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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업 시계는 자정(Midnight)을 향해 가고 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강의 기적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중국의 기술 굴기와 선진국의 견제 사이에서 우리 산업은 이른바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다. 산업의 구조는 AI와 로봇, 디지털 전환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지만, 정작 이 산업을 지탱할 ‘사람’을 길러내는 직업교육훈련(VET)은 여전히 1970년대 산업화시대의 공장형 교육과 21세기의 관료적 형식주의 사이에 갇혀 길을 잃고 있다. 우리는 지난 20여 년간 독일의 도제제도, 영국의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스위스의 도제학교 등 좋다는 제도는 모조리 수입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처참하다. 제도의 간판은 화려하게 걸렸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현장과는 동떨어진 서류 더미와 보여주기식 행정만이 앙상하게 남아있다. 왜 우리는 무엇을 도입하든 결국 ‘형식’만 남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그 어떤 개혁안도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우리 형식주의의 기원 _ 명분과 속도의 그림자 우리 사회, 특히 교육현장에 깊이 뿌리내린 형식주의(Formalism)를 이해하려면 우리의 역사적·문화적 DNA를 해부해야 한다. 우리의 형식주의는 크게 두 가지 뿌리에서 기인한다. 첫째는 조선 성리학적 명분론의 변질된 유산이다. 내용(Substance)보다는 형식(Form)과 의례(Ritual)를 중시했던 전통은 현대에 와서 ‘학벌주의’와 ‘간판 집착’으로 진화했다. 실질적인 업무 능력보다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자격증(종이)을 가졌는지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적 척도가 되었다. 이는 직업교육현장에서 ‘무엇을 할 줄 아는가’보다 ‘자격증을 땄는가’에 집착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자격증은 있으나 실무는 모르는 ‘장롱 면허’가 양산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둘째는 압축성장이 낳은 ‘결과 지상주의’와 ‘속도전’이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과정(Process)은 생략되거나 무시되기 일쑤였다. ‘빨리빨리’ 문화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데는 주효했지만, 매뉴얼을 준수하고 원칙을 지키는 문화를 ‘융통성 없음’이나 ‘비효율’로 치부하게 했다. 안전 수칙이나 표준 절차(SOP)는 사고가 나지 않는 한 무시해도 되는 귀찮은 형식이 되었고, 이는 교육현장에도 그대로 전이되었다. 과정을 생략하고 정답만 맞히면 되는 교육, 원리를 이해하기보다 기능을 암기하는 교육이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도입된 NCS와 각종 직업교육 제도는 필연적으로 ‘서류를 위한 서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실적을 요구하고, 학교와 기업은 그 실적을 맞추기 위해 영혼 없는 보고서를 양산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직업교육이 처한 서글픈 자화상이다. 유럽의 교훈 _ 매뉴얼은 책이 아니라 ‘표준’이자 ‘법’이다 반면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직업교육 선진국들은 철저히 ‘과정’과 ‘표준’에 집착한다. 그 중심에는 바로 ‘매뉴얼(Technical Manual)’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용 설명서 정도가 아니다. 유럽의 직업교육에서 매뉴얼은 국가 법령과 산업현장을 잇는 가장 강력한 연결 고리이자, 교육의 시작과 끝이다. 독일의 직업교육을 분석해 보면, 상위 법령(Top-Down)이 하위의 구체적인 훈련 규정으로 내려오고, 이것이 다시 현장의 작업 표준서(Manual)로 구현된다. 학생들은 교과서로 이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매뉴얼을 펴놓고 훈련한다. 이들에게 매뉴얼을 학습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계 조작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산업계가 합의한 ‘표준(Standard)’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특히 유럽 교육의 핵심인 ‘장애 대처(Troubleshooting)’ 능력은 매뉴얼 없이는 길러질 수 없다. 기계가 멈췄을 때, 우리 학생들은 당황하여 선생님을 찾지만, 유럽 학생은 매뉴얼의 ‘고장 진단 순서도(Flowchart)’를 펼친다. 1단계 전원 체크, 2단계 센서 확인, 3단계 유압 라인 점검…. 이 논리적 절차를 따라가며 문제를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자연스럽게 기계의 구조와 원리를 깨닫고, 문제해결의 논리적 사고(Algorithmic Thinking)를 체득한다. 이것이 바로 유럽 직업교육의 저력이다. 그들은 결과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도달하는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가르친다. 따라서 유럽의 매뉴얼 시스템은 단순한 교육도구가 아니라, 산업의 품질을 유지하고 안전을 담보하며, 기술을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사회적 유전자(DNA)’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 직업교육의 대개조 _ ‘형식’을 파괴하고 ‘야생’을 복원하라 이제 우리 직업교육은 형식주의라는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산업현장의 야생성(Wildness)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섯 가지의 구체적이고 과감한 혁신을 제언한다. 첫째, 거버넌스의 형식주의 타파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로 나뉜 이원화된 구조는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킨다. 학교교육과 직업훈련의 경계는 이미 사라졌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인적자원위원회’와 같은 강력한 통합 컨트롤타워를 신설하여, 예산과 정책 집행을 일원화해야 한다. 부처 간 밥그릇 싸움 때문에 청년들의 미래를 볼모로 잡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둘째, ‘죽은 교과서’를 버리고 ‘살아있는 매뉴얼’을 도입해야 한다. 10년 전 기술이 담긴 교과서와 NCS 학습모듈 대신, 현재 기업현장에서 쓰이는 ‘기술 데이터 패키지(TDP)’와 ‘작업 표준서(SOP)’를 주교재로 채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별 인적자원개발협의체(ISC)에 매뉴얼 제정 권한을 부여하고, 정부는 현장 엔지니어와 명장들이 최신 기술을 매뉴얼화하는 비용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매뉴얼을 모르면 현장에 투입될 수 없다’라는 인식을 학교에서부터 심어주어야 한다. 셋째, 평가의 혁명이다. ‘수련 기록부(Berichtsheft)’ 제도를 도입하라.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은 폐지되어야 한다. 대신 독일처럼 3년간 매일 자신이 수행한 작업 내용, 참조한 매뉴얼 번호, 문제해결 과정을 기록한 ‘수련 기록부’를 작성하게 하고, 이를 자격시험 응시의 필수 조건으로 법제화해야 한다. 이는 학생이 거짓 없이 성실하게 훈련받았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이자, 형식적인 자격증 남발을 막는 거름망이 될 것이다. 넷째, 교사의 자격을 ‘현장성’ 중심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교원자격증이 없어도 좋다. 산업현장에서 10년 이상 매뉴얼과 씨름하며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들이 강단에 서야 한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이 매뉴얼을 해석하고 적용하도록 돕는 ‘코치(Coach)’이자 ‘트레이너(Trainer)’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 교사들은 산업체 심층 파견(Sabbatical)을 통해 ‘매뉴얼 기반 교수법’을 의무적으로 재교육받아야 한다. 다섯째, ‘5W1H’에 입각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전략이다. 거창한 전국 단위 개혁보다 ‘작은 성공(Small Success)’이 시급하다. 절박한 위기감을 가진 지역 강소기업 대표, 관행을 깰 용기가 있는 학교장, 현장 출신 전문가가 연합하여 ‘규제 샌드박스형 시범 지구’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 교실이 아니라 공장 설비 옆에서, 입학 시즌이 아니라 기업의 신규 설비 증설 시점에 맞춰, 취업률 수치가 아닌 ‘불량률 제로’를 목표로 교육해야 한다. 결론 _ 진짜(Authenticity)만이 살아남는다 지금 우리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계속해서 보여주기식 행정과 서류 놀음에 안주하며 서서히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 형식의 거품을 걷어낼 것인가? 유럽의 직업교육 시스템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은 ‘이원화 제도’라는 시스템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현장에 대한 존중’, ‘표준에 대한 집착’, 그리고 ‘과정에 대한 엄격함’이라는 철학이다. 매뉴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계는 요령을 피우지 않는다. 우리 교육이 다시 ‘정직한 땀’과 ‘정확한 기술’의 가치를 가르칠 때, 우리 산업은 다시 한번 도약할 엔진을 얻게 될 것이다. 형식주의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고통 없이는, 새로운 생명은 태어날 수 없다. 지금 당장, 우리의 아이들에게 낡은 교과서 대신 기름때 묻은, 그러나 살아있는 ‘야생의 매뉴얼’을 쥐여주자. 그것이 우리 직업교육이 살길이다.
교권 약화와 저경력 교사의 교직 이탈이 교육현장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수석교사’ 제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업·생활지도·학부모 대응까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가장 가까운 조력자이자 ‘사수’ 역할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가 바로 수석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석교사는 「초·중등교육법」에 직위는 규정돼 있지만, 시행령에 별도 정원이 배정되지 않아 교사 정원을 잠식하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되는가 하면, 시도교육청에 선발·운영권이 넘겨지면서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교육현장에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교육당국의 무관심 속에 고군분투하는 수석교사들. 양미정 서울수석교사회 회장(서울 전동초)은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교사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정원 미확보 등 제도적 한계 때문에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수석교사는 학교에서 어떤 존재인가. “수석교사는 교사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원하는 자리다. 교장·교감 등 관리자는 구조상 심리적 거리감이 있고, 동료교사들은 각자 학급과 행정업무로 바쁘다. 반면 수석교사는 교사 신분을 유지하면서도 한 발 더 다가가 밀착 지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동시에 학생도 가르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 지원’과 ‘학생 교육’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최근 교권 위기와 교직 이탈 문제 속에서 수석교사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수석교사는 교직 이탈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저경력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에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지가 결정적이다. 서이초 사건도 만약 수석교사가 그 학교에 있었다면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연수에서 만난 신규교사가 “회사에는 사수가 있는데 학교는 왜 각자도생이냐”고 묻더라. 교사들이 교육현장에 안착하도록 사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수석교사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하나. “학부모상담을 할 때, 또는 민원인이 들이닥치거나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을 때,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 곁에서 항상 지켜주는 사람이 수석교사다. 요즘 신규교사들은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수업 기술은 잘 갖췄지만, 상담이나 관계 형성, 문제행동 지도 경험이 부족하다. 수석교사가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교육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돕는다.” 수석교사 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15년째지만, 아직도 정체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석교사에 대한 별도 정원이 없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에는 수석교사를 교사와 구분된 직위로 명시해 놓았지만, 대통령령인 정원 규정에는 수석교사 항목이 없다. 그러다 보니 수석교사를 배치하면 그만큼 일반교사 정원을 줄여야 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학교 입장에서는 환영받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불합리한 규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수석교사제 출범 초기부터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육청은 교육부 탓을 하고, 교육부는 정원 권한을 쥔 행정안전부 탓을 하는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 수석교사가 교사 정원을 깎아 먹지 않는 별도 정원으로 마련돼야 ‘1학교 1수석교사’ 등 바람직한 구조가 만들어질 텐데 답답하다.” ‘1학교 1수석교사’가 가장 시급한 바람인가. “그렇다. 교육의 전문성을 높이고 교사들 간의 상호 협력적인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특히 저경력 교사 안착을 위해서는 상시적으로 수석교사와 같은 사수가 곁에 있어야 한다. 수석교사는 교육현장의 전문성을 가장 잘 아는 최고의 전문가다. 한 학교에 한 명씩 배치된다면 학교문화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교육청으로 운영권이 넘어가다 보니 시도별 편차도 크다고 들었다. “2013년 이후 수석교사 선발·운영 권한이 시도교육감에게 넘어가면서 지역별 격차가 커졌다. 서울 초등의 경우 지난해 선발 인원이 단 2명에 불과했다. 선발 기준은 매우 높지만, 정원 부담 때문에 최소 인원만 뽑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석교사 수가 줄어들면서 1인당 담당해야 할 학교와 교사 수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교육청 정책 지원은 물론 연수·컨설팅까지 맡다 보니 정작 소속 학교에서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처럼 몸으로 때워 보지만, 체력적 소진이 너무 크다. 나 같은 경우도 소속 학교 지원은 물론이고 교육청 장학자료 개발, 타학교 연수 등 일주일에 4~5번씩 출장을 다닌다. 쉴 틈이 없다. 과도한 업무 탓에 병을 달고 살면서도 아픈 내색을 못 하는 수석교사들이 정말 많다.” 처우 문제는 어떤가. “수석교사는 직급 수당이 아닌 활동비를 받는데, 월 40만 원이 14년째 동결돼 있다. 수당이 아니다 보니 연금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면서 처우는 뒷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각종 연구 결과를 보면 수석교사의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저경력 교사의 교직 이탈을 예방하는 협력적 학교문화 조성과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데에는 수석교사만큼 적임자가 없다. 그들이 모든 교사의 든든한 멘토가 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의 1891년 작품 편지(The Letter)는 책상에 앉은 여성이 편지를 부치기 위해 봉투를 봉인하고 있는 순간을 담은 판화 작품이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가늘게 느껴지는 흙 내음이 봄의 소식을 실어 나르는 2월이다. 한 해의 시작이 얼마 전이었건만, 졸업과 종업, 즉 배움의 마감이 있는 시기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고, 교실 안의 공기는 달라진다. 아이들은 들떠 있고, 교사는 바쁘다. 그사이 설렘과 허전함이 교차한다. 한 해의 시작을 알렸던 1월의 결연한 다짐들이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학교 현장은 다시 한번 ‘이별’과 ‘정리’라는 거대한 변화의 시간을 마주한다. 졸업장 위에 찍히는 붉은 관인, 아이들의 한 해가 기록된 생활기록부의 마지막 문장들, 그리고 정들었던 제자에게 건네는 짧은 편지까지. 2월의 교실은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거창한 선언보다 내밀한 진심이 필요한 이 시기에 멈춰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의 작품은 우리의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녀가 1891년 완성한 채색 판화 편지(The Letter)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교육자의 모습과 닮았다. 여성이 개척한 독자적 시선, 일상의 내밀한 진실 메리 카사트는 당대 여성을 향한 사회적 제약을 예술적 통찰로 승화시킨 선구적 예술가였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런던·파리·베를린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자란 그녀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지적인 여성이었으나, 당시 여성 미술가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은 혹독했다. 그러나 카사트는 에드가 드가의 초대로 인상주의 그룹에 합류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남성 화가들이 카페나 극장 같은 공적 공간의 화려함을 좇을 때, 그녀는 여성이 머물던 내밀한 가정의 공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을 주목했다. 그녀의 대표적인 색채 판화 연작 중 하나인 편지는 1890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열린 일본 목판화 전시에서 받은 강렬한 영감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당시 서구 미술계가 일본 미술의 이국적인 소재에 매료되었다면, 카사트는 그들의 평면적인 구도와 과감한 생략법을 빌려와 현대 여성의 일상적이고도 진지한 고뇌를 담아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여성은 단순히 아름다운 관찰 대상이 아니라, 교육받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삶을 기록해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였다. 또한 메리 카사트의 편지는 현대 판화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카사트는 세 개의 금속판과 소프트그라운드1, 드라이포인트2, 아쿠아틴트 기법3을 조합하여 제작하였다. 판화라는 매체의 속성은 회화와 다르다. 붓으로 한 번에 그리고 끝내는 회화와 달리, 판에 조각도로 선을 새기고 새겨진 흔적으로 농담을 쌓고 색을 찍어내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아마도 마음을 담은 편지는 판화의 제작 과정과 닮아 있을 것이다. 금속판을 준비해 새기고, 잉크를 묻히고, 잉크를 닦아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새겨진 홈에 남은 잉크만이 인쇄되어 가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카사트는 세 장의 판을 차례로 겹쳐 찍어서 작품의 복잡한 패턴을 만들었다고 한다. 작품 속 여성이 편지를 정성스럽게 쓰고 나서 봉하는 마지막 순간은 이러한 판화 제작 과정과도 잘 어울린다. 정지된 찰나의 몰입, 선과 면이 빚어낸 마감의 미학 그림을 가만히 응시하면, 푸른색 줄무늬 드레스를 입은 한 젊은 여성이 책상 앞에 앉아 방금 다 쓴 편지를 봉투에 넣어 봉하는 순간임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차분하게 봉투를 봉한다. 이는 이전 예술가들이 다룬 여성에 대한 감성적인 묘사와는 다른 방식이다. 이 현대 여성은 품위 있고 집중력 있게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하지만 편지 내용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편지는 세 개의 판을 사용하여 컬러로 인쇄한 작품으로, 네 가지 판본 중 네 번째 판본이다. 이 작품은 작가와 로로이 씨(프랑스, 1875~1900년 활동)가 공동으로 프린트하였다. 이 최종 판화에서 카사트는 초기 디자인을 변경하였다. 여기에 보이는 분홍색 상의는 그녀가 이전에 드라이포인트 기법으로 그린 스모킹 패턴 위에 찍어낸 것이다. 정교한 패턴은 같은 용지에 세 개의 판을 연속적으로 인쇄하여 완성되었다. 여성이 입은 코발트 블루색 드레스와 화사한 꽃무늬 벽지는 화면 전체에 화려한 리듬감을 부여하지만, 역설적으로 복잡한 패턴들은 여성의 정적인 자세와 대비되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여성이 봉투 끝에 입술을 대고 정성스럽게 봉인하는 이 정교한 동작은 한 해의 무수한 감정과 기억을 하나로 묶어내는 ‘마감’의 미학을 보여준다. 카사트는 일본 목판화 특유의 강한 윤곽선과 평면적 색채를 사용하여 관람자 시선을 여성의 손끝에 닿게 한다. 화면 우측의 비스듬히 기울어진 비서 책상(Secretary desk)은 관람자를 여성이 앉아 있는 좁고 내밀한 공간으로 깊숙이 끌어당긴다. 시점은 관람자가 여성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과감하게 왜곡된 사각형의 책상이 거리감을 더해주고 있다. 소음은 모두 사라진 듯 고요하고, 오직 편지를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만이 연결된 것 같다. 압축된 이 조용한 장면은 2월의 우리 공간과 닮았다. 학생이나 동료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를 봉인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계절의 설렘 당대 여성들에게 편지는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자신의 자아를 확장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카사트가 묘사한 여성의 얼굴에는 결연함과 동시에 애틋함이 서려 있는데, 이는 수신자에게 가 닿을 자신의 메시지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될지 알고 있는 이의 표정이다. 2월의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작성한 생활기록부의 한 줄, 제자나 함께한 교사에게 건넨 짧은 편지 한 통은 삶에 중요한 기록이 된다. 2월의 ‘마무리’는 단순히 과거를 털어내는 일이 아니다. 카사트가 묘사한 여성처럼 정성껏 편지를 봉하는 행위는 지난 1년의 시간을 소중하게 갈무리하여 더 넓은 미래로 발송하는 작업이다. 2026년의 새로운 학기를 목전에 둔 오늘, 각자의 책상 앞에 앉아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는 모든 교육자에게 이 그림을 건네고 싶다. 당신이 정성껏 봉인한 그 따뜻한 진심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언젠가 다시 읽히며 그들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2월,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고요한 마침표의 시간을 응원한다.
