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학부형과 학생들에게 가장 큰 연중행사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여러 가지 비판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결론은 이렇다. 수능시험이 너무나 쉽게 출제되어 난이도 조절과 변별력의 실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심하게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수능시험이 필요 없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초·중등교육이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기'식이 된 것은 대학입시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몇몇의 지적능력 우수자가 우대 받는 세상은 이제 지났다.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 재조합의 능력을 가진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예전의 잘못된 입시제도는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평가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일 뿐이다. 즉 대학 입시원서에 수학능력이 있다는 것을 체크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조자료에 불과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대중매체가 주는 좋지 않은 영향 중의 일부겠지만 각 신문이나 입시기관의 분석을 읽어보면 수능이 쉽게 출제되어 실력이 있어도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한 학생들은 소수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탓해야 할 것은 쉽게 출제된 수능이 아니라 머리 속의 지식만으로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잘못된 교육정책이다. 80만 수험생들 중 상위권 2만의 수험생들을 위해서 수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능으로 인해 대학의 합격, 불합격이 결정돼서는 안 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하면 2002학년도 입시부터는 수능만으로 합격을 좌우할 수 없도록 특차도 폐지하고 수능의 점수제까지 없애면서 1에서 9개 등급만 표시하도록 한다고 한다. 긍정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떠한 기준으로 학생들은 선발해야 하는가'가 핵심 사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 문제는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각 대학은 지금부터 학생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전형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특기나 적성 외에 대학별로 나름대로 선발 방법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英·數 과외나 논술과외가 유행하는 것처럼 또 다른 과외문화가 양산되리라는 예측도 할 수가 있다. 과외문화는 확산되어야 한다. 개개인의 특기적성을 기르는 과외는 얼마든지 많이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외의 범위가 다양해지면 소수의 범위에 한정된 지금보다 수요가 분산되어 사 교육비도 한층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 <강건수 인천 신현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