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내음이 강마을에 무성합니다. 비릿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2층 교실로 운동장을 휘젓고 다닙니다. 멀리 모심기가 한창인 논이 보입니다. 요즘에야 모심기가 큰일이 아닙니다. 모판을 떼어 내어 논둑에 두면 기계로 금방 해 치우기 때문이죠. 저도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기계 모심기가 끝나면 군데 군데 빠진 곳에 손으로 빠진 부분을 메워주어야 하고 논주위도 골라주어야하니까요. 이것도 한나절 일이었습니다. 시댁 어르신들은 모두 칠십과 팔십의 노인입니다. 그 연세에 여덟 마지기의 농사를 손수 지으십니다. 물론 작은 밭에 채소도 길러서 팔기도 하고요. 잠시도 쉬지않고 몸을 움직이시는 시어머니는 걸음걸이가 저보다 빠릅니다. 밥도 빨리먹고, 밭을 오르는 발걸음도 아주 가뿐하십니다. 그러다 밤이 되면 끙끙 허리가 아파서 앓으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첫새벽에 일어나 밭엘 다녀오십니다. 남녘의 밤꽃은 오월 말에 피기 시작하여 유월 되면 절정을 이룹니다. 흰 물감을 뿜어 놓은 듯 산 허리가 하얗게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날은 코끝에 땀방울이 맺히고, 개구리 울음이 들리는 초여름이 다가서 있습니다. 이 때 쯤이면 감자를 캐기도 하고, 봄에 심은 고추모종의 첫물
보리타작을 시작한 강마을에는 연일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기압이 낮은 날이면 빵 굽는 냄새 같기도 하고, 누룽지 냄새 같기도 한 매캐한 연기가 온 들을 휘감아 희뿌옇습니다.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보리밭이 가뭇없이 사라진들판에는 모심기를 한 논이 보입니다. 연초록 어린 모들이 줄을 맞추어 선 무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립니다. 참으로 싱그러운 계절입니다. 운동장에는 동아리체육대회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이단뛰기 연습를 하느라 붉어진 은실의 볼이 사과처럼 어여쁩니다. “은실아, 연습은 잘 되니?” “아니예, 집에서 맨날 하는데 잘 안되예!” “선생님도 예전엔 이단뛰기를 잘 했는데!” “한번 해 보이소예.” 은실이의 줄넘기를 받아 몇 번의 이단뛰기를 하니, 어지럽고 숨이 찹니다. “아이고! 나이는 못 속이겠다. 예전에는 50개도 쉽게 했는데....” 은실이는 다섯 개도 못 하고 힘이 들어 하는 선생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못믿어 하는 은실이를 뒤로 하고 운동장 주변을 산책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칩니다. 실습지 주변 길가 울타리 사이에 희고 노란 인동꽃이 피어있습니다.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리는
비가 오려나 봅니다. 오후엔 온몸이 저려오고 눅눅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더운 기운과 습기가 겹치니 불쾌지수가 높아졌나 봅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려고 하는 찰나, 2학년 반장 경건이가 뛰어 옵니다. 싸움이 났다고요. 정신없이 한 달음에 이층 교실로 달려가니,아이 둘이벌겋게 얼굴을 붉히고 있습니다. 그 사이로 온 반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나에게 상황을 그대로 재연을 하여 보여줍니다. 왜 싸웠는지 알아보니, 한 아이가칠판에누구 마음에 속에 어떤 여자아이 누구가 있다. 이런 내용을 썼다고 합니다.(웃기게 영어로 썼다나요. in 어쩌구 하면서...) 그래서 그것을 보고 화가 나서 분필로 썬 내용을 막 지웠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옆에서 참견을 하면서 뭐라고들 하니 녀석은 속이 상해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내가 칠판에 글을 써서 사태를 이렇게 만든 녀석에게 야단을 치니, 자기만 야단친다고 눈을 흘기고 울려고 합니다.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고 무섭게 야단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막 소릴치며 웁니다.약간의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아이입니다. 선생님이 고함을 지르니, 무섭다고 울어버립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친구들이 싸워서 선생님 화가 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울지말라고
오월입니다. 지난주에는 친정아버님의 기일이 있었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산소에 갔더니 그 때처럼 여전히 흰 찔레꽃이 무성하였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는 길에 찔레꽃은 흰옷을 입고 처연하게 피어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옷을 입고 그네 옆을 스쳐 아버지의 뒤를 따라 산길을 올랐습니다. 풀은 왜 그렇게 파아랗던지요. 꽃은 또 왜 그렇게 많이 피었던지요. 이렇게 눈부신 계절에 왜 당신은 가셨는지요? 억울하고 또 억울하였습니다. 당신 나이 이제 육십을 코앞에 둔 젊디젊은 아버지를 보내는 저는 슬프기보다 억울하였습니다. 저보다 더 일찍 더 아프게 부모님을 여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별을 잃은 저는 무조건 분하고 억울하여 아버지 무덤 옆에 핀 하얀 찔레꽃만 노려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이의 환갑잔치며 칠순잔치엔 가기 싫습니다. 괜한 시샘에 제 맘속에 또 하얗게 찔레꽃이 피워 올려서 마음 한 구석을 찔러 버립니다. 하지만 봄날이 가듯 세월이 흐르면 이 가시도 무뎌지고 제 마음에 핀 꽃도 시들겠지요. 이제 강마을은 싱그러운 녹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많던 봄꽃들이 언제 떠났는지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리고 다정한 봄꽃이 떠난 자리에 이제는 농염한 모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