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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기획진단> 韓·日 '학교붕괴' 원인과 대책

'자율'만 있고 `엄격함'이 사라졌다

교사의 지시를 한 귀로 흘리며 등교를 소풍 정도로 생각하는 아이들. 맘에 들지 않는다며 급우를,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는 아이들. 한국과 일본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붕괴'의 단면이다. 양국의 학교는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가정과 사회에 구조요청을 보내는 실정이다. 지난주 방한한 일본의 '학교붕괴' 전문가 가와카미 료이치 교사와 국내에서 이 문제를 연구하는 김진성 교장이 본사 회의실에서 한-일 학교붕괴의 원인과 그 대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통역은 이임주 전 도봉중 교장이 맡았다.


김=한국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광범위한 학급붕괴 현상이 일어나 수업을 전쟁으로 비유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일본 역시 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압니다만.

가와카미=일본의 학교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초등학교 에서는 `학급붕괴' 현상이고 중학교에서는 `교내폭력'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붕괴'란 이 두 현상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학급붕괴'란 소수의 학생들이 교실에서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거나 반항하거나 하는 것을 계기로 혼란이 학교교실 전체에 퍼져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교내폭력은 97년도에 1만8209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2.2배가 증가했습니다.


김=한국은 최근 3, 4년 전부터 열린교육, 새물결 운동 등 교육개혁이 진행되면서 교원의 사기가 저하되어 교실 붕괴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일본은 언제부터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가와카미=일본의 학교는 30년 전부터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10여년 전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고 4, 5년 전부터는 `큰일 났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김=한국은 인문고 보다 실업고가 더 심하고, 지방보다는 대도시의 경우가 심합니다. 문화적 혜택을 더 누리는 지역에서 학교붕괴 현상이 심한 것은 과외와 같은 사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학교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약해진 때문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본은 학교붕괴가 전국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일부 지역, 일부 학교의 현상인지 궁금합니다.

가와카미=일본은 도농간의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한국의 청소년들은 참고 견디는 힘이 아주 약해졌습니다.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면서 자기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남을 괴롭혀서 풀려고 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일본의 집단 따돌림은 왜 일어난다고 보시는지요.

가와카미=일본의 청소년들은 전후 민주주의 교육으로 극단적 개인주의만 키워 왔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이 많이 바뀐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해도 좋다는 잘못된 생각이 점차 팽배하고 남에게 어떤 피해가 가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소산이 바로 이지메라 할 수 있습니다.


김=한국의 경우, 교사에 대한 폭력 현상은 그리 심각하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아버지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고 동료여학생을 살해한 사건 등은 심히 우려할 만한 것입니다. 일본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폭력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왜 교사에게 반항하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와카미=1980년대 초, 제1차 교내 폭력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주로 중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는데 폭행 배후에는 반드시 비행그룹 조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조직 보스에 대한 설득으로 어느 정도 예방조치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995년경 제2차 교내 폭력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조직이 아닌 개인별로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폭력 또한 대단히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어서 예방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상태입니다.

김=한국은 가출했기 때문에 등교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집에 있으면서 학교에 안가는 학생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 나라도 서서히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등교 거부 학생으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가와카미=정확한 통계치는 잘 알 수 없으나 초·중·고 학생 중 약 13만 여명이 등교를 거부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그들은 가정에 있는 것을 더 편하다고 생각하고 학교를 강제와 억압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김=요즈음은 문제아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보통의 아이들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거죠. 등교 거부, 집단 따돌림, 자살, 폭력, 교실 붕괴의 주역이 바로 보통의 아이들이고 이들을 일컬어 `새로운 아이들' `신인류' `신인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아가 따로 있어 아이들 지도가 오히려 쉬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모두가 불안한 상황입니다. 요즘 일본에서도 `새로운 아이들'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어떤 아이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가와카미=`새로운 아이들'은 아주 나약하고 대단히 공격적인 아이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생활의 틀이 무너져 절도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방어망을 치고 자기 것만을 지키려 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움츠러드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또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해져서 지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새로운 아이들'은 전후 민주교육의 완성품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전후의 일본을 부정하기 위해서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근대 유럽의 이념인 자유, 평등, 개성존중, 인권제일주의의 이념의 소산이라는 거죠. 이 `새로운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어른이 될 수 없고, 아니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회적 자립이 곤란한 아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자유, 평등, 개성존중, 인권 제일주의라고 하는 서구의 이념이 학교 붕괴를 가져왔다고 보는 시각이 내포돼 있는 듯한 말씀이시군요.

가와카미=그렇습니다. 자유, 평등, 개성존중, 인권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러한 것을 지향하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사회적 자립심부터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에서 강제는 필연적인 요소입니다. 학교는 교육의 장입니다. 아이들의 사회적 자립을 위한 기초 학력과 생활 방법, 사회성을 몸에 익히게 해야합니다. 학생들이 싫다고 해도 참아내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학생들의 자유는 제한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교육입니다.


김=교육은 곧 강제요, 억압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수요자 중심 교육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까.
가와카미=교육은 본질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억압을 제거해 버리면 아이들이 저절로 자란다고 하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위험한 생각입니다.


김=동감입니다. 학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하고, 싫은 것은 안 해도 좋은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수요자 중심 교육에 대한 잘못된 생각부터 고쳐져야 하겠습니다. 화제를 돌려서 일본의 교육 개혁 방향을 보면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힘을 기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열린교육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학교 붕괴와는 관련이 없습니까.

