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혼 초에 있었던 일이다. 맞선을 보고 4개월 만에, 서른세 살 늦장가를 간 나는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다. 그날도 저녁 어둠이 내릴 때쯤 퇴근을 했다. 마침 아파트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섰더니, 아차!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 부엌 등불 아래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여인이 있기는 한데, 아주 낯이 설다. 내 아내가 아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미안합니다. 잘못 집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하고는 얼른 나왔다.
아무래도 3층인 우리 집을 지나서 한 층 더 올라온 실수를 한 것 같아서 급히 아래층 아파트로 내려갔다. 좀 전 위층에서의 무안함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나는 무어라 투덜거리며 당당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랬더니 아내가 아닌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준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내가 당황스럽게 우물쭈물 하자 그녀는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확인하고서는 얼른 문을 닫아버린다. 그제야 그 집 아파트 호수를 확인하니 202호이다. 우리 집은 302호인데. 아니 그럼 아까 들어갔다 나온 위층 집이 우리 집 맞는데 말이야. 분명 다른 여자가 있었는데…. 나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대뜸 물어보았다. 아니 조금 전 내가 들어 왔을 때, 부엌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여자가 누구냐. 모르는 여자가 있기에 나는 우리 집이 아닌 줄 알고 나갔었지.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 말한다. 누군 누구에요. 그게 나에요 나! 아내가 우습다는 표정 반, 섭섭하다는 표정 반으로 말한다. 아내의 말을 듣고 의문이 풀렸다. 아내는 오늘 오랜만에 미장원에 가서 퍼머 머리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모습이 무언가 다르긴 다른 것 같다. 헤어스타일이 달라진 아내를 다른 사람으로 알고, 남의 집에 들어 온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 해프닝인데, 실제로 있었던 일임에는 어찌하랴. 이 일은 결혼 30주년을 바라보는 오늘까지 아내에게 면목 없는 사건으로 부각되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2.
비슷한 해프닝이 또 하나 있다. 결혼 전 총각 때의 일이다. 한번은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고속버스터미널에 갔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간단히 요기라도 해야 하겠기에, 표를 끊어 놓고, 분식점에 들어갔다.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놓았는데, 대각선 건너편 식탁에 앉은 어떤 젊은 여성이 나를 피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정면으로 다가오지도 못하며 앉아 있었다. 아니 앉자마자 그렇게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나도 그 얼굴이 알듯 말듯 했다.
나는 초임시절 약수동에 있는 장충여자중학교에서 근무했다. 선생으로서의 열정을 가지고 지냈던 시절이다. 아마도 그때의 제자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가깝게 알고 있거나 구체적인 인지를 하지 못할 경우, 이미 오래 된 옛날 제자들인데, 특별히 다가와서 아는 체를 하기도 좀 부자연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는 워낙 좁은 분식가게 안이니, 아주 모른 체 외면하기도 불편한 그런 공간이다. 이전에도 이렇게 어중간하고 서먹하게 옛날 제자를 조우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나는 그런 장면에서도 아주 모른 체하는 것보다는 어설픈 눈인사라도 해주는 제자들이 좋았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그녀와 나는 엉거주춤한 채 떨어져서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어색하고 부끄러운 듯 이마를 조금 숙여 시선은 피하면서 눈인사를 나누었다. 쟤가 누구였더라. 누구였더라. 그러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 짐작으로는 그녀가 대학 3, 4학년쯤 되었을 것 같았다. 차 시간이 되어 그녀보다 먼저 분식점을 나오며, 나는 그녀에게 한 마디 덕담을 건넸다. “공부 열심히 해라!”
버스에 올라 서울을 벗어나면서 차창이 훤해지고 나서야 내 기억의 창도 맑아지는 듯했다. 문득 머리 한 구석에 어떤 장면 하나가 떠오르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무안함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터미널 분식점에서 조우했던 그녀의 모습이 점차 확연하게 떠올랐다. 석 달 전인가 어머님 친구의 소개로 맞선을 보았던 아가씨! 바로 그녀였다. 그게 왜 지금 생각난단 말인가. 이런 낭패가 있나. 그녀는 얼마나 불쾌하고 기분이 상했을까. 무어라 욕을 했을까. “별 웃기는 녀석 다 보았네. 원 재수가 없으려니!” 아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 눈썰미라는 것도 참 어지간히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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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와는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작년에 울산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단다. 평소 눈썰미 좋기로 소문난 울산 남부경찰서 권 아무개 경찰관이 부산지하철 2호선을 타고 퇴근하다가, 지하철 안에서 한 50대 남자를 보며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곰곰이 생각하다 수배전단이 생각나 남부서 친구 형사에게 전화를 해 전단지를 모바일로 전송받았는데, 전단지를 본 순간, 남의 돈 10억 원을 몰래 훔쳐 달아난 용의자 A씨(56)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눈썰미이다. 실제로 수사관 적성을 테스트하는 데에 눈썰미 요소를 재어 보는 항목들이 있다고 한다.
