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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대모화의 화신’으로 낙인…1980년대 이후 재평가 ‘나말여초’ 전환기의 변화를 대변한 시대정신의 산 증인 우리 것 부각, 민족의식을 사회통합의 원동력으로 삼아 불교·도가·유교 체득한 천재성 갖춰 최치원의 사상적 경향을 살펴볼 때, 그는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유자(儒者)로 자처하면서도 불교 및 도가사상에 정통했으며, 그 밖의 여러 사상을 한 몸에 체득했던 천재적인 사상가로서 한국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단순한 문장가가 아니요, 사상가이며 철학자였으며, 사변적이거나 논리적인 이론가가 아니었고 삶을 통해 도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의 철학사상은 차원이 높고 정연한 체계와 구조를 이룬다. 최치원은 ‘나말여초’라는 역사적 전환기의 정치적·사상적 변화를 대변한 시대정신의 산 증인이었다.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6년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국제적 감각을 갖추었던 대표적인 중국통이기도 했다. 근자에 와서는 한국과 중국의 친선·우의를 다지는 차원에서 그에 대한 연구가 중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최치원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일찍이 민족주의 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김춘추·최치원·김부식을 사대모화(事大慕華)의 화신(化身)으로 단죄한 바 있다. 특히 최치원에 대해서는 ‘조선상고사’에서 “최치원의 사상은 한(漢)이나 당(唐)에만 있는 줄 알고 신라에 있는 줄을 모르며, 학식은 유서(儒書)나 불전(佛典)을 관통했으나 본국의 고기(古記) 한 편도 보지 못했으니, 그 주의(主義)는 조선을 가져다가 순지나화(純支那化)하려는 것뿐이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인식은 대체로 1980년대까지 우리 학계의 통념으로 내려왔다. 최치원에 대한 연구가 상당한 경지까지 진척된 오늘에 비하면 금석지감을 느끼게 한다. 주체적이고 보편적인 문명 지향 최치원의 철학사상을 연구함에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는 중요한 두 축을 이룬다. 최치원 철학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체의식과 문명의식은 보편성과 주체성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그의 주체적 정신이 특수성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문명세계의 지향은 곧 보편성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필자는 최치원의 주체의식을 ‘동인의식(東人意識)’이라 명명한 바 있다. ‘동인의식’은 한 마디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의 ‘주체의식’ 또는 ‘자기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문명지향 의식을 ‘동문의식(同文意識)’이라 한 바 있다. ‘동문’ 또는 ‘동문세계(同文世界)’란 말은 오늘날 널리 쓰이는 국제화·세계화의 의미와도 상통하는 것이지만,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중국 중심의 ‘보편문화’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족적 특수성을 의미하는 ‘인(人)’과 문화적 보편성을 의미하는 ‘문(文)’ 그리고 각각 그것을 수식하는 ‘동(東)’과 ‘동(同)’은 서로 좋은 대조를 이루면서 하나의 학술명사로써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치원의 철학사상은 현실적으로 ‘동인의식’과 ‘동문의식’의 두 축으로 전개됐다. 전자는 민족적 차원에서, 후자는 국제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둘 다 최치원의 독창적인 사상이라 할 수는 없고 당시의 시대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치원은 분열과 갈등으로 난마(亂麻)처럼 뒤얽힌 당시의 어지러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통합의 원동력으로서 민족의식을 부르짖었고, 아울러 우리의 문화적 긍지와 문화 창조의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시켜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융평사상(隆平思想)의 한 발로로서의 문명의식을 고취했다. 종래 최치원을 사대모화주의자라고 본 것은 그의 철저한 동인의식을 지나쳐 보았을 뿐만 아니라, 문명세계를 지향하는 동문의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출신국에 따라 차이가 없다” 신라 하대에서 중요한 사상적 동향의 하나로 동인의식의 대두(擡頭)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지식인 계층 내부의 의식세계가 투영된 이 동인의식을 크게 부각시키고 고양한 학자는 곧 최치원이다. ‘우리 것’을 찾으려는 ‘우리 의식’은 바로 동인의식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최치원의 철학사상은 바로 이 동인의식이 핵심이 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동인의식’은 최치원 사상에 있어 결정(結晶)의 하나라 할 만한 것으로서, 그의 철학사상의 전체적인 구조와 맥락을 짐작하게 하는 관건이기도 하다. 동인의식은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 민족의 정신적·사상적 밑뿌리를 캐고자 한 데서 나온 것이다. 특히 그가 말한 ‘현묘한 풍류도(風流道)’를 지닌 우수한 문화민족으로서의 강한 자부심과 긍지가 동인의식으로 표출됐음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한 뒤 그는 거의 모든 면(특히 사상·종교면)에서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 최치원 사상의 핵심과 통일성을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고유사상을 비롯한 우리 민족문화를 재발견하고 이를 선양함으로써 민족주체의식을 드높였다. 문화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선진문화를 수용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 또한 아끼지 않았다. 그는 풍류도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전통을 보편적 가치기준과 개념을 가지고 해석·설명하여, 당시 국제무대인 당나라에게까지 선양하려 했다. 더 나아가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탐색해 우리의 것을 ‘세계의 것’으로 만들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난랑비서’에서 고유사상인 ‘풍류’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가치를 부각시키면서도, 풍류를 당시의 보편적 가치 기준으로 해석,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려 했던 것은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사적 흐름과의 관련선상에서 이해하고, 또 보편적 가치기준과 개념으로 자리매김하려 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측면에서의 국제화·세계화에 큰 공을 세웠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문화의 보편적 성격에만 함몰되어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망각하거나 외면한 것이 결코 아니었음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최치원은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서 “대저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없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교를 하고 유교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고 했다. 즉,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인·인도인·신라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출신국에 따라 진리와 거리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국경을 넘어선 인간의 보편성, 진리의 보편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진리를 향해 중국이나 인도로 향하는 신라인의 향학열과 진취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위에서 ‘사람은 출신국에 따라 차이가 없다’(人無異國)는 선언은 매우 중요하다. 진리의 보편성과 인간 본질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기에 그는 당시 독존적(獨尊的) 경향이 유난히 강했던 당나라에 대해 ‘인무이국’의 논리를 가지고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족의식 갖춘 국제인 추구 최치원은 역시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서 구도(求道)하는 학인들의 열정과 고학상(苦學狀)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서쪽으로 대양(大洋)을 건너 통역을 거듭해 가며 학문에 종사할 적에 목숨을 통나무배에 맡기면서도 마음은 보배의 섬(寶洲: 西域)에 달려 있다. 빈 채로 갔다가 올차게 돌아왔는데, 험난한 일을 먼저하고 얻는 바를 뒤로 하였으니, 역시 보옥(寶玉)을 캐는 자가 곤륜산(崑崙山)의 험준함을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자가 검은 용(驪龍)이 사는 물속의 깊음을 피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최치원이 중국 유학의 과정을 밟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절실하고 호소력 있는 서술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구도의 길이 이처럼 목숨을 건 험난한 길이었기에, 최치원은 유학의 목적지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를 불교에서 이른바 열반상락(涅槃常樂)의 경지를 가리키는 ‘피안(彼岸)’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시 신라가 동아시아 문화권 중에서 비교적 높은 문화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해위가(四海爲家)’를 표방하며 문화적으로 자신만만했던 당나라의 개방적인 문화정책과 문명세계를 향한 신라인들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하나로 어우러졌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최치원의 ‘주체의식’과 ‘문명의식’은, 신속화·정보화·세계화로 특징 지워지는 이 시대에, 동서 문명의 보편성 추구와 세계화 지향을 시대적 과제로 하는 현대인들에게 국제화와 주체의식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기게 한다. 넓게 열린 마음으로 우리 문화와 전통을 가장 ‘민족적’이고 ‘원형적’으로 잘 살려서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바람직한 국제화요 세계화라고 할 때, ‘뿌리 있는 국제인’이 되기를 염원했던 최치원의 주체적인 사고와 열린 자세는 현대인들에게 어느 것이 바람직한 국제화요 세계화인지 일깨우는바 크다고 할 것이다. 최치원 철학사상의 핵심인 ‘인간주체’의 문제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화적 보편성 및 독자성의 문제는 천여 년 뒤인 오늘에서도 여전히 추구해야 할 화두로 남아 있다. 최치원은 그저 과거 완료형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시대를 고민하는 지성인으로 살아 있다. 그의 철학사상 역시 단순히 역사상의 정신적 유산으로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연면히 생동한다고 하겠다.
