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장이 학교폭력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전담기구 또는 소속 교원이 가해 및 피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학교폭력예방법」 제14조 제4항). 실무적으로는 신속한 처리, 보안의 유지, 학생 및 보호자와 소통창구 일원화 등의 문제로 학교폭력문제를 다루는 학교의 ‘책임교사’(흔히 학생생활지도를 담당하는 부서 교사)가 학교폭력 사안 처리과정을 전체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오랜 기간 학생 생활을 지도한 베테랑 책임교사를 찾아보기는 어렵고, 초등학교는 그 특성상 담임교사가 면담을 진행하는 일이 잦아 면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이 많다. 이번 호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의 처리과정에서 학생과 보호자를 면담할 때, 어떤 일들을 주의해야 하는지, 학생확인서(진술서)를 작성하도록 지도할 때 어떤 내용을 담도록 지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요령을 준비해 봤다.
학생 면담의 시간·장소·방법을 정할 때 주의점
학교폭력 사안을 자주 접하지 못한 교사의 특징 중 하나는 마음이 급하다는 점이다. 실제 앞서 살펴본 「학교폭력예방법」에서도 ‘지체 없이’ 하라고 명시되어 있기에 신속한 처리를 하겠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급한 마음은 실수를 부르기 마련이다.
학교폭력에 관해 학생들을 면담하기로 하였다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면담을 위한 시간과 장소다. 급한 마음에 수업 중 문제 된 학생에게 “너 수업 끝나고 학교폭력 때문에 물어볼 일이 있으니 남아라”라는 말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하거나, 혹은 수업에 빠지게 하고 면담을 하는 일이 많다.
이때 학교폭력에 대한 비밀이 지켜지지 않았다거나, 사안 조사로 인해 수업권이 침해되었다는 학생 측의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 따라서 되도록 다른 학생들이 방문하지 않는 상담실 등 별도의 공간을 이용하고, 수업시간을 피해 면담시간을 잡는 것이 좋다.
또한 학교폭력에 관한 면담은 일대일 면담이 기본 원칙이다. 이는 면담에 있어서 학생을 집중하게 하고, 그 면담내용이 다른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며, 비밀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간혹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한곳에서 면담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부적절한 방법이다.
근래에는 가해학생이 다수인 학교폭력이 많다. 때문에 피해학생은 따로 면담을 진행하더라도 가해학생들은 한곳에 모아 두고 집단적으로 면담하거나 학생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같은 가해학생이더라도 학생별로 입장이 다른 경우가 대다수이고(일반적으로 자신은 가만히 있었는데 다른 가해학생이 나쁜 짓을 한 거라는 등), 각자가 서로의 행동에 대한 목격자 위치에 있기에 이 역시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학생 면담과 학생확인서 작성 지도방법
학교폭력 사안 처리과정에서 학생의 면담내용과 진술을 담은 학생확인서는 사실상 필수적인 서류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은 이러한 학생확인서를 작성해 본 일이 없다. 이런 일을 해본 적 없기는 교사 역시 마찬가지라서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지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순서상으로 피해학생에게 학생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폭력 사안을 파악하기가 쉽다. 이때 발생한 학교폭력의 일시와 장소, 가해학생이 누구인지, 가해행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해학생이 다수라면 개별적인 가해행위), 그로 인해 자신이 입은 피해가 어떤지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담기도록 지도한다.
이때 가장 간과되는 부분은 학교폭력의 일시와 장소이다. 보통 피해학생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가해학생의 학교폭력을 특정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므로 최소한의 기재는 필요하다. 시점에 대하여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알기 어렵더라도 예컨대 ‘2023년 3월 초’, ‘2023학년도 1학기’, ‘점심시간 무렵’, ‘2교시 끝난 후 쉬는 시간’과 같이 작성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장소도 이와 유사한데, ‘○○아파트 인근 골목’, ‘학교 정문 근처’, 사이버 학교폭력이라면 ‘○○의 페이스북 페이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등으로 기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피해학생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가해학생에게 학생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학교폭력의 일시와 장소, 학교폭력 내용의 요점을 설명하며, 그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이때 가해학생의 주장은 다양하고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결국은 ① 피해학생이 주장하는 학교폭력 사실을 모두 인정하거나, ② 피해학생이 주장하는 학교폭력 사실이 전혀 없는 일이라고 하거나, ③ 피해학생의 주장이 대체로 맞지만,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세 가지 중 하나다.
