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교육청이 5조원의 빚더미에 앉았다. 각급 학교는 대폭 삭감된 운영비로 복사용지까지 학부모에게 협찬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GDP 대비 교육재정은 해마다 줄기만 하고 올해는 4.2%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기획예산처 장관은 최근 “대통령의 ‘GDP 6% 확보’ 공약은 정부예산의 40%를 쓰자는 것으로 불가능하다”며 교육계를 기만했다.
최근 10년간 교원법정정원 확보율이 4% 떨어지며 초중고 교사의 주당수업시수가 2시간씩 늘어도 참아 온 교원들을 얕잡아 본 것이다. 그러나 파탄 교육재정이 학생들의 교육활동마저 위축시키면서 교원들이 전국 서명운동을 벌이고 대규모 집회에 나설 움직임이다. 학습교재․교구를 살 수 없고 컴퓨터를 켤 수 없으며, 실험실습은 꿈도 못 꾸고 추워도 난방을 할 수 없는 ‘교육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서다.
GDP 6% 공약 지키라 ▲가난한 학교, 학생만 피해=기획예산처의 내년도 예산 편성내역에 따르면 일반회계 기준으로 정부예산은 8.4% 증가한 반면 교육예산은 5.2% 증가에 그치고 있다. 시도교육청의 올 지방채 발행액 3조원, 지방채 상환 잔액 1조 7000억원, 미확보 학교용지부담금 환급액 3500억원을 더하면 최소한 5조원이 넘는 빚에 교육청이 쪼들리고 있지만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봉급도 꿔다 주는 판이다.
그런 탓에 노무현 대통령의 GDP 대비 6% 교육재정 확보 공약이 무색하게도 2001년 4.35%던 교육재정은 2003년 4.29%, 2005년 4.20%로 되레 떨어졌다(지방채 제외 수치). 자연 학교 살림이 궁핍해지고 학생들의 학습권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충남 C초는 1․2학년, 3․4학년이 4년째 한 교실을 ‘쪼개’ 쓰고 있다. 교실 중간을 판자로 막고 공부를 하다보니 책 읽는 소리에도 옆 반 수업에 방해가 된다. 4년 전 낡을 대로 낡은 2개 교실이 철거명령을 받았지만 철거 예산도 없어 신축이 안 되고 있는 탓이다.
경기 C초에 다니는 자녀를 둔 김 모(45) 씨는 한 달 전 6학년 딸아이가 다짜고짜 “선생님이 1인당 A4 복사용지 250매씩 가져오래요. 다 너희들에게 쓰일 거라고 하시던데요”라고 말하는 모습에 황당했다. 김 씨는 “학교가 복사용지까지 학생에게 손을 벌려야 할 정도인지는 몰랐다”며 씁쓸해했다.
또 전북 W초는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흐린 날을 제외하고는 교실, 복도, 화장실을 전등을 끄고 있다. 당연히 조도가 낮아 아이들 시력을 해칠까 우려된다. 경기 A공고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자재구입비가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기자재수리비, 실습재료비는 전년보다 각각 8%, 28%나 줄었다. 1인당 실습비 7만 2000원 꼴인데 이 학교 한 교사는 “제품 2개 만들면 더 할게 없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교총은 “지방교육의 부채를 없애고 GDP 6%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교육세의 안정적인 유지와 학교전기료 인하, 그리고 초중학교에 대한 학교용지 무상 공급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원정원권 분리해 내자 ▲정원 부족, 수업시수 늘어=계속되는 교육재정 규모 축소는 교원증원에도 큰 부담이 됐다. 학급당학생수 감축을 위해 대규모 학급 신증설이 이뤄졌지만 늘어난 학급만큼 교사는 증원되지 못했다. “교사만 늘고 있다”며 증원을 억제해 온 행자부, 인건비 부담 증가를 걱정한 기획예산처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1996년 93.2%(초등 100.1%, 중등 87%)던 교원 법정정원확보율은 2005년 88.5%(초등 96.8%, 중등 81.4%)로 4.7%가 떨어졌다. 올해 법정배치기준이 34만 776명이지만 실제 확보된 정원은 30만 1588명으로 3만 9188명이 부족한 상태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지난해 2만 1722명의 교원증원을 요구했지만 5195명만 증원됐고, 올해도 2만 7358명을 요청한 상태지만 행자부 가안에 따르면 5231명(영양교사 1000명 포함)만 증원할 예정이어서 법정 확보율은 87% 선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대로 최근 10년간 초중고 교사들의 주당수업시수는 평균 2시간이 늘었다. 1996년에도 초등교사는 주당 24.5시간의 과중한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2005년에는 25.9시간으로 늘었다. 28시간 이상 하는 교사도 2만명이나 된다. 같은 기간 중학교는 18.8시간에서 20.9시간으로 2.1시간 늘었다. 22시간 이상 하는 교사도 6225명이다. 또 고교 교사는 14.5시간에서 17.7시간으로 3.2시간이나 늘었다. 19시간 이상 하는 교사가 1만 2600여명에 이른다.