‘눈썰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두 번 보고도 곧 그것을 해내거나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재치’로 풀이하고 있다. ‘눈썰미’에 해당하는 한자어로는, 눈이 공교(工巧)하다는 뜻으로 ‘목교(目巧)’라는 말이 있지만, 아무래도 말의 맛으로는 ‘눈썰미’를 따라오지 못한다. 눈썰미는 직관이 뛰어나고 빠른 판단력을 가졌을 때 발휘될 수 있는 오묘한 능력이다. 오묘하다 함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TV 프로그램에 ‘옥의 티 찾기’라는 것이 있다. 드라마 장면 등에서 여간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매우 사소한 촬영상의 실수들을 찾는 내용이다. 출연자들의 눈썰미 능력이 옴짝 없이 부각되는 프로이다. ‘눈썰미’는 인간 보편의 자질인 듯하다. ‘너 눈썰미 있다’를 영어로 표현하면, “You have quick eyes for learning things” 또는 “You pick things up quickly by just watching”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서양 사람들도 ‘눈썰미’의 능력을 예찬하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눈썰미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속성이 나타난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대상에 대한 민감성(Sensitivity)이다. 둔감한 사람이 눈썰미 있다는 평을 듣기 어렵다. 그런데 이 민감성이 노력으로 되는 것인지 타고나는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또 민감성이 인지적 범주의 것인지, 정의나 태도의 범주에도 해당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사람, 사진을 잘 찍는 사람치고 눈썰미 없는 사람 없다. 이것이 모두 민감성에 근거하는 눈썰미란 이야기이다. 요즘 창의성 교육을 이야기하는 첫 항목에 ‘민감성’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냥 흘려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눈썰미가 사람의 태도와도 관련되는 것이라면, 눈썰미의 두 번째 속성을 ‘사물과 환경을 대하는 적극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눈썰미가 좋은 인성의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효도의 출발은 눈썰미에 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추운 날 시골의 노부모님 댁을 여러 번 다녀와도 부모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자식은 눈썰미 있게 살피지 못하는 자식이다. 평생 시장에서 장사 일을 해 온 장사의 달인은 이렇게 말한다. “장사의 반은 목이고, 나머지 반은 눈썰미이다.” 가게의 위치가 좋아야 함은 물론이고, 물건과 고객을 대하는 적극성, 즉 눈썰미를 잘 발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눈썰미가 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눈썰미의 세 번째 속성은 나쁜 속성이다. 눈썰미가 ‘바깥 사물(外物)에 잘 흔들리는 경박성’으로 인식되는 경우이다. 이는 마음의 적극성이 진지함을 잃고, 지나치게 이익과 손해에 민감할 때 나타난다. 그냥 눈치만 무지무지 빠른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람들의 기피를 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인식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눈썰미 없다’는 평을 듣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4.
인터넷에 어떤 학생의 이야기 하나가 올라와 있다. 학교에 어떤 학부모가 오셨는데, 내가 아는 어떤 성악가와 너무 닮아서, 친구들에게 내가 아는 아무개 성악가를 닮았다고 신나서 이야기하고 다녔단다. 그런데 그 성악가를 아는 내 친구 하나가 “야, 그 성악가 닮은 게 아니라, 바로 그 성악가이라니깐!” 이러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탄을 했다. “나는 눈썰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요. 없다고 해야 하나요.”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앞에서 고백한 대로 눈썰미가 없는 편이다. 학생들을 눈썰미 있게 파악해 주지 못해서 낭패를 겪은 일들이 떠오른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더 그렇다. 이름을 틀리게 기억하거나 이전에 물어본 질문을 만날 때마다 반복한다. 학생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정말 선생님 노릇을 좀 더 잘하려면 정말로 ‘눈썰미 능력’을 길러야 하겠다. IT 첨단 기술 시대에도 사람의 눈썰미는 여전히 위력을 지닌다. 남다른 눈썰미를 가진 사람은 전체의 3% 정도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보석감정사, 조리사, 문화재감정 전문가 등과 같은 전문 직업은 아주 탁월한 눈썰미 능력을 필요로 한다.
교육적 눈썰미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아트 딜러(Art Dealer)라는 전문 직업을 생각하게 된다. 세계의 화단(畵壇)을 누비는 저명한 인물들, 이를테면, 팝아트 장르를 개척한 앤디 워흘이나 추상 표현주의 대가인 잭슨 플록과 같은 인물을 일찍이 무명 시절부터 지켜보면서 이들을 마침내 빛나는 진주로 발굴한 아트 딜러들이야말로, 뛰어난 교육적 눈썰미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기르는 교육자들에게 타산지석의 시사를 던져준다고 하겠다. | 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