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 고교의 위기의식은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확산되었다. IMF 경제위기가 실업계 고교 졸업생의 취업률을 하락시키고, 모집정원 미달 학교를 속출시키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업계 고교의 위기는 사실상 김영삼 정부가 96년 2월 9일 발표한 교육개혁 방안(Ⅱ)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발표 이후 그 동안 추진되던 실업계 고교 강화 정책은 포기되었고, 직업교육의 축을 전문대학 수준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실업계 고교는 시류에 편승하여 실고 졸업생의 대학 진학을 구실로 학생들을 모집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게 되었고, 심지어 대학 진학반을 운영하려는 집단적 요구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교육개혁 정책이 최종 수요자인 산업체의 인력요구는 간과한 채 수요자 중심이라는 미명하에 중간 수요자인 학생 및 학부모의 요구에 따라 인문교육 및 고등교육의 팽창을 촉진해 온 것이다. 이러한 교육정책은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고 기능 인력난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케 하였다. 인문교육 편중 및 고등교육 팽창 정책의 와중에서 실업계 고교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왔고, 드디어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문제점이 폭발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교육부는 2000년 1월 13일 `실고 육성대책'을 발표하였다. 이 대책의 기본방향은 실업계 고교 육성을 위하여 그 유형을 다양화, 내실화 및 전문화하고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며, 구체적 방안은 경쟁력 없는 실고를 일반계 고교로 전환하고, 실고는 정보통신 분야 특수목적고교로 전환하며,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 운영하는 통합형 고교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대책대로 실고를 일반계 고교로 전환해주면, 입학 정원미달 사태는 해결될 수 있으며, 학교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교육부는 정원미달로 인하여 학교가 제기할 생존 투쟁의 문제를 피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능인력 양성을 본질로 하는 실고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교육부 대책은 양질의 기능인력 양성 공급이라는 근본문제는 간과한 채 정원미달 등 교육부 수준에서 해결 가능한 현상적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직업교육은 본질적으로 교육적 관점과 함께 기술적 관점, 그리고 경제적 관점이 함께 조화되어야만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직업교육 개혁은 교육, 기술,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점 진단과 해결책을 요구하며, 범정부적 추진을 요구한다. 실고 위기에 대응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다시 범정부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마련 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