교원평가제 입법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교과부에서 교원평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교원평가제를 통한 평가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교원평가제의 실시방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교과부에서는 모든 교사가 학기당 2회씩 수업을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교사들이 수업공개를 한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것이고, 그것으로 교사들의 평가를 정확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또한 이를통해 수업의 질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수업공개는 매일같이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수업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접근하여 잘 못가르치는 교사들을 걸러내는 가에 있다. 교사들이 동료교사들의 수업을 지켜 보아도 잘못된 점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평가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수업공개가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수업방법에 문제가 있어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흔하지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문제가 다른 교사들의 눈에는 훌륭한 교수법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가르치는데 경각심을 준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방향이지만 수업공개를 통한평가가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교원평가제의 문제점이야 수없이 지적되었지만 이번에 제시된 방법을 지켜보면서 교사들이 과연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고, 학교조직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매학기 2회의 수업공개를 모든 교사들이 하도록 한다면서 수업공개에 학부모평가단의 참가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방법으로 보이지만 교과부는 여기서 크나큰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령어떤 학교의 교사가 50명이라고 하자(실제로 대도시의 학교들 중 이정도의 교사들이 있는 학교들이 매우 많다.) 1년동안 실제로 수업을 하는 수업일수가 205일 정도 된다. 이 중에서 각종 고사일이나 행사일등을 빼면 실제수업일수는 이보다 훨씬 더 줄어들게 된다. 예를들어 연간 실제 수업일수가 180일이라고 하자. 180일이면 30주정도 된다. 따라서한 학기는 그 절반이니 15주가 된다. 50명의 교사가 학기마다 2회의 수업공개를 해야 하니, 학기당 수업공개 횟수는 100회가 된다. 15주에 100회의 수업공개를 해야하니, 매두 6-7회의 수업공개가 필요하다. 이 수업공개에 교사와 학부모가 참여하여 평가를 해야 한다. 평가를 담당하는 교사들은 자기 수업을 하기 어려운 강행군을 해야 한다. 매일같이 수업공개를 참관해야 하고, 어떤 주는 2-3회의 수업공개에 참가해야 한다. 자신의 수업을 변경하면서 수업공개에 참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1년내내 참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수업공개를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또한 학부모들로 평가단이 구성된다면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같은 학부모평가단이 매일같이 수업공개를 참관해야 한다. 만일 평가단이 2-3개 정도 된다고 해도 사정은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가정을 팽개치고 학교에 와서 교원평가를 위한 공개수업참관에만 매달려야 한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론적으로야 매일같이 수업공개를 해도 되지만 실제적으로 학교에서는 교원평가를 위한 수업공개로 인해 마비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또한 평가에서 조금이라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수업준비를 철저히 잘해야 한다. 학교업무는 언제처리하고 학생지도는 언제하나, 당장에 교원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하면 다가올 불이익으로 교사들은 무엇보다 수업공개에 대비한 준비에만 매달리게될 것이다.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자 도입한 교원평가제가 도리어 학교에서는 독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당장에 시행한다고 하면서 시행방법조차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정하는 교과부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평가를 한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교원평가를 제대로 실시할려면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 합리적인 평가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방법이라도 제대로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교원평가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한 후에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관서 EBS 사장은 1일 베트남과 필리핀, 싱가포르 한국학교와 방글라데시 한글학교에 EBS 방송 콘텐츠와 교재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부산 동주대가 총장 선출을 둘러싼 학내 분쟁에 휘말린 가운데 교수평의회 소속 교수들이 보직에서 사퇴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8월 총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동주대가 부산지역 전문대 최초로 실시한 총장 외부공모제 결과 사업가 출신인 L씨가 총장 내정자로 결정되면서다. 12명의 총장 후보자 중 교육계 경험이 전혀 없는 총장이 선출되자 교수평의회는 지난달 9일 “총장추천위원회 7명 중 외부 인사 3명과 총장 내정자 모두 이기우 이사장과 특수관계 또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평의회는 또 “옛 교육부에서 파견 나온 관선 이사진이 총장추천위원회에 동주대 구성원이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를 묵살하고, 선출과정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총장 내정자와 이사진의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 지난달 13일에는 사학분쟁조정위를 방문해 항의시위를 벌였고, 현 오명근 총장은 임기 1달을 남겨두고 사표를 제출했다. 평의회는 이사회가 사전 준비 작업을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올 초부터 이사회를 통해 총장 1회 중임 제한 조항을 삭제하고, 2년의 총장임기를 4년으로 확대하는 등 정관을 지속적으로 개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사회 측은 옛 재단 측 교수들이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사회는 “조속한 학교 정상화를 위해 합법적으로 행정 및 경영능력을 갖춘 총장을 선출했다”며 “교수들의 집단행동은 학교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자제를 요청했다. 이처럼 문제가 불거지자 이사장도 사표를 제출하고, 지난달 31일부터 교과부가 선출과정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평의회장 이승희 교수는 “이사장이 사표 수리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사회를 진행하며, 총장 임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총장이 투명한 과정을 거쳐 선출돼야 하루빨리 학교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동주대는 지난 2005년 재단의 교육비 불법 지출 등 각종 불법행위가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돼 학장이 해임되고, 2007년부터 임시이사진이 학교를 운영해왔다. 동주대 학교법인 석파학원의 이사장 J씨는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지난달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한국 교육에 관한 현안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질풍노도와 같이 강하게 다가 온다. 국민의 인식이 변화하고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뀔수록 교육에 대한 요구와 기대방향도 바뀌어 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교육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교육현장을 굳건히 지키는 50만 교원이다. 노동단체 등 다른 사회단체와 비교해 교원이 목소리와 주장을 외부에 표출하는 여건이 용이하지는 않다. 