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관 |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동해의 한복판에 외로이 서 있는 섬 독도는 우리 민족과 함께 가장 먼저 아침 해를 맞이해 온 섬이자 우리 영토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섬이다. 독도는 그 크기에 비해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받아 왔으며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섬이다. 최근 일본에 의해 야기된 독도 파동의 한 대응책으로 독도 관광이 개방되어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독도에 가 본 사람도 별로 없고 가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독도의 지질과 형성 과정, 그리고 독도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치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독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그러면 독도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어떤 사실이 밝혀졌는지 알아보자. 독도의 지질(地質)이 밝혀지기까지 1992년 초 필자가 학위논문 준비로 바빴던 어느 날, KBS에서 독도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계획으로 있으니 나중에 독도를 방문하여 독도의 지질과 형성과정에 대한 자문을 해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화산지질학을 전공한 학자가 드문 우리나라의 현실을 알고는 있었지
홍성근 | 한국외대 법대 강사·독도학회 이사 들어가며 독도는 2개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그 주변에 30여 개의 바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도(0.0647㎢)와 서도(0.0954㎢) 등을 합친 독도의 총 면적은 0.186㎢(약 5만7000평)에 불과하다. 동도의 정상 부분을 제외하면 섬 전체가 급경사로 평탄한 곳이 거의 없다. 그리고 서도의 물골이라는 곳에서 물이 나긴 하지만, 배수가 잘 되는 암석으로 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 담수의 식수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또 나무가 자라긴 하지만 대부분 초목류로 집을 지을 만한 나무는 아니다. 또한 일구어 양식을 생산할 만한 땅도 없다. 섬의 규모가 작아, 섬 주변을 흐르는 해류의 영향을 바로 받게 되어 예상할 수 없는 거센 바람과 파도가 몰아친다. 특히 태풍계절에 동해 방면으로 진행하는 태풍이 거의 빠짐없이 독도를 강타한다. 기온은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지 않으며 연중 비도 많고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린다. 자연히 독도에서의 생활은 바다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거주(居住)는 거센 바람과 파도를 피해 어로작업이 쉬운 계절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과 환경으로 인해, 독도가 지금으로부터 250만 년
이상태 |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 1. 독도는 어디에 위치한 섬인가?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7도14분18초, 동경 131도52분22초 지점에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동쪽에 있는 영토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 42-76번지에 속했으나 2000년 4월 8일부터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17번지로 바뀌었다. 독도는 울릉도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92km(약49해리: 최근 물이 빠졌을 때를 기준하면 87km임.) 지점에 있고 일본의 가장 가까운 섬인 시마네현 오키도(隱岐島)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160km(약86해리)떨어진 지점에 있다. 본토에서 볼 때는 동해안 울진군 죽변항으로부터 215km 지점에, 일본의 시마네현 사카이고(境港)로부터 220km 지점에 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라는 두 개의 섬과 그 주위에 흩어져 있는 36개의 암초로 독도의 총면적은 18만6121㎡(5만 6301평)이고 서도의 산 높이는 174m, 동도가 99.4m이다. 2. 독도는 언제부터 한국의 영토였는가? 신라 지증왕 13년에 이사부를 시켜 우산국을 병합한 AD 512년부터이며, 1500년전부터 우리의 영토이다. 거기에 비해 일본측 문헌에 독도가 처음 나오는
박성주 | 서울 잠원초 교사 좋은 어머니 되기란 성인군자 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어느 어머니의 얘기를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어머니도 인간인지라 자기 욕심의 노예가 되기 쉽고, 아이를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도구 내지는 소유물쯤으로 생각하기 쉬워서 여러 가지 우를 범하고 있다. 학교가 대학병에 걸려 있는 현실에서 많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지상의 목표인 듯 전 교육의 과정에서 과잉보호 내지는 과잉충성을 하고 있다. 더구나 고교 3년이 되면 자녀는 부모에게 상전 중에 상전이기 일쑤이고,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온 가족이 아이의 눈치를 살피느라 쩔쩔매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들이 모두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어느 선생님께서 함께 여행을 하면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다. 자신들을 대하는 어머니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머니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고 한다. 자녀가 하겠다고 하면 무엇이든 팍팍 밀어주는 어머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부족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과외 선생님도 모셔오고 먹고 싶은 것도 척척 대령하는 어머니, 더운 날은 에어컨을 팍팍 틀어 공부방을 미리
김환희 | 강릉 문성고 교사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달동네 모퉁이 옆 연탄 창고 앞에서 곰방대에 궐련을 말아 피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어찌나 담배를 맛있게 피우시는지 어떤 때는 어린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까지 생기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늘 세상의 온갖 시름을 담배 연기로 달래시는 것 같았다. 얼굴은 항상 새까만 연탄 가루가 묻어 있어 가끔 친구들이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놀릴 때도 있었다. 아버지와 마주치기 싫어 집으로 가는 지름길인 창고 앞을 두고 돌아서 간 적도 종종 있었다. 안방보다 조금 더 큰 우리 집 창고 안에는 늘 연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기상과 동시에 연탄 창고로 달려가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긋이 미소를 짓곤 하셨다. 가끔은 자식보다 연탄을 더 애지중지하게 여긴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못마땅한 적도 있었다. 간밤에 비라도 올 것 같으면 아버지는 쓰다 버린 이불로 연탄을 덮어주는 등 온갖 궁상을 떠셨다. 그리고 비가 그칠 때까지 방으로 들어오시지도 않고 아예 그날 밤은 창고에서 주무시기까지 하였다. 비가 그치면 덮어 둔 이불 하나하나를 걷어내면서 젖은 연탄을 닦아 줄 정도로 시커먼 연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