프롤로그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구입한 차종 중 하나로 ‘산타페’가 있다. 그래서 ‘산타페’가 주도인 미국 뉴멕시코주로 떠나는 여행은 출발 전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뉴멕시코주는 면적 31만 5천㎢로 남한의 세 배가 넘는 광대한 땅으로, 고원과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지역이다. 주 대부분에 건조기후가 분포하여, 기후가 만들어낸 지형은 황량함과 쓸쓸함, 그리고 적막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땅을 더욱 새롭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뉴멕시코주는 드넓은 면적만큼이나 깊은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거룩한 믿음(Holy Faith)’이라는 뜻을 지닌 산타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도이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남아있는 도시다. 나바호족을 비롯한 원주민 자치지역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동시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사랑했던 땅이자, 맨해튼 계획의 핵심 거점이었던 로스앨러모스가 자리한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기구 축제가 열리는 앨버커키와 UFO·외계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로스웰 역시 뉴멕시코의 다층적인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공간이다.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아메리카의 경계가 되는 리오그란데강이 흐르는 이 지역은, 두 문화권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온 땅이기도 하다. 신비로운 하얀 사막, 화이트샌즈 국립공원 뉴멕시코 남부의 사막을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저 멀리서 마치 눈이 내린 듯한 하얀 파도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곳이 바로 화이트샌즈 국립공원(White Sands National Park)이다. 이곳의 하얀 모래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모래도, 소금도 아니다. 밀가루처럼 곱고 부드러운 이 흰 입자들은 이 지역의 오랜 지질사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약 2억 5천만 년 전, 이곳은 얕은 바다였다. 바닷속에 쌓인 석고 성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침전되며 두꺼운 지층을 이루었고, 이후 지각 변동과 기후 변화로 산맥이 솟아오르고 분지가 형성되면서 이 석고층이 풍화와 침식을 겪어 오늘날의 하얀 사구로 변했다. 건조한 기후와 끊임없이 부는 바람은 이 석고 알갱이들을 운반해, 약 715㎢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고 사구 지대를 만들어냈다. 이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어, 사구는 매일 조금씩 모양을 바꾸며 살아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화이트샌즈 한가운데 서 있으면, 내가 알던 세계를 떠나 전혀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이곳을 찾았던 때는 12월 중순이었다. 여름에 방문했던 지인은 하얀 모래에 반사되는 강렬한 햇빛과 뜨거운 열기 때문에 오래 머물기 힘들었다고 했기에, 일부러 겨울을 선택했다.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했지만, 한낮의 기온은 걷기에 쾌적할 만큼 온화했다. 화이트샌즈를 특별하게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먼저 사진 촬영이다. 하얀 도화지처럼 펼쳐진 사구를 배경으로 색감이 또렷한 옷을 입고 서면, 어디에서도 얻기 힘든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독특한 체험은 단연 석고 사구 위에서 즐기는 썰매 타기다. 석고 모래는 일반 모래보다 훨씬 곱고 부드러워, 플라스틱 썰매를 타고 경사면을 미끄러지듯 내려올 수 있다. 방문객들은 공원 방문자센터에서 썰매를 구매하거나 준비해 와서, 각자 마음에 드는 사구를 골라 활강을 즐긴다. 눈썰매와 비슷하지만, 마찰이 큰 석고 사구에서는 썰매 바닥에 왁스를 칠하는 것이 필수다. 하얀 사막 한가운데서 썰매를 타는 이 특별한 경험은 화이트샌즈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상상 그 이상의 지하세계, 칼즈배드 동굴 국립공원 뉴멕시코 남동부의 광활한 사막과 과달루페 산맥 아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가 숨겨져 있다. 바로 칼즈배드 동굴 국립공원이다. 지표 위에서는 황량한 사막이 펼쳐지지만, 땅속으로 내려가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열린다. 이곳은 자연이 수천만 년에 걸쳐 빚어낸 거대한 지하세계로, 인간의 시간 감각을 무력하게 만드는 장소다. 약 2억 5천만 년 전, 이 지역은 얕은 바다였다. 바닷속에 쌓인 산호와 조개, 석회질 퇴적물은 두꺼운 석회암층을 만들었고, 이후 지각 운동과 화학 작용이 더해지면서 암석 속에 거대한 빈 공간이 형성되었다. 특히 황화수소를 포함한 지하수가 산화되며 만들어진 산성 물질이 암석을 녹여, 일반적인 동굴보다 훨씬 넓고 깊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칼즈배드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규모와 구조를 지닌 동굴 지대를 이루게 되었다. 동굴 내부의 중심부에는 ‘빅룸’이라 불리는 거대한 공간이 펼쳐진다. 길이와 너비, 높이 모두가 압도적인 이 공간은 마치 땅속에 숨겨진 대성당처럼 느껴진다. 천장에서는 수천 개의 종유석이 늘어져 있고, 바닥에서는 석순이 자라나 있으며,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하나의 거대한 석회암 기둥을 이루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수천만 년 동안 물방울이 떨어지며 조금씩 쌓아 올린 자연의 예술작품이다. 동굴 속 공기는 연중 서늘하고 고요하다. 바깥이 한여름의 사막 열기로 가득 차 있을 때도, 겨울철에도 이곳은 약 13도 안팎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천천히 걸으며 동굴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대비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압도적인 경관에 관광객들은 말이 없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이 공간에서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칼즈배드 동굴은 지질 경관뿐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특별한 장소다. 이곳은 수많은 박쥐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동굴 입구에서 수천수만 마리의 박쥐가 소용돌이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이는 사막과 동굴, 낮과 밤이 만나는 장면처럼 장엄하다. 지하세계와 지상의 생태계가 이 순간 하나로 연결된다. 화이트샌즈가 지표 위에서 자연의 신비를 보여준다면, 칼즈배드는 그 신비를 땅속 깊은 곳에서 펼쳐 보인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아래에 이처럼 웅장한 공간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뉴멕시코라는 땅이 지닌 오랜 시간과 자연의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UFO와 외계인이 만든 관광명소, 로즈웰 뉴멕시코 동부의 평범한 소도시 로즈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보다도 거리 곳곳에 자리한 외계인의 얼굴이다. 가로등에는 커다란 회색 외계인의 머리가 달려 있고, 상점 간판과 벽화, 기념품 가게의 진열대까지도 외계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한때 조용한 농업 도시였던 이곳은 이제 UFO와 외계인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로즈웰이 세계적인 이름이 된 계기는 1947년에 발생한, 이른바 ‘로즈웰 사건’이다. 당시 미군 기지 인근에서 미확인 비행물체가 추락했고, 군은 처음에는 ‘비행접시를 회수했다’고 발표했다가 곧 기상 관측용 기구라고 정정했다. 이 모순된 발표는 오히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로즈웰은 외계인의 비밀을 숨긴 도시라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다양한 음모론과 과학, 대중문화가 얽힌 이야기로 여전히 회자된다. 도시 한복판에는 로즈웰 국제 UFO 박물관이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시 사건과 관련된 자료·사진·신문기사·모형들이 촘촘히 전시되어 있어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이 작은 도시가 어떻게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진실이 무엇이든, 사람들의 궁금증이 이곳을 하나의 이야기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로즈웰의 재미는 일상적인 공간마저 외계인 이야기로 재해석했다는 데 있다. 이곳의 맥도날드는 UFO를 닮은 둥근 형태로 지어져 있고, 내부에도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장식이 더해져 있다. 평범한 패스트푸드점조차도 이 도시에서는 하나의 관광명소가 된다. 밤이 되면 외계인 얼굴이 달린 가로등이 거리를 비추며, 마치 다른 행성의 마을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로즈웰은 자연경관이나 웅장한 유적 대신, 하나의 사건과 이야기를 도시 전체의 브랜드로 만들어낸 사례다. UFO와 외계인이라는 소재는 과학과 상상력,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며 사람들을 이 작은 마을로 불러 모은다. 황량한 뉴멕시코의 사막 한가운데서, 로즈웰은 스토리텔링이 장소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에필로그 뉴멕시코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막연히 ‘사막뿐인 곳’, ‘볼 것이 별로 없는 황량한 땅’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여러 정보검색을 해도 그저 막막하고 막연했다. 그러나 실제로 뉴멕시코주를 마주한 뒤, 그 생각은 철저히 무너졌다. 여행의 이유를 되새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국의 30개가 넘는 주를 여행했지만, 여러 지역 중 뉴멕시코주는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화이트샌즈의 비현실적인 풍경, 칼즈배드의 카르스트 지형이 만든 엄청난 지하세계, 로즈웰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물론, 차코와 산타페, 로스앨러모스가 들려주는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이 땅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곳을 여행하며,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이 지역의 오랜 역사와 선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멕시코주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여행을 넘어, 누군가의 땅이자 누군가의 기억인 공간을 이해하는 여행이었다. 뉴멕시코주를 처음 마주했던 7일의 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다음 해 미국 추수감사절 연휴에 고민 없이 가장 다시 보고 싶었던 장소였던 뉴멕시코주 여행에서는 이 땅의 선주민들과 역사와 관련된 장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날 뉴멕시코주가 기다려진다. 많은 사람이 뉴멕시코주의 무한한 매력을 경험하길 바란다.
