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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망국의 恨과 향수, 절절한 애특함

11>가고파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때 같이 놀던 고향동무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 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가고파’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추억에 깊이 잠기게 해주는 정겨운 노래다. 이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남쪽 바다는 바로 작사자 이은상의 고향인 마산 앞바다 합포만이다.



이은상은 1903년 일제 강점기에 부유한 한의사 집안에서 출생했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와 집 사이에 있던 노비산에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맑은 동심과 시심을 키우게 됐고 후에 그의 호를 ‘노비산’ 앞뒤의 글자를 따서 ‘노산’이라고 지었다. 그는 부친이 설립한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연희전문 문과에 진학했으며 얼마 후 일본에 유학해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나왔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전 교수를 거쳐 신문사 등에서 근무했으며 호남신문사사장, 예술원회원, 민족문화협회장 등의 중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전래의 시조형식을 현대적으로 소화한 새로운 시조형식을 개척하여 2천여 편의 시와 시조를 남김으로 민족 문학의 거성으로써 한국문학사에 지대한 공로를 남기고 1982년 타계하였다. 지금은 ‘가고파’시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마산 노비산 옆 산호공원에 새워져 있다.

그가 ‘가고파’를 지은 것은 1932년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이화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였다. 망국의 한에다가 오랫동안 떠나온 고향바다와 산천, 그리고 어릴 적 친구들의 모습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이 시는 친구였던 양주동(국문학자)선생에게 전해지고 양선생은 당시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는데 2학년 국어시간에 이 시를 낭독하게 됐다.

이 때 학생으로 공부하던 작곡가 지망생 김동진이 듣게 되었는데 자신도 고향을 떠나와 평양에 유학을 하고 있던 터라 동병상련의 가슴 뭉클한 감회를 느끼게 된다. 이 시는 10장으로 된 긴 시인데 김동진은 즉시 이 시의 4장까지만 작곡을 한다. 나머지 6장은 해방 후 1973년에서야 완성을 하였다. 그러나 이 노래는 현재도 대체로 4장까지만 불린다.



작곡자 김동진은 1913년 평남 안주, 청천강의 맑은 물줄기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동네에서 태어나 자랐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터라 어린 시절에는 교회에 있던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음악과 친숙하게 지냈는데 11세 때에는 부친이 바이올린을 사주신 이후부터는 음악에 더욱 뜻을 두게 됐다. 보통학교를 졸업하자 평양 숭실중학교에 진학하여 미국인 선교사인 말스베리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인 바이올린 주법과 작곡의 기초 이론을 공부하게 됐다. 중학교 5학년 때(현재 고 2학년)는 김동환의 시 ‘봄이 오면’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작곡에 더욱 정진했고 1936년에 졸업과 동시에 일본 동경고등음악학교에 유학해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가게 됐다. 1939년 졸업을 하면서 만주신경교향악단에 입단해 바이올린 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해방 후 평양 중앙관현악단에서 활동하다가 6.25가 일어나자 월남했다. 서라벌예대, 경희대 교수를 역임하면서 수많은 가곡과 여러 작품을 작곡했으며 가곡과 판소리의 접목에 의한 신창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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