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름’과 ‘갈음’도 구분해서 써야 한다. 두 단어의 차이를 보면 ‘가름’1.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는 일. - 차림새만 봐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가름이 되지 않는다.2. 승부나 등수 따위를 서로 겨루어 정하는 일. - 이기고 지는 것은 대개 외발 싸움에서 가름이 났다(이문열, ‘변경’). ‘갈음’ 1.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함.(동사 ‘갈음하다’) -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행운이 가드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치사를 갈음합니다. 2. 갈음옷(일한 뒤나 외출할 때 갈아입는 옷). ‘가름’과 ‘갈음’의 차이는 기본형을 보면 쉽게 해결된다. 먼저 ‘가름’의 기본형은 ‘가르다’이다. 이는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의 의미로 ‘편을 셋으로 가르다./수박을 다섯 조각으로 갈라 나누어 먹었다./마을 사람들을 여자와 남자로 갈랐다.’로 쓴다. 결국 ‘가르다’는 ‘나누다, 분류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갈음’은 기본형이 ‘갈다’이다. 이는 ‘고장 난 전등을 빼고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컴퓨터 부속품을 좋은 것으로 갈았다./임원을 새 인물로 갈다.’라고 쓴다. 이는 ‘바꾸다, 대체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행사를 할 때 높은 양반들이 치사를 하며
‘삐지다’와 ‘삐치다’도 구별해서 써야 한다. 특히 ‘삐치다’를 써야 할 자리에 ‘삐지다’를 쓰는 경향이 많은데, 잘못된 것이다. ‘삐지다’ 칼 따위로 물건을 얇고 비스듬하게 잘라 내다. - 김칫국에 무를 삐져 넣다. ‘삐치다’ 성이 나서 마음이 토라지다. - 그렇게 조그만 일에 삐치다니 큰일을 못할 사람일세. - 잘 놀다가도 석형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삐치고 다투니 언제 철이 들는지……(이영치, ‘흐린 날 황야에서’). 국 요리할 때 무를 넣으면 시원한 맛이 든다. 이때 무를 얇게 썰어 넣는 것을 ‘삐져 넣는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남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마음이 토라질 때는 ‘삐치다’라는 동사를 써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삐치다’를 써야 할 자리에 ‘삐지다’를 쓰는 경향이 많다. 아래 예가 모두 그렇다. ○ 박명수는 ‘버럭명수’ 스타일의 사극으로 눈길을 끌었고, 은지원은 ‘은초딩’ 스타일로 삐진(?) 왕 연기를 펼쳐보여 웃음을 자아냈다(뉴스엔, 2009년 6월 10일). ○ 실제로 부부싸움을 하듯 삐진 연기를 하는 신봉선에게 이현우는 깜찍한 애교와 함께 개다리춤을 추며 화를 풀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선보여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여름 더위를 쫓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다. 그 중에 시원한 극장에 앉아 공포 영화를 보며 무더위를 달래는 사람들이 있다. 공포 영화를 보면 어느새 온몸이 으스스 떨리고 등이 오싹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으스스’라는 부사를 ‘으시시’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으스스’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으스스’는 차거나 싫은 것이 몸에 닿았을 때 크게 소름이 돋는 모양. - 비에 젖어 으스스 한기를 느끼다. - 나는 그 일을 생각만 해도 몸이 으스스 떨린다. 이는 ‘으스스하다’라는 형용사로 쓰여, - 찬 새벽바람이 으스스하게 몸을 죄었다. - 처음 가치에서 내렸을 때 느겼던 이른 봄 아침의 으스스함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이문열, ‘변경’).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으스스’를 ‘으시시’라고 말하고 이렇게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 루비니 교수는 그동안 우울한 경제 전망을 많이 쏟아낸 까닭에 ‘닥터 둠’이라는 으시시한 별명을 갖고 있다(이데일리, 2009년 7월 17일). ○ 영란은 새벽에 일어나 마스크를 쓴 으시시한 차림으로 서재 방문에 검은 고무테이프를 붙이고 못질을 했다(뉴스엔 2009년 7월 7일). ○ 연일 섭씨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지만 이곳에서는 그늘에만
‘결재(決裁)’와 ‘결제(決濟)’도 많이 쓰는 표현이다. 둘은 한자어로 음운의 차이는 미세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사전을 통해 검색하면, ‘결재(決裁)’결정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검토하여 허가하거나 승인함. ‘재가(裁可)’로 순화. - 결재서류/결재가 나다./결재를 받다./결재를 올리다. ‘결제(決濟)’ 1. 일을 처리하여 끝을 냄.2. 증권 또는 대금을 주고받아 매매 당사자 사이의 거래 관계를 끝맺는 일. - 결제 자금/어음의 결제 ‘결재(決裁)’는 ○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이메일이나 전자 결재 등 그룹웨어와 지식관리시스템(KMS)을 도입해 지식경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 단순 서류상의 결재 여부를 따지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황 전 회장이 은행장 및 회장으로 재임했던 기간 동안 공식석상에서 발언했던 내용에 대해서도 집중 검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 내부 업무 처리 절차에 따라 검찰의 경우 최하 관할 지방검사장, 경찰의 경우 경찰서장 등의 결재를 받아 얼굴 공개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처럼, 일을 진행하면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허가나 혹은 승인을 받는 것이다. 이는 ‘서류를 결재하다.’처럼