몇 달 전 스페인 출신 롤라와 소피아 씨가 노벨 문학상 작가 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 배경지를 여행하는 EBS 프로그램을 보았다. 두 사람은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롤라와 소피아 씨는 소설 속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다’는 대목을 술술 외우고 있었다. 필자는 그때까지 이 소설집을 읽지도 않아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었다. 명색이 소설 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서둘러 소설집을 구해 읽었다. 여수의 사랑은 한강이 1995년 낸 첫 소설집이다. 표제작 ‘여수의 사랑’은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20대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20대다운 발랄한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취업이나 연애 이야기도 아니다. 딱 한 세대 전인 1990년대 두 20대 여성은 무엇 때문에 지쳐서 힘겹게 살았을까. 트라우마 가진 두 20대 여성 이야기 화자인 정선은 여수가 고향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두 딸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동생은 죽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 그 트라우마로 고향을 다시 찾지 않았다. 월세를 반분(半分)할 룸메이트로 들어온 자흔은 여수가 고향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서울역에 도착한 여수발 통일호 안에서 강보에 싸인 아기로 발견됐다. 태어난 곳이 여수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정선은 어릴 적 기억 때문에 지독한 결벽증과 구토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자흔은 행동거지에 조심성이라곤 없어 몸 여기저기가 멍투성이다. 두 사람이 지닌 공통점이라면 늘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엔 여수의 풍경이 곳곳에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오동도다. 자흔의 말로, 오동도 동백나무가 나오고 있다. 여수항의 밤 불빛을 봤어요?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요? 오동도에 가봤어요? 돌산도 죽포 바닷가의 눈부신 하늘을 봤어요? 오동도에 가보았어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 동백나무 나무껍질이 회갈색으로 인상적이긴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이 소설이 두 여성 내면의 상처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니 그들의 눈에 동백나무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처럼 보인 것 같다. 결국 두 계절이 지난 후, 화자의 결벽증을 견디지 못한 자흔은 어느 날 아침 사라진다. 정선은 ‘예리한 칼날이 겨드랑이로부터 젖가슴까지의 살갗을 한 꺼풀 한 꺼풀 저미어 오는 것 같은 슬픔’을 느끼며 자흔을 찾아 여수행 열차에 오른다. 소설은 정선이 열차 안에서 자흔과의 만남에서 결별까지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정선과 자흔은 여수에서 다시 만나 화해할 수 있을까. 이 소설집은 한강에 입문하기 좋은 소설로 알려져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소설이 좀 버거운 독자라면 이 첫 소설집으로 한강 소설 읽기를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소설집엔 표제작을 포함해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등 단편 6편이 실려 있다. 동백꽃은 2~3월이 절정 2월은 동백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는 시기다. 동백나무가 한겨울에 꽃이 피는 것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꽃가루받이를 돕기 때문이다. 동박새는 동백꽃 꿀을 먹는 과정에서 이마에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으로 나른다. 동박새는 참새보다 작지만, 추운 겨울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꽃가루를 나르고 벌레를 잡아먹는다. 동백나무숲에 가면 분명 동박새가 있는 것 같은데, 워낙 재빠르게 움직여서 관찰하거나 사진으로 담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요즘 제주도나 남해안 지역에선 동백꽃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활짝 핀 꽃들도 볼 수 있는데, 애기동백꽃이다. 동백꽃은 1월에 피기 시작해 2~3월에 만개하고 4월까지 피지만, 애기동백꽃은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12월에서 1월이 절정이다. 1월 하순에 제주도에 가면 애기동백꽃이 많이 진 것을 볼 수 있다. 동백나무와 애기동백나무를 가장 쉽게 구분할 수 있는 포인트는 꽃잎이 벌어진 정도를 보는 것이다. 동백나무꽃은 꽃잎이 벌어질 듯 말 듯 살짝 벌어진 정도인데 애기동백나무꽃은 활짝 벌어져 있다. 나중에 꽃잎이 떨어질 때도 동백꽃은 송이째 떨어지지만, 애기동백꽃은 꽃잎이 하나씩 흩날린다. 애기동백나무는 일년생 가지와 잎 뒷면의 맥, 씨방에 털이 있는 점도 다르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일본에서 자생하는 나무지만, 애기동백나무는 일본 원산으로 도입한 재배 식물이다. 꽃이 더 화사해서인지 애기동백나무를 더 많이 심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동백나무 열매에서 짜낸 기름은 옛날에 어머니들 머릿결 손질에 쓰였다.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 이북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동백기름을 대신했다고 한다.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꽃이 붉은색이 아닌 ‘노란 동백꽃’인 이유는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이 상록수 동백나무꽃이 아니라 생강나무꽃이기 때문이다. 동백나무는 절 주변에서 숲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광양 옥룡사지 등에서 동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절 주변에 동백나무를 심은 것은 두껍고 늘 푸른 동백나무잎이 불에 잘 붙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산불이 났을 때 방화수(防火樹) 역할을 하라고 절 주변에 심은 것이다. 산림청은 동백나무 외에도 아왜나무·굴참나무·황벽나무 등을 대표적인 내화수종으로 꼽고 있다. 특히 아왜나무는 1차로 두껍고 커다란 잎이 불을 막아주고 나무 몸통이 탈 때는 속에서 거품이 나와 방화수 역할을 하는 나무다. 마치 거품이 표면을 덮으면서 차단막을 만들어 ‘뽀글뽀글 거품나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남해안 일대를 여행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굴참나무와 황벽나무의 공통점은 수피가 두껍게 발달했다는 점이다. 어지간한 나무는 화마가 덮칠 경우 살아남지 못하지만, 굴참나무와 황벽나무는 수피 코르크질이 두껍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 특히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봄철엔 잎도 없어 굴참나무나 황벽나무 숲에서는 불이 빨리 번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산림청은 중부지방의 경우 사찰 등 산속에 있거나 산과 인접한 건물 주변은 굴참나무나 황벽나무를 심도록 권장하고 있다.
천만 감독 류승완이 돌아왔다 … 조인성·박정민 격돌하는 휴민트 설 연휴를 여는 한국 영화 최고 기대작은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다. ‘휴민트’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human’과 정보를 뜻하는 ‘intelligence’의 합성어로 스파이와 같은 정보요원 또는 내부 협조자를 통해 얻은 인적정보를 의미한다. 팬데믹을 통과하는 한국 영화 침체기에도 베테랑2(2024, 752만 명), 밀수(2023, 514만 명), 모가디슈(2021. 361만 명)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 중인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341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2015) 이후 10년 만에 홈런을 칠 수 있을지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다뤘다.국정원 블랙요원 조 과장(조인성)이 국제 범죄의 정황을 추적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되고, 현지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와 접선한다. 여기에 지난해 청룡영화상 수상식에서 화사의 축하공연에 여유 있는 눈빛을 선보여 순식간에 ‘국민 전남친’으로 등극한 박정민 배우가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 역을 맡아 조인성과 충돌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연출 김원석, 극본 임상춘, 2025)에서 양관식 역을 맡아 국민 남편으로 자리매김한 박해준 배우도 합류해 이들의 연기 대결에 기대감을 높인다. 류승완 감독은 우월한 피지컬로 기품 있는 액션 연기를 선보인 조인성의 매력에 푹 빠졌다면서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태도, 그리고 시나리오 전체 대사를 모두 암기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라고 말하기도. 류승완 감독과 2021년 모가디슈로 첫 인연을 맺은 조인성은 휴민트의 시나리오를 읽고 “서늘하고도 인류애가 느껴지는 시나리오였다”고 고백했다. 베를린, 모가디슈를 잇는 류승완 감독의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인 휴민트는 라트비아 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된 이국적인 풍광을 극장 상영에 최적화한 스케일로 담아냈다는 평이다. 2월 11일 개봉. 입담 장인 장항준 감독의 컴백작, ‘유해진스러운’ 색깔 또 보여줄까? 왕과 사는 남자 할아버지 세종대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세손이었고,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문종의 세자였으며,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돼 17세에 생을 마감한 왕, 단종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그려진다. 그간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가 통상 계유정난 전후를 배경으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과정에 집중했다면, 장항준 감독은 ‘왕위를 빼앗긴 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접근해 차별점을 뒀다.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연려실기술 등의 기록들로 자료조사를 했고, 단종의 유배지를 답사하면서 장 감독은 ‘비운의 왕’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희망과 절망,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약한 영웅 class에서 주목받았던 박지훈 배우가 대체 불가한 단종 이홍위를 연기했다. 절망은 마땅히 짐작이 가는데 희망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장 감독은 장르와 시대를 넘는 폭넓은 연기로 사랑받는 유해진 배우를 당시 실존 인물 엄흥도 역으로 캐스팅하는 신의 한 수를 던졌다. 강원도 산골 마을 광천골 촌장 엄흥도는 어느 날 이웃 마을 촌장에게서 고위 관직을 지낸 양반이 자신의 마을로 유배를 오면서 콩고물이 떨어져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살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끼니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던 마을 사람들을 위해 광천골을 유배지로 유치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엄흥도 앞에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만 하는 촌장은 어쩐지 삶의 의지를 모두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홍위가 점점 더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데….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장항준 감독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어린 선왕 단종과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의 숨겨진 이야기를 스크린에 감동적으로 담았다. 한명회 역은 유지태가, 단종을 보위하는 궁녀 매화 역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에서 신경외과 의사 채송화 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전미도가 맡아 기대를 모은다. 2월 4일 개봉. 엄마가 죽는 날이 엄마 머리 위에 숫자로 보인다면? 넘버원 어느 날 등굣길 현관을 나서던 고등학생 하민(최우식)의 눈앞에 숫자가 나타난다. 숫자 361은 곧 360으로 바뀌고, 계속되는 카운트다운에 하민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곧이어 하민은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만 숫자가 하나씩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엄마 은실(장혜진)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먹던 음식을 뱉어낸다. 아무 사정도 모르는 엄마는 아들을 꾸짖기만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 하민은 여전히 숫자에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자 친구 려은(공승연)은 그런 하민을 보며 “가끔 보면 어디 매일 쫓겨 사는 사람 같아”라고 말한다. 가끔은 선글라스를 쓴 채 밥을 먹기도 하면서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숫자로 보이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온 하민. 그런데 밥상을 등진 하민의 머리 위에 숫자 1이 떠 오르는데…. 넘버원(감독 김태용)은 우와노 소라의 소설 원작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박춘상 옮김, 한스미디어, 2019)를 각색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에서 남다른 모자 케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최우식과 장혜진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 기대를 모은다. 카운트다운을 소재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넘버원에서 두 배우는 집밥을 앞에 두고 유쾌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선을 연기하며 가슴 따뜻한 장면을 그려낸다. 2월 11일 개봉 국내에 신카이 마코토 열풍 불러일으켰던 초속 5센티미터, 실사 영화는 어떨까? 너의 이름은(2017), 날씨의 아이(2019), 스즈메의 문단속(2023) 등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계관 원점’이라 불리는 초속 5센티미터가 드디어 실사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감독 오쿠야마 요시유키)는 어린 날 추억으로부터 조금씩 다른 속도로 나아간 타카키와 아카리의 사랑과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2007년 애니메이션 개봉 당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마니아층을 구축한 애니메이션이다. 실사화 소식이 전해질 당시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는 실사 영화가 과연 원작의 감동을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다. 먼저 영화를 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소감을 들으면 조금 마음이 놓인다. “마지막에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울면서 보고 있었다. 원작에서 유래한 요소에 울고 있는 건지, 오쿠야마 팀에 울고 있는 건지, 혹은 잃어버린 2000년대에 울고 있는지 저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럼에도 어쨌든 강한 감동을 받았다. 모두가 이유도 없이 상처받고 상처 입히고, 항상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채로 있다. 하지만 20년 전에는 그 ‘아무것도 없음’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자 생활이어서 그것을 건져 올려줄 법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판이 그 목표에 닿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번 실사 영화에서는 당시의 그 서툰 씨앗이 푸르름을 머금은 채 훌륭한 결실이 되어 있었다. 초속 5센티미터를 만들어서 다행이라고 (거의 처음으로) 진심으로 생각했다”라며 영화를 완성시킨 감독과 제작진·배우진에게 진심을 담은 감사를 전했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원작 애니메이션 팬들이 사랑했던 시그니처 장면을 스크린으로 옮겨왔을 뿐만 아니라, 3부작 옴니버스 형태였던 원작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완성도를 높였다. 일본 개봉 당시에는 10일 만에 71만 관객을 넘어섰고, 현재 16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2억 엔을 넘는 흥행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정선과 영상미를 훌륭하게 구현해 냈다는 호평이 장기 상영을 이끌고 있다. 2월 25일 개봉 첫사랑 vs 끝사랑! 엘리자베스 올슨의 선택은? 영원 양자경의 멀티버스를 감동적으로 그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감독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 2022), 비명 하나 없이 홀로코스트의 참혹함을 보여준 존 오브 인터레스트, 한국 가족의 미국 이민사를 전한 미나리(감독 정이삭, 2021) 등을 만든 ‘믿보제’(믿고 보는 제작사) A24가 로맨스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작품일까? 영원(감독 데이빗 프레인)은 A24표 사후세계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모든 망자가 집결하는 사후세계 환승역은 늘 새로운 죽은 이들로 북적인다. 래리(마일즈 텔러)도 이제 막 도착했는데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사후세계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래리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지금 모습이 죽었던 80대 노인이 아니라 가장 멋졌던 20대의 모습이라는 데서 또 한 번 놀란다. 그러니까 망자는 생전에 가장 좋았던 시절의 모습으로 사후세계 환승역에 도착하고, 일주일 동안 아카이브 극장이 있는 시원한 부둣가, 아름다운 숲속 호숫가의 오두막, 석양이 비추는 마을 등 여러 사후세계를 경험한 후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사후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단, 조건이 있다. 한번 선택한 사후세계는 바꿀 수 없다는 점. 영화 제목대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 래리는 아내 조앤(엘리자베스 올슨)이 죽으면 영원히 함께 지낼 사후세계를 신중하게 고른다. 추운 걸 싫어하고 휴양지 같은 해변을 좋아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조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영원을 포기할 정도. 환승역에서의 마지막 날 만년설이 쌓인 산맥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내가 환승역에 도착한다. 그것도 가장 아름다웠던 20대 첫 만남 때의 모습 그대로! 조앤과 함께 산맥으로 떠날 마음에 아내의 죽음이 반갑기만 한 래리 앞에, 환승역에서 자신의 영원을 선택해 떠나지 않고 일을 하면서 조앤을 67년 동안 기다려온 조앤의 첫사랑이자 사별했던 전남편 루크(칼럼 터너)가 나타난다! 65년을 함께 살며 동지가 된 남편인가, 67년을 한결같이 기다려온 첫사랑인가, 세 배우의 저세상 삼각 로맨스라는 흥미로운 소재는 감각적인 미술과 음악 그리고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세 배우의 연기 합으로 관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2월 4일 개봉. 이외에도 마고 로비와 제이콥 엘로디가 출연해 원작을 파격적으로 리메이크했다는 평을 받는폭풍의 언덕(감독), 노매드랜드(2021)로 전 세계 영화제 253관왕을 차지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신작 햄넷,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수상작으로 공부는 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번듯한 꿈 하나 없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다룬 겨울의 빛(감독 조현서) 등도 2월 개봉을 확정하고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다양한 영화들로 풍성한 설 연휴 보내시길! 사진 제공 ● 미디어캐슬, 바이포엠스튜디오, 쇼박스, 워트홀컴퍼니,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NEW
