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한국 드라마가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습니다. 정의를 위해 칼을 빼들거나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웅대한 이야기여서가 아닙니다. 그 대신 인간의 도리와 덕목과 행실이 어떠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잔잔하고 은은하게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장금’에서 그려진 인성을 한국적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그게 바로 인류 보편적인 가치관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한국의 인성 내용이 가히 세계적이라는 증거입니다. 이에 저는 자랑스러움과 안심과 희망을 느낍니다. 세계 최고의 인성 모델이 우리 역사와 문화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행실도를 지닌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배를 우리가 다음세대에 계속해서 물려준다면 큰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대청마루와 부모님의 무릎 세계적인 인성 콘텐츠가 수천 년 동안 대를 이어 내려왔으니 그 가치를 전수하는 ‘인성교육’ 방식 또한 대단했다는 증거입니다. 고구려에는 경당이 있었고, 신라에는 화랑이 있었고, 고려와 조선에는 서당이 있었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장은 모든 가정에 있었던 대청마루와 부모님의 무릎 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 최초이며 유일하다는 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역시 인성을 중요시하는 한민족이라고 뿌듯해하는가 하면 인성을 법으로 다스릴 정도가 돼버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한심해한다. 최고의 교육목표라고 학교 홈페이지에 버젓이 명시해놨던 인성교육이 드디어 약속대로 실천되리라 믿는 동시 그마저 학원이 주도해 왜곡되고 사교육비만 증가할 것 아니냐고 불신한다. 모두 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미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는 이 마당에 어떻게 해서라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제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이 인성교육이냐다. 사서삼경의 삼강행실도나 오륜행실도를 가르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성경의 십계명을 가르쳐야 할까. 윤리도덕을 가르치고 예의범절 교과를 강화하면 될까. 아니면 ‘글로벌시민’을 위한답시고 서양의 에티켓을 가르쳐야 할까. 우리 모두 인성이 무엇인가 잘 알면서도 콕 집어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동안 인성교육 내용과 방식을 두고 왈가왈부할 것 같다. 인성교육 방식을 다이어트 방식과 비교해볼 수 있다. 살을 빼는 오만가지 비법들이 난무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식은 가장 간단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두
오늘 꽃다발을 한아름 받았습니다. 학생들 박수와 환호 속에 향기가 물씬한 꽃다발이었습니다. 꽃과 함께 받은 학생들의 감사 편지에는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고맙답니다. 존경한답니다. 그리고 베푸신 은혜를 영원히 간직하겠노라고 합니다.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스승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멘토의 날’이었습니다. 한국장학재단이 운영하는 코멘트데이(코리아 멘토의 날)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멘토와 그들의 멘티가 다 함께 만나는 축제날입니다. 멘토와 멘티의 만남을 축하하는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분명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아쉬운 면도 있었습니다. 왜 하필 멘토와 멘티라고 했을까요. 그 좋은 스승과 제자라는 말을 두고…. 특히 스승이라는 아름다운 고유 우리말이 있는데…. 그러나 곧 알게 되었습니다. 스승의 날이 그다지 기다려지지 않는 날이 되었다는 것을요. 검색창에 스승의 날을 쳐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선물 추천 바랍니다. 선물 때문에 엄청 고민했는데….”, “빤한 선물 지겹더라고요.”, “담임쌤이 이번이 마지막이라 해서 선물을 사줄까 하는데….” 아니, ‘사줄까’라니요!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아찔합니다. 어쩌다가 스승의 날이 이토
요즘에는 연예(演藝)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가수, 배우, 밴드 등 대중 앞에서 공연하는 꿈을 지닌 학생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꿈을 실천으로 옮기려고 공부를 아예 뒷전으로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아마도 K-pop의 세계적 유명세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자녀가 연예계에 진출해서 제대로 먹고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무조건 반대하면서 아이와 갈등을 빚고 대립하거나 아예 담쌓고 남처럼 지내기도 합니다. 이때 선생님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어야 할까요? 꿈과 끼를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행복 교육’ 새 시대에는 아무쪼록 학생 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세상 어려운 것 모르고 환상에 사로잡힌 학생의 미래가 걱정되어 학부모 편이 돼주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 쉽게 판단할 수 있지 않아 보입니다. 만약에 아이에게 연예계 쪽으로 재능이 확실히 있고 성공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면 진정한 꿈입니다. 대폭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에 아이에게 그 방향으로 재능이 부족하면 허황된 꿈, 즉 환몽(幻夢) 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지지해 주어야
우리는 감정을 느끼며 삽니다. ‘喜怒哀樂愛惡慾(희노애락애오욕)’과 같은 기본 감정 외에 수백 가지 감정이 있으며, 생각보다 훨씬 더 위력적으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생각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력의 속도를 거북이걸음에 비유한다면, 감정은 토끼가 아니라 빛의 속도로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만큼 ‘즉각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번 감정에 휘말리면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어서 나중에 후회할 행동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초감정’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무의식 상태에 기억된 감정적 경험과 가치관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나타나는 ‘감정에 대한 감정’입니다. 예를 들어, 우는 아이에게 “뚝 그쳐!” 하고 화를 내며 야단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눈물을 허약함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의 중요성을 터득한 사람은 함께 슬퍼해 줍니다. 이렇듯 살아온 경험과 받아들인 철학, 물려받은 정서적 유산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자 다른 감정적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한 다양성에서 사회규범이 조율되어 갑니다. ‘수능’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학부모들의 집단 초감정 그러나 만약에 사람들이 같은 경험과 사고관을 지녔다면 결국 같은 초감정을 공유하게 되고, 같은
“축하합니다. 한국 대학교 졸업생 대다수의 꿈인 대기업에 입사 했으니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질문 하나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왜’ 대기업에 들어 왔습니까?” 어느 대기업이 대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약 2천명의 신규 직원에게 개최한 오리엔테이션 특강에서 제가 신규 직원들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들떠 있던 행사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고 조용해졌습니다. 아마 대학졸업생 상당수는 대기업에 취직한 이유는 대기업이란 후광을 얻고, 다른 곳보다 좀 더 많은 봉급을 타고, 안정된 생활을 획득하고, 그래서 보다 나은 배우자를 얻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즉, 얻고 받고 취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어서 질문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지 나이가 아닐 것입니다. 분명 어린애 같은 어른이 있는가하면 어른 같은 어린이도 있으니까요. 저는 어린이와 어른을 매우 간단하게 구분합니다. 어린이는 자기를 위해서 남으로부터 취하는 존재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갓난아기지요. 온종일 “나, 나, 나” 합니다. 하루 종일 젖 주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돌보느라 지쳐있는 엄마에게 밤새도록 또 “달라, 달라, 달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작년 말, 튀니지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국가의 교육부 장관 모임에서 필자가 기조강연을 하였습니다. 기적 같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성공은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고 온 국민이 자녀의 미래에 기꺼이 투자한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교육이란 국민에게 단지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더 좋은 미래를 꿈꾸고 그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이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할 전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고의 인재가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고,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는 교사가 여전히 교육의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고, 올해 하반기에 나이로비에서 개최되는 또 다른 모임에 기조강연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성공 사례가 아프리카 국가의 교육 리더들에게 희망을 준 것 같아 기뻤고,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귀국길에 문득 의문이 생겼습니다. 만약에 같은 강연을 북미와 유럽 국가의 교육부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했다면 과연 같은 반응을 얻었을까? 한국이 이루어낸 성과에 대해 여전히 큰 박수를 받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