맡은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아니하면서 잇속에만 마음을 두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속담을 사용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자신의 책임은 접어두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이익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 정부 고위직 공무원의 자리에 있으면서, 맡은 일은 게을리 하고, 그 자리에서 이득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고도의 정보를 취급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업무에 전력해야 하는데, 일반 국민이 접하지 못하는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도덕적 관념이 땅에 떨어져 특별히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그런데 이는 핵심어인 ‘염불’과 ‘잿밥’만 남겨두고 조금씩 변형해 쓰기도 한다.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라는 속담이 그 예다. 이도 중요한 ‘제사’를 팽개치고, 사사로운 ‘젯밥’에 관심을 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속담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유심히 봐야할 단어가 있다. ‘잿밥’과 ‘젯밥’이다. 두 말은 형태와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지금 세상은 말에 의해 질식할 정도이다. 말을 못하는 사람이 없다. 저마다 말을 뱉어내고 있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교수는 교수대로,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도 말의 낭비에 합류하고 있다. 말이란 소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말은 소통이 아니라,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칼날보다 더 예리하게 상대방을 겨눈다. 인격도 없고 예의도 없는 폭탄이 되어버렸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내뱉는다. 말을 배설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의견을 주고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해서 상대방을 깔아뭉개겠다는 욕심만 있다. 말로 싸움을 걸고 모진 말로 미움을 번지게 한다. 난폭한 말로 상대를 찌르고 잔인한 말로 상대를 벼랑으로 민다. 지금 말이 길을 잃었다. 말로 상대방을 감화시키고,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 없다. 아주 오래전에도 수천 년 전 공자는 자기가 싫으면 남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다(己所不欲 勿施於人). 말도 마찬가지다. 듣기 싫은 말은 삼가야 한다.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고, 고귀한 존재로 칭송 받는 것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간 본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말을 제대로 못한다면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 예의 없고,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자와 아버지가 마을의 다른 집을 얻어 살자 엄마는 팔을 걷어붙이고 그 집으로 달려가 여자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아궁이에 걸린 솥을 떼어내 도랑물에 떠내려보내버렸다.(p. 105.) 여기에 나오는 ‘안치다’라는 단어에 대해서 알아보자. ‘안치다’는 동사로 밥, 떡, 구이, 찌개 따위를 만들기 위하여 그 재료를 솥이나 냄비 따위에 넣고 불 위에 올리다. - 시루에 떡을 안치다. - 솥에 고무마를 안쳤다. - 솥에 쌀을 안치러 부엌으로 갔다. - 천일네도 소매를 걷고 부엌으로 들어서며 작은 솥에 물을 붓고 가셔 낸 뒤 닭을 안치고 불을 지핀다.(박경리, ‘토지’) ‘안치다’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쓴다. 매일 끼니때마다 ‘밥을 안쳐야’하고, 특별한 먹을거리를 마련할 때도 ‘안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안치다’를 써야 할 자리에 ‘앉히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있다. ○ 친구들은 모두 배가 고파 난리들이었다. 서둘러 전기밥솥에 쌀을 앉히고 코드를 꼽았다. 친구가 일본에서 사다 준, 당시로서는 귀하기 그지없는 도시바 전기밥솥이었다.(한국일보, 2003. 12. 10.) ○ 결국엔 시루 아래로는 쌀가루
‘구설’과 ‘구설수’도 구분해서 써야 할 단어다. 먼저 사전을 통해서 두 단어를 검색해 본다. ‘구설(口舌)’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 - 남의 구설에 오르다. - 총각 선생이 밤중에 처녀 선생이 묵고 있는 집에 발걸음 한다고 괜한 구설을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윤흥길, ‘묵시의 바다’) ‘구설수(口舌數)’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 - 구설수가 들다./구설수가 있다./구설수에 오르다./구설수에 휘말리다. - 이런 곳에서는 사소한 일 하나가 시빗거리로 되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다.(서기원, ‘조선백자 마리아상’) ‘구설’은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을 이른다. 이는 사전 용례에서 보듯, ‘오르다’라는 용언과 잘 어울린다. ‘구설수’는 ‘구설’에 ‘수’가 합성된 단어이다. 여기에 ‘수’는 흔히 말하는 ‘운수’다. 이에 대해 사전을 보면 ‘수(數)’ 1. 운수(運數) - 그는 수가 좋아 하는 일마다 잘된다. - 고진감래라고 드디어 그 사람도 수가 트였다. - 올해는 수가 나쁘니 조심해라. - 그는 수가 사나워 사고를 당했다. 2. 좋은 운수 - 그가 오지 않아 내가 대신 선물을 받았으니 수가 났지 뭐야. - 그는 수를 만나 횡재했다.