물건을 보지도 않고 돈부터 내는 특이한 시스템, 선분양 청약은 새로 공급되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신청하는 제도이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주택에 대해 계약을 먼저 맺고,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 입주하는, 설계도·입지·분양조건을 보고 미래의 주택을 선택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를 ‘선분양’이라고 하는데, 물건의 완성본을 보지 않고 설계도와 모형만 보고 돈을 내게 되는 방식이다. 언뜻 보면 물건도 안 보고 구매를 하는 독특한 시스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택시장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이러한 선분양 제도는 일반적인 분양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선분양 방식이 자리 잡은 결정적 계기는 1962년 「주택건설촉진법」 제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 주도의 대규모 택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막대한 건설 자금이 필요했는데, 은행 대출이나 공공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민간 수요자의 ‘미리 돈을 모으고 계약하는 예약금’을 끌어모으는 선분양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후 19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 서울 및 수도권으로 주택 수요가 폭발하자 선분양은 더욱 공고해졌다. 건설사는 분양 대금을 미리 확보해 사업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었고, 수요자는 청약통장 납입으로 순위권을 확보하며 ‘자격과 순위에 기반한 경쟁’ 속에서 내 집 마련 기회를 얻었다. 반면 후분양 방식은 자금 부담이 건설사에 집중돼 사업 지연 및 파산 위험이 크고, 공급 속도가 느려 급속한 도시화에 맞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밀려나게 되었다. 물론 선분양에는 ‘보지도 않고 사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보증’이나 ‘하자보증제도’ 등 제도적 안전망도 함께 강화되었고, 그 결과 한국 특유의 선분양 문화가 하나의 제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청약,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이유 과거처럼 단순히 저축을 통해 상급지로 이동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일정하고 상승 폭이 완만한 교사들에게 일반 매수는 점점 더 높은 벽이 되고 있으며, 이는 자산 규모가 작은 2030세대에게 더욱 가혹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확률 경쟁’의 영역인 청약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청약은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를 바탕으로 자산 규모를 단숨에 점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즉, 청약 당첨은 곧 시세차익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특히 사회초년생 교사라면 지금의 청약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과거 가점 위주의 시장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기회조차 없었으나, 이제는 추첨제 비율이 대폭 상향되어 상대적으로 낮은 가점으로도 당첨을 거머쥘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여기에 신혼부부나 생애최초, 신생아 특별공급은 2030세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화된 제도적 혜택이며, 일반 매수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강력한 무기이다. 청약의 또 다른 매력은 적은 자본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수억 원의 매매 대금이 없어도 된다. 분양가의 10~20% 수준인 계약금만 준비된다면 일단 내 집을 확정 짓고 시작할 수 있다. 당첨 후 입주까지 이어지는 약 3년의 기간은 안정적인 급여와 교직원공제회 등의 복지 혜택을 활용해 잔금을 마련할 소중한 유예기간이 된다. 또한 교사만의 특권인 근무지 이동의 유연성을 활용해 유망 지역의 ‘당해 지역 거주 요건’을 전략적으로 충족하는 것은 일반 직장인은 활용하기 어려운 혜택이다. 따라서 이를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게 영리하게 이용한다면, 낮은 소득과 적은 자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청약 당첨을 위한 필승전략 많은 이가청약을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로또’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청약시장의 복잡한 규칙 안에는, 가점이 낮거나 자산이 부족한 이들을 위한 ‘숨겨진 우회로’가 존재한다. 단순히 공고문을 읽는 수준을 넘어, 제도적 빈틈을 파고드는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될 때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제 가점의 한계를 뛰어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전략을 하나씩 알아보자. ● 전략❶ _ 자격 준비가 당첨의 첫걸음 청약 당첨을 위한 필승전략의 첫 단추는 화려한 분석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이고도 철저한 ‘자격 준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입지 분석을 잘하고 전략적으로 타입을 선택해 당첨의 기쁨을 누린다 한들, 서류상 결격 사유가 발견되어 ‘부적격’ 판정을 받는다면 그 모든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래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기본적인 청약 자격이 잘 갖추어졌는지부터 알아보자. ● 전략❷ _ 가점의 한계를 깨는 ‘추첨제 물량’ 올인 전략 가점이 낮은 2030세대에게 추첨제는 유일한 탈출구다. 민영분양의 경우 규제지역 내 소형 평수(60㎡ 이하)와 비규제지역의 중대형 평수(85㎡ 초과)에서 추첨제 비중이 높다. 공공분양 역시 최근 일반공급 물량 중 일부를 추첨제로 배정하기 시작했으므로, 저축 총액이 낮다면 ‘순차제’보다는 ‘추첨제’ 비중이 높은 단지와 평형을 정조준하는 것이 유리하다. ● 전략❸ _ 일반 공급보다 더 확률 높은 ‘특공’ 활용 특별공급은 일반공급보다 당첨 확률이 훨씬 높다는 특징이 있어 일반공급 전 반드시 넣어야 하는 전형이지만, 유형별로 자격 요건과 당첨자 선정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면서 ‘경쟁률이 낮은 전형’을 순서대로 공략하는 것이 핵심이다. •1순위 _ 기관 추천 자격만 갖추면 가장 높은 당첨 확률이지만, 교사의 경우에는 국가유공자 혹은 장애인의 경우가 아니면 해당되는 자격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2순위 _ 신생아 2024년 신설된 특공으로 아직 가점 쌓인 경쟁자가 적고, 국가에서 가장 밀어주는 전형이라 물량이 많다. 해당된다면 사실상의 1순위 특공이다. •3순위 _ 다자녀 가구 2023년에 발표된 법령 개정에 따라, 미성년 자녀 2명 이상부터 특공자격이 부여된다. 결국 자녀 수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지만, 인기 단지의 경우 자녀가 3명 이상은 되어야 당첨 안정권에 들어간다. •4순위 _ 노부모 부양 만 65세 이상의 직계존속을 3년 이상 부양한 세대주에 한해 자격이 주어지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면 신혼부부 특공보다 유리할 수 있다. •5순위 _ 신혼부부 혼인 기간 7년 이내인 무주택 세대주에 해당하며, 신혼부부 특공부터는 특공이지만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높아지는 구간이 된다. 소득이 낮을수록 우선공급 우선권이 있고, 자녀 유무에 따라 가점이 있으므로 가점을 냉정하게 계산해서 판단해야 한다. •6순위 _ 생애최초 자격제한이 가장 낮아 경쟁률이 가장 높은 편이며, 100% 추첨제인 경우가 많다. ● 전략❹ _ 부부 중복 청약 및 특공·일반 교차 지원 2024년 제도 개편으로 부부의 기회는 두 배가 되었다. 부부 페널티를 제거한 것인데, 이제는 동일 단지에 남편과 아내가 각각 청약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남편은 특별공급(생애최초 등)에, 아내는 일반공급에 신청하거나, 부부 모두 각각 특별공급에 지원할 수 있다. 그러면 동일 단지에서 부부 각 2회, 총 4회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중복당첨이 되는 경우, 접수한 순으로서 먼저 신청한 사람만 유효하고 나머지는 당첨무효 처리가 된다. 이는 무순위나 사전청약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 부모나 자녀 등 다른 가구원과의 중복 시에는 모두 부적격 되니 주의해야 한다. ● 전략❺ _ ‘못난이 타입’과 ‘틈새 평면’의 마법 모두가 선호하는 4Bay 판상형 구조는 경쟁률과 가점 커트라인이 항상 높은 편이다. 당첨이 간절하다면 심리전을 펼쳐야 한다. 구조가 다소 생소한 타워형이나, 주력 평형(59, 84㎡) 사이에 낀 틈새 평형(74, 102㎡ 등)을 공략하는 것이다. 남들이 기피하는 ‘못난이 타입’을 선택하는 것이 당첨 확률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못난이 타입이 당첨에 유리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몰리는 바람에, 오히려 정석인 판상형 A 타입보다 타워형 B 타입의 경쟁률이나 가점 커트라인이 더 높게 형성되는 ‘역선택 현상’이 일부 나타나기도 하니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일반공급의 예고편인 특별공급을 보고 예상외로 타워형에 사람이 몰렸다면, 일반공급에서는 과감하게 판상형으로 선회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 전략❻ _ 전략적인 청약통장 월 납입 금액 공공분양의 월 인정 납입 한도가 1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상향된 것은 청약시장의 판도를 바꾼 큰 변화이다. 저축 총액이 당첨을 결정짓는 공공분양의 순차제 구조에서, 단순히 최대 25만 원을 계속 넣기에는 가계에 부담되는 수준의 금액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효율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납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 공공 올인형 _ 월 25만 원 최대치 납입 기존 10만 원 납입자들보다 연간 180만 원(15만 원×12개월)의 총액을 더 빠르게 쌓을 수 있으며, 연말정산 소득공제 혜택인 연 300만 원 한도까지 챙겨갈 수 있다. ● 민영 올인형 _ 월 2만 원 최소치 납입 청약통장 효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납입금인 2만 원만 넣는 경우로서, 민영주택을 타겟으로 하는 전략이다. 민영주택은 ‘납입 횟수와 저축 총액’을 보지 않고 ‘예치금’만 보기 때문이다. 평소에 2만 원씩 넣다가 원하는 민영 아파트 공고가 뜨기 직전에 모자란 금액을 한꺼번에 일시불로 입금해 예치금 기준만 맞추면 1순위 청약이 가능하다.만약 내가 이미 무주택 기간이나 부양가족이 많아 가점이 높거나, 매달 25만 원이 부담스러운 사회초년생이라면 월 2만 원씩 납입하면서 민영주택 청약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당첨되면 끝? 당첨 이후의 자금흐름 청약은 당첨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본격적인 ‘현금 흐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아파트는 계약부터 입주까지 약 2~3년에 걸쳐 대금을 나누어 내기 때문에, 시기별로 필요한 자금을 미리 계산해 두지 않으면 당첨이 취소되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청약 당첨 직후 필요한 분양가 10~20%의 계약금만 확실히 확보되어 있다면, 나머지 80~90%의 금액은 대출 시스템과 입주 전까지의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10·15대책으로 인해 주택 가격에 따라 최대 대출 한도가 2억~6억 원으로 묶이면서, 부족한 잔금을 대출로 메우려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 있으며, 특히 스트레스 DSR 상향으로 인해 실제 대출 실행 금액이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중도금 대출 한도 역시 규제지역 내에서는 기존 60%에서 40%로 낮아지니 중도금 6회차 중 2회차분은 자납해야 한다. 따라서 추가 현금이 더 필요한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청약 당첨의 필승전략, 그 비결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다. 청약 당첨은 곧 입주 시점으로부터 약 2년 전의 가격으로 매매가를 사실상 고정해 두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그 분양가는 대체로 현재 시세 대비 안전마진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는 하락 리스크를 줄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또한 입주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당첨 이후 입주까지의 3년은 단순한 대기가 아니라, 자금을 준비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다. 당장 매수를 위한 모든 돈을 갖추지 않아도, 그 시간 동안 소득을 축적하고 자금 계획을 완성할 수 있다. 이는 매매 시장에서는 거의 허용되지 않는 구조다. 다만 청약의 안전마진에만 집착하는 태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큰 안전마진, 이른바 ‘로또 분양’만을 쫓다 보면 현실적인 당첨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을 넘는 청약에만 반복적으로 기회를 소모하는 것은 전략이라기보다 희망에 가깝다. 오히려 다른 기회를 놓치는 기회비용일 수 있다. 청약은 내 자금 규모와 내 상황에 맞는 선택지부터 차분히 쌓아가는 게임이다. 로또급 마진이 아니더라도, 분명한 안전마진이 존재하고 경쟁이 과하지 않은 물건을 골라 가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작은 마진처럼 보일지라도, 이를 반복적으로 안전하게 쌓아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인 것이다. 결국 청약의 본질은 ‘마진의 크기’와 ‘확률의 크기’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있으며, 청약 당첨의 필승전략은 ‘내 욕심을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과한 욕심은 현실적인 수익으로부터 나를 더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성공확률이 높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의 로또를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확률 높은 작은 수익을 한 계단씩 쌓아 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청약이란, ‘운’을 기다리는 도박이 아니라 ‘확률’을 관리하는 실력의 영역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생님, 저 신고할 거예요 (신서희·김유미 지음, 카시오페아 펴냄, 292쪽, 1만 8,000원) ‘신고’가 일상이 된 학교 현장의 현실을 교육전문가와 변호사의 시선으로 분석한다. 사소한 다툼조차 학교폭력으로 비화하고, 교육활동이 법적 분쟁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법의 언어와 교육의 언어 사이 균형점을 모색한다. 특히 ‘법률 중심 해결’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조목조목 짚는다. 저자들은 처벌과 퇴출이 아닌 책임과 회복을 강조하며, 교실이 다시 배움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을 제안한다. 질문하는 방법, 어떻게 가르칠까? (김현주 등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펴냄, 188쪽, 1만 9,000원) 정답 찾는 방법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수업 가이드. 5명의 교사가 학생들의 호기심을 질문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탐구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질문 수업 과정을 ‘질문 생성(Spark)’, ‘질문 확장(Grow)’, ‘질문 정교화(Focus)’의 3단계로 설계하고, 각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질문 도구를 제시한다. 교실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생생한 사례를 통해 질문이 넘치는 교실을 만드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교실의 언어 (전현욱 지음, 창비교육 펴냄, 296쪽, 1만 9,000원) 교육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14가지 중요한 교육용어를 통해 교육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현직 초등교사이자 교육인류학자인 저자가 흥미, 교육철학, 학습자 중심 교육, 교실 민주주의 등 익숙한 단어들 속에 숨겨진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이론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교실 언어가 지닌 실천적 가치를 탐구하며 교사들에게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정립하도록 이끈다. 실전 교실 (이연옥·이혜령·김해련 지음, 한울 펴냄, 208쪽, 2만 원) 도합 70년 경력의 현직 초등교사 세 명이 펴낸 학급경영 실전 매뉴얼이다. 교대에서 배운 이론과 현실의 괴리에 당황한 초임 교사, 학급운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교사들을 위해 썼다. 학부모상담부터 학교폭력예방·생활지도·인성교육까지 교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처법과 노하우를 담아냈다. 부록으로 ‘학급경영마인드 10’과 ‘학부모 민원 대처 요령 10’을 넣었다. 왜 중독에 빠지는 걸까? (오승현 지음, 뜨인돌 펴냄, 176쪽, 1만 5,000원) SNS·영상·게임·약물·음식 등 청소년의 일상을 파고든 다섯 가지 중독의 비밀을 해부한다. 뇌의 보상 회로와 도파민의 작용 원리를 통해 중독의 메커니즘을 쉽게 설명하고, 사회와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독의 길로 끌어들이는 교묘한 방식을 흥미롭게 파헤친다. 자가진단 테스트와 실천 팁으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중독 상태를 점검하고 건강한 주도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청소년을 위한 금융 에세이 (한진수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312쪽, 1만 7,800원) 청소년의 ‘금융 문맹’ 탈출을 돕는 금융 입문서. 2026년부터 고등학교 정규 과목으로 신설되는 금융과 경제생활의 핵심 내용을 연계해 용돈 관리와 예산 설계, 저축, 투자, 대출, 위험 관리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금융 지식을 체계적으로 소개한다. 복잡한 금융의 세계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내며, 급변하는 시장 속에서 돈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설계하는 올바른 금융 습관을 길러준다. 무역하는 학교 (이선아 글, 정진희 그림, 초록비책공방 펴냄, 192쪽, 1만 5,000원) 교실 속 경제활동을 통해 시장경제의 원리와 기업가정신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룬 경제동화. 5학년 다섯 개 반이 무역 배틀을 벌이며 겪는 경쟁과 협력,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단순한 용돈 관리를 넘어, 아이디어를 사업계획서로 정리하고 다른 사람과 거래하는 모습을 통해 경제 순환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5학년 사회교과의 ‘고려시대 국제 무역’과 연계할 수 있다. 