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과 도시를 오가며 오랜 기간 교직에 몸 담고 있으면서 시골과 도시 아이들의 서로 다른 점을 많이 보아왔다. 물론 어느 곳이 더 좋다 라는 말을 못 하겠지만 분명 차이는 있었다. 그래서 그네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자란 환경에 따라 성격 형성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체로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핵가족 생활을 하고 있는 도시의 아이들은 단정하고 깔끔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학력면에서는 우수하고 문화적인 혜택을 많이 누린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대부분 한 가지 이상 학원도 다니고 있으며 친구 관계 또한 부모들이 인위적으로 형성해 주려고 노력도 한다. 또 좋은 도서도 많이 읽고 일기도 열심히 쓰며 바른 인성과 옳은 행동을 하려고 늘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바쁜 하루 일정(?)에 쫓기다보니 친구들과 즐겁게 놀 시간이 부족하고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안전상의 문제로 인해 부모의 행동반경에서 맴돌고 있으며 그 범주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서가 조금은 메마르고 사고의 기회가 폭넓게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된다. 그런데 시골 아이들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본인은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초등학교 교사다. 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수학 학원의 학부모 설명회에 다녀왔다. 원장의 이런저런 얘기 중에 요즘 아이들의 수학 성적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다. 학원이 없었던 그 옛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수학 문제 푸느라 보내고 그래도 모르면 체크해 뒀다가 학교에 가서 쉬는 시간 틈틈이 선생님께 여쭈어서 알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은 학원이다, 학습지다 해서 좋은 환경에서 많은 양을 공부하고 또 선행 학습을 하는데 실력이 떨어진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집에 와서도 거기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해 보았다. 21세기의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이미 대중화 되어 있는 인터넷 사용과 게임, 핸드폰, 그리고 학원에서의 선행 학습이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우선, 요즘 아이들의 대부분이 중독되다시피 한 인터넷의 화려한 유혹과 게임, 무분별한 핸드폰 사용 들이 아이들의 머리에서 사고하는 능력을 ‘일시 정지’시켰다고 생각되어진다. 화려한 영상이 깃들여진 컴퓨터 화면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흑백으로 된 책과의 공부에서 멀어지게 하고 속전속결의 게임을 하는 아이들에게 따분하고 지루한 책상머리에서의 공부는
본인은 초등학교 여교사다. 요즘 언론에서 남자 교사 할당제에 대해서 여론이 분분하다. 언제부터였던가 교육대학에 여학생 비율이 높아지면서 이미 남성 할당제가 시행중이다. 입학 때부터 남여의 학력에 차이가 나게 들어왔으면 그들은 더욱 노력하여 임용고시에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대비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더욱 남여 차가 커지고 급기야 임용에서도 남자 할당제를 운운하고 있는 형국이다.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가 그 때 반장 선거를 했는데 본인은 가장 많은 득표를 얻었는데도 반장은 남자가 해야 한다고 차점자를 반장으로 하고 부반장에 머물러야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분위기로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오늘날 이런 문제가 나오니 새삼 그 때 일이 떠오르면서 매사에 남성이 우선이고 여성이 능력껏 소신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언제까지 박탈당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남성 할당제는 당장은 많은 실력 있는 여성에게 교사로서의 기회를 빼앗고 나아가서는 학교사회에 남여간의 갈등을 부추길 여지가 충분하다. 그리고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교사의 꿈을 접어야 할 대한민국의 많은 우수한 여학생에게는 무엇으로 보상할
내 인생의 정점과 절정기는 언제였을까? 고교 30주년 사은회에 갔을 때 회장의 축사에서 우리는 인생의 정점을 넘었다고 하였다. 그 말을 애써 부인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문득 나는 인생의 정점을 넘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우리는 태어나서 혼자였다가 인연을 만나 둘이 되어서 사랑의 결실인 자식을 두어 가족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자녀들이 출가하면 다시 둘이 되는 부부! 이어서 노년을 맞아 누군가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숙명은 우리를 다시 하나로 만든다. 삶의 과정이 하나에서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면 자식을 낳아 키우는 과정 즉, 자녀들이 장성하기까지가 내 인생의 절정기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물론 일을 가진 사람은 성취욕에 매진할 때이며 가정과 직업을 양립한 자이면 더욱 열정적인 삶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혼자로 있을 때의 외로움, 짝을 찾기 위한 혼란과 격정의 시기를 이겨내고 둘이 되는 과정이 인생의 정점을 지나 다시 둘이 되는 시점에는 어떻게 다가올까? 흔히들 말하는 제2 사춘기도 이때에 오는 것이 아닐까? 다시 둘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중년의 빈 둥지 증후군, 아니 어쩌면 편안과 안락을 느끼는 이들이 훨씬 많으리! 하지만
옛날에는 스승께 회초리를 한 아름 갖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구태여 언급하지 않더라도 학교에서의 체벌은 아동 교육상 어느 정도는 인정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변하여 이제는 교사가 아동에게 매 한 대 들면 불법행위로 간주되는 ‘체벌에 대한 법제화’를 추진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착잡한 마음이 든다. 오래 전에 '유태인의 교육법'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들은 철이 든 애들에게는 훈계를 하고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어린애들에게는 해야 될 일들을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매로서 다스린다고 했다. 본인의 경우도 우리 아이가 어릴 때는 매를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된 지금은 거의 때리지 않는다. 잘못한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로 해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네들의 교육법에도 일리가 있다고 느끼면서 실제로 6학년을 담임했던 몇 년 전에는 학년 초부터 벌점제를 만들었다. 떠들거나 주의 산만으로 인해 한 번 이름이 불리는 것을 1점으로 해서 하루에 3점이 되었을 때에는 반성문을 써야 했다. 6학년의 아이들에게는 지겨운 글짓기보다는 차라리 매 한 대를 선호하는 아이도 있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담임으로서는 때리지 않아 좋고 애들은 반성문 쓰기 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