‘벌이다’와 ‘벌리다’도 구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두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벌이다 1. 일을 계획하여 시작하거나 펼쳐 놓다. - 잔치를 벌이다. 2. 놀이판이나 노름판 따위를 차려 놓다. - 장기판을 벌이다. 3.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다. - 책상 위에 책을 어지럽게 벌여 두고 공부를 한다. 4. 가게를 차리다. - 읍내에 음식점을 벌이다. 5. 전쟁이나 말다툼 따위를 하다. - 친구와 논쟁을 벌이다. 벌리다 1. 둘 사이를 넓히거나 멀게 하다. - 줄 간격을 벌리다. 2. 껍질 따위를 열어 젖혀서 속의 것을 드러내다. - 생선의 배를 갈라 벌리다. 3. 우므러진 것을 펴지거나 열리게 하다. - 자루를 벌리다. 언어생활을 할 때 둘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특히 ‘벌이다’를 써야 할 자리에 ‘벌리다’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협상 과정에서도 강경 대응과 대화 사이를 오가며 격론을 벌리다 계파간의 갈등 양상마저 노출했다.(아시아 경제, 2009년 1월 7일) ○ 아파트 가정집에 침입한 강도와 격투를 벌리다 집주인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뉴시스, 2008년 4월 30일) 위 예문에서 ‘벌리다’는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서는 ‘벌이다’를
SBS 주말극장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드라마를 본다. 주인공 네 자매는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유쾌하고 발칙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신세대의 새로운 부부상과 결혼상을 그리고 있어 흥미롭다. 요즘에는 이 집안의 셋째 딸 오금란(한고은 분)의 결혼 문제가 주된 이야기다. 그녀는 결혼하기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신세대 여성상이다. 해서 인공 수정으로 딸을 낳았다. 혼자 딸 오장미를 키우다가 정자 기증자인 대학병원 내과의사 이순신(박광현 분)이 나타나서 결혼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주말에 오금란의 집에서 신랑 집에 함을 보내는 내용이 있었다. 함은 혼인 때 신랑 쪽에서 채단(采緞)과 혼서지(婚書紙)를 넣어서 신부 쪽에 보내는 나무 상자다. 이는 혼인에 대하여 감사와 두 집안의 유대를 표시하며 보내오는 것이다. 원래는 결혼 전날에 보내오는 것을 지금은 시대적 상황과 사정에 의해 결혼 며칠 전에도 보내진다. 함에는 혼서(혼인할 때에 신랑 집에서 예단과 함께 신부 집에 보내는 편지. 두꺼운 종이를 말아 간지 모양으로 접어서 쓴다.)와 청홍 비단의 혼수, 예물이 자리한다.함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며 대체로 바닥에는 붉은 한지를 한 겹 깔고 그 위에
텔레비전에 먹을거리에 대한 방송이 많이 나온다. mbc의 ‘맛있는 TV’도 그 중에 하나다. 이 프로는 언제나 새로운 맛을 찾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리포터가 전국을 직접 찾아다니며 먹을거리를 소개한다. 특히 리포터 김한석은 오랜 방송 경험으로 진행 솜씨가 돋보인다. 보통 출연자는 일반 사람이어서 긴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리포터 김한석은 이들을 배려하며 방송을 진행한다. 또 그는 개그맨 출신으로 때로는 음식 맛을 과장해서 전달하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지난 토요일에도 김한석은 여느 때와 같이 음식 맛을 본 후에 느낌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음식 맛을 전하면서 ‘담백한 맛’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더욱 ‘굉장하게 담백해요.’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김한석 뿐만이 아니다. 텔레비전에 맛과 관련된 프로를 보면 ‘담백한 맛’이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출연자들도 특별한 맛이 있으면 으레 ‘담백한 맛’이 있다고 말한다. 또 ‘맛이 좋다.’라고 해야 할 때도 ‘담백한 맛’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담백하다’라는 형용사는 ‘특별한 맛’이나 혹은 ‘맛이 좋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먼저 ‘담
방언 애호가들이 공문서 및 교과용 도서의 어문 규범 준수 의무를 담고 있는 ‘국어기본법’ 제14조 및 제18조가 헌법 제11조(평등권) 등에 위배된다고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위헌 소송을 했었다. 최근 이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나왔다. 그 내용은 사투리를 제외하고 서울말만 표준어로 정하고 공문서와 교과서에 표준어를 사용하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합헌이라는 것이다.