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릴지 걱정되는 아침입니다. 장난꾸러기 악동들은 아침 8시부터 교실에 와서는 집에 가는 시간까지 내게 쉴틈도 주지 않으니까요. 참새처럼 쫑알대는 아이, 쉼없이 옆 친구를 건들고 소리지르는 아이, 밖에 나가면 교실로 들어올 줄 모르고 놀아버리는 아이, 온종일 돌아다니며 누렁코를 달고 다니는 아이.... 그래도 집에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늘 행복합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기때문입니다. 나도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아니, 내 아이를 19명이나 더 낳아 기르는 기분이라고 말하렵니다. 쉬는 시간에도 안전사고가 날까봐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운동장 가에서 아이들을 물가에 내놓은 엄마오리처럼 종종대는 내 모습이 결코 싫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제는 우리 반 소리대장 우승현이 때문에 참 행복했습니다. 나만 보면 큰 눈을 껌벅이며 매달려서 늘 말하고 싶어하는 귀여운 아이. 집안 사정으로 할머니와 사는 그 아이는 나를 엄마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장난감 병에 빨간 실이 매달린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려고 애쓰기에 물었습니다. "이걸 왜 주려고 하는 거니?" "그냥요." "그냥이면 안 할래. 이유가 있어야지." "선생님을
2006년 3월 3일 오후 3시, 전입교원 연찬을 위해 강진교육청에서 준비한 회의 참석을 위해 아침부터 바빴습니다. 이제 막 입학한 19명의 햇병아리들과 오전 공부를 마치고 교실 청소를 마친 나는 부랴부랴 출장을 서둘렀습니다. 어제 3시간 내내 울면서 집에 가겠다고 소동을 부린 선영이가 울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걸고간 어제 약속을 잘 지킨 것이 오늘 건진 수확이라서 마음도 기뻤습니다. 강진교육청에는 몇 년 전에 함께 근무한 이애련 장학사님이 며칠 전부터 기다리시며 전화를 주셔서 낯선 땅에 들어선 외로움을 달래주셨습니다. 장학직의 바쁜 일상을 보내며 제 시간에 퇴근조차 못 하시면서도 언니처럼 자상하게 챙겨주셔서 강진의 땅기운이 더 따스했었는데... 전입교원을 위해 준비해 둔 따끈한 차와 연찬자료들, 대회의장을 장식하고 있는 환영 플래카드를 보며 마치 내가 큰 일을 해낸 운동 선수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행사를 담당한 이금진 장학사님의 부드럽고 정감어린 환영멘트는 예순 세 분의 전입교원 한 분 한 분마다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 주어서 어깨를 펴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교대를 갓 졸업한 여섯 분의 새내기 선생님들이 선배님들 앞에서 임명장을 받으며 공직자 선서를 낭독할 때
2006년 3얼 2일. 전남강진마량초등학교(교장 최수성)19명의 나의 작은 천사들을 만나러 가는 첫걸음은 새벽 4시 30분부터 바빴습니다. 7년 동안 근무한 구례를 떠나 남도의 또 다른 끝자락인 강진 마량을 향해 출발하는 행장을 꾸리느라 얼얼했습니다. 27일 전입교사 예비 모임을 통해 미리 인계받은 1학년 19명의 이름표를 만들고 한달 동안 공부할 '우리들은 1학년'을 안내할 자료를 편집해서 준비하느라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 겨우 유치원 생활을 마치고 1학년에 들어오는 19명의 나의 귀한 손님들은 설렘의 크기만큼 두려움도 함께 안고 입학한다는 것을 잘 알기때문에 포근한 담임이 되고 싶었습니다. 처음 만난 아이들은 입학식부터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했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당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제 마음대로인 아이, 집에 돌아갈 시간까지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달래느라 나는 혼비백산하고 말았던 하루였습니다. "선생님, 공부는 언제 해요? 밥은 언제 먹어요? "를 연발하는 아이들 틈에서 처음 온 학교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탓에 종아리까지 퉁퉁 부어버린 하루였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마량항의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꼬마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힘들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초임지였던 고흥, 젊음을 불사르며 열심히 달렸던 영광, 담양을 거쳐 구례에서 보낸 7년을 마감하고 다시 마지막 임지가 될지도 모르는 강진으로 내신을 낸 것은 순전히 남편때문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생면부지의 땅을 찾아가는 내 마음은 겨울나무처럼 춥기만 합니다. 경력이 많아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힘들게 느껴지는 이 소심함때문에 며칠전부터 입이 부르트고 입맛조차 잃어버린 내가 참 한심스럽습니다. 어서 빨리 개학을 해서 아이들을 만나면 나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걸 보면 우리 아이들도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설렘, 특히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 짐작을 해봅니다. 우리 삶은 늘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임을 생각하며 긍정적이고 필연적인 만남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어봅니다. 내 생애에서 꼭 만나도록 준비된 사람들,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벌써부터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에 입을 옷을 손질해 두고 첫인사를 생각하니 어서 빨리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강진의 끝자락, 바닷가 마을에 자리한