아마, ‘스승은 좀 달라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점과 사회가 바라보는 기대치가 이들 단체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원인인 듯하다. 그러나 이제 인식의 변화가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 됐다. 인문분야든, 자연분야든 ‘과학’ ‘공학’의 명칭이 붙는 것이 낯설지 않는 시대에, 교육현장도 보다 교육공학적 차원에서 과학화 될 필요가 있다. 교원도 ‘교육백년지대계’의 관점에서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를 실현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 교원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자체에 대한 정책과 방향제시에 대해 현장의 생생한 여론을 반영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의견 표현 그 자체로도 교육정책의 민주성과 내실화에 크게 기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요 현안에 대해 현장교원이 동참하는 ‘서명’의 정당성도 여기에서 기인된다. 지금, 한국교총에서는 전국의 50만 교원을 대상으로 교육현안해결과 나눔교육 실천을 위한 서명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서명의 과제는 현재 10년으로 돼있는 교원근무평정기간의 대폭적인 단축, 교원잡무경감의 획기적 감축과 교원연구년제 도입 등 교원이 학교현장에서 일상으로 접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무너져가고 있는 교육자치를 살리고 열악한 유아교육의 여건을 전면적으로 개선해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실현을 위한 결의도 담겨져 있다. 또한 사회적 합의안으로 마련된 공무원연금법안을 이번 정국국회 회기에 반드시 처리해 교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안정적인 여건에서 교직에 전념토록 여건을 조성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더욱이 교육소외계층의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의 열정을 제자들이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실천적 과제도 포함돼 있다. 근무여건 개선과 전문성을 제고하며 교직의 안정을 꽤하고 유아교육과 교육자치를 바로잡으면서 제자들과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현장의 교원뿐만이 아니라 외부로 부터도 환영받을 내용이다. 그 저변에서 ‘교육의 기능에 대한 확신과 그 역할을 실천하기 위한 고뇌를 발견할 수 있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에 있어서 교육주체들의 분명하고 교육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주장들이 표현되고, 힘을 얻어야 할 시점이다. 이번 서명운동은 또한 글로벌인재육성과 선진교육이란 기치를 내 건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꼭 필요한 주장이다. 교육에 대한 신념과 열정으로 가득 찬 현장 교사들의 ‘분명하고 확신에 찬 주장의 표현’이 모두가 꿈꾸어 왔던 소중한 가치를 구현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작년 가을, 교육세 폐지 반대를 기치로 전개한 서명운동에 22만 여명의 교원이 적극 참여했고 결국은 그 뜻을 최근에 관철시킨 바 있다. 서명에 참여한 한 분 한 분의 진정어린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오늘도 현장에서 묵묵히 제자 사랑에 가슴 설레는 선생님들이 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에도 관심을 가져 볼 시점이라고 본다. 고동치는 사랑의 감동만큼이나, 차분한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교육현안에 대해 적극적이고도 분명한 입장을 나타내는 것도 지성인이 가지는 하나의 덕목이라 생각된다. 가을이 성금 다가왔다. 눈이 시린 파란 하늘 마냥 ‘신바람 나는 학교현장’이 기대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달 25일 발표한 ‘2009년 세제개편안’에서 교육세 폐지를 3년간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육계 등 이해단체의 완강한 반대로 교육세법 폐지 법률안의 국회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앞서 행정안전부가 지방교육세 폐지 방침을 철회한 바 있기 때문에 당분간 교육세와 지방교육세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사필귀정이지만 지난 1년 동안 한국교총을 비롯한 교육계의 일치단결이 이끌어낸 개가라 할 수 있다. 작년 9월 기획재정부가 교육세 폐지 방침을 밝힌 이래로 필자도 일간지 칼럼 투고, 학회 논문발표, 정책토론회 발제 등을 통해 교육세 폐지의 부당성을 주장한 바 있어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우리 교육재정의 현실이 교육세 존치로 해결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정부가 교육세 폐지 방침을 철회한 것은 환영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세를 폐지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했던 교육세제의 복잡성이 해결된 것이 아니며, 교육세 존치가 교육재정 확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폐지시기를 2012년으로 3년간 유예한 것은 이명박 정부 내에 재논의하기 어렵다는 의미라고는 하지만, 세제개편작업이 계속되는 한 언제든지 교육세 폐지 문제는 재론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교육세를 유지해도 모세의 세수를 줄이면 교육세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교육세와 지방교육세 구조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안정적인 교육재정 확보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첫째, 부가세 방식을 폐지하고, 독립세원에 교육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현행 부가세 방식은 세제의 복잡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모세의 변동에 따라 교육세가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있다. 독립세원을 교육세로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면 단일세 수입액의 일정률을 분할하는 공동세 방식이 차선책일 수 있다. 둘째, 징수과정이 복잡한 금융·보험업자 수익분 교육세와 실효성이 적은 주민세 균등할분 지방교육세는 다른 세원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금융보험업자 수익분 교육세의 경우, 과세 대상 및 기준이 복잡하고 과세의 형평성 문제가 지적돼 왔고, 주민세 균등할분 지방교육세는 세원이 영세해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셋째, 한시세로 돼 있는 세원인 교통세와 개별소비세 부가분 교육세와 담배소비세 부가분 지방교육세를 영구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이미 교육세를 부담해왔기 때문에 한시세분을 영구세로 전환하는 데 동의할 것으로 본다. 넷째, 교육세 확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09년 4조 3571억원이던 교육세 수입예산이 2010년에는 3조 8700억원으로 4871억원이나 줄어들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내국세 교부금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바 교육세원을 확충해 교부금 보전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제도에 대한 보완대책도 시급하다. 경기 불황으로 내국세 수입이 줄어들게 되면 자연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줄어들게 된다. 2004년까지만 해도 봉급교부금제도와 증액교부금제도가 있어서 내국세 교부금 감소를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었으나 2005년부터 봉급교부금과 증액교부금이 폐지돼 내국세가 줄어들 경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감소를 완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따라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봉급교부금제도와 증액교부금제도를 부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교육재정 감소기에 내국세 정산으로 인해 교부금이 현저하게 줄어들 경우 정산을 유예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교육계는 교육재정 확충을 요구하고 정부는 이를 거부하는 관행이 이번으로 끝나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교육재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교육계가 해결을 요구하기 전에 정부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더 이상 교육계와 기획재정부 사이에서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교육재정 확충을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획기적인 지방교육재정 확충방안을 기대해본다.
