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공동으로 만든 '차세대 고교 경제교과서 모델'이 반(反) 노동 정서를 반영했다는 비난이 일자 책자 인쇄를 돌연 중단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14일 "기업의 본질이 '이윤 극대화'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등 '시장경제 체제'의 본질을 부각시킨 이 책자를 전국 고교에 한 권씩 내려보내 사회과목의 참고서로 활용토록 한다는 계획에 따라 13일 인쇄에 들어가려다 저작권자의 적절성 논란이 있어 인쇄를 당분간 보류키로 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난해 2월 "현행 교과서의 반기업, 반시장적 편향성을 시정해 달라"는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의 요구를 수용해 한국경제교육학회에 의뢰해 이 책자를 만들었는데 견본품 표지 등에 교육부와 전경련이 공동 저작권자로 표기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 부분을 수정키로 했다는 것.
교육부 관계자는 또 "문제가 된 책자에서 내용은 변경하지 않고 저작권자만 고쳐 조만간 인쇄에 들어가 당초 계획대로 전국 고교에서 신학기부터 참고서로 활용토록 할 방침이다. 이런 계획을 어제 김신일 교육부총리에게 보고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1년간에 걸쳐 무수한 감수 과정을 거쳐 만든 책자를 단순히 저작권자 문제 때문에 갑자기 인쇄를 중단시킨 것은 선뜻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의 다른 관계자는 "경제교과서 모델에는 전경련의 입장이 지나치게 반영돼 있다는 노동계 등의 입장을 감안해 책자 인쇄를 중단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수정작업을 거쳐 책자가 발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책자를 저술한 한국경제교육학회측도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은 절대적 권리는 아니며 공익상의 이유로 법률로써 제한이 가능하다'는 대목은 단체행동권을 잘못 설명한 것으로 나중에 확인돼 일부 틀린 내용을 수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교육부가 '경제교과서 모델' 책자의 인쇄를 돌연 중단한 것은 반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노동계 등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의도에 따른 것으로 의심된다.
노동계는 이 책자의 발간 소식이 전해지자 노동자의 권리나 부의 재분배에 관해 의도적인 왜곡이나 부정적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노조가 있는) 기업은 높은 임금을 받아들이는 대신 노동자를 적게 고용하는 쪽으로 결정을 하게 된다"는 부분을 들었다. 이는 '노동조합=임금인상=고용감소'라는 터무니없는 등식을 통해 고용감소의 주된 책임을 노동조합에 전가하고 있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또 "정부의 개입은 나에게 이익의 감소를 초래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를 초래한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 손'이 풍미하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 자본가의 무한착취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던 자유방임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은 13일 성명을 내고 "노동문제를 자본편향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내용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