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취학유예는 학교장의 재량 권한인지와 유예 신청 시 의사의 진단서가 반드시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A1.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에 의한 취학유예는 학부모의 신청으로 학교장이 결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출 서류에 대해서는 교육감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진단서 외에 읍·면·동장 및 학부모의 소견서 등도 증빙서류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유예결정에 교원의 의견서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동에 대한 취학유예의 결정을 학교장의 교육적 판단에 맡기는 것은 보호자의 자의적 결정에 의해 아동의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명확하지 않은 성장차이 등을 이유로 취학유예를 희망하는 보호자에게 학교장이 진단서를 요구하는 것은 의무교육 대상자의 교육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판단됩니다. 이때 학교별로 학부모, 교원, 의사 등으로 구성된 취학유예 결정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운영하여 취학유예를 신청한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면접을 통한 유예신청 사유 확인 등 합리적·민주적 절차에 의해 취학유예 결정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Q2. 학적 처리용어에 유예와 정원 외 관리라는 것이 있는데, 의미상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2. 유예는 재학하여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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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로 연계되는 과학 교과 북멘토 / 김종안 외 지음 / 13,000원 2008년도 대학입시에서는 내신 성적, 수학능력시험, 논술 시험의 반영 비율을 비슷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학생들은 ‘죽음의 트라이앵글’의 시작이라며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행되는 제도에 대해 걱정만 하기 보다는 학생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새롭게 바뀌는 대학입시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논술의 비중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통합 교과형 논술’이라고 하여 한 교과에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지식과 그것을 활용하여 펼치는 사고의 전개를 묻겠다는 것이 중요한 논술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에 일선 학교에서는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고, 각 출판사에서는 경쟁적으로 이에 대한 책들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에 이번에 발간된 〈기초부터 시작하는 과학논술〉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요 대학에서 실시한 자연계 논술 시험의 출제 경향을 보면 교과 과정 내의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논제가 주어지며, 과학 방법론,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물리량의 측정 계산, 과학철학, 과학 기
교육의 보편적 진리 담은 고전 지난 1967년 제작된 제임스 클라벨 감독의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은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일컬어지는 교육영화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제법 시간이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바라본 이 영화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교육영화들이 가진 정형화된 구성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사회와 학교가 포기해 버린 문제 학생들, 그런 학생들을 방관하고 있는 무기력한 교사들, 거기에 혜성같이 나타난 주인공으로서 교사, 그리고 그의 헌신과 희생에 극적인 변화의 순간을 체험하는 아이들과 여타 교사들, 마지막으로 멋진 해피엔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그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흐름의 이야기 구성이 전형적이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이후 수많은 교육관련 영화들의 형식과 내용에 이 작품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는가를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혹자는 ‘전형적’이라는 말 때문에 이 작품에 선입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장르의 예술이 그러하듯 한 영역의 전형이자 고전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측면의 완성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런 형식을 생생히
“그 얘기 들었어?” “뭐?” “○○ 알지? 오늘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이혼했다고 하데.” “그래? 왜? ○○씨 바람 같은 것 피울 사람 아니지 않나?” “원래 성격이 잘 안 맞았는데, 서로 참고 살다가 최근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나.” “내 그럴 줄 알았어. 가끔 얘기해보면 딱 감이 잡히더라고. 두 사람 서로 가까운 듯 행동하지만 왠지 겉도는 것 같고, 가식적인 면도 느껴지고. 어쩐지 이상하더니.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아는 그녀는 이렇게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는 사람의 가정사뿐 아니라 연예인에 대한 가십이나 정치적 사건이 보도될 때도 마치 전부터 낌새를 채고 있었다는 듯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그러면서 마치 ‘형사 콜롬보’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풀어나가는 것처럼 줄줄이 이유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듣다 보면 꽤 그럴듯하게 느껴져 그 일이 지금까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는 그녀의 버릇이 듣는 이의 입장에선 그리 탐탁지가 않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