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0 (금)

  • 흐림동두천 -15.9℃
  • 맑음강릉 -9.0℃
  • 맑음서울 -11.6℃
  • 맑음대전 -12.7℃
  • 맑음대구 -10.6℃
  • 맑음울산 -10.9℃
  • 맑음광주 -10.0℃
  • 맑음부산 -9.3℃
  • 흐림고창 -11.9℃
  • 제주 1.4℃
  • 맑음강화 -13.6℃
  • 흐림보은 -16.4℃
  • 흐림금산 -15.2℃
  • 맑음강진군 -7.2℃
  • 맑음경주시 -11.1℃
  • 맑음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양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노래

5>이별의 노래

요즈음 찬바람이 불면서 길가는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종종 걸음을 걷는가하면 가로수 나뭇잎도 낙엽이 되어 흩날린다. 이에 쓸쓸한 정감이 절로 스미면서 자연스레 생각나는 노래가 있으니 바로 ‘이별의 노래’이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 시는 박목월(1916-1978) 시인의 작품으로, 수필집 ‘구름에 달 가듯이’에서 이 시에 얽힌 대략적인 사연을 밝히고 있다. 첫 번째 만남은 오월 어느 날 오후, 대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있었는데 그녀는 연한 하늘빛 갑사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그 다음의 재회는 화약 냄새가 감도는 거리의 한 모퉁이  에서였는데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고 술회한다. 세 번째 만남은 어느 봄날이었는데 유달리 눈부시게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저편에서 흰옷을 입고 햇빛을 등으로 받으며 걸어오는 그녀를 보게 된다. 석고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중병을 앓고 있던 그녀는 그날 밤 자신의 병실을 지켜달라고 청한다. 병실에서 만난 그녀는 연두 빛 치마에 반회장저고리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만남을 기념하는 축배를 든다. 꽃병에는 개나리꽃이 꽂혀 있었고, 창밖에는 봄밤이 신비로운 커튼인양 유리창을 가려주고 있었다.

이듬해 가을 어느 날 오후 5시 반, 갑자기 그의 시계가 멎는다. 그녀의 임종이었다. 그는 비통한 심정으로 ‘기러기 울어 예는… ’으로 시작되는 ‘이별의 노래’를 읊었다. 3절에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의 표현은 낭만적인 시상이라기보다는 “나는 하얗게 재가 되어 삭아 내린 기분”이라고 당시 자신의 애통한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이 시를 쓴 며칠 후인 1952년 11월 초, 날씨가 쌀쌀한 늦가을에 친구이자 당시 군악대 지휘를 맡고 있던 작곡가 김성태씨를 만나게 된다. 자주 가던 어느 술집에서 회포를 풀며 술을 마시다가 ‘이별의 노래’ 시가 적힌 쪽지를 건네준다. 김성태 작곡가는 시를 읽는 순간 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한 시상에 가슴이 뭉클하는 감동이 솟았다. 특히 후렴부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에서 이별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이별의 아름다움이 표출되고 있었다. 여관에 돌아온 그날 밤, 백지에 오선을 긋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의 시상을 주제로 밤새 악보를 써 내려갔다.

한편, 작곡자 김성태씨는 1910년, 서울 광희동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교회에 다니면서 노래와 악기를 배웠고 훗날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다니면서 홍난파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다. 그 후 작곡가 현제명 선생의 추천으로 연희전문학교 음악부로 옮겨 공부하였고 졸업 후 일본 동경고등음악학교 작곡과에 유학을 갔다. 귀국 후에는 경성전문학교 음악주임, 보성전문학교 강사 등을 거쳐 경성음악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는데 해방 후에는 이 학교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으로 개편되었다, 6.25 전쟁 당시는 육군군악대 지휘를 하기도 했는데, 전쟁이 끝나자 다시 서울대학교에 복직하여 학장 등을 거치면서 1976년 퇴직 때까지 계속 후학을 양성하였다.
배너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