세월이 흘러 졸업식의 모습도 다양하고 풍경도 달라졌지만 아직도 시골 초등학교에는 옛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본교와 분교를 합하여 16명을 배출하는 우리 학교의 졸업식. 깔끔하게 자려진 단상, 지역의 중요한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근엄한 분위기에서 치러진졸업식 풍경은 여느 해와 다를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송사가 낭독되는 동안 내내 울음을 참지 못하던 졸업생 중에서 답사를 하기로 한 아이가 답사의 시작을 눈물로 시작하는 순간. 졸업생들도, 참석한 선생님들도, 학부모님도 눈물을 찍어내며 제발 끝까지 답사를 이어주기를 바랐답니다. 사전에 낭송 지도를 받으며 발음과 억양,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며 진지하게 역할을 수행하던 소녀가 처음 맞는 졸업식에서 감정에 북받쳐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쏟아내는 모습은 보기 드문 일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뒷바라지한 부모님의 사랑과 선생님의 노고, 아끼는 후배들의 덕담과 이별의 송사 앞에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눈물로 대신한 답사의 풍경이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저 혼자만의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참석한 내빈들도, 학부모님들도 유려하게 읽어 내려간 어느 답사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가슴에 안았던
"1, 2학년 우리 반! 오늘은 선생님과 마지막 수업하는 날입니다." 늘 재잘대던 꼬마들이 종업식하는 날은 말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헤어짐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얘들아, 선생님께 드릴 선물만들자." 2학년 나라가 1학년 동생들에게 선물을 만들자고 졸랐습니다. "나라야, 그 마음만으로 이미 선물을 받은 것 같아 행복하구나.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게 좋지? 선생님은 우리 나라가 겨울방학 동안에 잊었을지도 모를 구구단을 틀리지 않게 외울 수 있으면 최고의 선물이겠다. 선생님은 나라가 주는 100점 짜리 구구단 시험지를 선물로 갖고 싶다. 나라는 뭐든지 잘 하는데 구구단 외우는 것은 좀 싫어했잖아? 3학년 때 새로운 선생님과 공부할 때 2학년 공부를 까먹어서 수학을 잘못하면 선생님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그래." 나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구구단을 외워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1학년 아이들은 한 사람씩 읽기 책을 소리내어 읽게 하며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단급학급이 아니라서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다른 학년 공부에 지장을 주게 되므로 소리내어 읽기를 많이 못 시킨 미안함을 달래주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긴 문장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저 은주입니다." "그래, 요즈음 소식이 뜸하더니 잘 지내니?" "예, 이번 교원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지금 연수 중입니다." "그러니? 참 잘 했구나. 축하한다. 그러고 보니 제자 중에서 네가 제1호구나. 초등선생님으로는 말이다." 전교생 94명이던 작은 학교에서 6학년 제자였던 아이가 벌써 발령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시간이 화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늘 욕심도 많고 자신을 다잡아 주는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던 제자였습니다. 21명을 졸업시켰는데 많은 아이들이 4년제 대학을 갈만큼 열심히 사는 제자들입니다. 졸업을 시킬 때, 1년에 두 번씩 동창회를 할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어 주었는데 10년째 모임을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흐뭇합니다. 모임에 나오라고 조르는 전화를 건 제자의 칭얼거림에 행복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졸업한 시골 학교가 이제는 폐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제자들과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고 졸업생들끼리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이어가고 있으니, 모교는 가슴 속에 살아남아 언제든지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은주야, 이젠 김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구나. 그렇지?
