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대란 원래 왕조 시대에 벼슬아치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임금의 절대 권력이 강한 시대라고는 해도, 독대를 상설 소통 시스템으로 운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왕과 신하가 둘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만큼 ‘독대’는 특별한 사유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또 그만큼 독대의 폐해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독대는 권력의 수직관계가 뚜렷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둘만의 대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권력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따라서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는 친한 친구 사이에는 아무리 둘만의 호젓한 대화 장면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굳이 ‘독대’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냥 예삿일일 뿐이다. 실제로도 ‘임금과의 독대’는 흔치 아니하였으므로 독대는 예삿일이 아니었다. 권력자를 독대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을 표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독대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다녔다. 이는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독대의 반대 현상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독대로 인해서 무시되거나 밀려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제도(조직)의 시스템
1. 신혼 초에 있었던 일이다. 맞선을 보고 4개월 만에, 서른세 살 늦장가를 간 나는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다. 그날도 저녁 어둠이 내릴 때쯤 퇴근을 했다. 마침 아파트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섰더니, 아차!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 부엌 등불 아래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여인이 있기는 한데, 아주 낯이 설다. 내 아내가 아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미안합니다. 잘못 집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하고는 얼른 나왔다. 아무래도 3층인 우리 집을 지나서 한 층 더 올라온 실수를 한 것 같아서 급히 아래층 아파트로 내려갔다. 좀 전 위층에서의 무안함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나는 무어라 투덜거리며 당당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랬더니 아내가 아닌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준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내가 당황스럽게 우물쭈물 하자 그녀는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확인하고서는 얼른 문을 닫아버린다. 그제야 그 집 아파트 호수를 확인하니 202호이다. 우리 집은 302호인데. 아니 그럼 아까 들어갔다 나온 위층 집이 우리 집 맞는데 말이야. 분명 다른 여자가 있었는데…. 나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1 육군 보병학교에서 유격 특공 훈련을 받던 때의 일이다. 비정규전 상황에서 산악 루트를 이용해 적진을 수색 침투해서 목표를 타격 섬멸하고, 적진에서 잡히지 않고 탈출해야 하는 훈련이었으므로 훈련의 강도가 매우 높았다. 산악구보와 특공무술, 참호격투, 도피 탈출 등 훈련의 전 과정이 고도의 긴장과 더불어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담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작은 실수조차도 용납되지 않아서 기합도 혹독했다. 앞 중대에서 하강 훈련을 하던 동기생 한 명이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해 심신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중대는 무등산을 넘어 지리산으로 향하는 54㎞의 심야 전술행군을 시작함으로써 유격 특공 훈련 일정에 들게 되었다. 그로부터 온갖 고초의 훈련과정을 다 감당해 내는 동안, 몸은 오로지 임무 수행의 목표에 기계처럼 단순하게 적응되어 갔다. 어떤 임무가 주어져도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몸을 던질 것 같은 일당백의 기운과 의지가 등등할 때쯤 우리들의 유격 훈련은 끝나가고 있었는데, 그 끝자리에 ‘담력 강화 훈련’이라는 것이 있었다. 능선과 구릉이 맞닿은 산악 어느 지점, 밤 12시에 우리 중대는 집결해 있었다. 교관은 엄숙한 표정으로 ‘담력강화 훈련’에 대해서 말
1 중학교 동창인 친구 M과 나는 그날 서울 역삼동 근처 생맥주집에 있었다. 우리 둘 말고도 몇 명 친구들이 더 있었다. 오랜만에 모여 저녁 함께 먹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맥주 한 잔 나누자고 들어간 자리였다. 유수한 시중은행의 부행장으로 있다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M이 맥주 값은 자기가 내겠노라 선언을 한 터였다. 고향 친구들이 우르르 모이는 자리는 영락없이 시끄럽다. 자기들끼리의 친숙함과 격의 없음을 과시라도 하듯, 화끈한 직설법 농담들이 퍼질러진다. 때로는 형편없이 유치해지기도 해서 막무가내 우기기식의 화법도 등장한다. 이야기 중에 추억담이라도 실리면,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녀석들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이런 자리에서는 진지한 화두를 꺼내어 대화의 격조를 살리기는 어렵다. 그래 보았자 잘난 척하는 꼴로 오해받거나, 공연히 좌중을 썰렁하게 한 죄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밥 굶었던 이야기를 위시로, 누가 더 꽁보리밥을 많이 먹었다는 둥, 교복 기워서 입고 다닌 이야기, 교과서는 으레 헌 책으로 구입했다는 둥, 대학 3학년 때 맥주를 처음 얻어먹고서는 석
1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가 있다. 박찬욱 감독이 2002년에 만든 작품이다. 송강호, 배두나, 신하균 등 개성파 배우들이 출연했던 영화로서, 개봉 당시 상당한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물론 평범한 복수 이야기로 그런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을 것이다. 관객들 마음이 상당히 불편할 정도로 복수의 내용과 행위가 악마적이고 끔찍했었다. 특히 복수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끝없이 연장되는 복수의 악연에 질려버릴 것 같은 삶의 모진 인과들에 지치게 된다고나 할까.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주연 격인 배우 송강호씨도 시나리오를 받고서 출연을 세 번이나 망설였다고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제목을 극장 간판에서 처음 보는 순간, 나는 이게 대단한 복수 이야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한 선지식이 따로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영화 제목에서 느껴지는 언어적 직관 같은 것이었다. 우선 명사구 형태의 이 영화 제목이 주는 독특한 인상에서 복수 의지의 단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복수는 내가 한다”라고 한다든지, 또는 “그 복수를 나에게 맡겨라” 라고 문장투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독하고 강한 복수 결의가 묻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1 사람들 사는 풍속과 세상 변화가 빠르다 보니, 갑자기 새로 생겨나는 말들이 많다. 신조어 사전을 보면 낯설고 이상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미 사전에 항목으로 등장하기까지에는 그 말이 이미 상당히 널리 쓰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러자면 그 말이 의미하는 어떤 현상이 세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PDA’라는 말이 신조어 사전에 올라 와 있었다. PDA가 뭐냐고 임의로 물어 보았더니, 내 또래들은 모르는 사람이 많아도, 학생들은 쉽사리 개인용 휴대 정보 단말기, 즉 PDA가 ‘Personal Digital Assistant’의 약칭이라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그만큼 널리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PDA’가 ‘공공영역에서의 애정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Public Displaying of Affection’의 약칭이라는 것이다. 사전에 따라서는 ‘Displaying Affection in Public’으로 풀이해 놓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젊은이들이 주변의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성 간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 크게 이상하지 않은 세태가 되었다. 그 ‘애정표현’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