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교육과정을 만든 담당관이면서 28년간 편수 관련 업무와 교육과정을 강의해 온 함수곤 교원대 교수가 내달 28일 정년퇴임한다.
그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7차 교육과정은 정치적 외압에 의해 급조된 교육과정으로 태어나서는 안 될 교육과정이다”고 비판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에 대해서는 “이상적이나 학교의 특성이 반영 안 된 획일적 시행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함 교수와의 일문일답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최근 ‘編修 交遊記'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1978년 교육부의 편수전문직으로 들어가 1996년 교원대 교수로 나와서 2006년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의 이야기다. 30여 년간에 걸쳐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관한 행정과 연구에 종사해오면서 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사귀고, 술 마시고, 놀았던 이야기를 우리나라 교육과정 변천의 흐름에 담아서 기록한 하나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편수업무를 통해 인연을 맺은 동료, 선후배, 관련 학자 등이 나에 대한 추억과 일화 등을 회고한 글도 들어 있다."
-공직 생활 대부분을 편수관련 업무에 종사했고, 대학에서도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교육과정 변천사의 흐름과 특징을 말한다면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제 7차에 걸친 개정이 있었고 첫 번째 교육과정이 공포된 1954년 이래 꼭 반세기가 넘었는데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하여 변천의 특징을 말 할 수 있다. 그 분수령이 되는 시기는 1992년으로서 제 6차 교육과정이 고시된 때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시기를 중심으로 해서 전기에 해당하는 1954-1991까지의 시기는 '국가수준 교육과정 唯一 체제' 시대였다. 즉 이 시기에는 오직 국가수준 교육과정만 존립하여 교육과정의 국가기준이 지역의 교육과정 지침, 학교수준의 교육과정 등 세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해온 '1기준 3기능'의 기형적 교육과정으로 존재해왔었다.
그러다가 제 6차 교육과정이 고시된 1992년부터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교육과정 편성, 운영 역할 분담 체제'시대로 크게 전환되었다. 즉 학생 교육을 위한 기본 설계도를 마련함에 있어서 국가는 공통 기준을 만들고 (국가수준 교육과정) 시,도 교육청은 실행 지침을 만들고(교육과정 편성, 운영지침) 학교는 기준과 지침에 의거해서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만드는(학교 교육과정) 체제로 개혁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정 상의 변화는 초, 중등 학교 교육내용과 방법의 하나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개선이 교육과정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제6차 교육과정 개정은 내가 교육과정 담당관으로 일할 때 추진한 것이어서 더욱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제 7차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하나? “제 7차 교육과정은 한마디로 태어나서는 안 될 교육과정이었다. 역대 교육과정 중 새 교육과정이 공포되어 제 7차 교육과정처럼 많은 비판과 문제를 일으킨 교육과정은 일찍이 없었다. 그것은 제 7차 교육과정이 개혁의 폭과 심도가 깊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닌 점이 더 많다.
제 7차 교육과정은 이론 교육과정과 실물 교육과정, 양쪽을 다 잘 모르는 피상적인 교육과정 관련자들이 교육개혁이란 미명아래 정치적, 행정적으로 밀어 붙인 교육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6차 교육과정을 한 텀이라도 시행해보고 그 장,단점을 진단 평가한 후에 장기간 치밀한 연구와 준비 끝에 개정한 교육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은 이렇게 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제 7차 교육과정은 제 6차 교육과정을 전혀 시행도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교육과정을 왜, 어디를 개정해야 하는가하는 필요와 목적도 없이 당시 교육개혁심의회에서 막연한 이상과 허황된 가상 미래를 가정해서 즉흥적 이상 추구형으로 비전문가들이 정치적인 압력을 가해 급조한 교육과정이었다.
당시 교육과정 결정권자인 교육부는 당연히 교개위의 무리하고 부적절한 정치적 교육과정 개정 압력을 수용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관료가 지니는 특성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용하여 무리수를 둔 것 같다. 그러자니 졸속 날림 개정을 피할 수 없었고 우리의 실정과 단계적 발전에 적합하게 고안된 6차 교육과정을 무모하게 뛰어 넘으려고 하다 보니 자연히 무리한 교육과정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갈수록 대강화, 요강화, 슬림화 경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공통적 트랜드이다. 그런데 제 7차 교육과정은 6차에 비해 엄청나게 더욱 복잡화, 상세화, 규제 강화의 방향으로 진전되어 우리 교육과정의 발전을 퇴보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편성 운영지침의 상세화, 수준별 교육과정, 선택과목의 규제적 운영, 이수과정의 철폐, 재량활동의 무리한 강화 및 구속, 국민기본 공통과정 설치. 학생 선택의 지정 등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이번 개정에서 모두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또 다시 뜨거운 논쟁과 혼란과 갈등이 생길 것이 확실하다.”