가와카미=일본은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여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르치기 보다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기초교육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러나 방향은 좋았지만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길러주지 못하고 개성만 강조하다보니 오늘의 현상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주5일제 수업도 이러한 취지에서 시작되었는데 여유와 개성을 강조하다 보니 학교의 교육력이 크게 떨어지고 결국 학교 붕괴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그렇군요. 우리 나라에서도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5일제 수업은 될수록 아이들을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지내도록 하여 인성 교육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분위기상 부모는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군요.

김=한국은 요즘 언론의 `학교 두들겨 패기'로 교사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고 학교가 불신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학교 운영에 대한 비판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학교 교육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고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학교 두들겨 패기가 학교 발전을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시는지요.

가와카미=학교는 봉건적인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장입니다. 학교 두들겨 패기는 봉건적인 학교를 근대화하여 시민사회화 하는 것이 그 목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근대화' `시민사회화'를 위해서는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교육 그 자체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두들겨 패기를 해 온 사람들은 학교붕괴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학급 붕괴나 교내 폭력은 일본의 오래된 학교가 붕괴해가고 있는 가운데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전후 50년이나 걸려서 여기까지 온 셈이지요.


김=지금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와 근대적 산업사회 그리고 정보화 사회의 삼 대가 한 시대에 모여 사는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신세대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부적응을 보이고 있는 기성세대간의 대리 전쟁이 학교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 학교 붕괴 현상을 교사들의 지도력 부족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가와카미=일본 문부성은 학교붕괴 현상은 70%가 교사의 지도력 부족 때문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는 승복하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문부성 발표대로 교사의 지도력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면 교사를 교체하든가 교사 교육을 통해 해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교사 교체, 교사 교육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보다는 하나의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전후 사회의 여러 변화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개개인 교사의 지도력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얘깁니다.


김=학교붕괴를 학교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겠지요. 가정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 학부모의 자녀 교육 방식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가와카미=가정에서 자기 자식이 귀여워 벌하지 않으면서 학교에서 엄하게 키워 달라고 회초리 등을 선생님에게 드리는 일은 본말이 전도된 모순입니다. 가정에서 자식을 엄히 다룰 때, 학교에서도 엄한 교육이 가능한 것입니다. 일본의 가정에서는 시쯔케라고 해서 기본 생활 습관지도를 아주 엄하게 교육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모두 옛날 이야기입니다. 20년 전쯤만 해도 가정에서 엄격히 예의 범절을 가르쳤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학교에서도 이러한 지도를 계속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교사들의 말을 제대로 듣질 않습니다.


김=결론적으로 한·일 양국은 지금 학교 붕괴라는 심각한 교육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와카미=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전후 50년에 걸쳐 여기까지 온 것을 단시일 내에 고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선 우리 교사들은 현재 혼란에 빠져 있는 학교와 학생들의 실태를 솔직하게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그 일은 교사나 학교에 대한 비난을 확대할 것이지만 이 문제는 벌써 우리들 학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는 걸 직시해야 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솔직하게 머리를 숙여 할 수 없다고 말하고 국민들에게 생각해 봐 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실태 자료의 제공도 우리 교사들밖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둘째, 지금까지 일본의 학교가 담당해온 역할 가운데서 앞으로도 이어 받을 만한 것은 무엇인가를 교사 스스로 정리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학교 현장에서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 지에 대해 교사들이 한 목소리로 내고 실천해 가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일본의 의무교육이 담당해 온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 가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김=한국에서도 학교 붕괴를 더 이상 쉬쉬하지 말고 교사들이 직접 학부모에게 현실을 알려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교육이란 어느 정도의 강제와 억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아울러 학교 붕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가와카미=교육 전체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총리 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의 구상 간담회'에서 자문한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보고서 중 교육분야의 일부를 소개하면, 우선 의무교육 분야를 두 축으로 갈라 기초교육과 서비스 분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교육 과정의 70%정도는 기초적 생활 습관을 비롯한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교육을 하되 이는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규제해 의무적으로 관철해 간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30% 정도의 교육 과정은 수요자중심으로 학생들의 선택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서비스로의 교육비는 국가에서 쿠폰을 발행해 대체해 간다는 구상입니다.


김=선생님의 말씀은 우리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는 광복 이후 미국에서 도입한 각종 교육 제도와 이념이 유행병처럼 들어와 교육을 혼란시켰습니다. 이미 미국에서 한 물 간 것이 우리 나라에서는 활개를 치는 일이 한 둘이 아니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정책 입안 태도를 과감히 청산해 학교 붕괴를 오히려 가속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또 정부, 언론, 학부모, 지역 사회가 오늘의 학교 현실을 정확히 알고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오늘 대담을 기점으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진성(60)=충주사범 졸업 후 초·중·고 교사를 두루 거쳤고 서울시교육청과 교육부에서 8년간 주무 장학관으로 교육정책을 다뤘다. 한때 주일 한국대사관 수석교육관으로 재일동포 교육을 담당하면서 일본의 교육제도를 연구했다. 현재는 서울 구정고 교장으로 재직하며 서울중등교장협의회장, 한국교육정책연구회장을 맡고 있다.

#가와카미 료이치(56)=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현재 川越市立城南中 교사로 있으며 `프로교사의 모임'을 이끌고 있다. 일본에서 학교붕괴 현상에 대한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으며 그의 저서 "학교붕괴"는 30만부가 판매될 만큼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수상 자문기구인 `교육개혁국민회의'에 현직교사로는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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