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초등학교에서 키 크기 순서로 출석번호를 매기는 일은 차별이라는 이유로 거의 사라졌지만 줄 세우기나 자리배정시 '키번호'를 활용하는 학교가 여전히 많아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키 작은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이라는 주장과 키에 의한 차별을 없앤다며 출석번호 배정 방법까지 바꾸면서도 행정 편의 때문에 이를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키가 출석번호를 매기는 기준이 돼 새로운 학급에서 신장이 가장 작은 학생은 항상 1번을 받았지만 인권의식이 발달하면서 신체에 따른 차별이라는 지적이 일었고 교육부는 2004년부터 이를 수용해 이름 순서대로 출석번호를 매기도록 각 시ㆍ도교육청에 권고했다.
교육 당국이 키가 작다는 이유로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일선 학교에서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 일이 없도록 독려해 대부분 학교에서 반영토록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은 새 학기가 되면 조회나 소풍 가서 줄을 세울 때 혹은 학급에서 자리를 배정할 때 출석번호와 별도로 키 순서에 따라 '키번호'를 배정하고 있다.
이들 학교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신장의 높낮이 개념이 뚜렷하지 않아 키번호는 학생 지도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정한 순서대로 아이들의 위치를 정하지 않으면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산만해지기 쉬우며 키 작은 아이가 키 큰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면 교사의 지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자칫 야외 학습 때 사고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
따라서 아이들이 질서 생활을 익힐 수 있도록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1∼2개월 정도는 키번호가 필요하다는 게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6일 "학급 분위기와 선생님에 따라 키번호를 사용하는 기간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키번호는 학기 초에 잠시 사용하는 것으로 질서가 생활화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출석번호를 키 순서대로 매기지 않도록 한 것은 '키에 따른 차별을 없애자'는 데 근본 취지가 있는데 단순히 아이들을 통제하기 쉽다는 이유로 '키번호'를 사실상 계속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반박 논리도 만만찮다.
우리 사회에 잠재된 '키 큰 것이 좋은 것이다'는 의식이 어린 학생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작은 학생에게 열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달 2일 딸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 보낸 B(43ㆍ여)씨는 "아이가 또래 친구보다 키가 작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키 순서대로 '4번'을 받아 속상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이나 받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섰다"고 말했다.
또 과거 '콩나물 시루' 교실에서 60∼70명씩 공부하던 시절 뒷좌석에 키 작은 학생이 앉지 않도록 배려했겠지만 지금은 교육 환경이 개선돼 학급당 인원이 30∼40명에 불과해 키 작은 학생을 배려한다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대학에서 키 작은 학생을 배려한다고 앞자리로 앉히는 경우는 없다"며 "어릴 때부터 키에 대한 선입관을 심어줄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결국 행정 편의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키 외에 성별에 따라 남학생에게 앞번호를 주고 여학생에게 뒷번호를 부여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어린 시절부터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한다는 차별적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갖게 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금은 남녀 별도로 출석번호를 매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