집중이수제, 획일적 초등 시수 확대 ‘반대’ 복수자격 상치교사 초래, 공교육 만족도 저하 한국교총이 교과․학년군 조정과 집중이수제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교총은 4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에 제출한 요구서에서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10개 기본교과는 각각 존재 이유와 가치를 통해 전인적 성장을 유도하고 있는 만큼 특정 교과를 ‘군’으로 조정해 함께 묶을 수 없다”며 “교과․학년군 도입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교과․학년군 도입으로 초래되는 수업시수 조정의 어려움을 복수자격증제로 해결하려하는 것은 복수전공 가산점 폐지라는 정책 추세와도 상충된다”며 “교원의 전문성 담보는 물론 학생의 학습권마저 침해할 수 있는 이 제도 도입은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업시수가 적은 교과목을 대상으로 한 집중이수제 적용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총은 “국, 영, 수, 사회, 과학 등 집중이수에서 제외된 주지과목은 시수가 오히려 늘어 학생의 학습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집중이수 대상 과목이나 내용은 ‘수업시수’와 같은 단순한 기준이 아닌 ‘교과 및 학생의 발달단계 특성’ 등 다각적 검토를 통해 단위학교가 자율적으로 편성․운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교총은 “초등 1, 2학년의 일괄적 수업시수 확대는 어린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사교육 대체 효과도 미미하다”며 “학교 밖에서 교육과 보육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지역부터 선별 시행하는 등 학교별로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교총은 “학교현장 및 교육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한 교총의 요구에 교육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미래형 교육과정 최종안이 정녕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추진 중인 학교 자율화, 다양화 등 교육개혁 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 점수가 5점 만점에 평균 3점을 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7일 한국교육행정학회가 발간한 '교육행정학연구'에 실린 홍익대 서정화 교수의 논문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진단 및 시사점'에 따르면 현 정부의 교육개혁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평균에 다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 교수는 이번 연구를 위해 올 2월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 산하 초ㆍ중등 교사, 대학교수, 연구원, 학부모 등 4천32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정부의 교육개혁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묻는 문항들에서 5점 만점에 모두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고 있다'는 문항은 2.66점, '학교 자율화, 다양화, 경쟁력 강화 등의 방향은 바람직하다'는 2.89점, '영어교육이 강화되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는 2.95점이었다. '대입 자율화가 이뤄지면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라는 문항은 2.12점으로 특히 낮게 나타나 입시 자율화가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부정적 견해가 많은 것으로 해석됐다. 세부 정책별로 보면 '교원평가제는 실시돼야 한다'(3.10), '학교정보공시제도는 바람직하다'(3.51), '기숙형 고교 설립은 바람직하다'(3.49), '마이스터고교는 적극 추진돼야 한다'(3.63) 등은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학업 성취도를 국가 차원에서 평가해야 한다'(2.98), '자율형 사립고는 확대돼야 한다'(2.80) 등의 문항에는 부정적 응답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정책의 경우 '입학사정관제 확대'(3.71), '대학정보공시제 실시'(4.03), '대학규제 축소'(3.51), '국립대 법인화'(3.58),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4.23), '부실대학 퇴출'(4.08), '국가장학재단 설립'(3.92) 등 대부분의 문항에서 점수가 높게 나왔다. 향후 정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는 '사교육비 절감'(44.7%), '소외계층 대책 강화'(22.1%), '대학입시 개선'(16.4%), '수월성 교육'(10.2%) 등 순으로 꼽혔다. 서 교수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점검하는 대규모 설문조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올 2월 조사 결과인 만큼 지금과는 또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기후변화 현상에 대응하는 '에코 스쿨'(Eco-School) 사업의 하나로 다음달까지 노원구 대진여고 등 8개 학교의 기존 모래운동장을 천연잔디운동장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천연잔디운동장은 한 곳당 평균 2천㎡ 규모의 천연잔디와 주변의 트랙, 다목적운동장으로 구성되며 운동장 지하에는 빗물을 재활용해 잔디를 관리하기 위한 빗물저류조가 설치된다. 대상 학교는 성북구 안암초등학교, 강북구 인수중학교, 노원구 대진여자고등학교, 은평구 신사초등학교, 강서구 내발산초등학교, 구로구 구현고등학교, 서초구 언남중학교, 강동구 동신중학교 등이다. 잔디운동장 조성엔 한 곳당 평균 3억7천여만원(총 29억8천200만원)이 들고 잔디의 관리는 전문가와 학교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잔디유지관리협의체가 맡는다. 천연잔디운동장은 모래먼지나 소음 등으로 인한 환경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지표면 온도를 평균 8~10도 낮춰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동시에 공기 정화 효과가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에코스쿨 사업은 시내 초·중ㆍ고교가 도시 열섬현상 등 도시환경문제를 개선하고 기후변화 현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한 것으로 건물의 단열, 냉난방, 조명시설 등을 개선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학생들에 대한 환경교육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이원회 회장은 초ㆍ중ㆍ고교의 교육과목을 대폭 줄이고 초등학교 수업시간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의 미래형 교육과정 개편안이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많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이어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교총까지 미래형 교육과정 개편안을 강하게 반대함으로써 12월 확정안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회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2007개정교육과정이 올해 시행됐는데 내후년에 또 바뀐다는 건 불합리하다"며 "(개편안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이다"고 비판했다. 개편안의 교과군 조정에 대해 "음악ㆍ미술은 서정적인 것과 관련되고 기술ㆍ가정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부분이다. 도덕ㆍ윤리는 인성을 다룬다. 아이들의 성장 단계별로 교육해야 할 과목을 집중이수제로 몰아 교육한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개정교육과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또 바뀌는 것은 교육의 연속성 측면에서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학습부담 경감이라는 개편안이 내세우는 효과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지난 7월 말 공개한 미래형 교육과정 개편안의 골자는 학기당 이수 과목수를 초등은 10과목에서 7과목, 중ㆍ고는 13과목에서 8과목으로 줄이는 것이다. 현재 10개인 국민 공통 기본 교과의 일부(도덕, 사회, 과학, 실과, 음악, 미술)를 통합해 7개로 줄이고, 초등학교 1∼2학년의 수업시수를 확대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 1∼2학년 수업시수 확대에 대해서도 "너무 포퓰리즘적으로 가는 것 아니냐. 이건 결국 보육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데 별다른 재정조달 방안도 없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교총은 이미 교과군 조정 재검토, 집중이수제는 반대, 초등학교 1∼2학년 수업시수 확대엔 보완을 요구하는 문건을 5일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의 전국 단위 두차례 시험과 3∼4차례의 시도교육청 단위평가와 관련해 "시험횟수가 너무 많다. 학교들의 성적 높이기 수업을 유발하고 인성ㆍ감성교육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며 적어도 시도교육청 단위의 시험은 폐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원평가에 대해선 "많은 논란 끝에 (교총 입장을 반영한) 현장적합성 있는 안이 만들어져 국회서 논의 중인 만큼 모법이 빨리 통과되면 좋겠다. (인사ㆍ승진 연계 부분이 빠졌더라도) 인센티브, 장기연수 등이 포함된 만큼 무서운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역사에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비보(裨補)’라 불리는 전통적 경관 보완론이 있다. 비보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돕는다’ 또는 ‘보완한다’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비보라는 말 앞에 ‘풍수’를 붙여 ‘풍수비보’라고 했다. 멀리는 우리의 수도인 한양 광화문 앞의 물의 상징인 해태상과 가로 형태의 숭례문 현판이 불 모양인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잠재워 횡액을 막으려 했던 것이 있다. 