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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여성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은 여성들을 위한 보직및 승진할당제 도입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3일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도내 여성 공무원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0.6%가 근무평정에서 남자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직배치에 대해서도 47.4%가 "매우 또는 대체로 불리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다수(86.9%)가 승진에 있어 여성할당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할당제 적정비율로는 보직의 경우 '30%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승진은 30% 이상이 가장 많았다. 여성 공무원들은 또 주요부서 근무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수락하겠다(44.7%)는 의사를 보였다. 다만 희망 근무처에 대해서는 초.중학교(26.3%), 직속기관(23.7%), 고교, 지역교육청(각 18.4%), 도교육청(13.2%) 등 순으로 답해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높은 교육청 근무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여성공무원의 경우 육아, 가사 등으로 업무가 많은 부서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여성공무원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해 이번 조사 내용을 참고해 인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립의 5분의 1도 안 되는 공립 유치원감 자격연수 인원을 좀 더 여유 있게 늘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립 재직 시 11년 만에 원감 자격을 받고 공립유치원에 임용된 교사가 4년 만에 원감이 돼 이에 대한 공립 교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공사립 유치원 교사들은 1정 자격 취득 후 3년이 지나면 원감 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다. 이에 사립은 원장의 추천을 받아 매년 150명 내외가 원감연수를 받고 있고, 보통 총 경력 7~10년에 이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러나 공립은 행자부의 원감 티오에 따라 빠듯한 연수를 진행하면서 매년 20명 내외가 연수를 받는다. 자연 18년 이상 고경력자에게 차례가 돌아가고 최근에는 보통 24, 25년 경력자는 돼야 연수를 받는다. 문제는 원감, 원장 자격을 일찍 딴 사립 교사가 임용시험을 거쳐 공립유치원에 채용되는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 과정에서 4, 5년 이상 경력이 높은 공립 교사들을 제치고 먼저 원감이 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2001년 경기도에서는 사립에서 원감 자격을 취득한 교사가 총경력 15년(사립 11년, 공립 4년) 만에 공립 유치원감이 됐다. 당시는 20년 경력의 공립교사도 원감 자격연수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기도교육청 담당자는 “원감 연수를 받은 공립 유치원 교사가 한명도 남아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발령을 냈다”고 해명했다. 99년 원감 티오는 6명이 내려왔지만 공립 대기자는 5명뿐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은 91년 20명의 공립교사에 대해 원감연수를 실시한 후, 매년 2~5명을 원감으로 배치하면서 98년까지 공립 교사에 대해 단 한명도 추가 연수를 시키지 않았다. 98년 3월 배치 후, 단 4명의 공립 대기자가 남았지만 그해 겨울 연수를 시키지 않아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 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이하 연합회) 정혜손 회장은 “예산 타령에 수급 사정 운운하며 공립 교사에 대해 쥐꼬리 연수를 시킨 결과”라며 “더욱이 현재도 사립에서 원감 자격을 따고 공립으로 넘어온 교사가 16명이나 되고 앞으로 더 늘어날 추세인데도 여전히 공립에 대한 연수는 턱없이 적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2006년 2월 현재까지 공립 원감자격 취득자는 387명인 반면 사립 원감자격 취득자는 3000여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공립 유치원 교사가 6000명, 사립 교사가 2만명임을 감안해도 너무 적다. 경기도는 2005년 35명에게 원감연수를 시켰으며 이중 공립은 3명이었다. 올해도 원감 티오를 못 받은 충북은 5명의 대기자가 있어 최근 5년간 공립 교사에 대한 연수가 없었다. 문제는 올 3월 발령 이후에는 공립에서 원감자격을 딴 임용대기자가 없거나(경기, 전남) 1~5명만 남는 시도가 9개나 된다는 점이다. 24년 만에 원감 자격연수를 받은 연합회 엄미선 부회장은 “이들 시도가 올해도 공립 원감 연수를 안 하거나 극소수만 시킬 경우, 티오에 따라 낮은 경력의 사립 출신 교사가 원감이 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장명숙 부회장은 “전국적으로 교육청 유아 담당 장학사의 절반이 유아 전공자가 아닌 상황에서 자칫 사립 출신 교사가 원감 자격 취득 이후 경력이 더 길다고 공립 원감 자격자보다 유리하게 적용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권옥자 연구관은 “무엇보다 각 시도가 공립에 대해 좀 더 연수인원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며 “동시에 공립 교사들도 혹 몇 년간 원감 발령이 나지 않더라도 불만을 토로하며 교육청을 압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소한 원감이 배치되지 않은 3학급 이상 유치원 수보다 임용대기자가 훨씬 적은 서울, 경기,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은 공립교사에 대한 연수인원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연합회는 또 “사립교원의 전입이 있을 때는 총경력 기준으로 각종 가산점을 합산해 기존 임용대기자와 함게 승진후보자 명부를 재작성하도록 승진규정을 개정해 형평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김진표 부총리에게 “사립유치원의 원감 자격 양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감임용예정각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공립유치원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총경력 13~15년 이상자로 대상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만한인, 임시정부 아닌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군 지지 국민당보다 공산당이 만주동포 우호정책 실시했기 때문 중국공산당 ‘민족자치’ 원칙과 한인의 ‘혁명전통’ 결합 해방 후 ‘연변조선족자치주’ 탄생하게 하는 주요 계기 만주와 한국 근·현대사 20세기 전반기 일제 강점기에 ‘만주’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였다.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평안도와 함경도 주민들은 재난에 따른 굶주림과 부패관리의 토색질을 피해 이 땅으로 건너갔고, 어떤 사람들은 진인(眞人)이나 정도령이 있는 ‘이상향’을 찾아 이곳을 찾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또 적지 않은 애국지사들은 독립운동을 위한 정치적 동기에서, 1930년대 이후에는 주로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로 이주되기도 했던 것이다. 만주는 1930년대 이후 일부 친일 한인들에게는 ‘별천지’일 수 있었으나,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이별과 한숨, 눈물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20세기 초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수많은 단체와 애국지사들이 비장한 각오로 일제와 결전을 벌였던 투쟁의 공간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있었던 사건이나 인물들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이곳을 빼놓고 한국현대사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특히 남한과 북한의 날카로운 대립이 계속되던 1960~70년대에 양 분단국가를 통치한 박정희와 김일성은 모두 만주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1940년대 전반기 박정희와 김일성은 일본군 장교와 항일빨치산이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었다. 