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의 지금의 심정을 떠올려 본다. 어수선함, 누군가는 대학에 이미 합격했으며 날짜는 점점 다가와서 초초한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이 마무리를 잘 한다는 의미보다는 어서 이 지옥 같은 입시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 대학에만 간다면 내 인생의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말해주었다.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고 지금은 모든 것을 감내할 때라고.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 것같은 대학 생활은 벌써 4년이 훌쩍 지나, 다시 나는 책상에 앉아있다. 되고 싶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나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공부가 과연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사회 타령도 해보면서 졸리는 눈을 참아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정말 이 공부만 끝나면 내년 부터는 절대 공부하지 않겠다는 알량한 마음도 가져본다. 마치 4년 전의 내 열 아홉 살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고통이 어떻게 아름다울수 있겠단 말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 대학생때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의 절반도 아직도 절반도 넘게 남아있는데 울상이었다. 이걸 외워서 무엇한단 말인가. 불평만
더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지친 날, 택시를 타고 학원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택시 운전기사가 반갑게 맞이했다. 평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지 목적지 하며, 내 근황까지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며 게다가 교육대학교에 다닌다고 하니 꽤나 관심이 있는 듯한 눈치었다. 그러다 요새 체벌에 관련된 이야기를 불쑥 꺼내시는 것이었다. "학생을 그렇게 때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럼 안되죠. 하면서 간단히 넘어가고 싶었다. 잔소리 처럼 많이 들었던 말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하셨다. "하여간 선생들이 더하다니깐"라고 시작된 이야기는 과거 자신의 아들이 선생님 아들과 싸움이 하였는데 그걸 가지고 상대방 아이가 피해 보상으로 거액을 요구하고 게다가 학교에 신고를 해서 교장 선생님을 협박하여 돈을 더 받아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그러면 안된다면서 목청을 높이시는 것이었다. 한참을 듣고 있다 한마디를 꺼냈다. " 모든 선생님이 그런것은 아닌데요..." 그러자 할아버지의 말이 되돌아 왔다. "그렇지 학생. 모든 선생님이 그런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더 느끼는 것은 선생님으로서
일학년 때 부터 해오는 실습이 사실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달이라는 긴 실습기간 하며 수많은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해 온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옷을 차려입고 나가는게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천에는 꽃이 만발하고 날씨는 너무나 좋은 날 . 그렇게 한달 간의 실습이 시작 되었다. 맡게된 학년은 3학년. 처음 교생 선생님을 대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하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려고 노력하고 각종 업무가 엄습해 왔지만, 그 눈빛에 언제나 기쁜 마음이 된다. 수업도 스무시간 넘게 맡게 된 탓에 매일 같이 지도안에 자료 준비에 잠잘 시간에 부족할 지경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가던 실습의 어느날, 다른 반 선생님의 대표수업이 있던 날이다. 선생님이 준비한 수업은 이야기를 이용해서 꾸미는 말 넣어보기 였는데 선생님이 " 자 우리, 이제 꾸미는 말을 넣어서 마녀의 성에 붙잡힌 세희 공주를 찾으러 함께 가볼까?"라고 말씀하셨다. 2학년 교실에서였다. 그러자 한 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을 들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 선생님, 저는 못갈 거 같아요, 엄마가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 가라고 했거든요, 다음에 가면 안
유난히 도덕적 잣대에 엄격한 사회가 교사사회다. 그건 아마도 사회가 각박해 질 수록 교육 현장 , 우리 아이들이 있는 곳만을 깨끗한 것을 바라는 걱정이라고 애써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잘못에도 크게 부각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작은 잘못이 크게 확대되서 모든 교사가 그런 처럼 비춰질 때는 힘이 빠진다. 최근 많은 문제로 이야기 되는 것이 촌지 문제이다. 그러나 난 촌지 받는 교사가 되고싶다.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언젠가 수업을 들었던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단 촌지는 받는 시기가 정해 져 있다. 학년이 끝난 다음 학생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는 양말은 감사히 거절하지 않고 받고 싶고, 학부모들이 말씀해 주시는 감사하다는 마음은 많이 받을 수록 좋을 것이다. 교사, 그 힘으로 버티는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역할은 많다.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집에서는 첫째 딸로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동등한 관계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에 따라 불리워지는 이름 또한 다르다. 충실히 그 이름에 알맞은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어떻게 보아주는 가에 따라 쓰는 단어와 심지어는 걸음걸이와, 옷도 달라진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선생님이 많다. 물건을 사러 갔을 때도 점원은 처음 보는 손님에게도 친절하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고, 수많은 학원에 학원 선생님들도 많다. 나 역시 또한 주위사람들에게 쑥쓰럽지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는다. 나에게 배우는 꼬마도 곧잘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또한 나에게도 선생님이 많이 계신다. 방학을 맞이해 영어에다 시험준비로 학원을 다니는 중이다. 학원가에 보면 전단지에 누구 선생님의 강의가 좋네 그사람은 별로네 라는 평가가 많다. 길가에서 나누어 주는 전단지에도 '선생' 이 많다. 한 단어 차이지만 '선생님'과 '선생'의 차이는 실로 크게 다가온다. 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을까 궁금하다. 선생도 선생님이고 선생님도 선생이라고 할지 모른다.
길고 길다는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이 되면 하고 싶은 계획을 공책 한가득 써놓는 성격도 안되어서 쉬엄쉬엄 책을 보면서 지내는 중이다. 곧 다가올 4학년의 압박을 잠시 내년으로 미뤄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집 위층에는 이제 초등학교 6힉년이 되는 초등학생이 살고 있다. 평소 곧잘 따르는 붙임성에 인사성도 바르고 여간 예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어느날, "누나, 누나는 선생님 할거라면서요? 그럼 저도 가르쳐 주시면 안되나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설마 진짜 올까 싶어서 웃으며 언제든 오라는 말을 했다. 늦잠을 단 다음날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위층 꼬마였다. 한 손에는 6학년 수학 문제집을 들고 웃고 있었다. 그날부터 매일 한 시간씩 꼬마와 수업을 하고 있다. " 누나는요, 선생님이 참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도 친절하게 하고요." 속으로 '내가 얼마나 다혈질인데'라며 웃음을 참았다. 선생님이 되는 과정을 걸어온 3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헛되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에 익숙해 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길들여지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