개학날은 다가오는데 하지 못한 숙제를 마치느라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우리 1학년 아이들이 꼬박꼬박 기다릴 답장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편지지에 글을 썼습니다. 웬만하면 모든 글을 워드로 작업하여 보내다보니 글씨를 직접 쓰는 편지가 오히려 부담이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미주알고주알 써 보낸 편지는 단 몇 줄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룬 게 코 앞까지 와 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글을 깨우치고 맨 처음 보냈을 편지였을 터이니 그 기다림이 얼마나 컸을 텐데 야속한 담임 선생님은 이제야 숙제를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일입니다. 전자우편이나 컴퓨터로 써낸 편지에는 정감이 덜할 것 같아 손으로 쓰기로 했는데 컴퓨터로 쓰는 것보다 열 배나 더 부담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쓰기 싫어해서 평소에도 쓰기 숙제는 최대한 억제하는 편입니다. 쓰고 싶은 말은 아주 많은데 장수를 불려가는 게 힘들어서 아이들마다 한 장으로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뭔가 미안해서 취미로 모아둔 예쁜 기념우표를 두 장씩 붙이고 편지 봉투도 고운 한지로 써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개학하기 전에 받을 수 있도록 빠른 우편으로 보내고 나니
어제 (2월 8일)발표된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의 주요 업무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소감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5년간 8조원을 투입하여 '교육 양극화 해소'에 나선다는 교육부총리의 야심찬 발표는 농촌 교육에 몸담고 있는 현직교사로서 관심이 컸기때문입니다. 주요내용으로는, 1. 교육안전망 구축을 위해 2006년에만 1조3천억원을 투입하여 농어촌의 교육여건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중인 '1군1우수고'를 현재의 14개에서 44개로, 내년에는 88개로 늘리는데 1교당 16억원씩 지원하며, '대학생멘토링'제도를 도입하여 서울대생 300여명을 자원봉사교사로 투입하여 관악구와 동작구에 사는 저소득층 및 특수교육 대상 학생 1천여명을 지도한다는 계획이다. 2. 직업교육체제 혁신의 일환으로 1904년부터 사용되어온 '실업계'라는 이름을 '특성화계고등학교'로 바꾸어 '실업'이라는 용어가 주는 낙인효과를 없애고 기업체와 대학, 실업계 고교가 협약을 맺은 뒤 맞춤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3. 공교육 변화 유도 사업으로는 기존의 학교법인, 종교단체, 비영리법인, 공모 교장, 지방자치단체 등이 교육감과 협약을 맺어 학교를 운영하는 공영형 혁신학교를 내년부터 시범적으로
독자 여러분! 당신에게 힘을 주어 다시 서게 하는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힘들 때 도피하는 곳이 어디십니까? 누구에게서 용기를 얻으십니까? 저는 가장 힘들 때 찾아가는 곳, 나를 불러 세우는 것, 용기를 주는 것은 바로 책이랍니다. 어제는 학교 후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누님은 방학이 있어서 참 좋으시겠어요." "응, 없다면 참 힘들 거야. 배우고 싶은 주제 연수를 하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방학이 없다면 재충전이 힘들지." 휴식년제가 아직껏 도입되지 않은 교직에서 마음 놓고 연수를 하거나 독서를 할 수 있는 방학은 저에게는 휴식년제인 셈입니다. 방학동안 재충전하여 다시 싱싱한 마음 자세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었기에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늘 매력을 느끼고 새로 만나는 아이들에게 빠져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해마다 다른데 선생님은 항상 변하지 않고 예전대로 답습하는 자세로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아이들로 기르기 힘듭니다. 지식과 배움을 소중히 하는 자세를 익히기 위해서는 학문의 보고인 '책'만큼 좋은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 중에, 재물을 천만금 축적해도 책을 읽는 것만 못하다. (積財千
대통령보다 더 소중한 아기들 먼저 이 글을 쓰는 저는 남매를 둔 어머니로서 현직교사입니다. 자식에 관한한 저는 개인적으로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평생 아들을 낳지 못해 마음고생을 하신 아버지께서 마흔다섯에야 낳은 무남독녀 외동딸로 늦게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환경 때문에 힘들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나이에 아버지는 환갑을 맞으셨고 아프셨던 탓에 집안의 가장 아닌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형제간이 없어 가장 힘들었을 때는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홀로 상을 당하여 마음 놓고 울 겨를도 없을 만큼 외롭고 힘들었을 때입니다. 저는 그 아픔 때문에 결혼을 하고서도 자식만은 많이 낳겠노라고 별렀지만 남편의 반대에 부딪쳐 둘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나와는 반대로 형제가 많아 오히려 고생을 한 남편은 자식만 많이 낳아서 제대로 가르치거나 뒷바라지를 못하는 무책임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남편 몰래 아이를 더 낳아보려고 하다가 생긴 아이마저 세상 빛을 못 보게 한 일은 제가 평생 속죄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가난의 굴레를 벗고 잘 살아보자는 구호아래 국가적으로 벌였던 산아제한 정책이 40년이 흐른 지금 국가의 미래가 달린 가장
