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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원로교사의 한숨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4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는 내 앞에 연세가
지긋하신 선배 교사가 인사를 하며 앉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오늘이 명예퇴직 신청 마지막 날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학교에서도 명예퇴직을 신청하신 선생님이 있다던데 이야기 들으셨는지 모르겠군요"
나는 말없이 그 선생님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 선생님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 분은 나가서 하실 일이 있는 모양입디다. 퇴직수당도
받고 나가서 할 일이 있으니 얼마나 홀가분할 지 원…나 같은 사람은 나가서 할 일이 있어야 명퇴신청을 하지…" 그리고는 말이 없으셨다.
식사를 마친 후 식당을 나서는 내 마음은 어쩐지 무거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한창 일할 나이에 잘못된 제도로 인해 많은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년을 단축하고 이제는 명예퇴직까지 강요하는 시대가 됐으니 이러다가는 교단의 황폐화가 가속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난 아직 젊지만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언젠가는 나도 그 선생님처럼 앞날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그 선생님의 말씀이 서글픈 이유는 간단하다. 왜 명퇴를 하는 것은 떳떳하게 보이고 그렇지 못한 선생님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이 서글프다는 얘기다.
바로 2년 전쯤만 해도 그런 선배 교사들이 있어 힘들 때면 자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만한 선생님이 단 한 분도 남아 있지 않다.
얼마 전 TV에서 남교사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걱정하는 뉴스를 보았다. 앞으로는 `여자들 일인데 남자가 무슨 청승으로 교사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학교를 지키던 선배 남자교사들조차 이젠 타의로 교단을 떠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교육부는 정년을 환원하고 교사를 존중하는 특단의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봉급을 많이 받기를 바라지도, 또 존경해 달라고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교사가 편안한 마음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노력하고 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억지로 교단을 떠나게
하는 정책은 빨리 시정돼야 한다. 명퇴 기로에 선 선배 교사들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생님 어떤 일이 있어도 힘 내십시오. 우리는 끝까지
교단을 지켜야 합니다" <이창희 서울 강남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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