나는 로봇 캣, 로캣! (효남 글, 박현주 그림, 이지북 펴냄, 108쪽, 1만 5,000원) 바다별 식당의 서빙 로봇 ‘로캣’이 처음으로 식당 밖 세상에 나가 배달 임무를 수행하며 겪는 모험을 그렸다. 낡고 오래된 로봇 로캣이 친구 햇살이와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용기와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따뜻하게 전한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다가오는 두려움 또는 설렘을 마주할 용기를 불어넣는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세계에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함께 산다. 토끼 경찰 주디 홉스와 여우 닉 와일드는 ‘다르지만, 함께 살 수 있다’는 도시의 이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도시 역시 편견과 낙인, 두려움과 혐오가 촘촘히 스며 있다. 특히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즉 포유류끼리의 ‘차별’을 다룬 주토피아1과 다르게 주토피아2는 은신처 ‘습지 마켓’에 사는 파충류와 반수생동물을 등장시키면서 차별을 넘어선 ‘혐오’의 문제를 드러낸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배제되지 않는다. ‘위생 문제’, ‘안전을 위한 관리’, ‘합리적인 예방’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말한 ‘신성-오염 가치체계’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혐오를 합리화해 왔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혐오는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유난히 혐오에 취약하다고 평가된다. 왜일까? 그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구조에 있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 사회 구조 속에 숨어 있는 혐오의 심리학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사회는 왜 혐오에 취약할까? ● ‘빨리빨리’ 문화 위에 세워진, ‘공감’에 인색한 사회 한국 사회는 공감에 인색하다. 심리학에서 공감은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를 이해하며, 그 사람의 옆에서 잠시 머무를 수 있는 매우 느린 감정이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 위에 세워진 우리 사회는 이 느린 감정을 연습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빠른 사회에선 감정 역시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감정을 충분히 숙성시키는 법보다 타인을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빠르게 분류하는 법에 익숙해졌다. 설명이 길어지면 답답해하고, 상대의 사정을 끝까지 듣기보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를 먼저 묻는다. 공감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속도가 중요한 사회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느린 사람, 설명이 필요한 사람, 예외적인 상황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스템을 멈추게 하는 방해꾼으로 인식된다. 혐오는 이때 작동한다. 집단에 손해를 끼친 그들을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으로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정당성이기 때문이다. 공감이 사라진 사회는 겉보기에는 매우 효율적인 듯 보이지만, 그 내부는 서서히 무너진다. 갈등을 ‘말로 다룰 수 있는’ 기회, 즉 회복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이다. 결국 공감이 사라지면 상황이 설명되지 않고, 억울함이 풀리지 않으면서 분노·혐오와 같은 더 큰 충돌로 돌아온다. ● 압축성장과 경쟁 사회가 만든, ‘실패에 가혹한’ 사회 한국 사회는 ‘실패’에 가혹하다. 압축성장을 한 우리 사회는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했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살아남지 못했다. 성공과 실패, 정상과 낙오, 유능함과 무능함이라는 이분법적 사회에서는 아직 배우는 중이라는 ‘과정’,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여유’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경쟁과 속도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누가 더 낫고, 누가 뒤처졌는지 빠르게 가려내야 한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순간, 나는 상대적으로 안전해지기 때문이다. 혐오는 이때 작동한다. 실패를 과정이나 경험이 아닌 개인의 결함, ‘정체성’으로 바꿔버린다. 실패한 개인은 ‘집단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 능력이 부족한 사람, 함께 가기 어려운 사람’으로 재정의한다. 시험·승진·결혼 등에서의 실수·실패에 대해 “이번에만 못한 거야”가 아니라 “그럴 줄 알았어. 쟤는 원래 그래”라는 말로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은 차단되고, 한 번 씌워진 평가는 좀처럼 갱신되지 않는다. ● 집단 정체성이 강한, ‘어느 편’이 중요한 사회 한국 사회는 유독 집단 소속감이 강하다. 자신을 설명할 때 개인의 취향이나 생각보다 어느 학교, 어느 지역, 어느 세대, 어느 조직에 속해 있는지를 먼저 말한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앞서고, ‘우리’가 분명해질수록 ‘우리 아닌 존재(그들)’와의 경계는 뚜렷해진다. 문화심리학자 미셸 글래드웰은 위협이 잦은 사회일수록 집단 규범을 엄격하게 유지하고, 타인에 대한 적대감 수준이 강해진다고 설명한다. 일제강점기·전쟁·분단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어느 편’에 서야 살아남고, ‘다른 편’이었을 때 어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우리 사회가 집단 결속력과 집단 정체성이 강한 이유이다. 이런 구조는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위기감이 높아질수록 ‘우리’ 집단은 결속하고, ‘우리 아닌’ 집단은 배척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기성세대 때문에 기회가 없다’는 청년층과 ‘요즘 젊은것들은 사회 시스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중장년층의 세대 갈등, ‘젠더 정책 때문에 역차별받는다’는 남성층과 ‘사회구조는 여전히 불평등한데 왜 이를 부정하느냐’는 성별 갈등,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대립 역시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우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집단적 불안의 표현에 가깝다. 이때 불안을 배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우리 집단이 똘똘 뭉쳐 다른 집단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 비교와 서열에 익숙한 교육, 혐오를 연습하는 사회 이런 낙인 구조는 성인이 된 후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성취와 경쟁 중심으로 설계된 학교에서 아이들은 시험 성적이 낮으면 ‘공부 못하는 아이’, 한 번 문제행동을 보이면 ‘원래 그런 아이’, 또래관계에 어려움을 보이면 ‘사회성 없는 아이’가 된다. 한부모가정·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아, 어쩐지’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적표는 아이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요약본이 되고, 생활기록부의 한 문장은 아이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규정한다. 아이들은 혐오를 ‘가르침’으로 배우지 않는다. 환경으로 학습한다. 실수한 아이를 어른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실수한 친구가 또래에게 어떻게 취급되는지, 한 번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얼마나 오래 그 이름으로 불리는지, 댓글이 어떤 언어로 채워지는지, 사과한 사람이 다시 설 자리가 있는지를 보며 배운다. 틀려보고, 다시 시도하면서배워가는 ‘실패를 연습해야 하는 공간’인 학교가 ‘낙인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시키는 공간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공감보다 거리 두기를 먼저 선택한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며 연민보다 안도감을 느낀다. 동시에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남보다 먼저 낙인찍는 법을 배우고, 이기는 편에 서려 한다. 아이들에게 혐오는 자기 보호의 전략이 된다. 공감보다 안전하고, 이해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을 만나며 완성된 ‘빠른 혐오’, 중단 버튼이 없다 이 모든 조건 위에 인터넷과 SNS 알고리즘이 얹히면서 혐오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적 시스템이 되었다. 짧은 영상, 자극적인 제목, 즉각적인 분노와 조롱은 클릭과 ‘좋아요’라는 보상을 받으며 폭발적으로 증폭되고, ‘멈출 수 없는 감정’이 된다. SNS 알고리즘의 핵심은 반응이다. 이 시스템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혐오 표현이 사실인지, 차별적인지,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사람들의 반응만이 기준이다. 오래 머무르고 많이 반응할수록 유사한 콘텐츠를 반복 노출한다. 그 결과 SNS와 플랫폼 알고리즘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든다. 비슷한 분노와 대상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모여 ‘다들 이렇게 생각하잖아’, ‘우리가 틀린 게 아니라, 저들이 문제지’라며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상식’이나 ‘다수의 판단’처럼 굳어진다. 여기에 확증편향1이 결합하면 혐오의 범위는 개인에서 점차 집단 전체로 일반화되고, 나의 확신은 ‘내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 내 생각·믿음·판단과 반대되는 근거를 제시하면, 그것은 단순한 반대의견이 아니라 우리 집단 정체성에 대한 공격처럼 인식된다. 그 결과 믿음을 수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하게 확신하면서 저항하는 ‘역반동 효과(backfire effect)’가 나타난다. 상대방에 대한 혐오는 ‘용기 있는 발언’으로 재포장되어 집단의 힘을 업고, 경쟁하듯 과격해진다.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순간, 상대는 자동으로 가해자가 되고 혐오는 더 대담해진다. 디지털 환경은 확증편향을 시스템적으로 증폭시킨다. SNS와 플랫폼 알고리즘은 역반동 효과를 강화한다. 반대 의견은 공격적으로 보이도록 노출되고, 내 생각과 같은 의견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내 생각을 반박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우리는 깨어 있고, 저들은 틀렸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이 구조 안에서 설득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대립과 갈등만 불거질 뿐이다. 혐오를 감정이 아닌 기술로 배우는 아이들 문제는 이 시스템을 아이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접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혐오를 ‘잘못된 감정’으로 배우기 전에, 반응을 얻는 기술로 먼저 학습한다. 댓글, 밈, 숏폼 영상, 단톡방 농담, 게임 채팅에서 왜 웃긴지, 왜 싫은지, 왜 배제되는지, 왜 상처가 되는지 설명받을 기회 없이 따라 한다. 조롱하면 웃음이 나오고, 혐오하면 조회수가 오르며, 누군가를 깎아내리면 주목받는 환경에서 아이들은 중요한 착각 하나를 배운다. ‘이건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인기 있는 행동이다.’ 혐오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가 된다. 어떻게 말해야 주목받는지, 누구를 공격해야 안전한지, 어느 선까지 가야 웃음을 얻는지를 놀이처럼 익힌다. 반복되는 혐오 노출은 감정을 무디게 만든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표현이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고, 타인의 고통은 스크롤 한 번으로 지나간다. 너무 많은 자극 속에서 아이들의 뇌는 가장 강한 감정만을 선택하고, 그 자리는 혐오가 차지한다. 내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어쩔수가 없다의 만수처럼 내가 살기 위해 상대방을 제거하는 것은 생존전략이 된다. 정리하며 _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들은 우리가 만드는 사회에서 자란다. 빠른 속도, 실패에 가혹한 문화, 비교 중심의 교육, 강한 집단 정체성, 그리고 이를 증폭시키는 SNS 환경이 겹치며 혐오는 일상이 되었다. 한국 사회가 혐오에 취약한 이유는 사람들이 유난히 나빠서가 아니다. 혐오를 가장 빠르고 쉬운 감정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구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토피아〉가 보여주었듯, 문제는 ‘누가 나쁜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두려움을 키우는가’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는 일은 아이들보다 어른의 몫이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혐오로부터 지키는 일은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다려도 되는 수업, 실패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경험, 설명이 필요한 갈등, 서사를 끝까지 들어주는 어른…. “천천히 해도 괜찮아,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거야.” “넌 생각이 많아서 로딩속도가 걸릴 뿐, 시작하면 끝을 보잖니?”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혐오 예방 교육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조금 느려도, 덜 공격적이어도,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회를 어른들이 먼저 보여주는 일일지 모른다. 혐오의 반대는 단순한 선의가 아니다. 시간과 여유, 그리고 다시 이해하려는 태도다. 빨리빨리 사회가 만든 감정의 습관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누군가를 빠르게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은 혐오가 자라기 쉬운 환경이 아니라 혐오를 딛고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 혐오는 빠르다. 교육은 느리다. 그러나 아이들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느린 쪽의 몫이었다.
최근 학교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견디기 힘들다’고 외치고 있다. 학부모들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개혁을 명분으로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지만, 사교육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다며 아우성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러한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치권은 교육문제를 국민의 관심이 높고 이해관계가 무척 복잡한 뜨거운 감자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을 보면 그 방향이 과연 올바른지, 추구하는 가치가 타당한지 의구심이 든다. 진정성을 가진 미래지향적 교육개혁이 아닌 변죽만 울리는 개혁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교육영역은 사회의 문제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라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그런데도 갈등이 심각해진 학교를 위한 정부의 지원책은 가장 늦게 마련되고 시행된다. 이는 학교라는 공간이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곳 중 하나라는 사실을 오히려 웅변한다. 정치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대한민국에서 목소리가 큰 집단, 정치적 영향력이 큰 집단을 먼저 신경 쓰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한 정치의 논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는 정치인의 말을 믿고, 학교 현장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성실하게 교육에 임해 온 사람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깊은 소외감과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학교는 교수와 학습, 배움과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잃고 구성원 모두에게 힘든 공간, 버티는 공간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교육부의 정책은 받아쓰기 정책이다”, “교육청은 교사의 고통을 외면하는 무능의 표본이다”, “학교 행정가들은 교사의 삶을 지키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교사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런 현상들이 거대한 깔때기처럼 작동해 우리 사회에 스며 있는 수많은 어둠이 교사의 삶에 고이게 만들었다”고1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친다. 학교공간이 이렇게 변질될수록 학교장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 학교장은 교사들이 어떤 이유로 힘들어하는지, 그 양상은 경력과 역할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피고, 그에 맞는 대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직관에 기대기보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원인을 진단하고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학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교사를 중심으로, 교사들이 겪는 힘듦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유형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과도한 업무로 타오르다 재처럼 꺼지는 번아웃(burn-out), 무의미한 업무 속에서 서서히 녹슬어가는 보어아웃(bore-out), 그리고 ‘내가 해 봐야 무엇이 변화되겠어’라는 생각으로 의욕이 점점 줄어드는 브라운아웃(brown-out)이다. 이 세 단어는 모두 ‘전력’의 은유를 빌린다. 인간의 에너지도 전기처럼 과부하가 되거나, 공급이 줄어들거나, 사용처를 잃으면 결국 꺼져버린다. 교사 고통의 유형별 발생 원인 ● 번아웃(burn-out) 번아웃은 일반적으로 정신적 과부하로 인한 소진을 말한다. 불꽃이 꺼지듯,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가 몰아치는 끝에 찾아온다. 특히 직무수행이 개인과 사회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원하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성취감을 얻지 못할 때 나타난다. 또한 실패 경험이 장기간 누적되어, 직무를 통해 얻는 성취감보다 좌절감이 더 클 때 심화된다. 결국 번아웃은 과로나 스트레스가 지속되면서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생리적 수준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건강심리학자들은 번아웃을 신체적 자원의 소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짧은 기간 버티며 수행 수준을 더 높인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어 신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면 ‘제 살 깎아 먹기’식 버티기는 어렵다. 