이들의 만주에서의 경험은 이들이 각각 북한과 남한에서 정권을 잡은 뒤 국가운영과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지만, 북한을 영도했던 김일성이 이곳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은 오늘날 북한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핵심요체이다. 동북항일연군교도려 1943년 초여름 소련 하바로프스크 부근 브야츠크촌에 있는 소련 적군 88여단 본부 앞에 서 기념촬영한 주요 간부들.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일성, 세 번째가 여단장 주보 중, 그 옆은 주보중의 부인 왕일지. (중앙일보 현대사연구팀, ‘발굴자료로 쓴한국현대사’, 중앙일보사, 1996, 108쪽) 한국현대사를 좌우한 박정희는 물론 최규하·전두환 전 대통령 등도 만주지역과 깊은 연고가 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황군’ 장교로 친일부역했으나, 일제 패망 직후 임시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에 가담하는 등 놀라운 변신을 보여 주었다. 최규하 역시 만주국 관리로 근무했으며, 전두환은 길림성 반석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범석(李範奭), 군인·외교관과 정치인으로 크게 활약한 김홍일(金弘壹), 지청천(池靑天) 등이 이곳에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분투하기도 했다. 또한 만주는 1946년부터 1949년까지 계속된 중국 국공내전의 승패를 가름한 결정적 전장이 되었던 곳이다. 이 때문에 만주는 우리민족의 비극인 ‘6·25전쟁(한국전쟁)’의 발발과 확산, 지연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처럼 만주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격변의 요충지였다. 해방 전후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동향 독립운동은 ‘민족운동’ 또는 ‘민족해방운동’이라고도 한다. 특히 한민족과 같이 식민지로 전락한 약소민족이 전개한 독립운동은 그 성격이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이라 할 수 있다. 1860년대 이후 압록강·두만강 건너편의 서간도와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한인)들이 한인사회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독립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곳은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전후해 주요 국외 독립운동기지로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대 이래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각종 학교들을 통해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많은 독립군 단체들이 결성되어 강력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등을 통해 빛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1930년대 말까지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군과 중국공산당 계열 항일무장투쟁 세력의 활동이 계속되면서 만주지역은 무장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항일세력은 19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반에 거의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혁명당 계열은 일제가 패망한 뒤 중경(重慶) 임시정부 및 한국독립당·한국광복군, 그리고 중국국민당 및 국민정부군 계열과 연계하여 다시 다양한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예를 들면 김학규(金學奎) 등은 해방 직후 남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계열의 한국독립당 동북당부와 ‘장연민주자위군(長延民主自衛軍)’으로 결집되었다. 이들은 1946·7년경 김구 등 임시정부 세력의 ‘만주계획’에 따라 한국과 미국 등의 반공·동북아 전략에 부응해 정치세력화 하는 동향을 보였다. 한편 이들과 달리 대다수의 재만한인들은 중국공산당과 연계된 동북항일연군 계열이나 조선의용군·조선독립동맹 세력을 지지했다. 그것은 중국국민당보다 중국공산당이 훨씬 더 동포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후반 남만주 지역에서 투쟁하던 김일성 등의 잔존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은 일제의 탄압에 쫓겨 1940년 12월 소련·만주국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도피했다. 1942년 7월 소련 극동군은 월경한 동북항일연군 제1·2로군을 ‘동북항일연군 교도려’로 편성하고, 다시 8월1일 ‘소련 적군 88특별저격여단(일명 88독립보병여단)’으로 개편했다. 이 때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 계급을 받고 제1영장에 임명되었다. 이 부대의 한인은 140~180명 정도였다. 이들 가운데 점차 김일성이 부상했다. 최용건(崔庸健)·김책(金策) 등이 선배였지만, 그를 지도자로 추대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만주지부 산하의 한인 항일빨치산 그룹은 1930년대 후반 ‘조국광복회’ 등의 대중조직을 형성했다. 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방 직후 북한사회에서 ‘통일전선’과 ‘민주기지론’ 전략·전술을 채택하여 결국 북한정권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북한에서 김일성 등 항일투쟁 세력이 크게 득세한 반면, 남한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해방 직후 미군정의 임시정부 미승인 정책과 임시정부의 미군정과의 대립, 개인적 역량의 차이, 이승만정권의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오히려 친일세력이 득세하였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만주 독립운동 세력과 ‘연변조선족자치주’, 6· 25전쟁 일제가 ‘만주’를 강점하고 1932년 3월 괴뢰국가 ‘만주국’을 세웠다. 이후 이곳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재만한인들의 항일투쟁은 해방 이후 만주지역에서 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당을 물리치고 그곳을 장악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였다. 즉 한인 대중의 중국공산당 등 관련 단체 참가, 항일유격대 및 근거지, 자치조직과 무장투쟁의 경험 등이 중국공산당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던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상황은 해방 후 연변지역에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탄생케 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 곧 항일무장투쟁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제기한 ‘민족자치’의 원칙과 그 실현이 한인들의 ‘혁명전통(항일투쟁과 중국공산당 참여)’과 결합되면서 일정한 자치조직을 결실케 한 것이다. 즉 195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치되고, 다시 1955년 12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고 불렀던 중국 연변지역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우리와 같은 핏줄인 조선족 동포의 자치가 실시되고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중국공산당이 만주를 석권한 직후인 1949년 7월부터 1950년 4월까지 만주의 한인으로 구성된 중국인민해방군 사단 병력 35,100여 명의 병력이 북한인민군 제6·5·12사단으로 개편되어, 6·25전쟁 개전 초기 북한군의 핵심 전력이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아침 38선을 돌파한 남진 보병 21개 연대 무려 10개 연대가 만주 한인(조선족) 부대였다고 한다. 이들은 광복 직후 주로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의용군을 기반으로 중국의 내전에 참전하여 풍부한 경험을 쌓았으므로 전쟁 초기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만주의 한인들은 이처럼 한국현대사에 깊숙이 개입되었던 것이다. 6·25 전쟁 중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신의주 부근 압록강 단교의 모습. 