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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창가에서> 선생님과의 소중한 인연

피천득의 `인연’은 잊을 수 없는 세 번의 만남을 그린 수필로 유명하다. 내게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그 첫 번째 인연은 코흘리개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시작됐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어느 봄날이었다. 춘천의 작은 농촌지역에 살고 있던 나는 마땅히 놀 만한 친구도 없었고, 고작 언니들이나 부모님께 들은 동화책 내용이나 읊조리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신나게 만들어 주셨다. 고작 헐떡거리며 시간표를 따라가고 있는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달랐다.

`음악시간에는 직접 피아노를 치시며 노래 불러주셨고, 나로서는 엄두도 못내는 작문지도나 생활지도도 꼼꼼히 해주셨는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약간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나를 채찍질하게 된다.

특히 무척이나 내성적이었던 나는 선생님 덕분에 자신감도 생기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게 되었다. `내가 배울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모든 것을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나오는 나무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놀아주고 자신의 열매며 나뭇가지, 심지어는 줄기까지 모두 나눠주면서 행복해 하는 나무 한그루가 바로 그 선생님임에 틀림없다.

그 후 선생님께서는 전근을 가셔서 헤어지게 되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전화 한통도 못하고 늘 가슴속에 선생님과의 추억을 간직한 채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과의 두 번째 인연이었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그 때, 그 상훈이니?”하는 약간 미심쩍은 듯한 목소리. 나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카랑카랑하고 영동지방 억양이 있는,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였다. 초조하게 초등교사 발령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말문이 막힌 채 한참동안 수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변하셨을까? 선생님께서도 나를 기억하고 계셨구나.’ 며칠 후 선생님과 나는 두 손을 맞잡은 채 지나 온 날들을 더듬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가르친 제자가 벌써 선생님이 되었구나”라며 뿌듯해 하셨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학교로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다. 일상의 자잘한 일들로 지쳐갈 때쯤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셨다. 이것이 세 번째 인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 교장선생님이 바로 그 담임선생님이셨던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이 최고인양 졸졸 따라다녔던 내가 어느새 커서 철부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그때 담임선생님은 교장선생님으로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되다니…. 냇가에서 고기도 잡고 도시락도 같이 먹던 25년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눈을 감아본다.

교정에는 노란 개나리가 예쁘게 피어있고 2학년 교실에서 재잘거리며 책을 읽는 아이들 중에 유난히 희고 말없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 상훈이 큰 소리로 읽어 보세요.”
칠판 앞에 흐릿하게 나의 선생님이 서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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