결국 극한 상황이 이어질수록 몸과 마음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끝내 항복해 버린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개 부장교사들이다. 특히 학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교무부장·연구부장·생활지도부장들에게 흔히 나타난다. 이들은 교사의 본업인 가르치는 일과 함께 학교의 주요 행정업무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에 소진이 누적되기 쉽다. 그 결과 가르치는 열정이 크게 떨어지며, 탈진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된다. 다만 번아웃도 신체적 소진이라는 점에서 에너지 소모가 크고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교사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평소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번아웃 예방에 힘써야 한다. ● 보어아웃(bore-out) 보어아웃은 일 자체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할 일이 적거나 의미 없는 업무를 반복하는 상태를 뜻한다. 이 증상의 핵심은 하는 일의 양이 아니라 하는 일의 질에 있다.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이어질 때, 사람은 심리적으로 마모된다. 번아웃이 과로나 스트레스 등으로 신체적·정신적으로 소진되어 열정과 성취감을 잃은 상태라면, 보어아웃은 지루하고 단조롭거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상이 장기간 반복되면서 의욕을 잃고 심한 무기력감과 환멸감에 빠지는 상태다. 비유하자면 번아웃은 ‘너무 불태운 나머지 재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라면, 보어아웃은 ‘애초에 불이 붙어 보지도 못한 채 삶의 동력이 꺼져버린 것’이다. 학교에서 이런 증상은 신규교사 혹은 저경력교사에게 자주 나타난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인 교사가 되기 위해 국제중·외고·과고 등을 거쳐 교원양성대학을 졸업하고, 그 어려운 임용고시를 통과해 교사가 되었지만,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자신이 꿈꾸던 교직과 너무 다르다. 가르치는 일보다 행정업무와 공문처리가 중심이 되는 학교, 적응 중인 신규교사에게 힘든 학년의 담임을 떠넘기는 관행 등은 초임교사와 저경력교사들을 너무나 힘들게 한다. ‘이런 일 하려고 밤잠을 줄이며 공부를 열심히 했나’라는 회의가 생기고, 출근 전날 밤마다 깊은 번민에 빠지기도 한다. ● 브라운아웃(brown-out) 브라운아웃은 전력 용어에서 빌린 표현이다. 전등이 꺼지지는 않았으나 빛이 희미해진 상태, 즉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거나 줄어든 상태를 말한다. 이 증상은 ‘완전한 소진’도, ‘완전한 무기력’도 아니다. 다만 일에 대한 의욕과 집중력이 서서히 식어가며 일을 하는 상태다. 그 결과 일의 효율과 성과는 점점 떨어지며, 장기간 방치하면 번아웃이나 보어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증상은 일종의 정신적 무기력 상태로, 일에 대한 열정·흥미·몰입이 저하되는 상태다. 이때 업무에 대해 무관심해지거나 피로를 느낄 가능성이 높아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증상의 원인은 업무의 환경과 특성, 개인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단조로운 업무의 반복, 업무와 개인생활 간 균형이 무너진 ‘불안정한 워라밸’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학교에서 이런 증상은 중견교사나 고경력교사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때로는 교장·교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누가 뭐라 하든 박봉에도 불구하고 나름 대한민국 교육을 위해 열심히 가르쳐 왔고,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일정 부분 공헌해 왔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국가와 사회의 대우를 보면 존경은커녕 존중조차 체감하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며 좌절하고, 결국 무너진다. ‘내가 열심히 한들 누가 알아주며, 우리 교육이 바뀌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사 고통의 유형별 맞춤형 대책 ● 번아웃 대책 번아웃에 빠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 차원에서는 해당 교사에게 과중하게 부과된 업무를 경감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실행해야 한다. 또한 번아웃에 처한 교사들에게 적합한 연수과정을 별도로 개설하여 운영해야 한다. 연수 내용에는 스스로 번아웃을 예방하고 극복하는 방안이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수면시간 확보하기, 내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휴식 취하기, 내 몸에 맞는 취미 생활하기,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깊이 소통하기 등이다. 다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일에 쏟는 에너지와 일을 통해 얻는 의미가 균형을 이룰 때 그 일이 지속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등이 오래 빛을 내기 위해서는 전력이 일정해야 하듯, 인간도 자신의 에너지를 적절히 쓰고 채우는 법을 스스로 탐구하여 찾도록 해야 한다. ● 보어아웃 대책 보어아웃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의 의미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데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중요한 역할을 하는 T/F 위원 등으로 위촉하여 참여를 보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의견을 자주 묻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교육계에서 나갈 수 있는 다양한 진로에 대해 외부강사를 초청한 연수를 통해 안내하고, 본인들이 관심 있는 영역에서 재직 중인 사람들을 소개하여 멘토를 맺도록 주선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 교사 스스로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희망을 다시 찾고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브라운아웃 대책 학교장들이 번아웃은 대체로 잘 알고 있어 관심을 기울인다. 반면 브라운아웃에는 관심이 적다. 그 이유는 이 증상은 의욕과 집중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상태로 업무를 하기에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운아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증상은 번아웃이나 보어아웃보다 덜 극단적이지만, 조직 관점에서는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장이 이를 가볍게 여기다가는 크게 후회할 수 있다. 이 증상은 고경력교사, 소위 ‘왕언니’ 등 학교 내에서 영향력이 큰 교사들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영향력으로 인해 서서히 주변 교사와 학교 전체로 전이될 수 있다. ‘적당히 해’, ‘너무 튀지 마!’ 등의 언어로 대표되는 분위기가 정착되면 많은 교사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결국 학교 전체의 교육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학교장은 이러한 신호를 미리 알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교사들이 업무 몰입으로 교육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장을 비롯한 학교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면밀하게 교사들의 상태 등을 모니터링하고 잘 관리하여 이 증상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기 회복과 환경 재설계가 필요하다. 보어아웃과 브라운아웃의 공통적인 원인은 교사들이 스스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하는 환경과 업무이다. 따라서 교육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하면서 교사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조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소통하며, 소외되지 않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업무에 몰입하고, 학교와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동기가 되살아난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에 관한 관심은 세계적 수준이다. 이는 생존경쟁이 치열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학교가 가장 원초적인 생존 본능이 처절하게 부딪치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이로 인해 교사들이 받는 압박감도 클 수밖에 없다. 서울의 이른바 ‘대문자 강남’4 지역은 교사의 무덤이 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소문자 강남’5 지역마저 점차 증가하고 있어, 학부모 민원 측면에서 보면 서울 전역이 점점 평평해지고 있다. 학교장은 이러한 변화를 감안하여 교사들의 고통에 눈과 귀를 열고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적인 학교경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물론 학교장은 매우 힘들다.그러나 어찌하랴, 우리 교육은 결국 학교장 손에 상당 부분 매달려 있는 것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자리한 서울양천초등학교는 올해로 개교 126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학교다. 1900년 문을 연 이 학교는 한 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지역의 삶과 함께 호흡해 왔다.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이 학교 졸업생”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인근 상가 곳곳에서도 양천초 졸업생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만큼 학교는 지역의 역사 그 자체다. 이 오랜 전통의 학교가 최근 ‘밝고 안정된 학교’, ‘학부모 신뢰가 두터운 학교’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심에는 2024년 9월 부임한 배현정 교장이 있다. 교장실 벽면의 모니터, 253명의 얼굴 양천초 교장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책상 옆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모니터다. 화면에는 전교생 253명의 얼굴과 이름이 슬라이드처럼 끊임없이 떠오른다. 배 교장은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다 보니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자주 익혀야 한다”면서 “휴대전화에도 PPT로 저장해 틈나는 대로 보고 있다”고 했다. 아침 등교 맞이 때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꼭 불러주고 싶어 열심히 외우고 익힌다는 것이다. 등교 맞이 때면 그는 매일 다른 문구가 적힌 이름표를 달고 교문에 선다. 이름과 직함만 적힌 딱딱한 명찰 대신, 아이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기 위해서다. 이름표에는 ‘행복한 교장’, ‘호기심 교장’, ‘우리는 정말 사랑합니다’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아이들이 교장을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언제든 내 편이 되어 줄 친근한 선생님으로 여겼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사실 그는 교감 시절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등교 맞이를 해왔다. 그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등교 맞이를 고집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이 환영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또 어른이 먼저 인사하는 모습을 통해 관계의 태도를 배우게 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아울러 아이들의 표정과 몸 상태를 살피며 작은 이상 신호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교문에 선 교장의 비밀 … 교장실은 아이들 민원센터 양천초에서는 교장실도 ‘닫힌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은 수시로 교장실 문을 두드린다. 부탁도 하고, 불만도 털어놓고, 때로는 “이건 너무 좋아요”라는 칭찬을 전하러 오기도 한다. 배 교장은 이를 두고 “교장실은 아이들 민원센터”라고 말한다. 그는 아이의 옷차림을 보고 “오늘 옷 참 잘 어울린다”고 말을 건넨다. “아빠가 코디해 줬어요”라는 답이 돌아오면 “그럼 아빠한테 최고라고 꼭 전해줘”라고 덧붙인다. 이런 사소한 대화는 아이를 통해 가정으로 전해지고, 가정은 다시 학교를 신뢰하게 된다. 무엇보다 양천초는 학부모들과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면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탄탄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배 교장이 양천초에 부임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학부모들의 민원성 방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서이초 사건 이후여서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되는 것은 된다고,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학부모와의 신뢰는 소통과 공유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으로 성심을 다했다. 이뿐 아니다. 배 교장은 공식 행사든 비공식 모임이든, 학부모가 있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행사에 가기 전에는 참석자 명단을 미리 확인해 아이와 학부모를 연결한 대화를 준비한다. 이처럼 ‘먼저 다가서는 태도’가 학부모의 마음을 열었다. 그 결과 양천초에서는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아버지들 참여가 활발하다. 텃밭 체험, 가족캠핑데이, 궁산 숲 체험, 아나바다 마켓, 가족 음악회 등 가족 단위 행사가 자연스럽게 아빠들을 학교로 불러들였다. 신뢰가 만든 변화, 민원은 줄고 교육은 깊어졌다 학부모와의 신뢰가 쌓이자, 가장 먼저 줄어든 것은 민원이었다. 배 교장은 “민원이 줄어들면 교사들이 행정 소모 없이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학부모교육의 결실도 눈에 띈다. 독서교육 연수에 참여한 학부모 8명은 자녀를 키우며 겪은 경험과 성찰을 글로 엮어 책을 펴냈다. 학교와 지역 서점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배 교장도 직접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또 다른 학부모들은 풍선아트 연수를 받아 졸업식과 입학식을 직접 꾸민다. 양천초의 또 하나의 자랑은 학생자치회다. 별도의 임원 없이 6학년 학급 대표들이 중심이 돼 운영되는 학생자치회는 양심우산, 학교폭력예방 캠페인, 버스킹 공연, 감사 편지 쓰기 등 활동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한다. 교문 옆 쉼터는 이들의 활동 무대다. 개축이 보류돼 수년간 시설 투자를 받지 못했지만, 배 교장은 현관 옆 공간을 정리해 아이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다. 장난이 과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그는 “없애기보다 지켜보자”고 했고, 아이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교장기대에 부응했다. 쉼터는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의 하나가 됐다. 교사들의 연구활동 역시 활발하다. 연구대회에 도전한 교사 중 두 명이 전국대회 1등급을 받았다. 교장실 냉장고에는 ‘1등급 사관학교 초미녀 배현정’이라는 문구가 적힌 케이크 받침대가 아직도 남아 있다. 후배 교사들이 감사의 뜻으로 전한 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학교를 잇는 다리 양천초는 학교 울타리를 안쪽으로 좁히기보다, 지역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먼저 학교 시설을 개방해 서울형 키즈카페를 운영한다. 방과 후와 주말에는 지역 영유아와 학부모들이 자연스럽게 학교 공간을 찾는다. ‘학교는 학생만의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허물고, 지역 공동체의 거점으로 기능하도록 한 것이다. 교육과정 역시 지역 자원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서울식물원에서는 생태·환경수업을, 에코롱롱에서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교육을 체험 중심으로 진행한다. 겨울철에는 목동 아이스링크와 연계한 체육활동이 이뤄지고, 양천향교에서는 전통 예절과 인성교육이 수업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단순한 현장학습이 아니라, 사전·사후 수업을 포함한 교육과정 속 체험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배 교장은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배움이 다시 교실로 돌아와 수업으로 이어질 때, 아이들은 학교와 지역을 하나의 생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했다.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의 진심과 열정이 한데 모여 미래교육의 튼튼한 초석을 쌓아가고 있는 서울양천초. 100년을 훌쩍 넘긴 역사는 병오년 새해를 맞아 또 다른 10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교사는 학생을 교육하게 되므로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그러나 교사 역시 사람이기에 실수나 의도치 않은 일들로 수사의 대상이 되는 일들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교사라는 신분으로 인해 처벌 외에도 징계라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가가 익숙한 대다수 교원은 이때 매우 혼란을 느끼는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이번 호를 통해서 교원의 범죄와 처벌, 그리고 징계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자. 형사처벌과 징계는 이중처벌인가? 「헌법」은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13조). 그런데, 교원의 경우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외에 법에서 별도로 징계에 관한 규정을 정하고 있고, 징계에 따른 다양한 불이익이 있기에 사실상 두 번의 처벌을 받게 된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헌법」에서 말하는 ‘처벌’은 신체를 구속하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은 국가의 형벌권 행사를 의미하는 것인데, 징계란 공무원과 같은 특정한 신분을 가지는 자의 의무위반 행위에 대하여 부과하는 행정상 제재에 해당하므로 이를 ‘처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애초에 범죄에 대한 처벌과 교원에 대한 징계는 그 법적 성격에서 차이가 있어 이중처벌이 아니다. 형사 사건 판결은 무죄인데 징계는 유효하다고? 범죄에 대한 수사나 처벌에 관한 형사 절차와 교원의 징계는 완전히 별개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심지어 수사기관에서 범죄의 혐의가 없다고 하거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징계 사유가 인정되는 이상 징계처분이 가능한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최근의 사례를 보자. 한 교원이 피해아동(초등학교 3학년)에게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라는 등의 발언을 하여 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또 그와 함께 형사 사건이 진행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되었다. 교원의 문제 된 발언에 대한 가장 주요한 증거는 학부모가 몰래 녹음한 녹음 파일이다. 