한반도와 만주를 가로지르는 압록강과 현재의 압록강 철교가 만주와 한국현대사의 상관성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만주지역 독립운동과 한국현대사의 상관성 및 의미 1930년대 초 만주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지청천·김학규 등 일부 인사들은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민족혁명당이나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등 관내 독립운동의 발전에 공헌했다. 알려져 있듯 우리민족은 ‘8·15해방’ 직전까지도 도처에서 무장투쟁을 지속했다. 특히 동북항일연군 교도려 산하 한인들은 연해주와 만주를 오가며 나름대로 ‘항일전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를 타도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으며 한국광복군도 독자적 작전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는 결국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쉽게도 미국과 소련·영국·중국을 비롯한 열강은 임시정부를 끝내 승인하지 않았고, 한국광복군이나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일제와의 항전을 승전국 자격요건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주지역에서 전개한 독립운동은 1910년까지 지속되었던 전제군주체제를 청산하고 근대 국민국가의 정체인 민주공화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 한인 교민들을 기반으로 한 여러 독립운동 조직에서 이를 실천함으로써 근대적 국민국가 건설의 기초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만주지역 독립운동은 ‘과거의 기억’으로 점차 잊혀져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온갖 열악한 조건을 무릅쓰고 투쟁했던 선열들의 치열한 몸부림과 그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거대한 ‘국제화’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자주와 독립의 소중한 가치,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할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만주, 즉 중국 동북지방은 우리의 생존과 운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지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곳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해 미래의 발전전략 및 통일문제 등과 밀접히 연계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제 만주를 ‘한민족이 잃어버린 고토’가 아니라, 동북아 여러 나라와 민족이 평화롭게 교류하며 어울려 사는 ‘평화와 공존’의 무대로서 새롭게 인식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특히 이곳에는 조선족 동포들이 있지 않은가? 필자소개 장세윤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다음달 초 개교예정인 광주지역 일부 신설 초.중학교의 건축공사가 늦어지면서 학생들이 새집증후군에 노출될 위기에 처했다. 13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다음달 초 개교예정인 6개 초.중학교 중 광산구 도산동 도산초와 북구 일곡동 일신중 등 2개교는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다. 시교육청은 이달 말까지 이들 학교의 건축공사를 마무리 한 뒤 다음달 2일 개교할 방침이어서 이들 학교에 다닐 학생들은 페인트 등 신축 건축자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해물질로 인한 새집증후군 노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시교육청은 새집증후군에 적극 대처하기위해 신설학교를 개교 2개월전 완공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지난달 24일 완공된 북구 양산동 양지초의 경우도 이 같은 시교육청의 2개월 전 완공 방침에 미달한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눈이 많이 와 일부 학교의 공정이 늦어졌다"며 "난방 가동 등으로 건물 내부 온도를 높여 건축자재 등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을 방출.환기시켜 개교후 유해물질이 배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달 초 개교예정인 광산구 본촌동 지산중(7월)과 서구 풍암동 운리중(6월), 광산구 신창동 신창중(8월) 등 3곳은 지난해 완공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단계에서 특수학급을 설치를 확대하여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이 많이 이미 상대적으로 많이 설치되어 있지만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특수학급이 많이 설치되어 있지 못하다. 그에 따라 고등학교 단계의 장애인들이 충분한 교육기회를 가질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단계의 특수학급을 설치하는데 있어서 인문계 고교보다 실업계 고교에 특수학급을 우선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 이유로 실업계 고교의 장애인 대상 일반학급 통합교육을 통하여 몇 가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일반학생과 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을 통해 장애인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 및 사회적 책임감 형성을 유도한다. 둘째, 실업계 고등학교의 실습교육을 통한 직업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특수학급을 다음과 같이 연차별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첫째, 교육청의 예산사정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든 실업계 고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하는 것이 힘드므로 연차별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둘째, 장애 학생 희망에 따라 실업계 고등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한다. 실업계 고교에 대하여 진학하려는 장애학생들의 요구를 조사하여 도교육청은 단계적으로 실업계 고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한다. 셋째, 전국의 255개 시․군․구의 지역별로 실업계 고교 1개교 이상 설치한다. 또한 시․읍 지역에 위치한 학교를 우선적으로 설치한다. 넷째, 실업계 고교중 남․여공학인 학교에 우선적으로 설치한다. 왜냐하면 장애학생들에게는 남녀가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실업계 고등학교중 종합고교가 아닌 실업고와 순수 실업고교에 설치한다. 인문계와 공동으로 운영되는 종합고교보다는 순수 실업계 고등학교에 우선적으로 특수학급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업계고교에 설치를 단계적으로 하되 그전에 우선적으로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특수학급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실업계 고교에 학급당 인원 연차별 감축하여 특수학급을 증설한다. 이를 통하여 장애학생이 특수학급에 진학하려면 인문계 고등학교보다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학생들의 장래를 위하여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실업계 고교에 장애인대상 특수학급을 우선적으로 설치 운영하고 기존의 실업계 고교의 특수학급을 지원하기 위한 교사배치, 프로그램개발, 시설지원, 학교장, 교사, 학생들의 이해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이 우선적으로 실시되어야 하겠다.
