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가받으신 것 축하드립니다. 우선 여명학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저희 여명학교는 탈북청소년을 위한 도시형대안학교로 지난 2004년 개교했습니다. 초등학교 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있는데, 이번에 인가를 받은 부분은 고등학교 과정 50명입니다. 한 학급 인원은 10명 내외고, 학생들의 연령은 16세에서 25세로 일반학교에 비해 연령층이 꽤 높은 편입니다.” 규정 개정 후 인가를 받은 첫 학교가 됐는데, 인가받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우선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안학교의 설립 · 운영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준 교과부를 비롯해 학교부지에만 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던 제한 규정을 개정해 준 국토해양부 관계자 분들과 지금까지 여명학교를 지지해주신 여러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건물주께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장기임대계약을 맺어주시고 건물의 용도도 학교 설립이 가능한 연구시설로 변경해 줬을 뿐 아니라 장애인 시설 설치를 위한 리모델링까지 선뜻 허락해주셔서 인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도심에 위치한 이 건물의 부동산 가치를 생각하면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
2010-05-01 09:00
2006년 처음 부임하셨을 때 월정초의 교육 여건이 좋지 않았나요? “전국에서 손꼽히는 다인수 학교에, 생활환경이 어려워 기초수급생활대상자인 학생들이 많았어요. 낮은 교육열과 융화되지 않는 교직원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학교에 부임해 가장 먼저 한 일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학교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었죠. ‘성취하는 감동교육’을 교육목표로 내걸었습니다. 그때 저희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성취감과 보람이었어요. 열악한 학교 환경을 딛고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교육을 해보자고 교사들을 독려했죠. 그리고 저부터 교사, 학생에게 따뜻하게 다가가 마음의 응어리 풀어주려고 했어요. 3년여가 흐른 지금은 모든 선생님과 학생이 한마음으로 아주 열심히 하는 학교가 됐죠.” “월정초의 브랜드는 독서교육” 월정초는 독서교육이 잘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학생들에게 독서를 강조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제가 초등학교 때 왜소하고 병약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곤 했죠. 그러면 저는 도서관에서 해질 때까지 책을 읽었어요. 그게 생활화되니 고교를 졸업할 때쯤엔 ‘나보다 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없다
2010-05-01 09:00실제로 생활지도를 한 본교의 사례를 말하기에 앞서 걱정들이 앞선다. 전문계고교인데다 학교가 최악의 상황이어서 고심하며 방법을 찾아 바로잡아 갔고 그러다 보니 2007년, 2008년 2년 연속 충북도교육청 ‘생활지도 우수학교’, 2009년 청주지방검찰청 제천지청의 ‘법질서 우수학교’로 선정되는 등의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들을 공개하려니 다른 학교와 다름없는, 특별한 사안도 아닌데 유별난 호들갑으로 비춰져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굴곡진 어두운 터널에서 빛을 찾겠다는 희망찬 의지만 있다면 무언들 못하랴!”하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생활지도 사례를 정리해 본다. 모쪼록 생활지도로 고민하고 있는 학교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이번 호에서는 생활지도가 절실했던 본교의 상황과 배경, 원인을 찾아 나섰던 내용을, 다음 호에서는 생활지도로 바로 잡았던 사례를 중심으로 연재한다. 순탄치 않은 연혁 가진 제천산업고의 3년 전 모습 교장 공모를 위해 제천산업고등학교의 면면을 살펴보니 보통의 다른 학교와는 다른 이색적인 연혁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 3월에 개교한 본교는 처음 사립학교인 한국광산공업고등학교로 시작됐다. 그
2010-05-01 09:00
교정 곳곳에 서려 있는 애국정신 이승훈, 안창호, 신채호, 조만식, 김기홍…. 우리 역사에 특별한 관심이 없더라도 누구나 알만한 독립운동가들이다. 이들은 외세의 침입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던 1907년 나라를 구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오산학교를 세웠고, 여기서 김억, 김홍일, 염상섭, 함석헌, 김소월 등 우리나라 근 · 현대사에 큰 업적을 쌓은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낙심하지 말고 겨레의 광복을 위하여 힘쓰라.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표본을 만들어 학생들을 위하여 쓰게 하라. 그리고, 서로 돕고 낙심하지 말고 쉼 없이 전진하라.” 학교 곳곳에 걸려 있는 설립자 남강 이승훈 선생의 유훈은 100년이 지난 오늘도 학생들에게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인재가 될 것을 당부한다. 요즘 많은 학교의 교실이나 복도에 ‘글로벌 인재’나 ‘미래 사회’ 같은 말이 들어간 문구가 걸려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선배들의 정신을 그대로 전하는 오산역사관 이런 선배들의 정신은 1987년에 개관한 오산역사관을 통해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앞서 언급한 인물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와 군사, 예술, 사상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선배들의 발자취를 오롯이 담고 있는 오산
2010-05-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