위 세 가지 입장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학교폭력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행동의 이유가 있는지, 학교폭력 사실을 부인한다면 피해학생의 신고내용과 다른 부분이 어디인지, 본인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있는지 등이 확인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
간혹 초등학교 저학년, 장애학생,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다문화학생이 관계된 학교폭력 사안은 학생이 확인서를 작성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교사가 발언의 취지를 듣고 그 요지를 작성해 주거나, 특수교육 전문가 혹은 보호자 등을 통하여 작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학생확인서 작성 지도 시 유의사항
이렇게 교사는 학생확인서 작성 요령을 지도할 수는 있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관여하지는 않고 자유로운 의사로 작성할 수 있도록 한다. 간혹 관련된 증거가 충분함에도 학교폭력 사실을 부정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하는 학생의 태도에 화가 날 수도 있고, 관련된 학생들의 진술이 엇갈려 사실을 파악하기에 답답한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작성한 내용을 폐기하고 다시 작성하도록 하거나, 강압적인 태도로 작성을 요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약 학생이 확인서의 작성을 일절 거부한다면 작성을 거부하였다는 내용을 남기면 족하다.
간혹 학생의 보호자가 학생이 학교에서 작성한 확인서의 기재 내용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다. 그런데 사건 초기 학생이 작성한 확인서가 진실에 가장 부합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보호자 등이 학생의 진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그 내용이 변질되고, 그만큼 신뢰성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학생이 이미 작성한 확인서를 보호자가 수정하겠다고 하는 요청은 받아주지 않는 편이 좋다. 이 경우 초기 확인서는 그대로 보관하되, 추가적인 내용의 확인서나 의견서를 작성하도록 권하고, 부득이 기존 확인서에 대한 수정을 가하겠다고 한다면 기존 확인서 하단에 추가 기재되었다는 사실과 기재 일시를 표시하여 변경된 내용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면담을 녹취할 수 있냐는 질문도 많다. 녹취가 가능하나 되도록 그 정당한 사유를 상대방에게 밝히고 동의를 얻어 진행하는 편이 좋다. 동의 없는 녹취가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고, 학교폭력에 관한 증거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간혹 이러한 면담과정의 녹음이 민원이나 갈등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호자·변호사 등의 학생 면담 참여 요청에 대한 대응
근래에는 학생 면담과 학생확인서 작성과정에 보호자가 참여를 원한다고 하거나, 학생 측에서 선임한 변호사를 동석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하다.
먼저 학교폭력 사안 조사과정에서 학생 면담과 확인서의 작성에 관해서는 「학교폭력예방법」 등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없다. 따라서 보호자나 변호사의 상담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대구지방법원 2018.7.4. 선고 2017구합23959 판결 참조).
실제 관련 학생들이 보호자·변호사가 동석한 자리에서 꾸중을 두려워하여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운 일도 있을 수 있고, 동석자가 지나치게 관여하여 학생에 대한 상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으며, 그 때문에 교사와의 다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참여가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반대로 이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면담과정에서 개입을 자제하도록 발언에 제한을 둘 수도 있다. 진행과정에서 계속된 관여가 이루어져 원만한 면담이 불가능해 보인다면, 학생확인서나 의견서 등을 학교 외부에서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보호자와의 면담
학생 대부분은 미성년자이므로 보호자가 사안 조사 절차에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예방법」은 일관되게 ‘보호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일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학생에 대한 친권이나 양육권과 같은 법적인 권리는 부모가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조부모가 양육하고 있는 경우, 부모가 이혼하여 일방이 학생을 양육하는 경우, 부모의 맞벌이로 함께 사는 삼촌이나 이모가 학생과 더욱 밀접한 경우 등에는 이들을 보호자로 인정하여 면담을 진행하면 될 것인지, 아니면 반드시 학생의 법률상 보호 감독 의무자로 한정하여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보호자의 개념에 대하여 「교육기본법」은 ‘부모 등 보호자는’이라고 표현하는데, 결국 보호자가 반드시 부모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교육기본법」 제13조 제1항), 「학교폭력예방법」의 목적이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학생의 곁에서 양육과 교육을 책임지는 자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한편 「학교폭력예방법」은 보호자가 요청한다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반드시 개최해야 하고, 학교장 자체해결 과정에서도 보호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등 사안 처리 절차에서 보호자의 의견을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문에 한 명의 학생에게 보호자가 다수라면 담당 교원으로서는 같은 설명을 수차 반복하여야 하는 불편을 겪을 수 있고, 특히 보호자 사이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다르게 학교로 전달된다면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절차의 진행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경우라면 보호자들에게 의사전달의 통로를 단일화해달라고 요청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