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학교 교육과정 중의 수련활동 행사 책임자로 설악산으로 수련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학년부장으로 480명 정도 학생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2박 3일을 가정과 학교를 잠시 잊을 수 있다는 것으로 설레었다. 학교장에게 신고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학생들은 그다지 신이 난 표정들이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출발을 했는데 그 이유를 수련회 마지막 날 알게 되었다. 수련회 활동 중에 마지막 날 ‘사제 통감’코너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원하거나 서운했던 것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시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제발 선생님 그것만은 말아 주십시오’라는 타이틀로 외치기 시작했다. 1. 선생님 제발 수업시간 꽉 채워서 수업하지 마세요. 우리가 얼마나 답답한지 아세요? 5분이나 10분 정도 여유시간을 주세요. 선생님들도 꼼짝 않고 50분 수업 들어 보세요. 몸이 얼마나 뒤틀리는지 장난이 아니에요! 2. 선생님 제발 저희가 좀 졸더라도 내버려두세요. 조금만 졸게 해주세요. 밤 12시가 넘어 잠들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오잖아요. 피곤해 죽겠어요! 3. 선생님들! 너무 수업내용에 치중한 나머지 재미없게 하셔서 막 졸려요. 제발 졸리게 수
삼별초, 자주를 외치다 지난 호에 이어 진도를 찾아갑니다. 진도는 삼별초의 본거지였습니다. 삼별초는 본래 최씨 무신정권에서 경찰기능을 맡았던 야별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야별초는 그 수가 많아짐에 따라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게 되었고 후에 몽고와의 전쟁 때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병사들인 신의군과 합쳐 삼별초라 부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삼별초는 도둑을 잡고 범죄자를 투옥하는 치안유지의 기능과 함께 대몽항쟁의 최전방에 있었던 군사적인 기능까지 아울렀던 것입니다. 1206년 칭기즈칸이 나라를 세운 뒤 줄곧 고려는 몽고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급기야 1225년 몽고사신 저고여(著古與) 일행이 압록강가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를 계기로 몽고의 본격적인 침략이 진행되게 되지요. 이에 맞서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은 장기적 항전을 결심하고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깁니다. 몽고에 대한 줄기찬 항전에는 최씨 무신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던 삼별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258년 김인준에 의해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듬해 결국 몽고와 강화를 맺게 되고 그 후 개경 환도가 결정됩니다. 최씨 무신정권의 핵심병력이었던 삼별초는 약 40년간 고려의 수도였던 강화도를 버리고
월급날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왜 통장잔고는 바닥을 치는 건지…. 카드사 두세 곳에서 카드대금 나가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우는 소리하는 사람들 참 많이 있죠. 저 역시 그 중 한 명 일겁니다. 버는 건 크게 나아지지 않는데 카드 대금은 왜 상승곡선을 그리고 쭈욱쭈욱 올라가는 건지. 울적할 땐 그저 뭔가 하나씩 장만하는 게 최고의 처방이 아닌 줄 알면서도, 지름신에 지배당하는 신자본주의 쇼퍼홀릭(Shopaholic·쇼핑에 중독된 사람) 진단서. ‘사 버린다’의 메커니즘이 당신을 휘감을 때 한 20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장보러 마트에 들렀다가 신상품인데 특가 30% 해준다기에 예정에도 없던 등산바지 하나 사버렸고요, 다음 달 휴가 가는 동료 면세점 쇼핑 간다기에 따라 나섰다가 나만 빼고 다 쓰는 것 같은 D사의 화이트닝 라인 화장품을 그냥 질러버렸고요,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쓰러져 TV를 켰는데 홈쇼핑에서 멋진 모델들이 자동복부운동기기를 몸에 감고 나와 뱃살을 빼는걸 보니 저게 바로 내게 당장 필요한 물품인 것 같아 10개월 무이자로 신청했더랬죠. 출근해서 메신저에 로그인 해보니 평소에 좋아하는 E브랜드의 스카프세트가 금일선착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올해에도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대한교육연합회에서는 1983년 5월 12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간을 교육주간으로 정하고 전국적인 행사를 갖게 된다. 체신부에서는 스승의 날을 기념하고, 이를 계기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인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 대해 온 국민이 공경하는 마음씨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체신부가 1983년 5월, 스승의 날 기념우표를 발행하면서 함께 발표한 내용입니다.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새교육 1983년 7월호는 제2회 스승의 날 기념화보를 실으며 함께 체신부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발행한 기념우표 사진을 실었네요. 이후 기념우표 발행은 1991년 제10회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딱 한 번 이뤄진 뒤 사라집니다. 스승에 대한 마음이 사라진 요즘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해 씁쓸합니다. 우정사업본부가 다시 기념우표를 발행할 생각은 없는지 조용히 물어봅니다.
희생 : 피해 (2) ‘희생’이라는 이름 붙이기 예전에 TV에서 인간이 취하는 뜻밖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를 얼핏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 몸을 던지는 사람이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전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플랫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뛰어드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 사람의 타고난 성정과 그때까지 살아온 내력을 철저히 분석한다고 해도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정신작용이라고 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자기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사람을 매스컴에서 보도할 때 마치 숭고한 ‘희생의식’을 가지고 그렇게 한 것처럼 보도하곤 한다.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 ‘희생정신’이라든지 ‘고귀한 신념’ 같은 말을 언급하기보다는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거나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행위를 가리켜 ‘희생의식’이나 ‘희생정신’과 연관 짓는 것은 ‘사후에’ 그 행위를 대상화하고 거기에 의미를 붙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