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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칼럼] 화끈한 것 하나면 된다

심리상담사들이 아동·청소년의 문제행동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연령대가 낮아진다고 한탄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죽고 싶다”고 호소하는 중학생들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요즘에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초등학생들이 있다고 합니다.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섬뜩하고 아찔합니다. 도대체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최성애, (사)감정코칭협회 추계학술대회 기조강연, 2024.11.8.).

 

실로 아동·청소년의 마음 건강 추세가 몹시 암울합니다. 아동·청소년 우울증 진료 인원은 2020년도 2.3만 명이었는데, 2년 만에 3.7만 명으로 급증했습니다(연합뉴스, 2023.9.7.). 청소년 자살은 2017년에 인구 10만 명당 7.7%에서 2020년에는 11.1%로 상승했습니다(통계청). 촉법소년 범죄접수가 2017년에 7,897명에서 4년 만에 12,502명으로 증가했습니다(대법원).


아동·청소년의 정신 건강도 위태롭습니다. ADHD 환자 수가 2018년과 2022년 사이에 무려 2.4배 증가했습니다. 정신질환 환자 수는 2018년과 2021년 사이에 24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올랐습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아이들의 몸 건강도 심각합니다. 과체중·비만학생 비율이 2017년에 23.9%에서 2022년에는 30.5%로 증가했습니다(질병관리청). 소아당뇨 환자 수도 2020년도에 11,500명에서 불과 2년 만에 14,500명으로 수직 상승했습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몸과 마음과 정신 건강이 동시다발로 나빠지는 게 우연일까요? 이러한 현상은 비록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을 포함한 31개국의 공통 현상인데, 과연 이러한 글로벌 현상이 우연일까요?(WHO, 2024.10.24.) 아닙니다. 몸과 마음과 정신 건강은 저변에 공통분모가 있어서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방대한 과학적 연구로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문제해결에 대해 몸 건강 따로, 마음 건강 따로, 정신 건강 따로, 각각 별도의 정책과 실천방안들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화려한 해결책 여럿이 아니라 화끈한 해결책 하나면 됩니다.


공통분모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글로벌 시대적 흐름이라는 매크로 차원, ‘세포기관’의 마이크로 차원,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아동이 피부로 느끼는 실생활 차원입니다. 극과 극으로 다른 차원들이지만, 놀랍게도 ‘단절화’라는 하나의 개념이 관통합니다.

 

가장 먼저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벌어지는 ACE(Adverse Childhood Experience, 아동기 부정적 경험)라는 현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너무 많은 아동이 가정의 불화로 가시방석 같은 집에서 의지할 데 없이 불안하고, ‘온종일 죽은 듯이 꼼짝 말고 앉아 공부해야 하는’ 억압적이며 단절된 상태에서 살고 있고, 패스트푸드와 기름진 음식으로 혼자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학대받거나 방치되는 경우만이 아니라 종일 잔소리를 듣는 것도 부정적 경험에 포함됩니다. 무시당하는 게 싫어 방문을 닫고 걸어 잠그고 스스로 단절하기도 합니다.


ACE는 발달적 트라우마이며,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PTSD)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폭력성·도피성 그리고 무기력성이 나타납니다. 곧바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후유증이 일 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의 여러 세대 중에 Z세대 직원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결근을 가장 빈번하게 한다는데 20년 전 영유아 때 겪은 애착손상의 후유증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20년간 멀쩡해 보이더라도 후유증이 잠재되어 있기에 ‘숨겨진 트라우마’라고도 합니다.

 

두 번째로 글로벌 사회·경제적 매크로 차원을 이해하면 위 문제를 개개인의 탓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대가족이 핵가족·혼족을 거쳐 이제는 탈가족화(아침에 모든 가족이 흩어지고 저녁에 다시 모이는 현상)로 이어지면서 정서적 단절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온라인 접속으로 사이버 연결이 활발해졌습니다. 하지만 아동의 경우, 사이버 연결에서 인간관계적 혜택은 거의 없고, 게임과 SNS에 종속되는 ‘사이비 연결’이 판칩니다.