두발 단속에 대한 고교생과 교사의 시각 차이가 뚜렷하고 전교조와 교총 교사간 의견 차도 심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3일 성공회대에 따르면 이 학교 대학원 사회교육전공 이근호씨는 이런 분석 결과를 담은 논문 '두발규제에 관한 학생인권의 한 연구'로 이달 말 석사학위를 받는다. 서울 7개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 455명과 교사 154명을 상대로 작년 9월12~23일 두발단속의 필요성을 묻는 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사 응답자의 66.9%가 '필요하다' 혹은 '매우 필요하다'고 답한 반면 학생들은 10.3%만 긍정적 답변을 내놨다. 교사 응답자 중 '별로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렇다'는 응답은 각각 17.5%, 10.4%에 그쳤으며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은 5.2%에 불과했다. 반면 학생들은 그저 그렇다'(24.4%), '별로 필요하지 않다'(37.1%), '전혀 필요하지 않다'(28.1%) 등 중립 혹은 부정 답변 쪽으로 기울었다. 조사 대상 교사들 중 교총 소속은 24명 중 87.5%(21명)가 '필요하다', '매우 필요하다' 등 긍정적 답변을 한 반면 전교조 소속 교사 49명은 긍정 44.9%(22명), 중립 12.2%(6명), 부정 42.9%(21명)로 나타났다. 이씨는 논문에서 "두발단속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인권 침해 논란까지 생기고 있다"며 "학생들은 '인권'의 측면을, 교사들은 '교육' 측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폭넓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북도교육청이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본격 착수하면서 농촌 지역 학부모와 교사들이 "경제 논리에 따라 반교육적 통폐합을 강행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13일 전북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교육부가 2009년까지 전국 농어촌 소규모 학교 1천976곳을 통폐합하기로 한 데 따라 도교육청은 지난달 18일 15개 시.군 교육청과 협의회를 열어 도내 초.중.고교중 '통폐합 추진 추정교' 108곳을 선정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학생수가 100명 이하인 학교를 통폐합 할 경우 도내 학교중 40%가 대상이 된다"며 "일단 학생수가 50명 이하인 학교로 범위를 좁혀 '추진 추정교'를 정했다"고 말했다. 도교육청은 학생 50명 이하 초중고교 759곳중 지역 여론과 '1면(面)1교' 원칙 등을 고려해 108개교를 선정, 시.군 교육청에 통보했으며 이를 토대로 이달 중순까지 학교측과 주민 의견 등을 수렴해 1차 통폐합 후보 학교를 정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시.군 교육청은 지난달 말부터 선정 학교를 대상으로 통폐합 일정 수립과 협의회 구성 등의 절차에 착수하면서 본격적인 통폐합 작업에 돌입했다. 실제로 군산교육청의 경우 내흥초와 대야남초, 임피중 등 학생 수가 50명(분교20명) 이하인 초.중교 12곳을 통폐합 대상 학교로 확정하고 2009년까지 연차적으로 통폐합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촌 지역 학부모와 교사들은 "경제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통폐합이 강행되고 있다"며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내 농촌 지역 교사들의 모임인 전북농촌교육연구회는 성명을 내고 "도교육청이 교육부의 통폐합 정책에 따라 일방적으로 일선 학교에 통폐합 추진위원회를 구성토록 지시하는 등 농촌의 생활 기반을 붕괴시키는 반교육적 행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 최규호 교육감이 지난 선거 당시 농촌 교육을 활성화하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교육부의 통폐합 계획이 나오자 이를 갑자기 번복했다"며 통폐합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김제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도 "지난달 30일 시교육청이 34개 학교중 12곳을 폐교 대상 학교로 정하고 통폐합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지시했다"며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 수렴이 전혀 없이 경제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통폐합이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역 여론이 반대할 경우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방침에는 변동이 없다"며 "학생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 통폐합 대상을 신중한 검토를 거쳐 단계적으로 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에서 재건축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 반포동 원촌중학교 재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키로 해 교육당국과 마찰이 예상된다. 12일 서울 강남교육청에 따르면 이 학교 2학년생 300여명과 학부모들은 15일부터 학교 임시이전을 요구하며 등교 거부 운동에 돌입하는 한편 진행 중인 공사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3학년생들은 15일 졸업식에 참가키로 해 '졸업식 무산'등 극단적인 파행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 모임 대표 이현미(42ㆍ여)씨는 "2월 중 등교하는 날은 15일 하루뿐이어서 재학생들은 일단 이날 등교를 거부하고 방진 마스크를 쓴 채 공사로 인한 피해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학교에서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3월 신학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등교 거부를 계속하겠다"며 "다만 3학년들 졸업식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교육청은 원촌중에 대해 신입생 배정을 하지 않기로 했고 현 1학년생 전원과 2학년생 중 희망자 30명을 인근 학교로 전학시킬 예정이어서 이 학교에는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재학생 300여명만 남게 된다. 강남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공사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며 학교 임시 이전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여건상 당장 수용키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다수 학부모들이 원하고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가 임시 교사(校舍) 건축을 책임지고 시행한다면 학교 임시 이전을 추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건축 중인 반포 주공3단지 아파트 단지 내부에 있는 원촌중 학생들 200여명은 지난달 중순 "이 아파트에 대한 철거 공사가 지난해 11월 시작되면서 소음과 분진 등으로 건강권, 환경권,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인천 남구 옥련동에 위치한 옥련여자고등학교(교장 장기숙)는 겨울방학을 이용 '세상의 중심에 서자!'라는 주제로 '2006 옥련 겨울캠프'를 개최 참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교과연구회 주관으로 겨울방학 내내 거행된 이번 캠프는 논술·구술, 영어, 수학, 과학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학년별 단계와 수준에 맞게 구안하고 적용하였다. 논술·구술 분야 '조리 있게 쓰고 말하자'는 자체 교사진과 외부 강사가 협력하여 시청각 자료 등을 활용 직간접 체험 위주의 강도 높은 캠프를 운영하였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구술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가운데 실전 위주의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영어 분야 'Speak-up English'에서는 원어민 교사 3명을 확보 수준별 회화 교실을 개설했고, 영어논술과 구술반을 편성하여 운영하여. 정규 수업 과정에서 부족한 회화를 집중 이수하게 했고 표현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 주기 위해 논술·구술을 병행하여 입체적 캠프를 실시했다. 수학 분야 '도전,수학'는 3개 반을 수준별·단계형으로 편성 학생 개인별 학습 능력과 문제해결력을 고려하여 캠프를 진행해, 평소 부족한 영역에 대한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졌다. 또 과학 분야 '과학은 생활이다'는 ‘생물반, 화학반, 물리반, 지구과학반’으로 나누어 학기 중에는 시간 제약 등으로 다루기 어려웠던 내용을 실험과 실습 위주로 진행 각 영역의 기초에서 심화까지 전반적인 과학의 흐름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 캠프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짜임새 있는 운영을 위해 ‘논술·구술 길라잡이, A good guide to interview in English, 수학 길라잡이' 등의 과정별 교재를 제작하여 활용하고 보급했다. 