이러한 풍수비보는 우리 여러지역에도 존재하고 있는데 가족 나들이 등을 하다가 눈여겨 본다면 우리 조상의 고유한 풍습과 함께 자연관을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충남 금산군 금성면 상마수의 소나무숲 이 소나무숲은 100여년 전에 이 마을에 살던 백낙헌이라는 사람이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안산 조성과 함께[ 횡액을 막기 위하여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이 숲은 6·25전쟁 당시 경찰 별동대가 땔감으로 베어 가려다 ‘나무를 건드리면 동네가 망한다’는 주민들의 결사반대에 부닥쳐 살아 남았고, 얼마 전 산림청과 금산군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여 “상마수 소나무 삼림욕장”이라는 것을 조성하여 가꾸고 있는 실정이다. 2. 충남 금산군 남일면 황풍리 두꺼비상 이 두꺼비상은 일제시대인 1933년에 마을 앞을 흐르는 봉황천에 다리를 놓았는데, 그 다리 모양이 지네라서 황풍마을 모양이 제비집터 모양인지라 이를 노려서 마을에 횡액이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하여 다리가 보이는 마을 들머리에 두꺼비 두 마리 상을 만들자 횡액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3. 전북 남원시 광한루 광한루는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이 곳에도 풍수와 관련된 것들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남원과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견두산(개머리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들개들이 울어서 주민들이 불안해하자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호랑이 석상을 광한루에 배치하여 견두산 방향을 쳐다보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풍수는 어찌 보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다소 미신적인 요소와 함께 지나친 발복 사상으로 인하여 부정적인 모습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풍수로 인한 산송(山訟, 묘지를 쓴 일로 생기는 訟事) 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1천년을 넘게 우리의 삶을 자연경관과 함께 생각하면서 발전된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써 이어져온 전통적인 사상이자 개념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예전과 달리 자연과 벗하여 살기 보다는 개발하고 훼손하는 현재 같은 잘못된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좋은 사상이 아닌가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연구국장 등으로 일하면서 전교조의 내부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서문여중 김대유(47) 교사가 5일 전교조의 정치적 변질을 규탄하며 탈퇴를 선언했다. 김 교사는 이날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전교조 서문여중 분회장을 등을 통해 탈퇴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조합비 납부도 중지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탈퇴 이유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교원평가제를 전교조는 정치적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런 전교조는 더는 과거의 '참교육' 전교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열린 임시 전국대의원대회는 사실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놓고 정부와 교섭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대의원들이 교원평가를 놓고 논의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며 "이제는 희망이 사라졌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선 학교 조합원들이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 내 양대 정파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이 문제다. 교원단체라면 교육을 위해 민주당이건 한나라당이건 만나고 대화해야 하는데 전교조는 그렇지 못하다. 이미 정치에 종속된 정치단체로 변질됐다"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1995년 전교조에 가입한 김 교사는 1997∼1999년 정책위 산하 정책연구실장을 지냈고, 2000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첫 정책연구국장 등을 맡기도 했지만 이후 위원장 선출방식, 교사 시국선언 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지도부와 갈등을 겪어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지 15주년을 맞아 현행 수능 제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김성열)은 11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삼청동 평가원 3층 대회의실에서 `수능시험의 현안과 미래 전망'이라는 주제로 정책 포럼을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수능시험이 시행된 1994학년도부터 현재까지의 성과를 되돌아 보고 시험이 본래 도입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수험생의 학습 부담 및 사교육비 등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등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또 대입 자율화, 입학사정관제 확대 등 입시제도의 근간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향후 수능시험을 어떻게 개선해야 좋을지도 논의한다. 이종승 충남대 교수(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가 `수능시험의 변천 과정 및 당면 문제와 개선 방향'에 대해 기조 발제를 하고 김성훈 동국대 교수(한국교육평가학회장), 허숙 경인교대 교수(한국교육과정학회장), 이종재 서울대 교수(전 한국교육개발원장)가 주제 발표에 나선다. 평가원 측은 "입시제도가 크게 바뀌는 상황에서 이번 세미나는 수능 제도 개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4일부터 4일까지 EBS 사장 및 이사 후보자를 공개모집한 결과 사장직에 모두 14명이 지원하고 7명의 이사직에 84명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 임기 만료되는 EBS 이사 9명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추천하게 되는 2명을 제외한 7명이 방통위의 공모 대상이다. 방통위는 앞으로 접수된 응모자를 대상으로 결격사유 등을 확인하고 전체 상임위원 간 협의와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신규 임원진을 임명할 계획이다. 특히 EBS 사장은 공교육 보완, 국민 평생교육, 민주적 교육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을 갖춘 전문가를 선임하기 위해 외부전문가 등으로 면접위원회를 구성, 엄정하고 투명한 선임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방통위는 강조했다.
넷째 날인 13일 아침을 통화에서 맞이했다. 다른 나라와 차이나는 게 많은 중국으로 백두산에 오르는 여정은 그 자체가 고난의 길이다. 일정 내내 하루에 일곱 시간 이상 차를 타고, 밤늦게 숙소에 도착해 새벽에 기상하는 게 기본이다. 불현듯 가깝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렇게 중국까지 와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민다. 그래도 이번 여행을 통해 큰 땅덩어리를 바른 길로 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중국인들의 생활을 직접 확인했다. 처음 만났지만 소소한 것까지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해 늘 흐뭇했다. 남북의 화해무드로 휴전선 넘어 북한 땅을 곧장 내달려 백두산을 만날 날이 가까워졌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이제 차타는데 숙달이 되었다. 아침을 먹자 통화에서 2시간 거리의 집안으로 향한다. 차안에서 가이드가 들려주는 얘기는 현지의 실정을 아는데 도움이 되고 시간 보내는데도 좋다. 중국인들은 붉은색, 복자, 폭죽놀이를 좋아한다. 그런 중국인들이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붉은색 때문에 배앓이를 했다. 붉은색을 빼앗겼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운동장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응원을 바라봐야만 했다. 더구나 한국 팀이 4강까지 올랐으니 배 많이 아팠을 것이다. 눈만 뜨면 보일만큼 흔한 글자가 복(福)자다. 복이 굴러들어오라는 뜻에서 사람이 많이 출입하는 곳에 복자를 붙인다. 그런데 사람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창고 등에는 복자를 거꾸로 붙인다. 거꾸로 붙인 복자는 하늘에서 복이 굴러 떨어지라는 뜻이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폭죽 값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설날은 조상님 집 잘 찾아오라고, 보름날은 찾아온 귀신들 빨리 나가라고, 개업 날과 결혼식 날에는 붙어있는 귀신 떨어져 나가라고 폭죽을 터뜨린다. 집안은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국내성의 현재 지명이다. AD 3년부터 427년까지 고구려의 수도로 찬란했던 번성기를 누린 만큼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 장군총 등 고구려의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다. 집안은 고구려 시대의 발자취가 많아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려 있는 유서 깊은 역사도시다. 집안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414년 장수왕(사후2년)이 아버지의 재위 22년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한반도 최대의 비석 광개토대왕비다. 광개토대왕은 우리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는 고구려의 19대 왕이다. 새로 건립된 단층의 대형 유리비각 속의 광개토대왕비는 높이가 3층 건물에 맞먹는 6.39m에 이르고 무게가 37톤이나 되는 자연석 비신에 총 1,775자의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한, 중, 일 학자들이 해석한 1,500여자의 비문 중 광개토왕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나온다. 