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정책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한국전쟁 직후 시골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고등학교 진학 역시 꿈도 꾸지 못했다. 만약 형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고향에서 촌부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막내다. 막내여서 다른 형제에 비하여 누린 혜택이 많았다. 바쁜 농사철에 주로 힘든 농사일보다 심부름을 많이 했다. 일하는 분들의 점심과 새참을 위하여 막걸리를 사가지고 오는 일, 새참과 점심을 배달하는 일 등이 배당되었다. 물론 가족끼리만 농사일을 할 때는 손 하나가 아쉽기 때문에 일을 해야만 했다. 일을 하다가도 간혹 힘든 일은 면제되는 경우가 있었다. 논에 김을 매는 일을 할 때면 형님들의 사랑 덕분에 논둑에 있는 피를 하천에 옮기는 가벼운 일을 하곤 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주로 죽은 나뭇가지를 주어오는 일 등이 내가 담당하는 일이었다. 지난 연말 TV 프로그램에 7명의 가족이 출연하여 노래와 연주를 하는 것을 보았다. 가장 큰 누나가 22살이고, 막내가 5살이었다. 아나운서가 가족들에게 식구가 많아서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다섯남매 중 넷째였다.
- 한상윤 서울특별시학생교육원장
- 2016-04-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