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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순이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다”

가수에서 대안학교 이사장으로

 

“중학교 졸업하고 50여 년 만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어요. 졸업장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궁금했고,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합격하고 나니 주위 분들이 서울대에서 만나자고 하네요(웃음).”


47년 차 국민 디바로, 또 다문화 교육기관 해밀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인순이. 강원도 강릉 스카이베이호텔에서 열린 대한사립학교교장회 하반기 총회장에서 <새교육>과 만나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댄스그룹을 만들고,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는가 하면 머슬퀸 프로젝트와 고졸 검정고시에 도전하는 열정 넘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도전하는 삶이 알려지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인순이. “사실 전 궁금한 걸 못 참는 스타일이에요. 뭘 하다가 궁금하면 가보고 확인을 해봐야 직성이 풀려요”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아픈 경험이 해밀학교 설립 원동력
그가 도전만큼이나 애정을 쏟는 것이 또 있다. 자신이 설립한 다문화 교육기관 해밀학교이다. 2018년 학생 6명으로 시작한 해밀학교는 13년이 지난 현재 56명의 학생과 18명의 교사진을 보유하고 있다. 전체 학생의 60%가 다문화가정 자녀이며, 과테말라·독일·영국 등 11개국 출신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해밀학교는 교사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학교다. 해밀학교를 거쳐 나온 학생들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는 것을 실제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은 해밀학교 운영의 공로를 인정해 인순이에게 감사장을 줬다. 그러면서 해밀학교 졸업생이 외고를 나와 교대에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예비교사라는 사실을 소개했다.


“처음 학교를 만들었을 때는 아이들이 안고 있는 가슴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단단하게 대한민국 땅에 두 발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고요.”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해밀학교는 달라졌다. 이제 학업은 기본이고, 정서안정과 인성교육에 도움을 주는 1인 1악기 교육과 코딩 등 IT 교육에도 힘을 쏟는다. 


학생들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하다 보니 학부모 만족도 역시 매우 높다. 심지어 일부 학부모들은 “졸업시키고 싶지 않다. 유급해 학교를 계속 다니면 안 되느냐”고 묻기도 한다.   


“아이들이 흔들릴 때 따뜻한 눈으로 안아주고, 너 잘하고 있다며 어깨 한번 다독여 주면, 거기서 아이들은 또 앞으로 나갈 힘을 얻거든요.” 


인순이가 해밀학교를 만든 데에는 어린 시절 아픈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사람들이 쳐다보며 엄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너는 왜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냐고 물어볼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저희는요, 태어나면서부터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가지고 있어요.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실타래죠.” 그는 사춘기 때 나는 왜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을까 생각이 들면 많이 흔들렸다고 했다. 다문화 대안학교를 만든 것도 이런 상처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삶의 어려운 고비마다 일으켜 세운 학교 선생님들
학창시절 만났던 선생님들도 해밀학교의 숨은 산파들이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한번은 깜빡 잊고 전학증을 떼어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됐고, 친구들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운동장에서 혼자 지내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장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그가 교장선생님 눈에 띄었다. “공부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전학증이 없어 수업을 못 들어가요.” 그 순간 교장선생님은 어린 인순이 손을 잡고 교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빈자리에 앉게 한 뒤 친구들과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아마 초등학교도 못 나왔을 거예요. 법 따지고 규정 따졌다면 저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을 겁니다. 교장선생님의 결단이 오늘날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그는 해밀학교를 만들면서 선생님들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한다. “학교가 필요한 아이가 있다면 무조건 받아달라. 공교육이건 사교육이건, 또 힘들어서 학교 밖에 있는 아이들이건 우리를 필요로 하면 받아줘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고 가르쳐야 하는 곳 아니냐.”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보탰다. “저를 보세요. 공부시켜 놓으니까 밥벌이는 하잖아요.”


중학교 시절 영어선생님도 잊을 수 없는 스승이다. 그는 인순이를 각별히 아꼈다. 배가 고파 보이면 집으로 데려가 밥도 해서 먹였다.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조금만 성의를 보여도 “너무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희자매’라는 걸그룹으로 데뷔했을 때 TV에 나온 인순이를 보고 울면서 “정말 김인순 맞느냐”고 방송국에 전화했을 정도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인순이는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음악선생님은 인순이에게 아픈 기억과 함께 가수의 재능을 일깨워 준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몹시 가난했던 그는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했다. 담임이기도 했던 음악선생님은 학교를 대신해 인순이에게 독촉했고, 그럴 때면 너무 창피해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음악수업시간이면 상황은 정반대로 달라졌다. 수업은 항상 인순이의 노래로 시작했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이 늘상 노래를 시켰고, 인순이는 “코스모스 한들한들 ~~”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음악시간마다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순간들이 모여 먼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인순이는 말했다.


참으로 힘든 그 시절 인순이를 견디게 해준 건 선생님들의 깊은 사랑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칠 무렵, “정말 잊지 못할 선생님이 많았어요. 그분들 덕분에 잘 살고, 잘 늙어가고 있네요”라고 웃어 보였다.


인순이는 흑인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혼혈 한국인이다.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 <안녕, 해나>를 펴내는 등 다문화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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