중국에서 호태왕비, 광개토태왕비로 부르는데 광활한 영토를 개척하고 편안하게 민생을 보살핀 하늘과 같이 큰 왕의 업적을 기록한 기념비이다. 광개토대왕비는 들판에서 압록강을 바라보고 있다. 1,880년경 청나라사람들에게 발견되었는데 발굴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불을 지르는 바람에 균열이 와 1,775자 중 122자의 글자가 없어졌다. 고구려의 상징물이자 동아시아 역사 연구의 중요자료인 광개토대왕비의 발견은 중국에서 고구려의 역사가 시작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마침표가 없는 비문은 해석자의 주관에 따라 뜻이 달라져 논란이 되고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유 없이 사진촬영을 못하게 하며 감추는 곳이 많다. 광개토대왕비도 직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한다. 자연석이고, 우리 것인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생각에 셔터를 눌러 사진 세 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광개토대왕의 능은 비에서 서쪽으로 약 2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계단식 석실묘로 거대하지만 예술성이 떨어지고 많이 무너져 상단부만 보존되어있다. 피라미드식 광개토대왕릉은 철제 계단으로 올라간다. 모두 도굴 된 후에 발견되어 능의 내부에 큰 직사각형 모양의 받침돌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압록강이 가까이에 있어 능에 오르면 중국과 북한의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압록강의 작은 돌들로 계단 안을 채웠고 뒤로 돌아가 봉분 위쪽에서 만나는 편평한 돌이 제단이다. 능에서 보면 춤, 씨름 등의 벽화가 발견된 오호분이 보인다. 이곳이 우산하고분군이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장군총 뒤편으로 용산이 보인다. 이곳은 용산하고분군이다. 장수왕릉(장군총)은 거의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광개토대왕의 대를 이어 대정벌사업을 이끈 20대 장수왕릉(장군총)을 묘다. 청나라 말기부터 장군묘처럼 큰 묘가 있는 마을이라 해서 이곳을 장수촌으로 불렀다. 길이가 6m에 가까운 화강암 1,100여개를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크기에 빼어난 조형미를 갖추고 있어 동방의 금자탑으로 불린다. 한 면에 3개씩 기댄 암석 때문에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돌이 내려앉지 않았다. 정면이 국내성이 있던 집안을 바라보는 서남향이라 네 귀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석관의 머리 방향이 북동쪽의 백두산 천지를 향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옆에 있는 첩의 무덤은 아래로 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윗부분에 굽이 있다.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을 '쪼다'라고 한다. 장수왕의 큰 아들이 '조다(助多)'이다. 왕이 되지 못하고 죽어 왕권을 아들에게 넘겨줬다 해서 그를 쪼다로 비하한다. 하지만 장수왕이 19세에 즉위하여 98세에 죽었으니 평균 수명이 짧았던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장수왕을 보필한 공으로 후세에 조다왕으로 불리었으니 쪼다가 아니다. 주차장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 남자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큰 소리로 용서를 구한다. 내용인즉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해 공안이 달려왔고, 중국인들은 공안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된다. 공안이 죄지은 사람 감옥 보내는 것은 예사고 1년에 3,000여명 사형까지 시키면서 땅덩어리 넓고 인구 많은 중국을 통제한다. 뙤약볕에서 석고대죄하고 있는 중국의 쪼다가 처량해 보였다. 광개토대왕릉에서 바라보이던 오호묘는 왕족의 묘로 추정하는데 이곳에 찬란했던 고구려의 벽화가 있다. 화강석 벽에 그림이 그려진 5개의 고분을 오회분이라 하고 그중 다섯 번째 묘가 바로 고구려 유적의 꽃인 오호묘다. 집안의 고분 벽화 중 유일하게 일반인의 관람이 허용된다. 피장자를 사이에 두고 부인과 첩의 관이 있는 묘실에 들어서면 무척 시원하고 실내에 물이 흘러내린다. 동서남북의 네 벽에 뚜렷하게 그려져 있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가 그 당시의 예술수준을 알게 한다. 돌 위에 직접 그린 36개의 용과 신들을 형상화한 그림이 1,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어 그 당시 사용한 자연도료가 궁금하다. 인근에 사신도의 사신총, 무용과 생활상의 무용총, 씨름하는 모습의 각저총이 있다. 오호묘는 사진촬영을 금하고 전시실에 다른 고분의 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중국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웃통(윗옷)을 벗고 다니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낮에 웃통 벗고 시내를 활보하면 싸운 줄 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여전한 것을 보면 땅덩어리가 커 중앙의 행정력이 지방까지 약발이 먹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나보다. 쾌속보트를 타고 북한의 만포가 가깝게 바라보이는 곳까지 압록강을 유람했다. 이곳에서는 종소리에 맞춰 일제히 일터로 나오고 일제히 일을 끝내는 어른들, 강가에서 빨래하고 머리감는 일가족,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황소를 흔히 본다. 북한의 식량사정을 말해주듯 중국방향의 산은 나무가 울창한데 북한방향의 산은 높은 곳까지 개간해 밭을 만들었다. 압록강 건너편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는 높은 굴뚝이 만포의 플라스틱 공장이다. 중국 사람들은 북한쪽에 공장이 들어선 후 압록강이 오염되었다고 했다. 모터보트를 운행하는 중국인은 북한쪽의 초소와 만포를 가리키며 신이 난 모습으로 인민군, 총 공장을 외친다. 슬픈 현실을 망각한 채 20여분 모터보트 타는 재미에 푹 빠졌다. 북한식당 묘향산에서 점심을 먹었다. 성형이나 화장을 하지 않은 순수미인 북한 여성들이 음식 나르고 공연을 한다. 김치가 맛있어 추가 주문을 하고 김치 국물 한 그릇은 서비스로 요구했다. 중국에서 운영 중인 북한 식당들은 수익금의 1/2을 중국에서 의약품, 학용품 구입비로 지출해야 한다. 동남아 북한 식당의 아가씨들은 공연 후 관광객과 어울려 기념촬영을 하는데 이곳은 국경선이 가까워 사진촬영을 막는다. 집안은 자기 집처럼 편안한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배산임수의 천연요새로 유리왕 때 축조되어 400여 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민가가 있는 남서쪽 성벽과 아파트 건물 사이에 위치한 벽만 조금 남아있어 아쉬움이 크다. 국내성 밖 환도산성 입구의 무덤 터에 여러 기의 무덤이 있다. 환도산성은 유사시 적군과 대치하기 위해 산봉우리와 주위능선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였다. 현재 약 5m 높이의 화강암 성벽, 말에게 물을 먹이던 음마지, 전투를 지휘하던 점장대, 병영과 궁전 터만 남아있고 예전에는 식수로 사용했을 작은 냇가에 물이 졸졸졸 흐른다. 집안에서 단동까지 5시간 30분 동안 차타는 일이 남아있다. 집안에서 단동으로 가다보면 길림성과 요령성의 경계에 있는 다리를 만난다. 나무로 만든 화장실 풍경과 강가에서 반두질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집안에서 이곳까지 73㎞를 달려왔건만 단동까지는 193㎞를 더 가야한다. 지금은 조선족과 중국인이 같이 어울려 산다. 예전 따로 마을을 형성한 채 자주 싸울 때 중국인들은 고려방망이를 뜻하는 꼴리방스(까오리방즈)를 외쳤다. 꼴리방스는 조선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조선족 학교의 교과서는 한국과 북한의 교과서를 이곳의 실정에 맞게 재편집해 사용한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전에는 북한에서 만든 교과서로 공부해 남한의 실상을 알 수 없었다. 영화의 배경으로 보이는 남한은 우중충하게 매일 비가 내리고 가난한 사회였다. 시간은 바람과 같이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만큼 차바퀴도 앞으로 굴러간다. 먼 거리라 지루할 줄 알았는데 차창 밖 옥수수 밭을 구경하다 단잠자기를 몇 번 반복했더니 차가 목적지인 단동에 들어선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몸이 차타는데 제대로 적응을 한다. 압록강이 바라보이는 식당에서 마지막 밤을 자축하며 맥주를 마셨다. 함께 참여한 노인분이 장수하길 바라며 건배를 했다. 노인을 모시고 여행 온 자녀들이 일행들에게 감사의 말도 전했다. 친가나 처가에 생존하신 어른이 없는 내가 늘 부러워하는 장면이다. 아침 10시 55분 비행기를 타려면 대련공항에 8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단동에서 대련공항까지는 관광버스로 4시간 거리다. 새벽 4시에 숙소를 출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지런을 떨기위해 술 한 잔 더 마시고 일찍 잤다. 모닝콜 하기 전에 일어나 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잠잔 시간이 짧아도 피곤하지 않다. 늘 피곤해 하는 아내도 이번 여행은 잘 따라줬다. 숙소를 출발해 압록강을 또 지나자 가슴이 뭉클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앞을 구분하기 어려운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휴게소에 들렸지만 날씨가 나빠 차안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톨게이트에서 관광버스의 고속도로 요금표를 보니 우리 돈으로 6만원이 넘는 315위안이다. 비싼 요금 때문에 중국의 고속도로가 텅 비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10시 55분에 대련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1시간 15분 후인 오후 1시 10분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정한 일이지만 세상의 이치가 참 재미있다.인천에 도착하며 자연스럽게 중국시간에 1시간이 더해졌다. 잊힐 수 없는 천지의 감동 때문에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문화재가 중국에서 하나, 둘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도 큰 여행이었다. 정부에서 외국의 우리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는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인천에서 다시 2시간 30분을 달려 청주에 도착해 여행 가방을 풀고 나서야 이번 여행을 마무리 했다.
