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가족은 그 아이가 영리하기를 바란다. 허나 지성 때문에 평생을 망친 나는 내 아들이 무지하기를, 생각함에 게으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면 아이는 관료가 되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
중국의 시인 소동파(1036~1101)가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쓴 시입니다. 이 시구에는 물론 정치에 대한 교묘한 비판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궁리가 많은 사람은 결코 탁월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도적 위치에 있다면 때로는 질풍 같은 속도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으니까요.
‘반 지성 독트린-생각 없이 살기’(황소자리)에 따르면 생각을 소유한 사람에게 내리는 세 가지 저주가 있다고 합니다. 소동파의 시가 알려주듯 첫째는 ‘출세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고 둘째는 ‘고독하게 만든다’ 셋째는 ‘삶을 지루하게 만든다’ 는 것입니다. 대신 생각을 끊은 사람에게는 힘 부귀영화 내면의 평정 자신감 용기 자긍심 건강 섹스가 찾아온다고 저자 한네스 슈타인은 역설합니다.
그는 또 말합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꿰뚫어본다는 의미인데, 사물을 꿰뚫어보는 사람은 그 대상으로부터 신비를, 은은한 기운을, 형이상학적 매혹을 앗아간다”고. 그래서 꿰뚫어보려는 생각을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신비로운 매혹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말입니다.
“일주일 동안 여러분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 동의하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혼이 엄청나게 평화로워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를 통해서 새로운 친구들을 얻게 될 것인데, 그들은 여러분이 사실상 두뇌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열광할 것이다.”(63쪽)
물론, 저자의 글은 패러디입니다. 그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참된 지성이란 ‘도구적 사슬’을 끊어내는 것일 겝니다. 어쭙잖은 머리 굴리기에 사용되는 스팸메일 같은 정보, 인 ‘생각’은 이제 그만 하라고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변기에 걸터앉은 자세일 뿐이며, 사색의 결과 그 뒤(항문)로는 쓸 만한 것은 전혀 나오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