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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네마 편지> 화양연화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헤어지기 직전의 순간이라니...

침침한 가로등 아래 정장을 한 여인이 미끄러지듯 골목으로 사라진다. 그녀를 스쳐 지나가며 힐끔 곁눈질하는 사내. 여인은 국수를 사기 위해,
사내는 딤섬을 먹기 위해 저녁마다 식당가 골목을 지나며 마주친다. 사내가 먼저 결심을 했다. "그 핸드백 어디서 샀어요?" "남편이 외국에서
사왔어요." "그 넥타이는 어디서 샀어요?" "아내가 외국에서 사왔어요." 사내는 이웃집 부인이 자기 아내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인은 이웃집 남편이 자기 남편과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자신들의 배우자가 바람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배우자의 불륜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들 마음속의 또 다른 불륜을 예감하고 있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불륜을 다룬 로맨스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눈이 너무 두려운 60년대식 숨은 사랑은 안타까움만
더합니다. 사내는 자청해서 싱가포르 지사로 도망가고 여인은 몇 번이고 수화기를 들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맙니다. 앙코르와트 사원 벽에
구멍을 판 후 마음 속에 묻어둔 사랑의 비밀을 담아 진흙으로 밀봉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두 사람의 사랑은 미련을 남기고, 안타까움을 묻어두고,
숨죽여 울뿐입니다.
낭만적 대사 한 마디 없는 간접화법의 반복. 좁은 실내에서, 골목길 계단에서 닿을 듯 말 듯 스쳐 지나가는 장면의 되풀이. 영화는 이 스쳐감의
반복이 사랑의 전부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뜻하는 말이라는 '화양연화'. 리첸과 차우는 '화양연화'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이별을 예감하지요.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직전의 순간이라니. 이루어진 사랑은 그
가치가 퇴색되고 바래져 결국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 실현되지 않은 소망만이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인 것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서글프기 그지없습니다. 화양연화! '인생의 꽃이 만발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게
됐으니 이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서혜정 hjkara@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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