저’가 아닌 노동하는 이의 숭고함에 가슴이 저린 것은 필자의 몫이고, 수많은 광화문맨들은 그저 무심히 지나치거나 건물 뒤편에서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릴 뿐. 해머링맨은 입사 이래 350만 번 이상 4t에 이르는 오른팔만 쓰다 보니 어깨를 자주 다쳐 두어 달 정도 쉬기도 했단다. 힘든 와중에 가끔 ‘신생아 살리기 캠페인’ 등에 참여해 모자를 쓰는 등 봉사활동도 한다니 존경스럽다.

 

그러나 웬만한 노동은 모두 로봇군과 로봇양이 선점하시고 칼보다 강하다는 펜까지 챗GPT에게 넘겨주는 시대인데, 이제 이분을 역사 속으로 보내드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해머링맨의 소속사인 흥국생명 빌딩은 아트영화 팬들에게는 ‘씨네큐브’로 더 유명하고, 그만큼 3층에 자리한 ‘세화미술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전시장·아카이브·스튜디오 등 한 공간에서 창작·전시·제작·상영이 모두 이루어지도록 기획했다니 멀티플랙스 예술공간의 원조로 역사의 무게가 엄연한 곳이기도 하다.

 

허기진 내면을 채운 예술과 희망 
해머링맨을 시작으로 세화미술관이 있는 3층까지 도달하려면 웰컴 작품 감상이 필수다. 건물이 하나의 미술관인 셈이다. 먼저 1층 현관 오른쪽은 강익중의 ‘2010 아름다운 강산’. 7,500개의 미니캔버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설치 당시(2010년) 국내 최대 규모였으며, 이후 교체와 추가로 8,100개에 이르렀다. 이미 전 세계 어린이 작품 그림조각으로 통일동산에 ‘십만의 꿈’을 설치했던 그의 콘셉트는 ‘작은 삶에 귀 기울이기!’이다. 작은 것은 모여 큰 것이 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꾼다. 작품은 그의 믿음의 증거들이다. 다음은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불우한 가정사와 부모의 이혼으로 어릴 때 입양된 인디애나는 17살 때까지 20여 차례가 넘게 이사를 다녔단다. 낯선 도시와 표지판들로 가득했을 그의 삶이지만 ‘EAT’, ‘LOVE’, ‘ART’, ‘HOPE’를 만들며 사랑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 엄마가 건네는 “밥 먹었니?” 한 마디는 세상 곳곳에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을 울리고 있다. “사랑한다”라는 단어가 간절했던 그의 허기진 내면을 ‘예술’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보답했을까? 초반의 각광과는 다르게 긴 시간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다 은둔 생활 끝에 생을 마감하였다니 건조한 팝아트 ‘LOVE’가 달리 보인다. 

 

프레일겐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 출생 작가이다. ‘당신의 긴 여행, Your Long Journey’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한 공간에 연결한듯하다. 결코 녹록치 않은 여행이나 인간은 이에 맞서 응전하고 전진한다. 마치 전투적 구호처럼 여겨질 것 같은 세계관이건만 막상 40m 길이의 이 작품은 균형 잡힌 유닛들의 경쾌한 긴장감으로 즐겁다. 특히 각도를 달리해도 흩어지지 않는 동세와 예술적 곡선들은 고도로 공학적이다. 너무 완벽해서 살짝 비현실적인 인생이긴 하다. 

 

이 작품은 조각과 공간이 서로 돕는다. 빌딩의 2층에서 4층에 이르는 계단과 천장의 작품명은 ‘天·地·人(천지인)’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실 때 모음의 기본 3자를 天·地·人으로 삼으시니 천(ㆍ)은 하늘이요, 지(ㅡ)는 땅이며, 인(ㅣ)은 사람이라. 하늘·땅·사람이야말로 세상의 궁극이라 여기셨다. 2층에서 4층을 오르는 유리계단은 천장의 은하수 조명과 환상의 짝꿍이다. 계단을 오르는 인간이야말로 땅과 하늘을 잇는 유일하며 소중하고 그럼에도 겸손해야 하는 존재임을 경험해본다. 다만 오르고 내릴 시 치마를 부여잡는 수고를 잊으면 살짝 곤란하다. 그 외 신현중의 작품 ‘뿔 있는 우제류를 위하여’, 아프리카 여행 시 대지의 원초적 생명력과 창조성에 매료당했다는 신상호의 분청사기 작품 ‘Head 2000’, 테라코타 작업으로 스케치 없이 완성한 주인공에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소품으로 완성하여 제작한 히로토 키타가와의 인형 같은 작품 ‘Akemi Hiiragi’ 등이 있다. 

