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 정권 시절에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제 5공화국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우기도 했던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는 프랑스인들이 '행동하는 지성', '실천문학의 대가', '세기의 전설', '지성의 대통령' 등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하나이다.
1996년 프랑스 정부가 그의 사망 20주기를 기해 프랑스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팡테옹 사원으로의 이장을 결정한데서도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말해준다. 공쿠르상 수상작 ' 인간의 조건'(1933), '정복자'(1928), '왕도'(1930)나 '희망'(1937) 그리고 '알텐부르크의 호두나무들'(1943) 등이 한결같이 극한 상황을 뛰어넘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그리고 있듯이 실제로도 그는 그런 삶을 살았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모험에 끊임없이 뛰어든 그의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그는 22살 때 고대 크메르 왕국의 조각상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기도 하고, 인도네시아에 머물면서 피식민지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신문을 발간하기도 한다. 그는 또한 스페인 내전 때 민간 항공군 대장으로 반파시즘 전선에 참여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프랑스 탱크 부대에서 싸우던 중 포로로 잡혔다가 수용소에서 탈주한 후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약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로의 행동적 휴머니즘의 위대성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가 예술비평가로서의 면모이다. 그는 인간 행동의 가치가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현된 상태를 예술이라고 믿는다. 즉 인간은 창작행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창작품에 불어넣게 되고 그렇게 탄생한 예술작품은 죽음에도,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도 굴복하지 않는 '반(反) 운명체(anti-destin)'로서 살아남아 영원히 인간의 영혼을 계승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허구로서의 소설창작에 열정을 쏟았던 전반기와 달리 그의 생애의 후반기에는 주로 예술비평에 손을 댄다. 이것은 말로가 '예술적 창조'에 대해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는 1947년에 '상상 박물관', 1948년과 1950년에 '예술적 창조'와 '절대의 화폐', 즉 <예술 심리학> 시리즈 3권을 발간한 데 이어 '침묵의 소리'(1951), '신들의 변모' 시리즈 3권을 발간하는 등 방대한 양의 예술론을 남겼다.
덧없는 인간이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예술창조를 통해서 끊임없는 부활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로는 믿는다. 이러한 힘찬 예술의식을 지니고 있는 말로가 일본 법륭사(호오류우지)에 있는 '백제관음상'을 보고 "백제관음은 분명히 세계 조각의 최고봉 중의 하나다. 이 판단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 백제관음은 세계 10대 조각의 하나다"라고 찬탄한 것은 우리로서는 매우 주목할 만한 평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