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사재를 털어 대학 설립에 나서는 갑부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첨단 분야에서 기술 자립을 강조하는 정부의 기조에 동참한다는 명분과 함께 대학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보는 인식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중국 최고 부호 중 한 명인 생수업체 눙푸산취안(農夫山泉) 창업자 중산산 회장은 400억 위안(약 8조 원)을 들여 사립대학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중 회장이 약 10년간 기부를 통해 설립한다는 첸탄(錢塘)대는 항저우시에 들어설 예정이다. 항저우시는 최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DeepSeek)의 창업자 량원펑을 배출한 저장대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최근 주목받는 로봇·AI 스타트업들 다수가 기반을 둬 ‘AI 인재의 요람’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첸탕대는 연간 15만 명의 전문가 양성, 500명의 연구원 유치, 35만 명의 학생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 회장은 지난 1월 자사 연례행사에서 대학 설립 계획을 밝히면서 "우리 대학의 사명은 지식의 최전선을 지키고 과학적 약진을 추동하는 것"이라면서 "과학 연구를 발전시키고 최고 수준의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항저우에는 텐센트의 창업자 마화텅과 부동산 재벌인 왕젠린 다롄완다그룹 회장 등의 기부를 바탕으로 2018년 개교한 이공계 사립대인 시후(西湖)대도 있다.
세계적으로 창업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스탠퍼드대를 벤치마킹하겠다며 나선 제조업 갑부도 있다.
중국의 1위 유리 제조업체인 푸야오(福耀) 그룹이 설립한 푸야오과학기술대(FYUST)의 학생 등록을 정부로부터 승인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의 주인공이자 ‘유리대왕’으로도 불리는 푸야오 그룹의 창업자 차오더왕(曹德旺)은 대학 설립을 위해 100억 위안(약 2조 원)을 투자해 고향인 푸젠성 푸저우시에 대학을 설립했다.
중국과 미국 간 기술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차오 회장은 첨단 제조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형의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푸저우시에는 푸야오 유리 본사가 있다.
‘반도체 거물’인 웨이얼반도체의 창업주 위런룽이 자금을 기부한 동부공과대(EIT)는 2022년 첫 박사과정을 입학시킨 뒤 올해 말 첫 학부생을 받을 예정이다.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胡潤)연구소의 ‘2024년 중국 자선사업 목록’에 따르면 중국 상위 기부자의 70%가 교육 분야 기부에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의 58%에서 큰 폭으로 늘어난 수치다. 이러한 추세는 중국의 유능한 사업가들의 부를 활용하는 방식이 변화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SCMP는 진단했다.
대만구(大灣區) 광저우 연구소의 리밍보 부학장은 "새로운 세대의 전문가가 없다면 중국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면서 "오늘날 기술 혁신은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기업가들이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