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이전까지 익숙하게 살아온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맞이하고 있다. 혹자는 올해를 진정한 21세기의 출발연도임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D(After Disease: 코로나 이후)라는 말로 기존의 BC와 AD를 대체하는 새로운 연도 표기를 거론한다. 그만큼 코로나19는 전 인류에게 엄청난 변화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특히 언콘택트(uncontact, 비접촉) 사회의 도래로 인해 이에 대한 변혁을 갖춰야 하는 시대적 명령에 직면하게 됐다. 언콘택트 사회의 도래 지금까지 우리는 콘택트(contact) 사회에서 태어나 평생 사람들과 대면하고 소통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코로나19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 전환을 빠르게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언콘택트 환경이 찾아온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문화가 달라지면 공동체와 사회가 유지되는 데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즉 기술로도 채우지 못할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학교 현실을 보자. 코로나19로 인해 유치원, 초·중등학교가 장기간의 휴업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
“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전투를 이기는 것은 위대한 장군이로되 전쟁에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 새로운 교육 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름 높은 교육자로되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 한때 교직을 천직(天職)이요 성직(聖職)이라고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배우던 시절 이야기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교직은 노직(勞職)이 됐다. 힘들고 때론 고통스러운 자리다. 코로나19에 따른 원격수업으로 교사들의 근무시간은 24시간이란 자조 섞인 푸념마저 나온다. 그래도 코로나라는 국난의 위기 속에 교육현장을 굳건히 지킨 것은 수많은 무명교사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교육은 희망이다. 학생과 함께 가르치는 보람과 배우는 즐거움을 몸소 체험하는 교사는 그래서 귀중하다. 학생의 인성과 실력은 교사만이 바꿀 수 있다. 그만큼 교사의 역할과 사명은 중요하다. 얼마 있으면 스승의 날이다. 1963년 충남 강경고등학교 학생이 병석에 누운 선생님을 방문해 선행을 베푼 것이 계기가 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도헌장의 전문을 다시금 새겨본다. 오늘의 교육은
한국인은 열정적이다. 그 속성이 지나치게 강해서 기질적으로 ‘냄비근성’이라 불린다. 순간적으로 끓어올랐다 식어버리는 냄비의 특성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기에 과거 한국인의 애국심은 유별났다. 애국은 과거시대엔 화끈한 국민의 정신을 지배한 언어였다. 현재에도 여전히 그 뜻은 숭고하다. 자신의 조국에서 당연히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나 책임은 애국적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면 태국기만 봐도 눈물을 짓던 시절에 애국은 그야말로 자발적인 행위의 발로였고 조국을 향한 가슴이 뜨거워지는 동력이었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지금은 ‘애국’ 하면 과거 전체주의 시대나 냉전시대의 반공교육 잔존물처럼 여긴다. 그나마 그런 애국심이 죽어가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인 행동으로는 맞는 말이다. 얼마 전 한글날은 국경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휴일로 부활이 되기도 했다. 세계 속에서 자랑스러운 한글의 위상을 실감한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역사를 가슴에 품기도 한다. 가정에서는 국기를 게양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각 가정의 대문이나 아파트에는 국기를 찾아볼 수 없다. 필자는 주거지의 아파트와 인근 공원 주변의 아파트를 산책길에 유심히 관찰했다. 가뭄
새 정부 들어 국민의 여망인 교육개혁이 한때 공론화 작업을 거치면서 잠시 주춤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국민 개개인의 목소리를 반영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또한 교육이 정치로부터 완전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운영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교육은 국가백년대계로 한 나라의 성장과 국가 부흥의 주춧돌이기에 국민은 자신들의 생각이 국가 교육정책으로 반영되기를 요구한다. 우리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이지 않는가. 오죽하면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그런데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도 불구하고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괴물이 되어 버렸다. 주변의 젊은 세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의 교육에의 불신과 국가에 대한 실망은 극에 달해 깊이를 측정할 수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유치원에서 대학졸업에 이르기까지 좋은 직장, 안정된 급여, 당당한 자아실현 등을 목표로 현재를 희생해온 그들이 대학졸업 후 막상 부딪히는 현실은 그동안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한다. 두 팔 벌려 그들을 맞아주는 직장은 없으며, 살인적인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만족할 만한 급여나 여유로운 삶은 꿈꾸기 어렵다. 방 한 칸 구하는 일에서부터 좌절은
본격적인 진학지도 시즌이다. 어느 학교든 학생에게 맞는 합당한 진학지도를 위해 교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서 고민할 것이다. 그런데 학생 진학지도의 방향 소위 지향점은 어디에 둬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다. 만약 어느 학생이 지방대학 최상위권이냐, S대 합격권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마다 고려할 요소 단순하게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일 때,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뇌와 갈등을 경험할 것이다. 물론 진학지도에서 최종 선택 기준은 학생의 적성과 장래의 비전이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학생이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가를 존중한다면 훗날 갈등의 여지를 줄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이를 무시하면 꼭 탈이 난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 고3 담임교사로 진학지도에 몰입하던 시기였다. 준범(가명)이는 공부밖에 모를 정도로 학구파였다. 그는 S대 진학을 강력하게 원했으나 합격을 보장하기에는 불확실했다. 그런데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 국립대, 그것도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범대학에 진학하는 게 최선이란 판단이 섰다. 나의 판단은 준범이가 전통 있는 지방 국립사대를 지원하면 장학생도
매년 2월을 보내면서 학교는 신학년도 준비로 분주하다. 업무분장과 담임교사 배정으로 교사는 온갖 생각이 많아진다. 그 많은 생각 중에 사건의 심각성으로 인해서 학교폭력예방교육에 집중하는 것은 교사별로 차이가 없다. 학폭 못지않게 절도사건 빈발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이 있다. 그런데 이는 얼마나 중요시하면서 생활교육의 목표로 삼아 지도하느냐에 따라 (담임)교사별로 차이가 크다. 그 결과 적지 않은 학생이 피해자가 되어 마음에 상처와 주름을 안고 친구들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바로 학생 절도예방교육이다. 절도사건은 학교에 따라 발생 빈도로 보아도 학교폭력보다 더 자주 일어나지만 이에 대한 예방교육은 상대적으로 미진한 것이 현실이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과학계열의 특목고 지원에 실패한 김○○는 일반고 배정을 받아 입학했다. 복도에서 주운 만원을 바로 교무실에 가져와 신고할 정도로 심성이 착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급에서 자기 지갑에 있던 4만1000원과 미화 20달러를 도난당했다. 집에서 이를 확인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학교로 찾아와 신고했다. 그달의 용돈과 해외여행 후 아끼던 애장품을 잃은 후 얼마나 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