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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과 문학] 거대한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생긴 일

 

팽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자라지만, 남부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제주도나 남해안에 가면 정말 멋진 팽나무 고목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소금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도 잘 자란다. 세월호 아픔을 간직한 팽목항도 주변에 팽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이다. 느티나무는 어느 정도 크면 나무껍질이 타원 모양으로 벗겨지지만, 팽나무는 벗겨지지 않아 매끄러운 점이 다르다.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엔 팽나무가 거의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경남 창원시 동부마을 뒤편 언덕에 큰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팽나무 추정 수령은 500살로, 높이는 16m, 나무 둘레는 6.8m에 달하는 나무다. 나무 아래 서면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이 마을 한가운데로 도로가 뚫릴 위기에 처하자, 마을 주민들과 변호사가 이 팽나무를 보여주면서 설득해 재판에서 이기는 줄거리였다.


팽나무라는 이름은 열매를 대나무 총에 넣고 쏘면 ‘팽~’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어릴 적 팽나무 열매를 모아 열심히 총을 쏘았다. 열매가 불그스름해지면 따먹기도 했는데, 살짝 단맛이 도는 것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가을엔 나무 전체가 노랗게 단풍이 들었다. 팽나무는 필자에게 ‘고향의 추억으로 가는 표지판’이다.

 

 

팽나무 아래에서 슬픔 치유
2017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구효서 중편 <풍경소리>에 팽나무가 주요 소재로 나와 반갑게 읽었다. 이 소설은 이은상의 시조 ‘성불사의 밤’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서른두 셋쯤 보이는’ 미와는 뭔가 ‘달라지고 싶으면 성불사에 가서 풍경소리를 들으라’고 한 친구의 권유로 산사에 갔다. 미와는 미혼모로 자신을 키운 엄마의 죽음 이후 원인 모를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미와가 깊은 밤에 풍경소리를 듣고, 절 마당에 있는 거대한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특별한 사건은 생기지 않는다. 절에 온 지 사흘째, 공양주 좌자가 미와에게 ‘이곳에서는,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준 것은 팽나무 그늘 아래서였다. 미와가 두릅나물과 표고버섯 무침을 맛있게 먹다 사레가 들려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린 곳도 팽나무 아래였다.


팽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미와는 눈물을 철철 흘렸다. 저도 멋쩍은지 실실 웃으며. 좌자가 다가와 미와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미와의 다급한 발짝 소리에 놀란 쓰르라미들이 일시에 울음을 그쳤다. 그러자 팽나무 이파리들이 쏴아, 바닷소리를 냈다. …(중략)… 딱히 할 일이 없는 오후였으므로 좌자와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쓰르라미 소리를 들었다. 풍경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할 일이었다. 오후여서 좀 더웠다. 팽나무 이파리들이 끝없이 바닷바람 소리를 냈다. 팔랑거리는 작은 잎들을 하염없이 쳐다보자니 아련하고 간지럽고 재채기가 날 것 같고 졸렸다.

 

청각을 중심으로 한 팽나무 묘사가 감각적이다. 미와가 아주 오랜만에 휴대전화 전원을 넣고 남자 친구의 전화를 받은 것도 팽나무 아래서였다. ‘그의 말은 내가 팽나무 이파리를 다 셀 때까지도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팽나무가 있어서 가을 산사의 풍경은 더욱 고즈넉해졌고, 주인공의 내면 묘사는 더욱 섬세해졌다. 미와는 풍경소리에 귀 기울이며 ‘슥삭슥삭’ 글을 쓰고 성불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를 잃은 슬픔을 치유해 가는 것 같다.

 

작가 구효서(1958년생)는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요즘엔 문학상 심사위원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소설도 발표하는 현역 작가다. 꽃에 관심을 갖는 필자 입장에서는 그가 여러 소설에서 꽃(식물)을 주요 소재 또는 상징으로 쓰는 것이 흥미롭다. 구효서가 2017년 내놓은 장편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에서는 산나물로 먹는 파드득나물이 중요한 소재로 나오고 있다. 파드득나물은 전국의 산지 습한 계곡 등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어린순을 따서 생으로 먹거나 무침 등으로 먹는 나물이다. 파드득나물은 작은 잎이 세 개씩 달린 것(3출엽)이 참나물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의 단편 <소금가마니>도 감명 깊게 읽은 소설 중 하나다. 소설은 두부를 만들어 자식들을 먹여 살린 어머니를 회상하는 내용인데, 버드나무의 한 종류인 용버들이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강인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장면에 나오고 있다. 2005년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팽나무, 좀풍게나무, 풍게나무
식물에 관해 공부하면서 고수들이 팽나무 종류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 있다. “팽나무다”, “풍게나무다” 하는 식이었다. 그만큼 팽나무 종류 구분이 쉽지 않고 정리도 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국내 팽나무 종류를 젊은 학자가 연구해 깔끔하게 정리했다. 바로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다. 허 연구원은 복잡한 국내 팽나무속을 열매가 노란색 또는 주황색으로 익는 팽나무·폭나무·노랑팽나무·왕팽나무 등 4가지, 열매가 검정색으로 익는 풍게나무와 좀풍게나무 등 2가지로 정리했다. 이중 폭나무·왕팽나무·노랑팽나무는 드물거나 남해안 등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서울 등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만날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팽나무·좀풍게나무·풍게나무만 알아도 충분할 것 같다.

 

팽나무는 가을에 익는 열매가 약간 붉은색이 있는 노란색이고, 팽나무잎은 가장자리 톱니가 잎 절반 정도까지만 있는데 비교적 규칙적인 것이 특징이다. ‘풍경소리’에서 미와가 가을에 성불사에 들어갔으니 그 당시 팽나무에도 등황색 열매가 무수히 달려 있었을 것이다.

 

좀풍게나무는 주로 중부 이북에서 자라는데, 열매가 노란색을 거쳐 검은색으로 익는다.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잎의 절반 이하로 조금만 나타나고, 잎의 가운데 맥을 기준으로 양측의 톱니가 비대칭 모양이다. 풍게나무는 한반도 전역에서 자라고, 열매가 검은색으로 익고, 잎의 가장자리에 있는 뾰족뾰족한 톱니가 잎의 절반 아래까지 길게 나타나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기준을 알고 광화문 일대에 있는 팽나무를 보니 의외로 좀풍게나무가 적지 않았다. 허태임 연구원에 의하면 경복궁·창경궁·청와대에는 팽나무보다 좀풍게나무가 더 많다. 경복궁 향원정 옆에 있는 근사한 나무도 오랫동안 팽나무인 줄 알았는데, 허 연구원 글을 읽고 살펴보니 검은 열매가 달리는 좀풍게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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