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민정 작가의 장편동화 <모두 웃는 장례식>은 할머니가 자신의 75번째 생일에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할머니는 유방암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 죽은 뒤에 우르르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 무슨 소용이야. 살아 있을 때, 누가 누군지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지.”
이 동화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 윤서다.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엄마가 일하는 상하이로 떠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하자 망설일 수밖에 없다. 결국 남기로 결심한 윤서의 시각으로 할머니 슬하 4남매가 너무 놀라 갈등을 겪다 할머니 부탁을 받아들이는 과정, 생전 장례식을 준비해 치르는 과정이 담겨 있다. 윤서도 할머니가 일한 시장 사람들의 육성을 영상으로 담는 등 생전 장례식 준비에 참여했다.
도라지꽃, 할머니가 가장 좋아한 꽃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도라지꽃이다. 시장에서 할머니한테 한복 만드는 법을 배운 아주머니가 할머니 한복을 지어 찾아왔다. 한복 치마엔 도라지꽃이 선명하다.
아주머니는 한복을 펼쳐 할머니의 몸에 대 주었다. 치마에 수놓은 보라색 꽃이 예뻤다. 할머니는 거칠고 마른 손으로 꽃무늬를 어루만졌다.
“도라지꽃이네.”
“네. 형님이 좋아하시잖아요.”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할머니는 생전 장례식날 이 한복을 입는다. ‘한복에 수놓은 도라지꽃이 햇살을 받아 곱게 빛났다.’ 윤서가 생전 장례식날 할머니에게 주는 감사패를 읽을 때 윤서 친구들이 할머니에게 주는 꽃다발에도 도라지꽃이 들어 있다.
할머니는 생전 장례식을 치른 지 두 달 남짓 지나 돌아가셨다. 생전 장례식이라는 소재를 너무 가볍게도, 너무 무겁게도 다루지 않은 것이 이 동화의 미덕이다. 예상 가능한 스토리인데도 몇몇 군데에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읽었다.

2017년 일본 대기업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 전 대표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뒤 “40여 년 동안 신세 진 이들, 이후 여생을 같이 즐긴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신문에 생전 장례식을 열겠다는 광고를 냈다. 이 광고와 실제 생전 장례식은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필자는 ‘생전 장례식’이라는 말을 이때 처음 들었다. 그는 이 행사에서 “인생을 충분히 즐겼고 사람 수명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 “건강할 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당사자의 말에 공감이 갔다.
<모두 웃는 장례식> 줄거리는 이 기업인 얘기와 비슷하지만, 시장에서 한복집을 운영한 용기 있는 할머니 버전이다. 아들 친구가 ‘너희 집 마당에 도라지꽃이 참 예뻤는데’라고 회상하는 것으로 보아 도라지꽃은 할머니의 전 생애를 보여주는 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후(死後) 장례식은 아무리 화려해도 고인이 아닌 유가족 중심일 수밖에 없다. 조문을 가더라도 고인의 이름과 영정을 보는 것 말고는 고인에 대해 알 방법이 없다. 상가에 늘어선 조화(弔花)를 보면서 고인과 그 자녀들이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졌는지 짐작해 볼 뿐이다. 생전 장례식이 더 의미 있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필자라면 어떻게 할지에 생각이 미치자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 책은 동화지만 태어나면 피할 수 없는 죽음, 장례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어른들이 읽어도 손색이 없는 내용이다. 두렵고 그저 먼 얘기로만 느낄 수 있는 죽음의 의미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차분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세 개의 별을 가진 도라지꽃
도라지꽃은 6∼8월 보라색 또는 흰색으로 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예쁜 꽃들이 많은 ‘미녀군단’ 초롱꽃과에 속하는데, 우리나라 전국의 산에서 볼 수 있으며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하는 식물이다. 초롱꽃·섬초롱꽃·금강초롱꽃이 도라지와 같은 초롱꽃과에 속하는 자매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도라지는 밭에 재배하는 것으로, 나물로 먹는 것은 도라지 뿌리다. 별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진 통꽃이 기품이 있으면서도 아름답다. 흰색과 보라색 사이에 중간색 같은 교잡이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문일평은 꽃이야기 책 <화하만필(花下漫筆·꽃밭 속의 생각)>에서 “도라지꽃 잎과 꽃의 자태가 모두 청초하면서도 어여쁘기만 하다”며 “다른 꽃에 비해 고요히 고립을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적막한 빈산에 수도하는 여승이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도라지꽃을 별에 비유하는 글들이 많은데, 가만히 보면 도라지꽃에는 세 개의 별이 있다. 먼저 도라지꽃은 개화 직전 바람을 불어넣는 풍선처럼 오각형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 모양이 별같이 생겼다. 이 모양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풍선처럼 보인 모양이다. 그래서 도라지의 영어 이름은 ‘Balloon flower(풍선꽃)’다.
두 번째로, 꽃잎이 활짝 펼쳐지면 통으로 붙어 있지만 다섯 갈래로 갈라진 것이 영락없는 별 모양이다. 그런데 꽃이 벌어지고 나면 꽃잎 안에 또 별이 있다. 꽃 안쪽에 조그만 암술머리가 다섯 갈래 별 모양으로 갈라진 채 뾰족이 내밀고 있는 것이다. 도라지꽃은 수술 꽃가루가 먼저 터져 날아간 다음에야 암술이 고개를 내민다. 자기꽃가루받이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해바라기도 수술 꽃밥이 먼저 터지고 하루이틀 지난 다음, 암술대가 올라와 다른 개체의 수술 꽃가루가 오기를 기다린다. 반대로 천남성과 식물들은 암술이 먼저 나온다. 소나무처럼 암술머리가 수술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같은 나무의 꽃가루가 암술머리로 옮겨지는 것을 막는 경우도 있다. 식물들이 이렇게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도라지는 왜 이런 이름이 생겼을까. 도라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핀다. 김훈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에는 ‘멀리서 봐도, 고개를 옆으로 돌린 꽃들조차 나를 향해 피어 있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옆으로 핀 도라지꽃을 묘사한 것이다. 고주환 씨는 책 <나무가 청춘이다>에서 도라지꽃이 옆으로 ‘돌리며’ 피어나는 것이 이름의 유래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식물 이름 유래가 대개 그렇듯 정설은 없다.
홍민정 작가는 동화책 <고양이 해결사 깜냥> 시리즈가 6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어린이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로, <모두 웃는 장례식>은 그의 첫 고학년 장편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