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규정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교과서를 편찬할 때 표준어 사용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서울이 문화를 선도하고, 서울말의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등 다양한 요인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표준어를 강제하는 범위가 공문서 작성과 교과서 제작이라는 공적 언어생활의 최소한의 범위라서 사적인 언어생활은 제한받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반면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은 서울말이라는 기준만으로 표준어 범위를 정해 이를 강제하는 것은 국민 언어생활에 관한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세계 여러 나라는 국민 통합을 위하여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의 통일을 하고 있
문화체육관광부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펼치는 ‘책, 함께 읽자’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 캠페인은 당초 예상과 달리 국민의 호응이 높다. 낭독 장르도 소설과 시를 넘나들고 있다. 낭독자도 작가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교수, 정치가 등으로 다양하다. 거기에 참여하는 대상도 역시 주부, 학생, 직장인까지 또 노숙인들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행사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짓이다. 책 몇 페이지를 읽기 위해 필요 이상의 넓은 장소를 준비해야 한다. 또 많은 사람이 먼 곳에서 오는 수고를 해야 한다. 시간도 많이 소비되고 그야말로 비경제적이다. 언제 어디서나 글을 읽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책을 읽는 아날로그 발상은 웃기다 못해 한심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특별한 것도 없는 행사에 사람이 많이 들끓고, 모임이 들풀에 불길 번지듯 하는가. 사실 책을 읽는 것은 가장 개인적인 행동이다. 책 읽기는 눈으로만 해야 하고 혼자서 하기 때문에 적적하기 이를 데 없다. 반면에 책 낭독회는 문자 언어를 음성 언어로 변환하는 극적인 장면이 만들어진다. 문자 언어가 음성 언어로 살아나서 저마다 가슴
우리말 중에는 발음과 의미가 비슷해서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경우가 있다. ‘좇다’와 ‘쫓다’가 그 예다. 둘은 모두 올바른 표현이고, 쓰임만 다르다. 그런데도 일반인은 ‘쫓다’만을 쓰는 경향이 있다. 즉 ‘좇다’를 써야 할 자리에도 ‘쫓다’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좇다’와 ‘쫓다’는 차이가 있는 말이다. 두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좇다’ 1.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 - 명예를 좇는 젊은이 - 태초부터 사람은 살기 편한 것을 좇게 마련이오. 그래 연장이라는 것도 생겨나고 모든 것이 발전해 간다고 소생은 생각하오(박경리, ‘토지’). 2. 남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 - 아버지의 유언을 좇다. - 부모님의 의견을 좇기로 했다. 3. 규칙이나 관습 따위를 지켜서 그대로 하다. - 3일 아니면 4일 신행이 관례였다. 그러나 그런 관례를 좇고 있을 계제가 못 되었다(하근찬, ‘야호’). 4. 눈여겨보거나 눈길을 보내다. - 시선은 서편 하늘로 멀어지는 까마귀 떼를 좇고 있었다(김원일, ‘어둠의 축제’). - 사열받는 병사들처럼, 곁을 지나가는 무당을 좇아 눈길만 따라갈 뿐이었다(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5. 생각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은 외로움을 달래기에 제격이었다. 나에게 재미를 주고 앎의 세계로 이끌었다. 고등학교 때 잿빛 가슴앓이를 심하게 할 때도 책과 함께 했다. 그때 공부는 멀리 가 있었고, 감성도 푸석푸석하게 메마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책은 친구이고, 연인이었다. 책 읽기는 대학의 학과 선택도 쉽게 했다. 국어교육과에 갔다. 그리고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평생 책에 의지하고 산다. 지금도 책이 아니면 한 걸음도 못나가는 어린아이다. 책을 들면 일상과 단절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마음도 편안해진다. 책 앞에서는 몸은 순결해지고, 나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책을 들면 미지에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인다. 최근에도 나는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라는 책을 만나고 마음이 한없이 부유해졌다. 이황은 경북 예안현(오늘날의 안동시)에서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이황은 열두 살 때부터 숙부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그는 1528년(중종 23)에 소과에 입격하고, 승진을 거듭했다. 사화가 일어나자 화를 입어 한때 파직되었다가 복직하였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