지난 8월 27일부터 30일까지 볼거리들이 다양한 괴산고추축제가 열렸다. 그중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사이버 괴산가자에서 야심차게 기획하고 발굴한 특별사진전이었다. 개화기에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과 괴산의 옛 사진들은 4일이라는 전시기간이 짧을 만큼 우리나라 옛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태초의 태극기, 궁궐의 정문인 대안문이 대한문이 된 사연, 작대기 선거 벽보 등의 사진을 구경하는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떠난,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타임캡슐을 개봉한 스릴을 느꼈다. 역사적 가치가 큰 희귀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에 전주의 한옥마을에 살고 있는 고종의 손자 이석 씨가 한걸음에 괴산으로 달려와 옛 추억에 젖었단다. 다시 보기 어려운 사진전을 카메라에 담았다. ▲ 한미수호 조약 후의 신헌 - 문헌상 가장 오래된 대신의 사진으로 1876년 조일조규 한미조약을 체결한 대신 신헌 ▲ 초헌을 타고 가는 구 한국군 장교 - 정2품 이상 고관대작들이 타고 다니던 외바퀴 수레로 사진전을 구경하러 온 고종의 손자 이석 씨가 자기 집 창고에 있던 것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져갔다고 증언했다. ▲ 신미양요의 조선인 포로(1871년) - 미 수군의 포로로 잡힌 조선 수군 부상병이 미 수병의 윗옷을 입고 치료받는 모습 ▲ 조선 최초의 신식 군복(1881년) - 구한말 신식군대인 별기군이 조직됨에 따라 새로운 군복등장 ▲ 신식군대(1891년 ) - 서대문을 통과하는 신식의 군인과 문을 지키고 있는 구식의 군인 ▲ 고종황제가 처음 탄 자가용 - 전주에서 달려와 감회에 젖은 고종의 손자 이석 씨는 첫 운전사 이름이 ‘이새돌’이라며 차를 탈 때면 "새돌아 새돌아, 준비해"라고 소리치던 고종 황제의 모습을 떠올렸단다. ▲ 고종과 내각(준명전) - 덕수궁이 불타 없어진 후 고종의 집무실이었던 편전이자 외국 사신의 알현장소였다. 처음 이름은 수옥현으로 위 사진은 최초의 내각사진이다. ▲ 순종의 황후와 궁녀들 - 바깥세상과 인연을 가지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형벌을 받게 하며 궁녀들을 엄격히 규제했다. 이 사진 앞에서 이석 씨는 딴따라 노릇한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순종의 황후 앞에 이석 씨와 어머니가 3일 동안 무릎 꿇고 빌었던 추억을 떠올렸단다. ▲ 비극의 현장 옥호루 - 1895년 10월 8일 일본군대의 호위를 받은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장소로 며칠이 지났지만 남은 재와 벽의 그을음이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준다. ▲ 명성황후 국상일 아침의 광화문(1897년) -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당한 명성황후가 2년이 지나 장례를 치르던 날 광화문 앞으로 모여들던 군중들 ▲ 고종황제 즉위식 - 1897년 10월 국호를 대한으로 개정하고 고종의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 고종황제 즉위식 축하행렬(1897년) - 국악대 창설 이전의 악대였던 곡호대가 황제 즉위식에 참석해 축하행렬과 대안문을 나서고 있다. ▲ 독립문(1897년) -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영은문 자리에 세웠다. ▲ 관민공동회(1898년) - 관민공동회 행사장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 이완용 부인 -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부인이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건너가 찍은 사진이라 울화통이 치민다.
▲ 철도 개통식 광경(1900년) - 한강 철교 준공과 더불어 7월 5일 역사적 개통식을 가진 경인철도 ▲ 서소문안 풍경(1900년) - 서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위치하던 서소문은 1914년 일제의 도시계획으로 철거되었다. ▲ 해태상 앞의 불량소년(1900년) - 광화문 화재를 막기 위해 만든 해태상 앞에 모여 담배 피우는 아이들 ▲ 광화문 전경(1900년) - 광화문 뒤로 인왕산이 보이고 해태상 머리 위에 올라간 아이가 있다. ▲ 최초의 국립극장 기예단원들(1902년) - 고종 40주년 기념행사장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정동에 세운 국립극장의 기예단원들은 궁내부 소속이었다. ▲ 옹기장수들(1903년) - 부산의 옹기장수들이 옹기를 선착장으로 운반하고 있다. ▲ 덕수궁 화재 - 당시 경운궁이었던 덕수궁이 1904년 4월 14일 대화재로 전소되자 덕수궁 돌담과 대안문을 배경으로 화재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 대한문 전경(1906년) - 화재로 전소된 덕수궁(대안문)을 재건한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과 대한제국을 조롱하기 위해 안(安)을 한(漢)으로 바꿔 큰 도적놈이 드나든다는 대한문이 되었다. ▲ 순종황제 행차(1907년) - 즉위식을 축하하기 위해 인천에 도착한 일본 황태자를 마중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대한문을 나서는 순종황제 ▲ 여름날 종로 풍경(1907년) - 소나기가 지나간 여름날 오후 순종 즉위식을 위해 집집마다 태극기가 계양된 종로를 삿갓을 쓴 나무장사들이 지나고 있다. ▲ 땔나무 저자거리(1907년) - 종로의 나무시장 뒤편이 동대문이다. ▲ 순종황제의 친경식 장면(1907년) - 밭을 직접 갈고 농사를 권장하는 친경식에서 순종황제가 백성들과 함께 술을 나눠 마시는 농주례의 모습 ▲ 순종황제 친경식 - 음력 3월 초 돼지날에 선농단(사적 제436호)에서 행해지던 친경의식 ▲ 일진회의 친일행각(1907년) - 구한말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일본 황태자의 조선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숭례문(남대문) 앞에 세운 환영탑
▲ 서울역 환영식(1907년) - 순종 즉위식에 참석하러 온 일본 황태자 환영식장 ▲ 최초의 영업용 택시(아우디) - 1912년부터 영업이 개시된 합승택시로 독립문 언덕길에서 잠깐 쉬고 있는 8인승 승합차 ▲ 이승만과 독립군 - 뒷줄 오른쪽의 이승만은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 고종황제 서거(대한문 앞) -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서거하자 구름처럼 몰려나온 백성들이 땅을 치며 서러워하는 모습 ▲ 최초의 소방서 - 서울 중동과 대한문 사이에 있던 최초 소방서의 망루에 사이렌 대신 종이 매달려 있었다. ▲ 마지막 왕의 빈소 - 순종은 16년 동안 창덕궁에 머물다 1926년 4월 26일 53세에 생애를 마쳤다. ▲ 영추문의 붕괴 - 바로 옆 전차종점의 진동으로 1926년 4월 27일 붕괴된 영추문 ▲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군기 - 검은 바탕에 태극을 중심으로 팔괘와 중국 하나라 낙서(점으로 된 무늬)를 그렸다. ▲ 일본군 기마병 - 가죽장화에 긴 칼(일본도)을 차고 우리 백성을 주눅 들게 하던 일본 기마군이 만세 소리에 놀라 기수를 돌리는 모습 ▲ 움직이는 영업 광고 - 사람들이 빼곡하게 타고 있는 전차의 지붕에 그 당시 일본의 담배인 ‘오루도, 히이로’의 광고가 붙어있다. ▲ 돈의문과 너울(장옷) 쓴 여자 - 이란의 차도르처럼 개화기 너울을 쓰고 태극기가 펄럭이는 돈의문(서대문) 앞을 외출하는 여인들 ▲ 숭례문(남대문) - 전차, 말 탄 사람, 걷는 사람, 삿갓 쓴 사람, 너울 뒤집어 쓴 여인, 나무 실은 소 등 여러 풍경이 보인다. ▲ 널뛰기 - 담장 밖을 훔쳐볼 수 있을 만큼 높이 뛰어 올랐다. ▲ 어느 할머니의 외출 - 뒤편의 나무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의 왕송이다. ▲ 1960년 작대기 선거 - 문맹자가 많아 기호를 작대기로 표시한 제5대 민의원 선거 ▲ 5일장 옷감 전 - 50년대 후반의 나일론 상복 ▲ 축제장을 찾은 마지막 황손 이석 씨와 괴산에 가자 김영식 기자가 사진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제공 엄팔수 고향기자
