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남짓 유행성 결막염을 앓았던 적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쓰고 지낸 그 시간들이 무척이나 길고 지루한 터널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손을 씻고 가급적 사람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세상이 손을 내棘諍?내가 뿌리치며 달아났습니다. 그리고는 무채색으로 채워지는 삶의 빛깔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공간에서 서툴고 단조롭기 그지없는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저는 유행성 결막염을 앓고 있었나 봅니다. 항상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뛰어들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돌 뿐이었습니다. 세상이 내게 손을 내밀어도 고개를 저으며 물러나곤 했습니다. 몇 번인가는 시의 끈을 놓쳐버리고 사는 일에 열중하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내 존재 방식의 한 가지 방편이었지만 늘 허전하고 쓸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작은 깨달음을 얻고 세상 곁으로 다가가 따뜻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팔십 평생 고생의 그늘을 벗지 못하신 어머니, 그리고 무심한 듯 격려를 아끼지 않은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놓쳐버린 시의 끈을 다시 손에 쥐어준 밤비와 아침편지 가족들, 충호형, 홍식, 영대, 종필, 그리고 저를 아껴주시는 선후배 선생님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시의 길로 정진할 수 있게 선글라스를 벗겨주시며 세상 속으로 등을 떠밀어주신 이가림, 나태주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안태현 경기 양주덕현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