 

이들을 모두 훑어보다 보면 세화미술관에 이른다. 세화의 정체성은 ‘미디어 아트 전용 전시관’이다. 그간 ‘움직이는 갤러리-미디어 아트 상영전’으로 서정적 일러스트 감성과 역사, 시간을 함께 담은 연작들이 이어졌다. 모두 온라인 갤러리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최근 세화에서는 데이비드 살레, 알렉스 카츠 등이 참여한 ‘정물도시전’이 열리고 있다. 그간 세화가 일관되게 쌓아온 도시기획전 연작의 네 번째 ‘도시전’이다. 세화의 장점은 얄팍한 호주머니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저렴한 관람료나 무료전시가 많다는 것이다. 

 

시멘트와 미술의 만남, 성곡미술관 
세화에서 나와 길을 건너 서울역사박물관 우측 골목으로 걷기 5분 정도면 성곡미술관이다. 쌍용그룹의 창업자 성곡 선생을 기리며, 선생이 거주하던 자택을 미술관으로 개관한 성곡미술관은 경희궁 뒷길에 위치한다. 일단 조용하다. 특히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사계절 각기 다른 색채로 다가오는 미술관 밖의 미술관으로 명성이 높다. 수년 만에 다시 찾아도 나무들이 조금 낯선 것 말고 평화와 고요의 기운은 그대로였다. 미술관은 좌우 양쪽으로 지하 1층·지상 3층의 건물 두 채가 가운데 조각공원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성곡미술관은 1995년 ‘시멘트와 미술의 만남(Fusing Cement in Art)전’으로 문을 열었다. 현재는 안도타다오 같은 건축가들의 작업에 힘입어 시멘트에 대한 인식이 예술적 가치와 호응하지만, 당시만 해도 각종 매체에서 화제가 될 만큼 신선한 발상이었다. 성곡은 젊은 작가들을 몹시 사랑한다. ‘성곡에서 작가상 받을 정도면 미술계에서 작품을 인정받았다’고 자부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성곡만의 또 다른 자랑은 사진·패션·디자인·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기획전시이다. ‘제12회 공간 국제 판화 비엔날레’, ‘사진의 힘, 21명의 프랑스 현대 사진가들’, ‘앙드레 케르테츠전’ 등은 작가와 대중의 거리는 좁히고 일상을 예술로 초대하는 수준 높은 전시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을 좋아한다면 성곡의 전시를 눈여겨 볼일이다.

 

작품에 공간을 더해, 야외조각전시장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아이디어를 건져 올렸다면 현대인은 미술관에서 크고 작은 영감을 얻어낸다. 작품의 예술적 감동에 공간을 얹어 받기 때문일 것이다. 성곡은 공간의 아름다움으로, 전시가 없는 인터미션 타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마당에 들어서면 저절로 야외작품으로 발길이 간다. 개인적으로 구본주의 작품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성곡은 충분하다. 리얼리즘 조각의 대표주자 구본주는 노동하는 인간의 곡진함과 슬픔·저항을 대중에게 전한 예술전사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늘어진 주름과 굽은 어깨, 힘줄이 솟은 팔뚝 등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구겨진 넥타이와 양복 위에 고함치듯 입을 벌린 작은 머리의 남자 ‘생존의 그늘’ 앞에 서면 ‘갑오농민전쟁-저항’,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아빠의 청춘’ 등의 작품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구본주와 함께 한국 근현대사를 달려온 인물들이다. 

 

조성묵은 버려진 의자를 슬퍼한다. 수많은 의자 모빌과 거대의자인 실험적인 작품들로 베니스·독일·이탈리아 등 국제무대를 침공하였다. 작품 ‘메신저 951595’의 두 의자는 돌다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징검다리는 시멘트, 의자는 브론즈이다. 그의 작품은 인간소외에 대한 연민일까, 희망일까? 쓰레기를 유리상자에 넣어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집적예술’의 표본으로 거듭난 아르망의 ‘expressissimo’ 작품은 일단 멋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폐품을 달고 고뇌하는 돈키호테 같다. 나무작가 이재효의 작품 ‘0121’은 성곡의 심볼마크와 같다. 버려진 나무들을 꼬았을 뿐인데, ‘나무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재료가 가진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는 작가의 나무 다루는 기술이 신의 경지에 올라 있다. 이들 작품은 멀게는 1995년부터 2016년까지 이곳에서 사시사철 비와 바람, 추위와 더위에 노출된 상태로 서 있었다. 상당 부분 훼손되어 사랑하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는데 2016년 금융그룹 BNP파리바(1994년부터 프랑스 베르사유궁전·퐁피두센터·오르세미술관 등 2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보존·복원해 내고 있다)가 작품 7점에 대한 보존·복원작업을 지원하여 원래 모습을 살려내었다. 

 

시작은 시멘트였으나 꾸준한 전시작업으로 사대문 안 최상의 인지도를 다져왔던 성곡미술관은 어린이 관람객이 많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조각공원 카페는 아주 작은 규모임에도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특히 최상의 풍경을 선사한다. 최근 성곡의 매각소식이 들려 아쉬운 마음이 크다. 도심 속 휴식처 성곡이 사라질 수 있다니. 새것, 멋진 것 말고 옛것, 작은 것에서 안식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점점 공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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