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속뜻 논어
최근 우리 사회에 '교육에 관한 질문'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다. 학교 현장의 질서 붕괴는 물론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 현실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둘 다 매우 중요한 교육의 현장의 문제다.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 부족과 각 주체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충돌,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상대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되고 질서가 존중되며 인간이 존중 받는 사회로 가야 한다고 믿고 사는데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를 보면서 민주적 사회에서 민도에 따라 극한 대립, 혼란스러운 분쟁, 폭력적 갈등이 지속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돈희(전 교육부 장관)박사의 분석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문제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이돈희 전 장관은 '생활 민주주의' 교육을 강조했다.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의 개념과 과제들을 실천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현직 교육자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더욱 공부하고 가르치고 본을 보이는 생활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중국의 춘추 시대에는 사람이 눈앞의 사람을 창칼로 죽였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는 사람은 뒤로 숨고 돈이 나서서 사람을 해친다. 도구가 달라지고 방법은 교묘해졌을지언정, 사람이 사람을 살상하는 짓은 다를 바 없다. 수능 잘 봐 고급 관료, 판·검사, 의사가 되는 출세 이전에 '사람됨'(仁)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으로 '청소년 논어읽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1910년 조선이 망한 이래 우리는 새로운 가치의 좌표를 서양에서 찾았다. 이른바 근대화, 서구화, 문명화라는 말을 따라 서양에 뜬 북극성을 행복의 푯대로 삼고 달려왔다. 교육의 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이 걸음의 방향은 올바른가?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과연 잘 살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공자는 어찌 사람이 짐승과 꼭 같기야 하랴! 사람 속에는 ‘사람다움'의 고유성이 씨앗으로 존재한다. 공자는 이 사람다움을 인(仁)이란 말로 요약했고, 제자들은 그 말씀을 기록으로 남겨 ‘논어'라고 이름 붙였다. 공자는 사람에게 고유한 사랑(仁)의 의미를 잘 배워서 실천할 때만이 긴 살육의 세월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요컨대 배워야만 사람인 것이다!
『논어』의 첫 구절이 학(學)으로 시작하는 까닭이요, 또 스스로를 두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지목한 이유다. 이후 동아시아에는 '배움'이라는 활동이 중시되고, 또 그 터전으로서 '학교'가 공동체의 필수 요건이 되었다. 공자 학교는 질문의 학교였다.
제자의 간절한 물음 앞에서야 스승이 답을 내린다. 그러니 구절마다 첫마디로 나오는, 자왈(선생님 말 씀하시다) 앞에는 제자의 질문이 숨어 있다. 「논어」는 제자들의 절실한 질문과 스승의 적확한 답변, 그리고 고민을 해소한 기쁨과 해방감이 한데 어울려 넘실거리는 '즐거운 책'이다.
공자는 "학생들은 집에선 효도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공손할지어다. 말은 언제나 삼가서 하고, 말한 것은 꼭 지켜야 할 일이다. 또 나보다 못한 이도 널리 아낄 줄 알아야 하며, 나보다 훌륭한 이는 가까이 하여 배우려 애써야 한다. 이렇게 행하고서도 남은 힘이 있거든 그제야 글을 배울지니라"라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단연 마지막 줄의 "남은 힘이 있거든 그제야 글을 배울지니라"라는 지적이다. 오늘날 학교에서 가르침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글을 통해 배우는 것'이 공자학교에서는 '배움'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곧 상대적으로 몸소 인(仁)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시 되었던가를 반증한다.
이제 우리는 학생들의 마음 밭을 갈아 미래를 이끌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한다. 열심히 뿌리고 가꿔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혀 우리가 소망하는 선진국가를 미래 세대들이 이뤄갈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