그리고 교과 관련 외에도 1학년 40여명을 봉사체험단으로 구성 외지 섬 소록도를 찾아 4박 5일간 체험봉사활동을 펼쳐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새기게 했다. 한편 이러한 학교 자체 캠프가 학교에서 실시한 방학캠프를 통해 두 가지 시사점을 찾게 하고 있는데. 하나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사교육비 절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맞춤형 캠프로 학생의 교육적 요구를 수용한 점이다. 이번 캠프를 계기로 한층 더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활동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교육부가 교장자격 기준을 완화하고 무자격에게도 교장 임용을 가능케 하는 교원정책개선안을 교육혁신위에 넘겼지만, 영국과 미국은 이와는 반대로 교장자격을 강화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가 수집한 외국사례와 지난달 19일 교육혁신위 교원정책개선특위가 개최한 워크숍에서 노종희 한양대 교수의 발제자료, 최봉섭 본지 영국 통신원 기고에서 확인되는 내용들이다. 이는 ‘교장직을 개방하면 학교가 좋아질 것’이라는 교육부와 일부 학부모 단체들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사례들로, 그 외 교장 정년과 임용주관 기관 등은 국가 특성에 따라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영국 국가교장자격증 법제화=교육부, 노종희 교수, 최봉섭 통신원에 의하면 영국은 2004년 4월부터 신규 임용되는 교장에게 국가교장자격증(national professional qualification for headship) 소지를 의무화하고 있다. 교육부는 ‘영국이 98년 공포한 ‘고등교육 및 교원관련법’에서 국가교장자격증제도를 법제화했고, 이것이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종희 교수는 “국가교장자격증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국립학교지도자대학(national college for school leadership)을 2001년 4월 영국정부가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최봉섭 통신원은 “7~8년 전부터 교육전문대학원들이 교장자격증 코스를 자발적으로 운영해 왔고, 이것이 2004년 법제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여 년 사이 모든 학교들이 단위학교 경영체제로 바뀌면서 교장자격증코스가 상당히 각광을 받았다”며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장뿐만 아니라 교감, 부장급 교사도 돈을 들여 연수를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이 요구하는 국가교장자격기준은 6가지 영역으로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을 설정하고 전략적 계획을 수립하는 미래 설계 ▲ 교수, 학습의 질과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기대를 높게 설정하고 학습 성과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교수·학습 선도 ▲자기개발 및 구성원들과의 협업 ▲조직관리 ▲책무성 확보 ▲ 역사회와의 연계 강화 등이다. 영국에서 교장임용 주관기관은 학교운영위원회로, 교육청은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후보가 있으면 사유를 첨부에 학교에 통보한다. ◇미국, 교장자격기준 표준화=교육부에 의하면, 미국은 90년대 중반 이후 교장의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주간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35개 주가 교장 자격컨소시엄(interstate school leaders licensure consortium)을 구성했고, 학교지도자를 위한 6가지 자격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의 성공 증진으로 귀결되는 6가지 자격기준은 ▲교육지도자로서 학습비전 개발 ▲학습과 교사들의 전문적 성장에 공헌하는 학교문화와 수업프로그램 강조, 육성, 유지 ▲효과적인 학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직, 운영, 자원 관리 ▲가정, 지역사회 구성원과 상호협력, 지역사회의 다양한 관심과 요구에 반응하고 지역사회 자원 동원 ▲성실, 공정, 윤리적인 행동 ▲교육지도자로서 정치, 사회, 경제, 법률, 문화적 맥락을 이해, 반응하고 영향을 미침 등이다. 미국 교장은 법적인 정년제한은 없으며 뉴욕, 일리노이, 인디애너, 메사추세츠, 매릴랜드 등 5개 주는 교장자격증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혁신위원회는 21일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대전, 광주, 대구, 제주 등 6개 지역을 순회 하면서 교원정책 개선 토론회를 개최한다. 교원양성, 승진, 연수에 관한 교육부의 초안을 기초로 교총, 전교조, 한교조 등 교원단체와 학부모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안을 오는 20일께 국회에 제출키로 하면서 사학법 재개정 문제의 이슈화에 당력을 집중할 태세이다. 전국 시.도를 돌며 공청회를 여는가 하면 대규모 토론회와 지역구 의원 간담회, 여론조사 등도 계획하는 등 점점 식어가고 있는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되돌려놓기 위해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일단 여당을 사학법 재개정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데는 성공했지만 원내 제2당으로서 사학법 재개정을 '단독처리'할 힘이 없다는 현실때문에 여론전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즉 국민을 상대로 우호적인 여론을 최대한 조성한 뒤 여야 협상에 임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주 사학법개정특위 소속 의원들이 영남지역 사학을 직접 방문해 교사, 학부모 등과 공청회를 가진데 이어 13일에는 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안 마련을 위한 국민 대토론회를 갖는다. 특히 대토론회에서는 이사진이 해임된 사학에 투입되는 임시이사의 파견 주체를 교육부에서 법원으로 이관하고, 종교계 사학을 중심으로 자율형학교 도입을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사학법 재개정안이 공개됐다. 또한 이번 주에도 개정특위는 호남과 강원 지역 사립학교들을 방문해 교사와 학부모들을 상대로 공청회와 간담회 등을 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재개정안 초안의 주요 쟁점 규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개정특위에 전달할 예정이다. 사학법개정특위 이주호(李周浩) 부위원장은 1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학법이 사학 이사회를 규정하는 어려운 내용이어서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면서 "그런 만큼 한두 마디 슬로건이 아니라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방식을 써야만 법 재개정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에게 교육상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추상적 이유만으로 장례식장 신축을 불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법 행정1부(재판장 이종석 부장판사)는 '장례식장 신축을 위한 농지전용허가를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며 하모(52)씨가 여주군수를 상대로 낸 개발행위변경허가신청불허 가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시신을 안치하고 명복을 비는 장례행위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령기의 어린이들에게 정서적인 불안이나 혼란을 야기해 교육상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객관적 자료가 없고, 장례식장이 보이더라도 장례행위가 주로 건물내부에서 이뤄지므로 장례식장의 설치.