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문자, 인쇄의 발명과 함께 인류정신문화에 있어서 3대 발명이라 일컫는다. 생각을 남기고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표현 욕구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종이의 사용이 확산되면서 인류의 지식과 문명의 전파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종이의 발명은 인류 문명사의 시작과 같은 것이다. 현대에는 종이 외에도 많은 지식의 기록과 전달 매체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종이는 아직도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친근한 표현 수단인 동시에 자연과 문명의 연결 고리인 셈이다. 종이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깊게 관여하고 있는 종이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마디로 종이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팬아시아 종이박물관(구 한솔종이박물관)’이 그곳. 한지(韓紙)의 고장인 전북 전주시의 공단 내에 위치해 있는 이 박물관은 500평 규모로 상설전시관 두 곳, 기획전시실, 한지재현관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97년 개관한 이래 매년 13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전문박물관이다. 상설전시관의 제1실의 주제는 종이의 과거. 중국의 갑골문자와 죽간, 이집트의 파피루스, 지중해의 양피지,
2002-04-01 09:00인간문화재 대목장이 사재 털어 개관 예산읍내에서 ‘서산’ 표지판을 따라 한참 달리다보면 ‘수덕사’라는 팻말이 보이고 자동차는 이내 4거리와 맞닥뜨리게 된다. 다시 거기서 왼쪽으로 홍성 표지판을 따라 2㎞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기와 지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팔각정도 보이는 모습이 흡사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의 본산지(?) 같은 인상을 주는 그곳이 한국고건축박물관이다. 한국고건축박물관은 1998년 10월에 개관했다. 설립자는 중요무형문화재 74호로 지정된 이 지역 대목장 출신의 전흥수 관장. 전 관장은 사재 100억여 원을 박물관건립에 투입했다.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기능을 전승 발전시키지 못하고 당대에 끝나고 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고건축 분야의 기능과 기법을 전승 발전시켜 우리 고건축 문화전승계발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시작했습니다.” 1960년부터 40여 년 가까이 문화재 및 사찰 복원·수리 작업 등 고건축일에 종사해 온 전 관장의 일생일대의 결과물인 셈이다. 1/10 축소된 국보급 모형 건축물 전시 입구를 들어서면 6천여 평의 박물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법 덩치가 큰 건물 대여섯 채가 앞으로 보이고 입구 오른쪽 바로 옆으로는 옛날 각 고을의…
2002-03-01 09:00“우렁차게 吐하는 汽笛소리에/ 南大門을 등지고 떠나가서/ 빨리부는 바람의 形勢같으니/ 날개가진 새라도 못따르겠네”(최남선의 ‘경부철도가’. 1908년) 육당 최남선은 경부선이 개통(1905년)되고 3년이 지난 1908년 창가 ‘경부철도가’를 지었다. 창가의 내용은 경부선의 시작인 남대문역에서 종착지인 부산역까지의 연변의 도시들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그 도시의 풍물과 인정·사실·서구문화의 충격 등을 서술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기관차모형은 모갈탱크형이나 터우형으로, 모갈탱크형기관차는 최고 속도가 시속 55킬로미터 평균속도 20~22킬로미터에 불과했으나, 최남선은 날개 가진 새보다 빠른 바람에 비유했다. 2004년에 개통될 시속 300킬로미터의 고속전철을 봤다면 최남선은 무엇에 비유했을지 궁금해진다. 이때는 우리 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노량진`~제물포)이 개통된 지 9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미카3기관차, 전쟁중 딘 소장 구출작전에 동원 가장 대표적인 서구문명 중의 하나인 기차가 우리 나라에 도입(1899년)된 지도 103년이 되었다. 기차의 역사는 교통뿐만 아니라 통신의 발달사이기도 하다. 교통·통신의 발달사를 한 눈에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경기도 의왕시…
2002-02-01 09:00귀머거리 천재화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1914-2001).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운보 김기창과 ‘바보산수'로 표현되는 그의 화풍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운보는 설명이 필요 없는 ‘국민화가'이며, 한번쯤 ‘운보의 작품을 구경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음직 하다. 그러나 놀라지 마라. 누구나 운보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수도 없이 만져봤다. 아무리 가난하기로서니 만 원 한 장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상이 바로 운보의 작품(1975)이다. 그만큼 운보는 우리의 생활 가까이 있다. 그러 나 운보는 2001년 1월 23일자로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만원짜리 지폐의 세종대왕상은 운보의 작품 이른 겨울의 토요일 오후. 운보의 체취를 찾아 차를 몰았다. 중부고속도로 증평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511번 도로를 따라 초정약수 방향으로 향하다가 주성대학 쪽으로 우회전해서 2킬로미터쯤 가다보면 ‘운보의 집'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운보의 집이 있는 청원군 내수면 형동리는 운보의 외가가 있던 청주와 가까운 곳으로, 풍수가 지세(地勢)를 살펴 선정한 곳이다. 외할머니처럼 푸근한 다섯 겹의 산이 운보의 집을…
2002-01-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