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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봄의 시작은 매화가 봄의 끝은 철쭉이 알린다고 한다. 흐드러진 유채는 씨알을 맺고 꽃 진 자리에 새잎이 돋아난다. 영산홍과 철쭉의 붉은빛이 연둣빛과 어우러진 사월의 봄날, 산비둘기 구구대는 소리에 모란은 여름을 당겨 고개를 떨군다.

 

일찍 핀 꽃도 봄이고 늦게 핀 꽃도 봄이다. 봄꽃은 오래 느낄 수 없다. 꽃잎이 떨어지는 건 아쉽지만 그것 또한 자연의 순서이다. 어쩌면 꽃이 영원히 피어있는 게 아니어서 더 귀하게 느낄 수 있다. 떨어졌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꽃의 순간을 즐기고 아름다움을 담으면 된다. 삶 역시 그렇다. 사람에게 있어 일찍 피든 늦게 피든 그 계절은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다. 그 순간을 즐기고 사랑을 담으면 된다.

 

봄꽃의 합창을 보며 사랑을 떠올려 본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언어로 사랑한다는 말과 이해한다는 말은 같다고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깊은 사랑에 빠지면 사랑으로 배불러 가진 것이 없어도 부족함을 못 느낀다. 같이 있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거리표 선물을 받아도 감동이다. 서로 손 잡고 완행열차를 타도 구름을 타는 기분이며 지갑이 얇아도 집이 좁아도 마냥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사랑은 순애보가 아닌 이상 세상의 풍파와 욕심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남녀 간의 사랑은 같이 지낼수록 아침 그림자와 같이 점점 작아지기만 한다. 이런 사랑도 꽃을 보는 시선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면 여운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은 물론 가족, 주변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저마다 다른 꽃으로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인생이란 커피 한잔을 마시는 찰나와 같다. 행복은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입맞춤, 미소, 다정한 눈길, 칭찬, 따스한 느낌 등 금방 잊히는 것들이 행복을 만든다. 하지만 이 행복은 욕심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삶은 선택의 연속으로 느리게 걸어야 하고 정상을 오를 땐 아래를 돌아봐야 한다.

 

욕심을 경계하는 말이 있다. 증일아함경에서 부처님은 ‘욕심은 더럽기가 똥 덩어리 같고, 독사와 같아 은혜를 모르며, 햇볕에 녹는 눈처럼 허망하다. 욕심은 예리한 칼날에 바른 꿀과 같고, 쓰레기 더미에 아름다운 꽃이 피듯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 허망함이 물거품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도 아니며 단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과거보다 물질적으로는 매우 풍요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점점 고갈되고 있다. 정신의 풍요가 담겨 있는 우물의 물을 물질의 풍요를 담는 우물로 퍼 옮긴 듯하다. 자꾸 끝없이 채우려고만 한다.

 

헬렌 켈러는 행복의 문은 한쪽이 닫히면 다른 쪽이 열린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만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던 시절을 지나 콩 한 자루가 있어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시절에 서 있다. 이제 더 가지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꽃이 잎을 떨구면 작은 결실이 오는 것처럼 기대를 낮추면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아진다. 단지 비우지 않아야 할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이다. 잃은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얻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꽃은 어느 곳에서 피든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사람도 꽃과 같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자기다운 꽃을 피울 때 가장 아름답다. 자기다운 어떤 꽃을 피워야 가장 아름다운지 깊은 고민의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사람에게 있어 나이 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파릇한 청춘을 지나 세월의 색이 물들어 중년에서 노년으로 익어간다. 세월을 먹는 외모야 어찌하겠느냐마는 파릇한 마음만 유지한다면 평생을 행복한 청춘으로 살 수 있다. 우리는 삶에서 가장 후회할 일이 나 자신이 원하는 내가 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내가 되는 것이다.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 생각한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만족하며, 미소 짓고 떠날 수 있는 나만의 사랑 꽃을 피우고 있는지 짚어 봐야 한다.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린다. 자신에게 사랑이란 느림을 선물해 보자. 운무가 낀 눈으로 미래를 속단하지 말고, 운무가 낀 마음으로 과거를 판단하지도 말며, 운무가 걷힌 자리에 꿈처럼 드넓은 전망이 펼쳐진다는 것을 예지하고 있어야 한다. 세월을 먹어도 여전히 날 선 채로 살아간다면 스스로 괴롭고 주변 사람들도 조용히 떠나가 버린다. 무슨 일을 하든지 너그럽게 사랑하고 행복하다면 그 자체로 최고의 보상을 받는 것이다.

 

살면서 실패는 삶을 단단하게 하는 과정이지 불행은 아니다.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알고 상대를 사랑하며 수많은 역경이 있어도 끝에 다다를 때까지 행복과 어깨동무 할 수 있다면 참 잘 살아온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현실에 치여 심신이 지칠 때면 봄꽃 진 자리 연둣빛 새잎을 보며 사랑과 행복을 꿈꿔 보면 좋은 행복의 열매를 맺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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