운영이 학생들의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장례식장이 들어서려는 농지와 임야는 초등학교로부터 311m 떨어져 있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밖에 위치하고, 학교보건법상 장례식장은 화장장이나 납골시설과 달리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내에서도 금지되는 시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씨는 지난해 5월 여주군 북내면 오학리 일대 농지와 임야 2천543㎡에 장례식장을 설치하려고 개발행위변경허가를 신청했으나 여주군이 인근 오학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 등으로 변경허가를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약 1시간 정도의 졸업식을 마치고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은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축하객들로 인해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뒤,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축하한다”, “고생했다”라는 말과 함께 졸업장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각종 상장(학업우수상, 개근상, 정근상, 공로상, 교육상, 기능상 등)을 나누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졸업 앨범을 나누어주고 난 뒤, 아이들에게 졸업의 의미와 평소 하지 못한 이야기 몇 가지를 해주었다. 다소 분위기는 어수선하였으나 아이들은 담임인 내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경청하였다. “얘들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대학생활을 잘 해주길 바란다. 너희들은 분명히 잘 해 낼 수 있으리라 선생님은 믿는다. 알았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의 선창으로 ‘스승의 은혜’ 노래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합창을 하였다. 아이들이 합창을 하는 내내 아이들과 함께 한 지난 일년간의 생활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 갔다. 그리고 어느새 내 눈가에는 뜨거운 무언가가 촉촉이 젖기 시작하였다. 이제 아이들은 정든 학교를 뒤로한 채 떠나가지만 함께 호흡하고 시름했던 그 체취는 교실 여기저기에 묻어 있으리라 본다. 아이들과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듯 교실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교실 문에서 아이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작별 인사를 하는 동안 몇 명의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꼭 찾아오겠다는 말로 대신하며 아이들은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갔다. 아이들이 떠나간 교실은 썰렁하기까지 했으나 내 귓전에는 아이들의 재재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바로 그때, 두 명의 남학생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교실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너희들 왜 그러니?” “선생님, 그동안 저희들 때문에 속 많이 상했죠? 사죄의 뜻으로 큰절을 올리고 가겠습니다.” “괜찮아. 학창시절 누구나 다 그럴 수가 있지. 선생님은 잊은 지 오래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졸업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감사의 뜻으로 큰절을 올리고 가겠습니다. 꼭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려도 아이들은 막무가내였다. 큰절을 하고 일어난 아이들을 꼭 껴안아 주며 나는 말을 했다. “그래, 고맙구나. 아무튼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거라.” “선생님, 꼭 건강하셔야 해요. 저희들도 선생님의 가르침 잊지 않고 생활하겠습니다.” 두 녀석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만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이 두 녀석의 행동은 나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이것은 지금까지 졸업식 날 받아보지 못한 가장 값진 선물이기도 하였다.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진정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시각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부정적이라는 뉴스를 들었다. 어떤 연유로 그런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할 것이다. 노사문제를 쉽게 촉발시킬 수도 있고 외국자본의 국내유치를 저해할 수도 있다. 기업인의 사업의욕을 꺾을 수도 있고 사회통합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민들이 기업과 기업인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 경제는 한층 탄력을 받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지나치게 부정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상당 부분 정치가에게 책임이 있지만 국민들의 맹목적인 부정적 시각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계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따뜻하고 긍정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언젠가 교원평가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한 일이 있다.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한 마디로 불신 그 자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교사들을 이기적인 집단, 철 밥통을 차고앉은 집단, 촌지나 받고 폭력이나 행사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의견도 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음에도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시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교단엔 천차만별의 교사가 있다. 실력도 인성도 개성도 만인각색일 것이 아닌가.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모든 교사를 매도하고 같은 잣대로 모든 교사를 판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시각일 수 없다. 다양한 특성의 교사들과 접함으로써 학생들은 자아를 발견하고 사회성을 기르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천편일률적인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선생님들 뿐이라면 어떻게 많고 많은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단 말인가. 기업과 정치에도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야 하는 것처럼 교육에 대해서도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 사회에 오로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옳지 않다. 기업을 바라볼 때도 때로는 긍정적이어야 하고 정치에도 때로는 힘찬 박수를 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에도 맹목적 비난이 아니라 건전한 참여가 요구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비판에 다소 과장은 있을지언정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계의 자성도 절실하게 요망된다. 교육자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2006년 2월 10일 목요일. 본교 16회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 풍속도가 매년마다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으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선생님과 제자와의 ‘석별의 정’이었다. 식장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얼굴 위로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고 가족들은 졸업을 하는 아이들을 축하해 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 12월 말 겨울방학이후, 아이들과 헤어진 지 한 달이 지났다. 무엇보다 올해는 아이들 모두가 대학에 합격하여 담임으로서 그 어느 해보다 보람이 있기도 하였다.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식장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오전 10시. 