친구를 만났다. 근황을 묻자, 어린이집 몇 곳을 돌며 파트타임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사학과를 졸업한 친구는 결혼하여 아이 키우고 나서 부수입거리를 찾다가 유아를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 영어에 관심이 있던 터라 부수입으로도 괜찮다고 했다. 지난 8월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ULB)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플라미시(네덜란드어권) 지역에서 일부 과목을 프랑스어로 배우는 학생을 대상으로 뇌 단층촬영을 한 결과, 다중언어로 수업을 받은 아동이 모국어로만 교육을 받는 동년배보다 명석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벨기에가 불어공동체, 독일어공동체, 그리고 플라미시공동체로 구성되어서일까 언어에 대하여 특별히 관대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 헌법 개정에서 3개 외국어 교육을 공식적으로 정하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다중언어로 수업을 받은 아동이 외국어뿐 아니라 모국어도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습득한다. 언어구사력은 물론 연산력, 기억력에서도 모국어로만 수업을 듣는 아동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다중언어 환경의 아동이 언어를 통한 뇌의 활성화 기회가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연구팀은 다중언어 수업의 긍정적 효과가 주로 유․초등학교 학생 사이에서 나타나므로 어린 나이에 시작할 것을 강조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교육청에서도 2006년 10월에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유사한 결과를 발표한 바가 있다. 이중언어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초등학교 에서 어린 나이에 외국어 습득프로그램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내용이다. 이 학교들은 일반학교와 다른 이중언어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데 대체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이중언어 학습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아동들에게 이중언어를 교육시키게 되면 모국어 능력은 떨어지고 교과목성적에도 결손이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우려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하여 혼란을 겪을 것이란 선입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이중언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학교의 아동들은 모국어 능력과 교과목 수행능력에서도 일반학교 아동들의 평균과 다르지 않았고, 문화적 혼란현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미래를 사는 우리아이들은 모국어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가 어렵다. 더구나 조기영어교육은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다. 주위에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 중 영어교육을 받지 않는 아동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육 및 유치원 교육과정에는 제2언어습득에 대한 교육과정이 마련되어있지 않다. 중요한 배움의 시기에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어 몇 개, 문장 몇 개로 조기영어교육이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하루빨리 형성돼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했으니 영어조기교육에 대한 심도 있고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2009.9.2일자 충청타임즈에 기고되었던 내용임
시대의 변화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새 생활에 따라 새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대박’과 ‘짝퉁’이라는 단어도 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말이다. 최근에 부쩍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 9월12~13일에는 KIA, 9월19~20일에는 롯데 등 흥행 대박을 이어갈 4경기가 남아 있어 관중 100만 명 돌파는 시간문제다(연합 뉴스, 2009년 8월 30일). ○ 美 로또 당첨 2,000억 원 대박 두 명 탄생, 미국에서 2,000억 원대의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두 명이나 탄생했다(한국경제, 2009년 8월 30일). ○ 삼성전자가 주력 상품으로 밀고 있는 40나노급 DDR3 D램 역시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중앙일보, 2009년 8월 30일). ○ 우리 먹을거리의 70%, 의약품의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수입 먹을거리가 늘면서 가짜와 짝퉁도 급증하고 있습니다(YTN, 2009년 8월 29일). ○ 타미플루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짝퉁 약품 거래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돼,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대전일보, 2009년 8월 29일). ○ 관세청이 적발한 ‘짝퉁 의약품’ 수입액이 최근 5년간 20배나 늘어나는 등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문화일보, 2009년 8월 28일). ‘대박’은 주로 영화인들이 많이 쓰던 말이다. 영화가 대중에게 인기를 끌어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을 ‘대박’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가수는 음반으로 홈 쇼핑 업자는 매출로 ‘대박’을 꿈꾼다. 주변에서도 주식이나 기타 투기를 통해서 ‘대박’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결국 ‘대박’이라는 말은 최근에 큰 부를 얻고자 하는 풍조가 만연되면서 생겨났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저마다 한탕 하겠다는 욕심이 낳은 말이다. ‘짝퉁’도 마찬가지다. IMF 경제 위기 이후에 불어 닥친 우리 사회의 현상이 만든 말이다. 경제 위기와 혼란 속에 졸부들이 탄생하고 그에 따라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만연되는 현상이 생겼다. 이에 졸부들의 과시형 소비가 탄생하면서 맹목적으로 고가품에 매달렸다. 또 여기에 ‘나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엉뚱한 체면 문화가 겹치면서 고가 명품에 집착하는 소비문화가 만들어졌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틈타 고가 명품에 대한 충족을 대신하는 모조품이 나오고, 그에 따라 ‘짝퉁’이라는 말도 유행처럼 번졌다. 다시 말해서 ‘대박’과 ‘짝퉁’은 사전에 없던 말이다. 1991년 ‘어문각’에서 발행한 ‘우리말 큰사전’(한글 학회 지음)에도 ‘대박’과 ‘짝퉁’은 찾을 수 없다. 1999년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비로소 올라 있다. 즉 ‘대박’과 ‘짝퉁’은 새로운 개념이나 사물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신어라 할 수 있다. 사전에서 ‘대박’은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대박이 나다./대박이 터지다./대박을 터뜨리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면 ‘짝퉁’은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짝퉁 명품 가방을 사다.’라는 예를 두고 있다. 사전 풀이로만 따르면 ‘짝퉁’은 속된 표현이니 자제해야 하지만, ‘대박’은 널리 써도 된다. 하지만, ‘대박’과 ‘짝퉁’은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 말이다. 우선 ‘대박’과 ‘짝퉁’은 현실적으로 급조된 말이다. 물질을 추종하는 문화와 소비 충동의 왜곡된 문화가 만든 말이다. 어원도 알 수 없고, 전통성도 없다. 오히려 이 말은 방송 매체의 신중한 습관만 있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말이다. 지금도 언론 매체는 기사 전달을 자극적으로 하기 위해 ‘대박’과 ‘짝퉁’을 남발하고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프랑스어나 독일어가 영어와 함께 국제어까지 자리하는 데는 끊임없는 순화의 노력 밑에 이루어졌다. 순화란 언어생활을 가로막는 국어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순수하지 않은 외래 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우리말을 아름답게 미화하는 것도 순화의 범위다. ‘대박’과 ‘짝퉁’은 외래어가 아니니 버려야 할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 말이다. 점잖게 언어 표현을 하는 방법과 좋은 표현을 찾아보아야 할 때이다. 앞으로 계속 발생하는 신어를 위해서도 절실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