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야한다. 글을 쓰는 사람도 행복해야하고, 글을 읽는 사람도 행복해야한다. 수필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필을 쓰는 사람도 그리고 수필을 읽는 사람도 모두 행복해야한다. 사람을 행복하게 할 때 수필은 빛난다. 수필이 주는 행복은 오락이나 재미일 수 없다. 수필의 행복은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깊은 사랑을 원천으로 한다. 수필의 행복은 근원과 본질에 대한 순수한 성찰을 통해 자기를 창조하는 과정 속에 있으며, 미적 사유를 통해서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가운데 존재한다. 수필의 행복은 사람으로 살아가야하는 버거운 운명 앞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그리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마음속에 자리한다. 나는 수필 쓰는 일이 행복하지만은 않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수필 쓰는 일이 고통스럽기 조차하다. 그래도 쓴다. 그래도 써야한다. 쓰지 않으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수필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는 거창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내 존재를 확인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붓 가는 대로 써도 수필다운 수필이 되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 그 날이 오면, 내 글을 읽는 사람도 그 만큼 더 행복해질 것이다. 당선 소식을 듣고 먼저 거울을 보았다. 내 모습이 제법 괜찮
마당에도 안 계신다. 마루에도 안 계신다. 서둘러 사랑방 문을 여니 한겨울 오후의 옅은 햇살이 냉기 가득한 빈방을 지키고 있다. 가슴이 미어지더니 뜨거운 눈물이 펑펑 솟는다. 돌아가신지 25년이 지났건만 고향집에만 오면 아이처럼 아버지가 보고 싶다. 아내가 흉볼까봐 서둘러 눈물을 닦고 새로 지은 안채로 건너간다. 현관을 들어서니 형님 두 분과 형수님 두 분 그리고 제수씨가 이미 제사 음식을 장만하시느라 분주하다. 형제를 만나는 반가움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밀어낸다. 나는 세상의 모든 직함을 버리고 그저 계산댁 셋째 아들이 된다. 작은 방으로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온다. 깨끗이 씻은 문어, 돔베기, 쇠고기 그리고 고등어 등이 소반에 담겨있고, 널찍한 도마에 놓인 큰 칼은 새파랗게 날이 서 있다. 손을 씻고 무릎을 꿇어 조심스럽게 도마 앞에 앉아 어육을 장만하기 시작한다. 어육을 장만하는 특별한 일은 의례히 두 분 형님께서 맡아하셨다. 어육을 다루는 절제된 손길과 경건한 표정을 바라보면서 형님들의 아버지에 대한 흠모의 지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모의 숭고가 열락으로 승화하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몇 해 전에 어육 장만하는 일을 물러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