졸업식 거행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총총 걸음으로 식장을 향해 다가왔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 반가움에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 또한 준비한 인사말로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그리고 하나 둘씩 식장으로 입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식이 시작된 지 5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착하지 않은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는 우리 학급에서 가장 나중에 대학에 합격한 학생으로 담임인 내가 마지막까지 신경을 많이 쓰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서울 소재 대학인 사범대학에 합격하여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지난 2월 초. 합격자 발표 날, 내게 전화를 걸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등록금 때문에 걱정이라며 그 아이는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나 또한 궁금하여 적어 둔 번호로 전화를 해 보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식장 밖에서 그 아이를 더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잠시 뒤, 운동장 건너 편 저 멀리서 한 여학생이 뛰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였다. 이 아이에게 졸업식은 가정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일년동안 묵묵히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남다르게 느껴졌으리라 본다.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 먼저 고개를 숙이며 절을 했다. 나 또한 반가움에 두 손을 잡아주며 궁금하게 생각해 온 대학 등록 여부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래, 잘 있었니? 그런데 대학 등록은?” “선생님~, 죄송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선생님, 등록 못했습니다.” “괜찮아.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니?” “죄송해요. 선생님.” 그 아이는 미안한 듯 연신 “죄송해요”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깨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식장으로 들어갔다. 졸업식 내내 그 아이의 생각으로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한편으로 약 400만원에 달하는 대학 등록금이 없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하고도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한다는 졸업이 그 아이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그 아이의 미래가 이것으로 인해 좌절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저 은주입니다." "그래, 요즈음 소식이 뜸하더니 잘 지내니?" "예, 이번 교원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지금 연수 중입니다." "그러니? 참 잘 했구나. 축하한다. 그러고 보니 제자 중에서 네가 제1호구나. 초등선생님으로는 말이다." 전교생 94명이던 작은 학교에서 6학년 제자였던 아이가 벌써 발령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시간이 화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늘 욕심도 많고 자신을 다잡아 주는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던 제자였습니다. 21명을 졸업시켰는데 많은 아이들이 4년제 대학을 갈만큼 열심히 사는 제자들입니다. 졸업을 시킬 때, 1년에 두 번씩 동창회를 할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어 주었는데 10년째 모임을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흐뭇합니다. 모임에 나오라고 조르는 전화를 건 제자의 칭얼거림에 행복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졸업한 시골 학교가 이제는 폐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제자들과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고 졸업생들끼리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이어가고 있으니, 모교는 가슴 속에 살아남아 언제든지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은주야, 이젠 김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구나. 그렇지?" "아니, 선생님도 참. 저는 영원한 선생님의 제자일뿐입니다. 선생님의 교단 제자 1호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 은주는 초등학교 졸업을 한 뒤 중학생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전화를 가장 많이 하는 제자였습니다. 전화를 걸었다 하면 30분은 기본일 정도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내게 쏟아놓으며 어리광을 부리곤 했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은주야, 일기는 쓰고 있지? 좋은 책도 많이 읽고 있지?" "아이고 선생님도 참. 고등학생이 언제 일기를 쓰고 차분히 책을 읽습니까? 학과 공부도 바쁜데요. " "논술 포기할거면 일기도 쓰지말고 책읽는 것도 포기하렴." "옛! 즉시 실시하겠습니다. 선생님 목소리 좀 들으려고 전화드리면 이렇게 변함없이 잔소리시리즈 멘트를 똑같이 하시네요. 6년 동안 변함없이 말입니다." 때로는 교육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며 본인이 원했던 수학선생님의 길이 아니라며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전화를 받는 날은 귓바퀴가 뜨거울 정도로 오랜 시간 전화로 상담을 청하던 제자가 이제 무사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졸업한지 10년 동안 잊지 않고 찾아주는 모습만으로도 기특한데 자기들 모임에 꼭 나오라고 날을 받자고 조르니 육신으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는 자식과 다름없습니다. 군대에 간 제자들이 돌아오고 시집 장가를 간다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찾을 걸 생각하니 이런 맛에 6학년 담임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서슴없이 이성문제까지 내놓고 인생상담까지 들어주는 이 자리가 새삼스럽게 소중해집니다. 졸업하자마자 발령을 받지 말고 좀 쉬었다 나가면 좋겠다고 했더니 집안 살림을 거들어야 한다며 발령이 안나면 아르바이트나 기간제 교사자리라도 찾아서 동생의 학비를 보태야 한다는 예쁜 마음에 다시 감동을 합니다. 교직에 나가면 동생의 대학 학비는 자신이 대주겠다는 기특한 제자의 다짐을 들으니 이제는 내가 충고해 줄 일이 드물 것 같아 서운함마저 느꼈습니다. 광주에서 근무하게 될 제자가 도시 아이들을 맡아 마음 고생을 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에나 선배로서 조언이 필요할 지 모르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지혜롭고 배우기를 좋아해서 뭐든 잘 헤쳐나가리라 확신합니다. 이제는 제자가 아닌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제가 더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6학년을 가르칠 때, "선생님 하시는 것을 보면 나중에 저는 절대로 선생님 하고 싶지 않아요. 제자들 때문에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고 상처도 많이 받는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아요." 했던 녀석이 그 길을 따라오는 것을 보며 그래도 이 길만큼 보람된 일도 흔하지 않음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은주야! 교직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동안 나 스스로 배우는 일이 많아서 늘 깨우치게 된다는 점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잡게 하는 기쁨을 안겨준단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귀하지만 평생 책을 볼 수 있는 축복, 바른 길을 걷게 하려면 스스로 바르게 걸어야 하는 어려운 자리이면서도 청출어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단다. 요즈음 세태가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적이니 교직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수를 받는 동안 품었던 처음 마음을 잘 기록해 두고 힘들 때마다 자신을 일깨우도록 하기 바란다. 은주야! 너는 항상 내 기쁨인 걸 아니? 부모의 일을 물려받는 자식이 대견하고 고맙듯이 내 길을 따라오는 네 모습도 늘 자랑이란다. 네가 발령을 받는 날, 만나서 축배를 들자꾸나 '