나를 움직인 한마디는 무엇이었을까? 사춘기가 시작되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아는 것이 힘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가난해도 길이 보인다`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주경야독의 길을 걸으며 살았던 청년기에는 성경의 잠언들이 나를 비추는 등불 역할을 해주었으니 사람보다는 책에서 얻은 영감들이 나에게 힘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냉대로 삶이 힘들 때마다 나에게 주문을 걸곤 했던 문장들은 가족과 친구를 대신해 주곤 했었다. 가까이는 소로우의 에서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반경을 그을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한마디는 나를 각성시켜 주는 문장이었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몸 고생보다 마음고생을 하던 때였다. 30여 년 전 서울에서 일을 할 때 도둑의 누명을 쓰고 한 달 가까이 절망 속에 일을 할 때 만났던 문장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광선은 비록 더러운 곳을 통과할지라도 오염되지는 않는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외침은 그대로 나를 안심시켜 의연하게 살 수 있는 백만 대군의 원군이 되어 심장에 꽂혀 내게 힘을 주었던 것이다. 한 달 뒤에 범인이 내가 아니라 사장 집 가족이었음이 밝혀졌을 때도 원망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었던 마음의 여유는 바로
설연휴의 쓸쓸함이 마음을 짓누른 며칠. 22년 동안 바쁘게 달려간 시댁을 향한 발걸음이 멈춰진 명절을 2년 째 보내며 바쁘던 그날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징조인가 봅니다. 설 전날 부랴부랴 시장을 보고 빳빳한 새 돈을 시부모님 두 분께 따로 내밀던 내밀한 기쁨을 더는 받아줄 분이 지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서글픔. 시집갈 때 꼬맹이였던 조카들이 안고 온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굵어진 나이테를 확인하면서도 즐거웠던 귀성길 추억이 이젠 구심점을 잃어서 각자의 삶터에서 제각각 설날을 보내고 성묘하느라 잠깐 만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짧은 만남으로 하루쯤 시간을 내면 되는 날로 변모되었습니다. 예전에 이미 어른이 되었으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던 어른의 자리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명절이니 이제 내가 우리 시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렇게 울타리가 되어야함을 생각하며 서서히 자식들을 위해 준비하는 어미노릇을 생각합니다. 올해는 군대에 간 아들의 빈자리를 전화 목소리로 채웠지만 내년부터는 자식들을 위해 장만도 하고 설빔도 챙겨야겠습니다. 갑자기 겁이 났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분리되는 순간에 느꼈을 법한 상실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 앉아 있다가
2006년 설날, 나는 독자들에게 지난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유림’ 제3권을 두 번째 읽기를 끝냈다. 보통의 소설들과 달리 유가사상에 뿌리를 둔 최인호의 ‘유림’ 제 3권은 한 번 읽고 서평을 쓰기에는 작가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의 사상 또한 가난함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이미 1권과 2권의 서평을 올린 바 있으나 그것마저도 일독으로 올린 서평이라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작가 최인호가 10년을 투자하여 써낸 3권의 책을 짧은 순간에 수박겉핥기로 구경하고 서평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책을 읽은 그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은 소박한 심정의 발로임을 전제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작가 최인호가 보여주는 작품세계에 감복하고 그의 발길과 손끝을 따라 떠난 유림의 숲에서 동양 사상의 진수를 맛보는 행복한 책읽기로 신년을 시작하는 재미를 나누고자 한다. 2천5백 년 전 중국에서 발아된 유가사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사상의 주인인 공자조차 현실정치에는 적용해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 꿈을 조선의 조광조는 왕도정치를 꿈꾸며 현실정치에 접목시켜 이상국가의 실현을 눈앞에서 놓친 유가사상. 유림 제1권에서 작가 최인호는 조광조를 통하
2005년 1월 24일은 남편과 내가 빚은 첫 작품(?)이 세상 속으로 출고되는 날이었습니다. 오전 근무를 마친 남편은 딸아이가 첫 근무를 하게 될 직장을 찾아서 화분을 보내줘야 한다며 아침부터 바쁘게 서둘렀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바쁘다고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해서 늘 미안해 한 우리 부부입니다. 대학 졸업을 한 달 남겨두고 발령이 난 걸 생각하니 나는 내내 마음이 아픈데 남편은 기특하다며 즐거워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보내서 16년 동안 학교 공부로 달려온 심신을 쉬게 한 후 출근했으면 좋을텐데, 다시 세상으로 나가 황금같은 젊음의 시간을 일로 보낼 녀석이 안쓰러웠습니다. 마음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책과 씨름하며 학교 공부와 공무원 시험공부를 병행하며 매달려 온 아픈 시간의 열매를 손에 안은 자랑스러운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29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열여섯 살에 일터로 나가서 독학으로 주경야독으로 5년 뒤에 얻었던 공무원으로 출발한 내 모습을 돌아보며 나는 작은 한숨을 들이켰습니다. 정말 마음 편하게 놀러 다녀본 추억도 없이 보낸 젊음. 결혼과 함께 자식을 기르면서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