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총은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교총회관에서 제35회 한·일 교육연구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발표회는 일본교육연맹과 공동으로 마련한 자리로, 양 단체 교원 대표 20여 명이 참석했다. 일본교육연맹 대표단은 발표회 참석에 앞서 서울 중앙고를 방문해 학교를 둘러보고 수업도 참관했다.
강주호 한국교총 회장은 개회사에서 “교원들이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과 안전한 학교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교육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교원에 대한 처우 또한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오늘 발표회를 통해 양국 교원들이 현장 사례를 공유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논의해 양국 교육 발전의 새로운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오미 타다시 일본교육연맹 회장은 “한·일 교육 문화 교류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동시에 학교 교육 현안에 대응하는 방법이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배우고, 자국의 교육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좋은 기회”라며 “이번 교류가 한일 양국의 교육에 공헌하고 양국 교육 관계자의 우호를 더욱 깊이 다질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올해는 ‘교육 여건과 교원 처우의 실태 및 개선’을 주제로 열렸다. 한국 측에서는 오준영 전북교총 회장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 변혁 과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고, 일본에선 사이토 나오코 도쿄도립국제고등학교 교장이 ‘일본 고등학교의 업무 방식 개혁에 대하여’를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회를 마친 후 양 단체는 선물 교환 시간을 가졌다. 교총은 백제금관 장식을, 일본교육연맹은 일본 이시카와현의 특산품인 화병을 준비했다.
아오미 타다시 회장은 “2024년 1월,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국 국민이 보내 준 격려와 지원이 많은 힘이 됐다”면서 “고마움을 담아 이시카와현에서 만든 화병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교총과 일본교육연맹은 양국의 교육 발전과 문화 교류를 위해 1980년부터 한·일 교육연구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일 교육연구발표회는 한국과 일본 교원들이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교육 현안과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발표, 논의하면서 친목과 우정을 쌓는 한·일 교육 교류의 가교가 돼왔다.
▨ 한·일 교원 처한 현실 비슷해
한국 측 발표자로 나선 오준영 전북교총 회장은 2006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한 초등 교사의 죽음과 2023년 발생한 서울서이초 사건을 언급하면서 양국 교원들이 처한 현실이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일명 ‘몬스터 페어런츠’의 악성 민원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법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으로 휴직하는 교직원이 해마다 늘어나는 등 학교 현장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교사가 기피 직업이 되면서 만성적인 교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몬스터 페어런츠는 교사에게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요구를 일삼는 학부모를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서울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교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오 회장은 “그동안 교총은 계속되는 교육 방임 현상과 교원 사기 저하를 우려해 교권 회복, 교원의 근무 여건·처우 개선을 외쳤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면서 “교원들은 서이초 사건을 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인식했고 단체행동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 교원들은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공교육 회복을 위해 교원이 가르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외쳤다”며 “이를 위해 교육 활동 보호, 업무 경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지난해 국회에서 교원지위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교권 보호 5법’이 개정됐지만, 교원들은 교육 현장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여겼다.
오 회장은 “교권 보호 5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초등생에게 뺨을 맞은 교감 선생님, 운전기사 과실로 체험학습 사고가 났음에도 법정에 선 인솔 교사, 다툼을 중재하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한 교사 등이 있었다”며 “현장 교원들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추가적인 법령 제·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아동학대 요건을 명확하게 재규정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악성 민원에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교원지위법 개정 ▲체험학습 등 정당한 교육활동 중 발생하는 학교 안전사고로부터 교원 보호 ▲정서 행동 위기 학생 지원법 제정 등을 꼽았다.
오 회장은 “전문직으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가르침에 집중할 근무 여건 조성과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처우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며 “수업의 질은 교사의 질을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만큼 결국 선생님이 행복해야 학교 교육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일본 측 발표자인 사이토 나오코 도쿄도립국제고등학교 교장은 “현재 일본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취학 인구 감소로 지방을 중심으로 고교 재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학교 통폐합, 학교 규모의 축소 등이 과제로 떠올랐다”며 “이와 함께 학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제고하는 업무 방식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본 고교 교원들도 과중한 행정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처럼 학교가 대응해야 할 문제가 다양하고 복잡해지면서 교원들이 감당해야 할 업무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특히 학교와 교사가 담당해야 할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고, 업무량을 적정화하려는 사회적인 노력에도 교원들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2019년 일본 문부과학성은 중앙교육심의회가 제시한 ‘학교·교사가 담당할 업무에 관한 3분류’에 따라 업무를 나누고 적정화를 추진한 바 있다.
사이토 교장은 “학생과 마주하는 시간,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준비 시간, 교사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 등을 충분히 확보해야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교사로서 일하는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내 업무 방식을 개혁하는 방안으로는 ▲학교·교사가 담당할 업무에 관한 3분류를 고등학교 상황에 맞게 재정립 ▲교직원 확충 ▲업무 명확화에 따른 외부 인재 배치 및 확충 ▲전문직에 걸맞은 처우 실현 등을 꼽았다.
▨“신뢰와 소통으로 공동체 의식 회복해야”
발표 후에는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사토오 도모노부 강동구립 동양초등학교 교장은 “학교만큼 세상에서 훌륭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훌륭하고 가치 있는지를 새삼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같은 고민을 하는 것에 대해 동질감을 느꼈다”며 “한국에서 관리자에게 요구하는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김성종 교총 부회장은 ‘교사를 향한 신뢰’를 꼽았다. 김 부회장은 “교장이 먼저 교사들에게 신뢰를 보여주는 말과 행동을 하면 교사들 스스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해낸다”고 했다.
이정우 한국초등교장협의회 회장은 ‘소통’을 말했다. 이 회장은 “서이초 사건 등으로 상처받은 교사들과 신뢰감을 형성하고 공동체의 유대감을 회복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며 “학교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후지와라 가즈미 오사카부립 나가노고등학교 교장은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교의 나라 한국에서 악성 민원을 넣는 학부모가 증가한 배경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학생의 인권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교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면서 “교육 공동체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권리만 주장하면서 벌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학생에게 문제를 풀게 했더니 ‘왜 아이를 부끄럽게 하느냐’며 항의받은 일, 아침에 모닝콜을 부탁받은 일 등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받았던 악성 민원 사례도 소개했다. 강 회장은 “핵심은 공동체 의식이 약해진 데 있다”고 분석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자식을 위했다면, 지금은 우리 아이만 잘되면 상관없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요. 실패하면서 성장하는데, 그조차도 용납하지 못하고요. 공교육의 역할은 학생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상호 존중과 공동체의 신뢰 회복이 절실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