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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우리 교육에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는 무엇인가?

짧은 늦장마가 이 땅을 온통 훑고 지나간 지금, 많은 온열질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2026년의 7월 말로 접어들면서, 수온주가 미친 듯이 치솟으며 전국이 가마솥처럼 들끓고 있다. 에어컨 바람 아래 가만히 누워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이런 계절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우리 선조들의 신기한 지혜가 하나 있다. 바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전국은 섭씨 33~39도를 오르내리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과거 우리 선인들은 얼음물 대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삼계탕이나 뚝배기 보신탕에 숟가락을 얹었다. 실제로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비워내고 나면, 신기하게도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해방감을 맛보곤 한다. 열로써 열을 제압하고, 내면의 생명력을 끌어올려 무더위를 극복했던 이 역설의 지혜는 오늘날 사계절 내내 ‘열병’을 앓고 있는 한국 교육에도 아주 매력적이고 획기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현재 우리 교육 현장을 돌아보자. 역설적이게도 한국 교육은 지금 너무나 ‘차갑게’ 식어있다. 학교 현장은 갈등과 불신, 그리고 책임 회피라는 싸늘한 냉기가 지배하고 있다. ​수업 시간 교실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냉동실에 들어간 생선처럼 멍한 눈으로 앉아 있다.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것은 썰렁한 침묵뿐이다. “틀리면 창피하니까”,“나서면 손해 보니까”라는 냉소적인 계산이 아이들의 입을 얼려버렸다. 질문이 사라진 교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냉담함, 그리고 어김없이 교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선생님, 이거 시험에 나와요?”라는 얼음처럼 차가운 실리주의만 남아있다.

 

​어른들은 이 차갑고 썰렁한 교육 현장을 따뜻하게 만든답시고 연신 ‘차가운 미봉책’만 퍼붓고 있다. 교실에 문제만 생기면 새로운 규제를 만들고, 매뉴얼을 늘리고, 평가 항목을 덧붙인다. 하지만 이는 불길을 잡겠다며 얼음물을 뿌려대는 격이다. 겉은 차가워질지 몰라도, 아이들과 교사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과 스트레스라는 ‘내열(內熱)’은 방출되지 못한 채 안에서 곪아가고 있다 할 수 있다.

 

​바로 지금이 교육에도 ‘이열치열’의 원리를 작동시켜야 할 때이다. 어떻게 말인가? 첫째, ‘질문의 열기’로 ‘평가의 중압감’을 불태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정답을 맞히는 냉정한 기계같은 인간을 양성해 왔다. AI가 초당 수억 개의 정답을 쏟아내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아이들에게 오지선다형 정답을 찾아 수열을 맞추라고 강요한다. 아이들이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열정을 잃어버린 이유는 바로 이 ‘정답 찾기’를 주구장창 반복하는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열치열의 처방은 간단하다. 정답을 외우는 차가운 공부 대신, “세상을 가장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교사가 단상 위에서 정답을 웅변하듯 외치는 대신, 아이들에게 세상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뜨거운 문제를 던져주어야 한다. 예컨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 마을에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엉뚱한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어떤 세금을 물려야 하는가?”와 같이 정답이 없는 열띤 논쟁의 장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아이들이 서로의 의견에 반박하고, 밤을 새워 자료를 찾고, 논쟁의 열기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게 만들어, 질문의 열기로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 비로소 아이들은 “시험 점수”라는 차가운 중압감에서 벗어나 진짜 배움의 시원함(學樂)을 맛보게 될 것이다.

 

​ 둘째, ‘실패의 용광로’로 ‘안전지대의 매너리즘’을 깨부수게 한다. 이 방식의 이열치열은 ‘실패의 뜨거운 경험’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일찍 ‘몸 사리는 법’을 배운다. 틀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오답 노트 쓰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위대한 발견과 창의성은 뜨거운 실패의 용광로 속에서 단련되어 나왔지 않은가? ​이제 학교는 아이들에게 ‘성공의 사다리’만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껏 실패해 볼 수 있는 ‘안전한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한 혁신 학교에서는 한 학기 동안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창의적으로 실패한 학생에게 ‘위대한 실패상’을 수여한다. 실패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유쾌하게 발표하고, 전교생과 교사가 다 함께 박수쳐 주고 있다. ​우리 교육도 이러한 뜨거운 배짱이 필요하다. “틀려도 괜찮다” 수준을 넘어, “더 장렬하게, 더 독창적으로 틀려 보라!”고 부추겨야 한다. 실패의 열기 속에서 땀을 흘려본 아이만이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에 던져졌을 때 어떤 파도도 유연하게 넘어서는 단단한 면역력을 갖게 될 것이다. 안전한 그늘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아이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결코 시원한 바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셋째. ‘관계의 온도’로 ‘소외와 불신의 냉기’를 녹이는 것이다. 이 방식의 이열치열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서로의 ‘뜨거운 체온’을 회복하는 것이다. ​오늘날 학교가 비극적인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 가해자’이자 ‘신고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늘한 사법적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이라는 얼음장 같은 바람이 불어오자, 교사들은 스승의 열정을 내려놓고 ‘법적 방어막’ 뒤로 숨어들었고, 학부모는 불안감에 휩싸여 학교 문을 차갑게 두드리고 있다.

 

​이 차가운 바람을 막는 유일한 길은 법조문을 더 촘촘히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손을 잡는 ‘뜨거운 인간적 교감’을 복원하는 것이다. ​공부 가르치는 기계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아이의 삶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함께 울고 웃어주는 ‘사람 냄새 나는 스승’의 열정이 다시 타올라야 한다. 학부모 역시 학교를 서비스를 구매하는 시장쯤으로 여기는 차가운 소비자의 태도를 버리고, 내 아이를 함께 키워내는 ‘교육의 뜨거운 동반자’로 돌아와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뜨거운 체온이 흘러넘칠 때, 학교를 둘러싼 불신과 갈등의 냉기는 온데간데없이 녹아내릴 것이다.

 

2026년의 한여름, 삼계탕 뚝배기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 시원하다!”라고 외치는 어르신들의 혼잣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몸 안의 열기를 밖으로 발산하고, 땀을 통해 노폐물을 배출한 뒤 찾아오는 그 참된 개운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 교육도 이제 차가운 규제와 냉소의 그늘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시험지 위의 정답을 다투는 차가운 경쟁을 끝내고, 뜨거운 질문, 뜨거운 도전, 뜨거운 인간적 연대의 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배움의 열기 속에서 진정으로 땀 흘리는 즐거움을 알게 될 때, 교사들이 가르침의 열정으로 다시 가슴이 뜨거워질 때, 비로소 한국 교육은 잔혹한 입시의 무더위를 뚫고 건강하고 시원한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 우리 교육의 묵은 때를 씻어낼 가장 뜨겁고도 시원한 ‘이열치열’의 원리를 다 함께 찾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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