오늘이 바로 정월 대보름입니다. 이날 아침에는 부럼을 깨물면서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을 하면 1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가 단단해진다는 속신(俗信)이 있습니다. 부럼이란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깨무는 밤·호두·잣·은행 등 껍질이 단단한 과실을 말합니다. 여러 번 깨무는 것보다 단번에 큰 소리가 나게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며 첫번째 깨문 것은 마당에 버린다고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보름날 새벽 날밤·은행·호두·무를 깨물며 '일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시오' 하고 축수한다. 이를 부럼이라 하기도 하고 고치지방(固齒之方)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정월 대보름날의 부럼깨기를 위해서 며칠 전부터 미리 과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온 식구가 모여 부럼을 깨면서 1년 동안의 건강을 빌고 있습니다. 그 풍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죠. 우리 조상들의 세시풍속. 핵가족화로, 출산율 저하로, 독신 남녀 증가로 점차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학교에서 가르쳐야겠죠. 교사 시절, 대보름날 아침에 담임 책상 위에 놓여진 부럼을 보고 선생님을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을 칭찬하여 주고 부럼 풍속을 이야기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부럼 깨물고 일 년 내내 건강하십시오."
서울특별시는 자기 집 앞의 눈은 스스로 치우도록 규정한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 책임에 관한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서울특별시의 조례는 제설․제빙의 책임 범위는 보도 전체로 정하고, 이면도로와 보행자 전용도로는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5m까지로 규정했다. 또 눈이 그친 때로부터 4시간 이내에 제설작업을 하도록 했고 야간에 눈이 오면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10㎝이상이 내리면 24시간 이내에 추우도록 했다. 소유자 거주시에는 소유자-점유자-관리자 순으로, 또는 소유자 비거주시에는 점유자-관리자-소유자 순으로 책임소재도 명시했다. 지방 자치단체들이 조례 제정에 대건 나선 것은 2006년 2월 6일 폭설때 부산광역시의 사례를 보고 나서다. 16개 구․군(15개 구, 1개 군 기장군)중 12개 구에서 조례를 만든 부산에선 올 들어 가장 많은 3.9㎝의 눈이 내렸다. 비탈길이 많아 어느 지역보다 눈에 취약한 도시였으나 시민들이 대대적인 눈 치우기에 나서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2월 6일 2.2㎝의 적설량을 기록한 대구광역시도 도심 전체가 마비되다시피 했으나 2005년 11월 조례를 제정한 중구에서만 이면도로와 골목길이 얼지 않아 차량 통행이 원활했다. 현대사회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기상이변을 가져와 2005년 12월에만 60년만에 호남지방에 20-40㎝의 폭설이 2번이나 내리지 않았던가. 고속도로에 차가 갇히는 사태까지 낳아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에 속수 무책이었다. 2005년 12월 2번의 20-40㎝의 폭설이 내릴때 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있어 학교 계단과 진입로를 치우는 등 제설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릴때 시골에서 살 때 눈이 내릴 때 마다 집 마당과 마을 진입로를 치우던 추억을 가지고 제설작업 힘들지만 통행인들의 편리를 위해 눈을 치웠다. 화재 대비용으로 방화수․방화사를 준비하듯이 각 관공서, 마을 회관, 각 기관과 아파트 관리실에 제설 장비의 구비를 의무화하여 주민들이나 아파트 주민들이 솔선하여 치우도록 한다면 환경오염을 가져오는 염화칼슘의 사용량도 줄일 수 있으며 도로 관리인, 아파트 관리인들의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앞으로도 매년 살인적인 폭설이 내릴 가능성이 점증할 것이다. 광주광역시만 해도 아파트 거주 시민이 절반을 넘고 대부분의 도시도 아파트 거주자가 많아 아파트 내 보도블록과 진입로와 주변도로, 이면도록, 단독주택이나 상가 거주 주민들도 주변 진입로 등을 나의 길이라는 사고를 갖고 제설작업을 한다면 흰눈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천사표가 되어 깨끗해지고 맑아지지 않을까. 과거 시골에서 살 때 처럼 화재 발생시 마을 사람 모두가 물통을 들고 나와 화재를 진압했던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나몰라라 하지 말고 국가에서 다 해주기만을 기대하지 말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발휘하고 새로운 의미의 울력, 현대화된 울력의 개념을 발휘하여 자발적인 울력으로 아파트나 단독 주택 주민들이 폭설이 내릴 너나 할 것 없이 나와 길거리나 이면도로의 눈을 치운다면 눈으로 인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고 결국은 시민이나 국민들이 도로 사정이 편리해 짐으로써 거국적으로 더 큰 이득이 돌아오지 않겠는가. 나의 주변 환경을 더 애착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으면 한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봉사정신 및 자기 지역 및 주변 환경을 먼저 생각하고 무슨 일이 발생 했을때 민방위 대원을 소집하지 않아도 자기를 먼저 희생할 줄 아는 한국인이 되도록 우리 먼저 솔선수범하면서 후세들을 깨우쳐야 하지 않겠는가.
대학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일부 대학이 5년만에 학ㆍ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연계과정을 운영하고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우수학생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학부-대학원 연계과정'은 학부 2학년 또는 3학년까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 한 학기당 1∼2과목의 수업을 더 듣게 해 조기 졸업시킨 뒤 입학시험 없이 동일 계열의 대학원에 진학하도록 하는 제도다. 또 연계과정 이수자는 학부시절에 대학원 과목의 일부 수강을 허용해 이 경우 학부와 대학원 학점을 중복 인정, 대학원도 조기 졸업하게 된다. 연세대는 2004년 학ㆍ석사를 5년만에 취득하는 '학부(3년6개월)-석사(1년6개월)연계과정'을 설치한데 이어 지난해 8월 학사와 석ㆍ박사 학위를 6∼7년만에 모두 취득하는 '학부(3년6개월)-통합(2년6개월)연계과정'을 개설했다. 앞서 이화여대도 2003년 가을 '학ㆍ석사 연계과정' 이수자로 12명을 선발, 지난해 2월 첫 졸업생 2명을 배출했다. 두 대학은 연계과정 이수자에게 대학원 입학금을 면제해 주는 것은 물론 수업료 전액을(이대는 학부성적 3.75이상) 지원한다. 두 대학이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이유는 우수학생을 다른 학교에 빼앗기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에게 시간과 등록금 절약은 물론 학업의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윈윈 전략'이기 때문. 물론 연계과정은 조건이 까다로워 희망자는 학부 2학년까지 성적이 3.3(4.3만점) 이상이어야 하고 남들보다 1년 이상 단축된 기간에 학부와 대학원 졸업학점을 모두 채워야 한다. 이화여대 대학원생 주혜경(23.화학과)씨는 "처음부터 대학원에 가고 싶어 석사학위를 1년 빨리 취득하고 900만원 정도 학비를 절약할 수 있는 연계과정을 선택했다"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 많은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이대의 경우 2003∼2006년 연계과정이 승인된 학생은 47명, 연대는 2004∼2005년 37명에 불과하다. 대학관계자는 "숙명여대와 한국외대, 중앙대 등 상당수 대학이 경쟁적으로 학부-대학원 연계과정을 설치하고 장학금 신설을 논의하고 있다. 문제는 좋은 제도를 마련했지만 지원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