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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음악에 대한 경의를 풀어내다

6>음악에 붙임(An Die Music)

우리는 슈베르트(1797-1828)를 가리켜 ‘가곡의 왕’이라고 부른다. 그는 31세라는 짧은 생애 동안 무려 1000여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가곡만 603곡으로 절반 이상이나 된다. 작품 수로 보아 당연히 붙여지는 별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기악곡에서도 폭넓게 우수한 곡들을 남겨 가곡만의 왕이 아닌 위대한 작곡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음악가들이 봉건체제의 귀족들이나 사제들에게 예속당해 그들의 취향에 맞춘 형식주의에 의한 순음악 중심으로 창작을 했다. 1800년 프랑스 혁명 이후 예술분야는 그 철학적 기조가 점차 인도주의 성향으로 기울면서 음악 또한 인간 존중, 감정의 충실, 작곡자의 개성적 표현에 중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샹송이나 멜로디라 부르는 가곡이 유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한 독일 권역의 음악은 기악적인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때마침 괴테나 실러와 같은 위대한 시인들이 나타나 훌륭한 시를 많이 내놓기 시작했다. 슈베르트는 이 시에 멜로디와 피아노반주를 붙임으로써 시(詩)와 음악의 결합인 ‘예술가곡’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다.




‘음악에 붙임’은 슈베르트의 친구였던 프란츠 쇼버(1796-1882)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쇼버는 슈베르트보다 1살 연상으로 슈베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친구였다고 전한다. 그는 스웨덴의 귀족 출신으로 빈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슈베르트의 작품에 감명을 받게 되면서 도움을 주었고 급기야는 동거생활까지 하면서 본격적인 뒷바라지를 하게 된다.

슈베르트가 쇼버의 시로 작곡한 가곡은 모두 12곡이었고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20세에 쓴 ‘음악에 붙임’이다. 음악의 존귀함과 그에 대한 감사함을 노래한 2절의 유절 가곡으로 단순하면서도 감동어린 작품이다. 특히 기품어린 선율의 아름다움은 형언키 어려울 정도다. 피아노의 왼손 음형이 매우 인상적이고 그 위에 실린 노래의 성부도 청순한 음색을 요구하고 있다.

"아름답고 즐거운 예술이여 마음이 서글퍼진 어둔 때 고운 가락 고요히 들으면 언제나 즐거운 맘 솟아나 내 방황하는 맘 사라진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위의 가사는 우리말로 번역해 원작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직역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아한 예술이여, 세파의 혼탁 속에서 자칫 잿빛으로 물들기 쉬운 때, 너는 나에게 따뜻한 사랑을 키워 주었고 보다 나은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너의 리라(손으로 뜯는 현악기)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너의 거룩하고 신비한 화음은 행복한 환희를 내 앞에 펼쳐주었다. 상냥한 예술이여, 그래서 나는 너에게 감사한다."

슈베르트는 쇼버와 더불어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하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드디어 1819년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들로 이루어진 ‘슈베르티아데’라 불리는 슈베르트 후원회가 결성됐고 나중에는 명망 있는 집안의 여성들도 가세하게 된다. 비록 슈베르트가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수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도움이 컸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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