형사 재판에서 대법원은 위 학부모의 녹음 파일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해당하여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대법원 2024. 1. 11. 선고 2020도1538 판결 참조), 법원은 이런 녹음 파일에 기반한 교원의 문제 된 발언은 사실인정이나 피해아동 측의 진술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하여 교원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25. 2. 12. 선고 2024노115 판결 참조). 이렇게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당연히 교원이 받은 정직 3개월의 징계 역시 취소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교원은 징계에 대해서 별도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징계 절차에서 교원에 대한 녹음 파일이 제출된 사실은 없었다. 교원은 수사 과정에서의 녹음 파일을 듣고 징계 절차 중 문제 된 발언을 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징계 절차 중에는 녹음 파일이 사용되지 않았고, 형사 재판과 징계는 별도의 과정이라는 점에 근거하여 교원에 대한 정직 3개월의 징계는 정당하다고 했다(서울고등법원 2025. 4. 3. 선고 2024누47359 판결 참조, 다만 이에 대해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연관 깊은 형사처벌과 징계의 관계 이렇게 형사처벌과 징계는 완전히 분리된 절차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지만 그럼에도 둘 사이의 연관성은 매우 크다. 먼저 「국가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은 수사기관이 교원에 대한 조사나 수사를 시작한 때와 마친 때에는 10일 이내에 소속 기관의 장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수사가 진행 중인 때에는 징계에 관한 절차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국가공무원법」 제83조, 「사립학교법」 제66조의3). 한편 형사처벌에 관한 결과가 금고 이상의 실형이라면 설령 집행유예가 있다고 하더라도 당연퇴직이 되어 공무원 신분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국가공무원법」 제69조, 「사립학교법」 제57조). 이때는 애초에 공무원 신분의 보유를 전제로 한 징계가 의미가 없다. 따라서 교원에 대한 형사 사건에서는 벌금 등으로 끝내서 신분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된다. 더욱이 수사의 결과가 어떤지에 따라 처리의 절차와 수위도 크게 달라진다. 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범죄에 대한 여러 가지 결론을 낼 수 있는데, ‘구공판’, ‘구약식’, ‘기소유예’, ‘혐의없음’, ‘공소권 없음’ 등이 있다. ‘구공판’은 범죄혐의가 충분하고 중대하여 형사 재판으로 넘기는 것이 합당한 경우, ‘구약식’은 범죄의 혐의가 충분하나 벌금으로 결정하는 경우, ‘기소유예’는 범죄의 혐의는 충분하나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기소하지는 않는 경우, ‘혐의없음’은 범죄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 ‘공소권 없음’은 대표적으로 공소시효가 완료되었거나 폭행과 같은 반의사불벌죄에서 합의가 있는 경우 등을 말한다. 각 시도교육청은 「법률위반공무원 처리 기준」을 별도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검사의 처분이 무엇인지에 따라 중징계를 요구할지, 경징계를 요구할지 등을 결정한다. 중징계가 요구되면 파면·해임·강등의 징계가 가능하고, 경징계가 요구되면 정직·감봉·견책의 징계가 가능하다. 당연히 중징계가 요구되는가 경징계가 요구되는가는 징계의 수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이와 더불어 진행되는 징계의 절차도 달라진다. 공립 유치원, 초·중학교 교사의 경우 경징계가 요구될 때는 교육지원청의 일반징계위원회가, 중징계가 요구될 때는 시도교육청의 일반징계위원회가 징계를 결정하게 된다(다만, 공립 각급학교 교장·교감, 고등학교 교사의 경우 경징계와 중징계 모두 시도교육청이 담당). 결국 형사사건 수사의 결과가 징계의 수위와 절차를 크게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교원에 대한 징계의 절차와 불복 방법은? 교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심각한 비위행위이거나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실무상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징계에 관한 절차를 멈추게 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 수사의 결과는 징계의 수위와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교원은 유리한 수사의 결과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집중해야 한다. 수사 결과가 교육청 등에 통보되면 징계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교육청의 감사팀 등 징계요구권자는 징계혐의자인 교원에게 수사와 관련한 자료를 요청하거나 의견을 청취하고 학교장의 의견이나 인사기록을 확인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한다(「교육공무원 징계령」 제6조). 이때 수사에 관한 내용을 징계혐의자인 교원에게 요구할 수도 있으므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아 신문조서 등이 작성되었다면 사전에 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경징계·중징계 요구에 따라 징계위원회가 결정되고 징계 의결이 요구되면, 이와 동시에 교육공무원 징계 의결서 등이 징계혐의자인 교원에게 송부되고, 징계위원회는 징계위원회 개최 3일 전에 징계 등 혐의자에게 출석을 통지해야 하며, 접수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성 관련 비위의 경우에는 30일 이내)에 의결하게 된다(「교육공무원 징계령」 제7조). 이렇게 처리해야 하는 기간이 명확히 정해져 있기에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이 걸리는 수사와 달리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고 여길 가능성이 크다. 이후 징계위원회가 개최되고 이를 통해 징계의 수위가 결정되면 징계권자는 15일 이내에 처분을 해야 하며, 이때 징계처분 사유설명서도 징계대상 교원에게 교부되어야 한다(「교육공무원 징계령」 제17조). 징계처분을 받은 교원은 징계처분이 있은 것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교원소청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9조 제1항). 징계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국·공립학교 교원의 경우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교원소청위원회의 심사·결정을 거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국가공무원법」 제16조 제1항, 「교육공무원법」 제53조 제1항). 즉 반드시 소청을 먼저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소청을 제기할 수 있는 30일은 생각보다 매우 짧은 시간이므로 징계에 대한 불복절차를 위해서는 서둘러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 형사처벌과 무관한 징계도 있다? 형사처벌과 일체 무관한 징계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복무와 관련된 의무위반일 것이다. 국가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허가 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직장을 이탈하지 못한다(「국가공무원법」 제58조 제1항). 그리고 ‘국가공무원 복무규칙’에서 근무상황부나 근무상황카드의 관리·휴가·지각·조퇴·외출·출장 등에서는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하고, 불가피한 경우라면 사후에 지체 없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도 두고 있다(「국가공무원 복무규칙」 제8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복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위와 같이 명백히 법령으로 정해진 의무라는 점을 꼭 염두에 두고 소홀히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또 최근에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교원들의 온라인 활동이 징계와 관련되는 일도 많다. 특히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유지 의무나 겸직금지 의무 위반이 자주 문제가 된다. 교원은 근무시간 중 직무에 전념해야 하므로 설령 개인의 일상에 대한 것일지라도 그 시간 중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수익이 창출된다면 사전에 겸직허가를 받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행동들은 범죄가 되는 행동은 아니지만, 명백히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법률적 근거 교육경력 규정 교육경력은 「교원자격검정령」 제8조 제1항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① 「유아교육법」 제22조 제3항, [별표 1] 및 [별표 2], 「초·중등교육법」 제21조 제3항, [별표 1] 및 [별표 2]와 이 영에서 ‘교육경력’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력을 말한다. 1. 「유아교육법」 제2조 제2호에 따른 유치원과 「초·중등교육법」 제2조 각 호의 어느 하나 또는 「고등교육법」 제2조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학교에서 교원(「교육공무원법」 제22조의2에 따라 둘 이상의 인근 학교를 순회하면서 학생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를 포함한다)으로서 전임으로 근무한 경력.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교원의 경력은 근무시간에 비례하여 산정한다. 가. 「공무원임용령」 제57조의3 또는 「교육공무원임용령」 제19조의5에 따라 통상적인 근무시간보다 짧은 시간을 근무한 교원 나. 「교육공무원임용령」 제13조 제2항에 따라 1주당 6시간 이상 35시간 이하의 범위에서 시간제로 근무한 기간제교원 2. 유치원 교원의 자격이 있는 자로서 「영·유아보육법」에 의한 어린이집의 원장 또는 보육교사로서 전임으로 근무한 경력 - 2의2. 유치원 교원 자격이 있는 사람이 「유아교육법 시행령」 제29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유아교육을 실시하도록 지정받은 기관에서 기관의 장 또는 강사로서 전임으로 근무한 경력(해당 기관이 유아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으로 지정되기 전의 경력은 제외) - 2의3. 「장애아동 복지지원법 시행령」 제5조 제1항에 따른 특수교사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그 자격을 취득한 이후에 「장애아동 복지지원법」 제32조 제2항에 따라 지정된 장애영·유아를 위한 어린이집의 특수교사로서 전임으로 근무한 경력(해당 어린이집이 장애영·유아를 위한 어린이집으로 지정되기 전에 근무한 경력은 제외) 3. 중등학교 교원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 「평생교육법」 제31조 제2항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 인정되는 평생교육과정의 교원으로서 학습자를 전임으로 교육한 경력 4.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외국의 교육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유아교육법」 [별표 1]에 의한 원장 및 「초·중등교육법」 [별표 1]에 의한 교장의 자격인정의 경우에 한함) ② 제1항의 경력이 학교의 졸업 또는 자격증의 취득을 조건으로 하는 것일 때에는 그 졸업 또는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의 경력이어야 한다. 교육경력 인정 여부 교육경력 QA Q. 학교에서 ‘강사’로 근무한 경력이 교원자격검정을 위한 교육경력으로 인정될 수 있나요? A. ‘학교에서 교원으로서 전임으로 근무한 경력’일 경우 인정되며,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포함한 교원 외 산학겸임교사 등의 경력은 자격검정을 위한 교육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Q. 교육경력 산정 시 육아휴직기간이 포함되나요? A. 「교원자격검정령」 제8조에서 명시하고 있는바, 실제 학생을 가르치지 않은 육아휴직기간은 교육경력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Q. 2024년 3월 12일에 55세가 되고, 교육경력은 이미 30년 이상인 교사의 경우 교직수당가산금(1)의 지급 시기는 언제인가요? A. 교직수당가산금(1)은 매월 1일 현재를 기준으로 30년 이상의 교육경력이 있고 55세 이상인 교사에게 지급하는바, 위의 경우 2024년 3월에 지급 요건이 충족되었다면, 2024년 4월부터 지급합니다.
국가장학금 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야당 의원이 문제제기를 하자 교육부가 즉각 해명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인 조정훈 의원(국민의힘)은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2025년 제2회 추가경정예산에서 맞춤형 국가장학금 예산을 4400억원 감액 편성했다고 밝혔다. 조 간사에 따르면 이번 감액에는 대학생 근로장학금 예산 1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그는 이를 두고 “청년의 미래 예산을 깎아 오늘을 메우는 방식은 가장 쉬운 정치이자 가장 위험한 국가 운영”이라고 비판했다. 조 간사는 정부가 예산 조정 사유로 ‘수요가 예상보다 적었다’는 점을 들고 있는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정치가 숫자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근로장학금은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성장하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는 청년에게 단기적인 소비를 위한 현금보다, 스스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 간사는 등록금과 주거비, 교통비 등으로 대표되는 청년층의 생활 여건을 언급하며 “요즘 청년들의 일상은 버티는 데 맞춰져 있다”며 “국가가 청년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잠깐의 위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기회”라고 밝혔다. 그는 “청년의 손에 쥐여줘야 할 것은 쿠폰이 아니라 일하고 성장할 시간과 기회”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조 간사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교육부는 같은 날 밤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반박에 나섰다. 교육부는 “맞춤형 국가장학금 예산 감액이 청년의 미래 예산을 깎아 오늘을 메우는 국가 운영 방식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2025년 제2회 추가경정예산에서 맞춤형 국가장학금 예산이 본예산 대비 4400억원 감액 편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2025학년도 1학기 지원 실적과 2학기 신청 현황, 교내외 근로지 운영 여건 조사 등을 토대로 장학금 유형별 실제 수요를 반영해 조정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25년 맞춤형 국가장학금 전체 예산은 본예산 5조3050억여원에서 제2회 추경 기준 4조9807억여원으로 조정됐다. 이 가운데 국가장학금은 3300억원, 대학생 근로장학금은 1000억원, 주거안정장학금은 100억원 각각 감액됐다. 국가장학금 세부 유형별로는 1유형, 다자녀, 2유형 모두 신청·집행 여건을 반영해 조정됐다는 설명이다. 교육부는 특히 근로장학금과 관련해 “교내외 근로지 운영 여건과 실제 참여 규모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며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거나 지원을 축소하려는 목적의 감액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교육부는 중장기적으로 국가장학금 예산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6년 국가장학금 예산은 5조1161억원으로, 2025년 확정 예산 4조9807억원 대비 1354억원 증액 편성됐다. 이는 국가장학금 지원 단가와 지원 대상을 2025년에 인상·확대된 기준과 동일하게 적용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교육부는 “이번 예산 조정은 재정 여건 속에서 실수요를 반영한 합리적 편성”이라며 “청년 지원을 축소했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학생과 교사가 직접 쓴 책의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가 교육청 주도로 마련됐다. 대구교육청은 3일 대구 수성구 교육청 행복관에서 학생과 교직원 저자를 위한 ‘2026 학생·교직원 저자 출판기념회’를 열고 학교 현장에서 탄생한 책 50편의 출간을 함께 기념했다. 행사에는 학생 저자와 교직원 저자를 비롯해 학부모 학교와 출판 관계자 등 41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출판기념회는 학교 교육과정 속에서 읽고 쓰는 배움을 실천해 온 학생과 교사들이 저자로 성장한 과정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구교육청의 출판 지원을 받아 발간된 도서는 학생 저자 41편 교직원 저자 9편 등 모두 50편이다. 이날 학생과 교직원 저자들은 자신이 집필한 책을 직접 소개하고 교육감에게 전달하며 집필 과정에서의 경험과 소감을 나눴다. 교실과 일상에서 시작된 생각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는 순간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현장에는 따뜻한 응원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올해는 가족이 함께 참여한 책쓰기가 처음으로 지원돼 세대가 함께 쓴 시집 가족의 기억을 담은 여행 이야기 가족 공동 창작 그림책 등도 출간됐다. 학교를 넘어 가정과 지역으로 확장된 책쓰기 경험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또한 창의융합교육원 문예영재반 학생 작품집 교육지원청 글쓰기 프로그램 결과물 공공도서관 가족 창작 프로그램 출판물 전자책 제작 사업 등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나온 책들이 함께 소개되며 대구 독서인문교육의 저변을 보여줬다. 출간 도서는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판매되며 교육청은 개학 시기에 맞춰 학교와 공공도서관에 홍보 자료를 배포하고 저자와의 만남 등 후속 프로그램도 이어갈 계획이다. 대구교육청은 2009년부터 학생과 교원을 대상으로 책쓰기 사업을 운영해 오며 올해까지 총 578편의 도서 출판을 지원했다. 읽는 교육을 넘어 쓰는 배움으로 확장하려는 현장 중심 정책이다. 강은희 대구교육감은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 속에서도 끝까지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완성해 낸 학생과 교직원들의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며 “책을 쓰는 경험이 자신을 믿는 힘이 되고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따뜻하게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숙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을 마주한 날은 유난히 추웠다. 마산의 구도심 창동의 곰탕집에하얀 연기가 오르고 갈치를 굽는 냄새가 났다. 처음 본 시집에는 그녀가 직접 그렸다는 붉은 양귀비꽃 한 송이가 처연히 웃고 있다. 양귀비는 잠, 망각, 죽음 뒤의 안식이라는 원형적 의미를 지닌다.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당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깊은 시름에 빠져 대지를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잠의 신 히프노스가 고통을 잊게 해주는 양귀비꽃을 주었고, 그녀는 그 꽃의 향기를 맡고 잠시나마 슬픔을 잊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표지에 고독하게 핀 한 송이 양귀비는 세상의 소란 속에서 내면의 정원을 지키려는 고립된 자아의 원형으로읽힌다. 그녀의 시는 아프고 슬프고 외롭다. 로그인 시의 울림은 삶을 바꿔 놓을 수 있다. 즉, 시의 주된 기능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가스통 바슐라르는 몽상의 시학에서 말한다. 문학은 존재를 생성케 하는 힘을 포함하고 있다. 