-수준별 이동수업에 대한 의견은 “수준별 이동 수업은 학생 하나하나를 그들이 가진 능력 개성 등을 고려하여 개인차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소중하게 다룬다는 교육의 기본 원리와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기본 원칙에 비추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준별 이동 수업을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규정하여 전국의 다양한 지역, 학교와 학급, 학생을 똑 같이 보고, 특성을 외면한 채 획일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이 잘 못된 것이다. 교육부가 고시하는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수준별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획일적인 운영을 강요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고 부적합하며 적용 타당성과 실현성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는 편성 운영지침의 한 항목으로 '각 학교에서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해서 운영할 때에 해당 학교 학생들의 능력 수준과 개성, 적성, 진로 등 다양한 측면을 진단하여 학습의 목표달성과 교육효과의 향상을 위해서 수준별 이동수업을 과목과 교재의 특성에 따라 필요할 경우 그러한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면 국가수준 교육과정으로서의 기능은 다 한 것이라고 본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등에서는 다양한 수준의 교재와 자료를 풍부하게 개발해서 보급하면 학교에서 제각기 필요한 교재와 자료를 자기학교에서 편성한 교육과정에 맞게 활용하여 수준별 이동 하습을 하든지, 이동은 안하더라도 동일 교실 내 수준별 그룹별 학습을 하든지는 학교현장에서 지도교사가 정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어느 나라에서도 모두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수준별 교육과정을 제시하는 것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수준별 학습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착각이고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실제를 전혀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교육 전반에 대한 제언이 있다면 “한 나라의 교육 중에 그 나라 국민의 기본적 자질과 능력을 기르고 국민성을 형성하는 기초공통 단계의 초중등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초중등 교육을 내실 있고 쓸모 있게 잘해서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을 초중등 학교에 수용하여 12년간 교육시키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 하는 교육과정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우리 자동차가 미국에서 요즘 상당히 팔리고 있는데 아직도 고급차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차가 미국 시장에서 타국의 고급차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이 그러한 고급차를 생산해낼 수 있는 설계도가 확보되어야 한다. 값싼 하급차를 만들던 설계도를 가지고는 고급차를 생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엉성한 초가집이나 지을 수 있는 대강의 설계도로는 첨단 인텔리전트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개인에게나 국가사회에 유용한 질이 높은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러한 교육이 가능한 기본 설계도 즉 고급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교육설계를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너무나 허술하고 엉망인 대표적인 국가라는 것이 큰 걱정이다. 이러한 교육과정 개발과 운영은 국가가 할 일이 있고 학계. 연구기관에서 할 일이 있고, 학생을 데리고 직접 교육을 하는 각 학교에서 할일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세 곳 모두 다 잘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니 아무리 시설을 잘 갖추고, 돈을 많이 퍼부어도 좋은 교육이 알차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정부는 물과 공기를 깨끗하게 관리해야 하고, 식품과 의약품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며, 교통과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지만, 이러한 것보다 훨씬 정성을 많이 들여서 더 잘 관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교육의 품질을 관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교육과정을 관리해야 하는 일이다. 만일 이일을 소홀히 하거나 실패하면 우리는 절대로 도덕성 있고 유능한 국민을 길러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의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주목받을 수 있는 교양과, 창의적인 능력이 뛰어나고, 품성이 좋고, 건강한 한국인을 길러 내기 위해서는 그러한 한국인을 길러 낼 수 있는 교육과정(설계도)을 개발해야 하고 그 교육과정대로 교육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깊이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46년의 교직인생을 끝내고 조직에서 완전히 탈출하여 자유로워졌다. 퇴직 후에도 약간의 일을 부탁하는 제의도 받았으나 정중하게 사양했다. 마음대로 놀고 싶어서다. 36세 된 장남이 아직 미혼인데 그 애가 결혼하면 바로 아내와 함께 부산 해운대로 이사할 계획이다. 젊었을 때부터 그곳을 좋아해서 정년퇴임하면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산책과 등산, 음악, 영화감상, 국내외여행을 하고 싶다.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잔 하며 담소하고 그렇게 느긋하게, 넉넉하게, 너그럽게 살고 싶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 100여명에게 매일 밤 '한밤의 사진 편지' 라는 E메일 사진 편지를 보내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현재도 이 일은 하고 있는데 260호까지 발송되었다. 이제부터는 '한 밤의 사진 편지' 대표 겸 편집주간이 공식 직함이다. 그렇게 불러주기 바란다.”
-더 하고픈 말은 ”우리나라 교육행정의 총본산은 교육부인데 우리 교육부는 외다리 교육부다. 교육행정은 교육의 외적 조건(하드웨어)을 정비 지원하는 일반 관리 행정과 교육의 내적 조건 (소프트웨어)를 정비 지원하고 교육의 질을 관리하는 교육내용 행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느 나라나 이 두 축이 교육행정의 기본이고 양대 서비스 기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반 관리행정 한 축에만 편중된 교육부이기 때문에 외다리 교육부라고 하는 것이다. 두 다리로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할 교육부가 일반 관리행정만 서 있는 외다리 교육행정이기 때문에 교육의 성공적인 수행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육이 위기인 것이다.
지금은 하드웨어의 시대가 아니고 소프트웨어의 시대다. 교육의 질 관리 팀이 없는 교육부는 정말 위기이고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육의 질 관리팀이 없고 그래서 전혀 질 관리를 하지 않고 있는데도 모든 국민이나 정치가나 사회에서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교육행정의 일반 관료들은 영리하니 이것을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알면서도 다만 모르는 체 하고 있을 뿐이다. 양심적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하려고 들면 그 만큼 자기들의 영역과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육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를 해결해야 되는데 큰일이다. 그런 일을 하려면 그들이 나서야 하는데 나서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구체적으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