정서적 단절과 마음의 빈곤에서 스트레스받는 아이들은 ‘잘못된 연결’과 물질적 보상에서 위안을 찾습니다. 게임과 연결, 술과 연결, 마약과 연결은 더 심각한 인간관계의 단절에 돌입하게 만들고 결국 단절의 악순환이 가속됩니다. 잘못된 연결상태에서 몸·마음·정신이 건강할 리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단절화’가 진행되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이 발생하는 게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 차원은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기관이며, 이 역시 ‘단절화’가 치명적입니다. 고등학교 생물학 시간에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호흡을 통해 ATP라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세포의 에너지 공장’이라고 배웠는데, 미토콘드리아의 추가 기능에 대한 팩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9월 23일, 미국 국회 정신·마음건강(mental health)에 대한 청문회에서 하버드 의대의 크리스 팔머 교수가 최신 연구결과를 근거로 새로운 정신건강 정책수립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평소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와 세포의 유지·보수에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합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든 에너지가 위기관리를 위한 각성 반응에 소비되고, 세포 유지·보수에 투입되지 못합니다. 마치 한정된 국가 예산이 국방비에 지출되면, 사회 인프라 유지와 복지에 돌아갈 돈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공음식에 포함된 온갖 화학품·방부제·농약·살충제·성장호르몬·약품이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발전을 저해합니다. 이들은 추가로 몸의 마이크로바이옴 생태계를 교란합니다.

 

오장육부의 세포나 뇌의 뉴런 세포 둘 다 동일한 미토콘드리아 에너지 조달 메커니즘을 통해 세포의 활동과 건강을 유지합니다. 오장육부의 세포가 유지·보수되지 못하고 병들면 비만·당뇨·심혈관·암이 발병하고, 뉴런세포가 유지·보수되지 못하고 병들면 우울증·조현병·ADHD·치매가 발병합니다. 이제야 눈이 번쩍 뜨입니다. 왜 몸과 마음과 정신의 병이 동시다발로 발병하는지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설명됩니다.


서로 연결된 뉴런은 건강하고, 단절된 뉴런은 죽는다고 합니다(BrainFacts, 2023.1.16.). 즉 연결과 단절이 세포의 생사를 가릅니다. 이와 같은 똑같은 현상이 사람에게도 벌어집니다. 단절감이 모든 연령층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불행감을 느끼게 되고(질병관리본부), 서로 연결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만나게 됩니다(하버드대 그랜트 연구).


동일 생사 현상은 쉽게 이해됩니다. 우리에게 생기를 주는 미토콘드리아 수는 내 몸 세포 수보다 만 배이며, 우리의 마이크로바이옴을 형성하는 미생물 수는 내 몸 세포 수보다 10배입니다. 그러니 누가 누구한테 붙어사는 건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미토콘드리아와 미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야 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 가지 차원의 공통점은 ‘단절화’로 인한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란 표현이 조금도 과장된 게 아닙니다. 실은 이미 우리 다 알고 있었지만, 드디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불량음식이 나쁘고, 아동기에 부정적 경험이 위험하고, 단절감과 고독감이 해롭고, 공부하느라 혼자 고립되어 책상에 종일 앉아 있는 게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미래를 깎아 먹는 일입니다.


아뿔싸! 이 모든 게 요즘 한국 아이들에게 다 해당되네요. 왜 아이들의 건강상태가 암울하고 위태롭고 심각한지 이해됩니다.


아하! 그럼 간단한 해결책도 있네요. 우리는 이와 정반대로만 하면 되겠습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아동기에 긍정적 경험을 쌓게 하고, 연결을 선택하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이 역시 우리 다 알고 있지만 이토록 중요한지 미처 몰랐던 겁니다.

 

너무 화려한 해결책을 찾아 나서지 맙시다. 비록 ‘단절화’가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이것 하나만이라도 해결하면 충분히 건강할 수 있다니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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