충북 Y중의 한 교사는 “시달된 내년도 정원조정안에 따라 여러 차례 회의를 한 결과, 우리 학교의 경우도 주당 평균 20시간이 훌쩍 넘어 과목에 따라서는 주당 최고 24시간을 담당하는 교사가 나올 듯하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교총은 초등 20시간, 중학 18시간, 고교 16시간의 표준수업시수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 담당자는 “초등수업시수를 20시간으로 하려면 현 학급수 기준으로 5만명이 더 필요하고 인건비 예산도 1조원 이상이 더 든다”며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어 “사실 수업시수는 놔두고 학급당학생수가 줄어야 교육여건개선사업인데 덩달아 수업시수가 늘면 개선효과는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효과 없는 일을 위해 수 조원 을 쏟아 붇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탄력적인 교원 수급을 위해 교원정원조정권을 행자부에서 교육부로 이양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제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교총 한재갑 홍보실장은 “법정정원 확보만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며 “표준수업시수 법제화와 정부조직법 개정 의지를 담은 교원들의 서명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콩나물 교실은 이제 그만” ▲과밀학급만 10만개=주당수업시수를 늘리면서까지 학급당학생수를 줄이고 있지만 아직도 36명 이상의 과밀학급 수가 10만개나 된다. 초등이 4만 9386학급, 중학교가 3만 2794학급, 고교가 1만 4875학급이나 된다. 학급당 41명 이상인 콩나물 교실도 무려 2만 3242개(초 1만 3487개, 중 8191개, 고 1564개 ) 학급이나 된다.
경기도와 서울이 특히 심하다. 하지만 학교용지 확보 예산의 부족으로 학교신설은 상당수 축소됐다. 교총은 “당초 교육부는 올해 200개의 학교를 신설할 계획이었지만 180개교로 축소했다”고 밝혔다.
2003년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학급당 학생수는 초등교 21.6명, 중학교 23.9명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초등교 31.8명, 중학교 35.3명으로 10명이 넘게 차이 난다. 이를 OECD 평균에 맞추려면 학급수를 30% 이상 늘려야 하고 교원들은 이 때문에 주당 평균 초등은 35시간, 중학교는 28시간, 고교는 24시간의 수업을 해야 할 것이다. 즉 현재 우리나라 교원들은 주당 평균 26, 21, 18시간을 수업하지만 과밀학급이라는 점에서 OECD 기준에서 보면 주당 35, 28, 24시간의 수업을 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초등교사의 수업부담을 덜어줄 교과전담교사도 1만 9000여명이 필요하지만 1만 2000여명만 배치된 상태다. 이 때문에 경기(470명), 전북(29명), 전남(64명)은 자체 예산을 들여 교담用 전일제 강사를 쓰고 있다. 기간제 교원도 현재 유초중고에 1만 4585명이나 채용돼 있다.
교사들은 “교사의 전문성이나 책임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결국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고 토로했다.
연간 수업일수 180일로 ▲교원만 주5일제 제외=올 7월부터 공무원에 대한 주5일 근무제가 전면 실시된 상태지만 교원은 월 1회로 제한된 상태다. 이 때문에 교원들은 학교에 나오는데 학교를 지원해야 할 교육청은 노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총은 “지난해 전국 1023개교를 대상으로 시범학교까지 운영하고도 정부의 준비부족으로 교원만 제외됨으로써 복무상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주5일제 도입을 위한 교육과정 개편 및 수업일수 조정 방안은 아직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행 220일 수업일수를 OECD 평균 수준인 180일로 조정하고 이에 따른 교육과정 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맞벌이 부부, 소외계층 자녀 등을 위해 지역사회가 다양한 교육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추도록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선 교사들은 “학교에서는 수업을 하는데 교육행정당국은 쉬는 따로따로 근무형태로 인해 교육적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 뻔하다. 학교에 학생이 있어야 한다면 교육행정당국 없는 학교가 있을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교육행정당국이나 학교 행정실 없이도 학교 교육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며 “토요 휴업일에 학교에 나오는 학생도 거의 없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전면 시행도 조속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교원평가 합의 실시하라 ▲교육부 강행 의지 노골화=교육부가 교원평가 2학기 시범운영을 노골화하고 있다. 11일 교육부 확인 국감에서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교원단체와 합의가 안 돼도 시범실시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교총은 “새로운 평가안과 근평이 중복되면서 혼란이 불가피하고 공개수업 위주의 평가는 교육활동 자체를 왜곡시키는 등 교육부 평가안에는 문제가 많다”며 신중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교총은 “교원평가 문제를 교육력 제고 사업으로 전환하고 협의회를 구성해 수업시수 감축과 교원정원 확충 등 여건개선과 함께 논의하며 합의를 통해 시범실시 하기로 한 만큼 일방적인 교원평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 이어 19일 "교육부는 특별협의회를 조건 없이 재개하고 합의정신에 따라 운영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