자신의 언어가 새로운 존재가 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표현인 동시에 존재의 생성이기도 하다. 박숙희의 시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생성하는 과정 있다. 시에 등장하는 섬, 시, 기억, 물의 이미지를 통해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절절한 삶의 언어가 생성된다. 느낄 수는 있지만 잡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자신을 따뜻한 섬으로 치환하고, 손 내밀면 지나가는 바람과 악수하고, 긴 아픔을 짧은 기억으로 만들고자 한다. 마치 자신을 묶고 있는 무거운 사랑의 굴레를 아프고 슬프게 지우고 빛을 향해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는 같은 시들이다. 1. 섬이 된 그녀 '어떤 장소를 알게 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가?'라는 질문에 이-푸-투안은 공간과 장소에서 "한 장소의 느낌을 획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매일 매일 수년에 걸쳐 반복되는 대부분의 찰나적이고 강렬하지 않은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시각과 청각과 후각의 특별한 조합으로 일몰과 일출시간, 일과 휴식의 시간처럼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리듬의 독특한 조화인 것이라고 말한다. 장소에 대한 감정은 사람의 뼈와 근육에 새겨진다. 박숙희의 시집에서 눈길이 머무는 것은 그녀의 피부와 호흡과 머릿결에 새겨진 그녀의 다른 이름인 ‘섬’이다. 「매물도」, 「모래 위의 잠」, 「오래된 섬」, 「걸어온 섬」, 「섬, 외도·2」, 「매물도 끝사랑」 등의 시편들은 그녀의 세계관이 ‘섬’과 ‘물’, 그리고 ‘기억’이라는 매질(媒質)을 통해 어떻게 변모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슴에 소매물도가 떠다녀서 죽것소 누구 그 매물도 가져갈 사람 없소 바닷가, 물빛 여울목에 자라는 나만의 섬 매 물 도 /「매물도」 전문 들뢰즈에게 사건은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이닥치는 ‘마주침’이다. 시인에게 섬은 고립된 장소가 아니라, 가슴 속에서 떠다니는역동적인 사건이다. “가슴에 소매물도가 떠다녀서 죽것소”라는 표현은 객관적 지명인 매물도가 시인의 섬세한 심상 안으로 들어와 내밀한 통증이자 사랑의 ‘사건’이 되었음을 뜻한다. 누구에게 줄 수도 없는 ‘나만의 섬’은 주체의 내면과 대상이 하나로 겹쳐지는 현장이다. 곧 그녀는 섬이고 그녀가 견디는 슬픔의 무게이다. 「모래 위의 잠」에서 시인은 모래라는 부드럽고 가변적인 질료 위에 ‘잠’과 ‘시간’을 불러들인다. 기억의 기둥은 새의 발자국을 따라 우주 밖까지 나아가는 상상력으로 비상을 꿈꾸며, 다시 “모래를 기둥으로 세워 기억을 덮는” 행위를 통해 흩어지기 쉬운 슬픔을 물질화하여 갈무리하려는 섬세한 의지이다. 별을 올려다보며 모래의 집에 눕는 행위는 우주와 자아가 합일되는 안식이다. 섬은 곧 그녀이고 우주이고 나아가 사랑의 아픔을 심어두고 우주를 향해 팔을 벌려 돌아올 수 없는 마음의 거리에서 그를 보내고 온전한 나로 서려하는 슬프고 힘찬 표상이 보인다. 별이 몸을 푸는 밤 어둠 속을 걷다가 발등 푸르러진 여자가 섬 그림자 속에 들어 캐시밀론 이불 한 채 만든다 접힌 사랑 앞에서 몸으로 바다의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그 섬이 한낮을 내려놓을 때쯤 내 몸에서 포말 냄새를 풍긴다 섬 하나가 산달이 되자 몸속의 강물 소리 들으며 그 여자 몸을 푼다 / 「오래된 섬」 부분 「오래된 섬」과 「걸어온 섬」에서 섬은 시인과 함께 나이 들고, 함께 아파하며, 마침내 함께 ‘몸을 푸는’ 존재가 된다.섬 하나가 산달이 되어 여자가 몸을 푸는 장면으로 시각화하여, 여자는 섬이 되고, 섬은 여자가 된다. 포말을 이불처럼 덮고 바다의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섬세한 심성은, 고통을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전환하는 배치를 보여준다. 파도 소리로 돌아오는 그대, 그대의 긴 늪에 소매물도 만나기 위하여 든 나는 발목이 단단히도 잡혔던 것 등대는 높이 날아가는 갈매기 부리에 단단한 단추를 달아 두었다 꼭꼭 감추어둔 그 집 서랍대문 앞에서 가슴에서 흘러내릴 갈매기 날갯짓 단단히 묶어두기로 한다 /「매물도 끝사랑」 부분 「매물도 끝사랑」에서 시인은 상처 입은 세계를 치유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한다. 갈매기의 부리를 바늘 삼아 갈라진 바다를 꿰매는 이미지는 분리된 것(이별, 질병, 상처)을 다시 삶의 의지와 연결하려는 섬세한 복원이다. 슬픔의 영토에서 벗어나 파도 소리와 등대, 갈매기의 날갯짓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치유의 몸짓으로 볼 수 있다. 외과수술을 하듯 천천히 기워진 마음은 너덜너덜하지만, 그곳에 단추를 하나 달아 여미어 보고 단단히 묶어두고자 한다. 슬픈 사랑도 갈매기 부리를 바늘삼아 천천히 수를 놓으면 떠난 사람에 대한 집착과 갈망이 천천히 정화의 시간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본다. 2. 고통을 먹고 발아하는 시의 씨앗들 내 몸의 일부분이었던 갑상선 암이었던 나비와 이별을 하고 보았더니, 폐암 그 후 시월 첫날 내리는 비는 바다를 그리워한다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바다였을까 중략 오늘 이후 바다로 반성문을 들고 갈 무게가 작아지도록 노력해야겠다 한참을 울고 난 후,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 보니 눈물이 반성문이 되었다 / 「일기 2」 부분 「일기 2」에서 암과의 조우는 육체적 영토를 침범한 거대한 현실이다. 하지만 시인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바다로 반성문을 들고 갈 무게"를 고민하며 죽음의 공포를 깊은 성찰로 승화시킨다. 그녀는 병마와 싸우며 꿈에서도 시를 썼다고 한다. 깊은 어둠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길이 되듯이 자기 안에 숨 쉬는 시의 씨앗이 고통을 거름으로 조금씩 발아하는 것이다. 「병동에 걸린 초상화」는 병마로 인해 육체는 고통스럽게 균열하지만, 오히려 "비워둔 하늘을 향해 가는" 넋의 파편들이 솟구친다. 시인은 고립된 병실 안에서 심연의 강을 묵묵히 응시하며 영혼의 항해를 지속할 때 빛의 스펙트럼 같은 시가 그녀의 곁으로 온다고 이야기한다. 자기 속에서 넘쳐나는 시들이 병동에 걸린 초상화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문자메세지7」에 등장하는 '남천'과 '봉암 갯벌'은 새로운 공간의 변용을 보여준다. 강의 공간인 남천은 "너랑 나랑 만나서" 봄날의 갯벌로 나아가는 장소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의 섬'이며, 이곳에서 가슴 깊이 쌓여있는 슬픔은 비로소 구체적인 위로와 재회의 서사를 얻게 된다. 이 시집에서 인상적인 문자메세지 연작은 주절주절 누군가와 통화하는 듯하다. SNS가 일반화 돼버린 현재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사소한 이야기를 들판의 풀처럼, 하늘의 별처럼 그냥 자동기술법처럼 펼친다. 봄비가 적시듯 그렇게 시인의 입을 통해 나온다. 「약속」에서 "내 안의 우물이 되어 고인다"라는 부분은 시인이 그리워하는 띠뜻한 안식처이다. 시적 자아의 내밀한 섬(우물) 속에 머물게 함으로써, 상처받고 상실한 사랑을 치키는 작은 장소로 치환하는 모습이다. 3. 기억의 진정한 이름은 배웅하는 따뜻한 손길 실비아 슬픈 기억 지쳐있던 아스팔트에 가뭄의 혼적을 지우는 가을비가 내렸다 발이 시리다, 이 몸 詩는 창가에 매미껍질로 떠 있다 밤마다 발이 시리다, 비린 시는 살갗 냄새 촉각을 흔든다 중략 희게 피어날 구름의 시어詩語는 설명할 수 없는 부호를 남기고 용지리 387번지 기적소리 스며들면 거북등같은 마당에 나 실비아로 서서 왔다가 가는, 누군가를 배웅할 것이냐 / 「실비아」 부분 바슐라르는 물을 ‘완전한 슬픔’의 물질이라고 하였다. 박숙희의 시에서 기억은 물의 이미지(가을비, 이슬, 눈물, 강물)에 동반한다. 「실비아」에서 가을비는 아스팔트의 가뭄을 지우지만, 화자에게는 "발이 시리다"는 촉각적 통증으로 전이된다. 이는 그리운 이에게 닿지 못한 결핍이 기억이라는 액체가 되어 시인의 심층(발)으로 흘러들었음을 의미한다. 추억은 기억 속에서 박제된 것이 아니라 비로, 눈물로 이슬 등으로 치환되어 현재의 감각을 뒤흔들고 있다.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 평행선 아랫목 공간 속 자리 잡는 기침병명 커턴 사이로 비스듬히 누운 바퀴발자국 야인의 기억이라며 이탈하지 않는 헐렁한 유혹이다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 평행선 그 경이로움에 다가가 본다고 해서 뼈마디의 찬바람은 사랑을 담아내지 않는다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 평행선 동상 걸린 손금을 따라나선 사랑의 온기 젖은 신발을 말린다 알맞게 익은 짧은 울음 기억 평행이론술의 빛깔이다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 /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 전문 기억이 물의 형태를 띠다가도 다가가지 못하는 좌절의 순간에는 차가운 얼음으로 변모한다.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에서 반복되는 ‘평행선’은 결코 만날 수 없는 나와 그의 거리를 상징한다. 다가가려 노력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뼈마디의 찬바람"과 "동상"이다. 이는 ‘물의 응고’이며, 유동적이었던 사랑의 기억이 상처로 굳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시인의 심층 기저에는 ‘닿을 수 없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얼어 있다. 시인에게 긴 아픔이었던 사랑을 짧은 기억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보인다. 그가 준 깊은 아픔이 아직도 그녀의 심장에 얼음으로 남아 삶의 갈피마다 다가선다. 하지만 이 차가운 기억 속에 침잠하지만은 않는다. 「그대에게」와 「슬픈 기억」에서 등장하는 불(촛불, 노을, 태양)로 스스로 정화하고 있다. "젖은 신발을 말린다"라는 행위는 물(슬픔)과 불(온기)이 만나는 지점이다. 시인은 슬픈 기억을 불의 온기로 말리며, 고통을 "알맞게 익은 짧은 울음"으로 승화시킨다. 시인이 생각하는 기억의 진정한 이름은 ‘배웅하는 손길’이다. 시인은 용지리 387번지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강물로 흘러가는 기억들을 향해 손을 흔듭다. 그 손은 "섬섬옥수"처럼 곱지만, 동시에 "동상 걸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운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한 기억의 소산들은 강기슭의 물줄기가 되어 흘러가지만, 시인은 그 흐름을 막지 않고 온전히 몸으로 겪어낸다. 결국 실비아에게 기억이란 상실의 고통을 물질화하여(물과 불), 자신의 영혼을 닦아내는 가장 고독하고도 아름다운 수행인 것이다. 로그아웃 빛의 스펙트럼으로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 박숙희 시학의 중심에는 육체의 고통을 우주적 빛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헌신이 있다. 섬이 산달을 맞이하고 몸속에서 강물 소리를 듣는 그 경이로운 순간은, 아픔의 임계점을 넘어 새로운 생명을 밀어 올리는 시인의 환희를 보여준다. “몸살하는 봄을 끓였다”라는 고백은 자신의 생을 뜨겁게 달구어 낸 사랑의 증거이다. 육체의 고열(高熱)을 통과하며 슬픔의 찌꺼기는 증발하고, 그 자리에는 무지개색 빛의 정동(Affect)만이 찬란한 무늬로 남았다. 그녀의 가슴 안에서 묵묵히 발효된 시의 씨앗들은 이제 민들레 홀씨가 되어 경계를 허물고 도약한다. 시인의 방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낯선 풍경 속으로 흩어지는 그 여린 입자들은, 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가장 따뜻한 초대장이다. 자신의 상처를 보편적인 빛으로 환원시켜 우리 모두를 위로하겠다는 다정한 약속이다. 바람과 악수할 수 없던 옛 안타까움은 이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환한 빛의 스펙트럼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문다. 이제 시인은 “아무 이유 없이 바람이 되어 웃는” 자유롭고 맑은 영혼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침묵하는 신의 곁에서 시인은 묵묵히 ‘시 밥’을 짓는다. 누구도 정답을 일러주지 않는 고독한 삶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끓여 따뜻하고 향기로운 시의 양식으로 내어놓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가 곧 시 밥을 짓는 일이라 말하는 시인의 뒷모습은, 지극한 평범함 속에 감춰진 거룩한 성자의 그것과 닮아있다. 시 밥을 짓는 세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박숙희 시인의 앞날에 눈부신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고통의 갯벌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발걸음이 앞으로 더 넓은 빛의 지도를 그려내며, 한국 시단의 귀한 밀알로 발아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초등학교 현장의 실천적 연구를 통해 초등교육 발전과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한국교총이 주관하는 제63회 전국초등교육연구대회 일정이 2일 공고됐다. 대회 추진 요강에 따르면 연구보고서 접수 기간은 7월 31일부터 8월 6일까지다. 이후 8~9월 예비심사 및 본심사를 거쳐 10월 초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연구대회 주제는 ‘행복한 학생, 존중받는 교사, 교육을 바로 세우는 미래 학교’이며, 출품 부분은 ▲학교·학급경영 아이디어 연구 ▲교수-학습지도안 개발연구 ▲평가자료 개발연구 ▲인성교육 및 창의적체험활동 자료 개발연구다. 출품 자격은 초등교원(교장, 교감, 수석교사, 전문직 포함)으로 출품신청서 1부, 제본된 연구보고서 1부와 연구보고서 HWP 파일 또는 PDF 파일을 USB 등 저장장치에 담아 제출하면 된다. 1964년 최초로 승인을 받은 전국초등교육연구대회는 시·도대회를 거치지 않는 전국규모의 연구대회로 입상 시 1등급(교육부장관상 및 푸른기장증) 1.50점, 2등급(한국교총회장상) 1.25점, 3등급(한국교총회장상) 1.00점의 연구실적 평정점이 부여된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교총 홈페이지(www.kfta.or.kr) ‘연구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AI 시대 대응, 청년 고용, 민생 회복, 복지 확대, 사법개혁 등 국정 전반에 대한 구상을 제시한 가운데 교육이 소외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정 전환기 속에서 교육의 위상과 역할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연설은 전반적으로 ‘AI 고속도로’, ‘기본사회’, ‘모두의 성장’ 등 미래 담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가져올 문명사적 전환, 청년 실업과 양극화 해소, 지역 소멸 대응, 균형발전 전략까지 폭넓게 다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를 떠받칠 핵심 기반인 교육 정책, 공교육의 역할, 학교와 대학, 교원과 학습 체계에 대한 언급은 연설 전반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특히 AI 시대 적응을 강조하면서도 교육은 구체적 정책 영역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연설 말미에서 ‘모든 국민이 AI를 도구로 삼을 수 있도록 학습의 기회를 열어야 한다’는 원론적 언급은 있었지만, 공교육 체계에서의 AI 교육 방향, 교원 역량 강화, 학교 현장의 변화에 대한 설명은 빠졌다. 청년 고용 문제 역시 직업훈련과 교육 연계보다는 법·제도와 지원책 중심으로 언급됐다. 이번 정부 주요 교육공약 중 하나인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지방 균형발전의 수단으로 다뤄졌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가진 함의인 지역 교육 기반 강화나 지방 대학과 학교의 역할에 대한 논의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상당부분을 정치권 이슈에 할애하면서 교육현안을 언급할 기회는 사라졌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당 대표연설에서 교육이 이처럼 주변화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AI·청년·복지·균형발전 등 거의 모든 국정 의제가 교육과 직결돼 있음에도 교육을 국정 과제의 중심 축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국정 운영의 밑바탕이 돼야 할 교육이 정책 담론에서 빠질 경우, 미래 전략 역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조성철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AI 시대 인재 양성, 사회 이동성 회복, 청년 문제 해결, 지역 균형발전 모두 교육을 떠나서는 성립하기 어렵다”며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여당 대표연설에서 교육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현 정부·여당의 국정 우선순위에서 교육이 뒤로 밀려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한동대는 2일 경북 포항시 교내 효암채플에서 제8대 박성진 총장 취임식을 개최했다. 박 총장의 임기는 2030년 1월31일까지 4년간이다. 박 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크리스천 교육플랫폼 구축을 통한 크리스천 혁신세대 배출’을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벤처 플랫폼의 중심에서 혁신을 주도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동대가 가진 국내 최대의 크리스천 네트워크 강점을 활용, 크리스천 혁신교육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포항공과대 1회인 박 총장은 1991년 포항공과대 기계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후 LG전자 생산기술원 선임연구원, (주)쎄타텍 연구총괄 이사, 펜실베니아 주립대 연구원, 미시시피주립대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고 2009년부터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포스텍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와 포스코홀딩스 전무(산학협력실장) 등을 지냈으며, 산학협력과 기술사업화 분야에서 활동했다. 이밖에도 경상북도 정책자문위원장과 지방시대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 이날 취임식에는 이재훈 학교법인 한동대 이사장, 한동대 5~6대 총장을 역임한 장순흥 부산외국어대 총장, 김일만 포항시의회 의장, 강민석 흥해지역기독교교회연합회장, 민준호 총동문회장 등 주요 내빈과 교직원, 학생, 학부 등이 참석했다.
학교폭력 사안 심의 과정에서 장애학생의 의사와 피해 상황이 보다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절차적 권리를 강화하는 법안이 추진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기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0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장애학생 또는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특수교육 전문가 또는 장애인 전문가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학생과의 분쟁조정 등을 심의하며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이 장애학생인 경우 특수교육교원 등 특수교육 전문가 또는 장애인 전문가를 출석시키거나 서면 방식으로 의견을 청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학생은 의사소통 능력과 인지 이해 능력의 제약으로 인해 학교폭력 심의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거나 피해 상황이 온전히 드러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현행 규정은 전문가 의견청취가 임의규정에 그쳐 실제 운영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정안은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심의위원회가 장애학생 또는 그 보호자의 의사를 확인하고 장애학생 또는 보호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특수교육 전문가 또는 장애인 전문가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통해 장애학생이 심의 절차에서 적합한 보호와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절차적 권리를 강화하려는 취지다. 이번 개정안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6조의2제2항에 단서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며 법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기헌 의원은 이번 법안 발의를 통해 학교폭력 사안 심의 과정에서 장애학생의 권리가 보다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