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樵童)친구 두고 온 하늘 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서양양식의 우리나라 가곡은 그 도입 시기에 있어서 일제 강점기와 같은 시기였기에 당시의 작곡가들은 대체로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이 깔린 민족적 한을 노래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었기에 체념적이며 자학적 허무주의가 깔린 한을 노래하게 됐다. 그 대표적인 노래를 든다면 6.25전쟁 때 부산에 피난하여 합창활동을 하면서 작곡한 윤용하의 ‘보리밭’과 치열한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산화한 무명용사의 넋을 위로한 노래, 바로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비목’이다.
‘비목’은 1970년대 중반, TV드라마 ‘결혼행진곡’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극 내용과 함께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면면서 갑자기 유명한 곡이 됐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노래의 선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많은 성악가들이 각종 음악회 때마다 다투어 부르고 음반으로도 취입, 발매돼 더욱 유명해진 노래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고등학교 검인정교과서에 실리게 되면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 귀에 친근한 노래로 남아 있다.
작사자 한명희(1939~)씨는 서울음대 국악과에 입학한 후 ROTC 장교교육을 받고 1964년에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하게 됐다. 그 곳은 백암산과 향로봉을 좌우에 두고 철책 넘어 멀리 오성산이 가물대며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금성천이 서로 만나는 계곡이었다. 지금의 평화의 댐 건너 편 북쪽 비무장지대로서 전쟁 당시 화천발전소를 서로 차지하려고 수만의 병사가 많은 피를 흘렸던 격전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듬해 어스름한 어느 봄밤, 한명희는 이 지역을 순찰하던 중 발밑에 차이는 나무로 된 비 하나를 발견했다. 비바람에 병사의 이름도 지워진 이끼가 끼어 있는 썩은 목비였다. 돌무덤 위에는 산목련이 하얗게 피어있고 달빛이 엷은 안개 사이로 산야를 신비롭게 물들이며 적막에 싸여 있는 그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한 무명 원혼의 비애를 극적 대비로 체험하게 됐다.
그는 제대 후 1966년 TBC 라디오 방송국 FM부 PD로 근무하게 되는데 이 때 음악편곡을 맡고 있던 장일남(1932~2006)씨를 만나 6.25전쟁을 주제로 한 가곡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드디어 자신의 군복무시절의 그 격전지에서 목격했던 이끼 낀 목비를 회상하며 시 ‘비목’을 탄생시킨다.
시를 읽어 본 장일남씨는 자신도 결코 이 시와 무관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도 북한 해주 태생으로 6.25 때 단신으로 월남해 전투경찰에 지원하고 ‘철의 삼각지대’의 격전지였던 철원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향민의 처지에 북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웠고 언제나 북쪽 고향하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곤 했었다. 그는 실향민의 애달픈 향수와 감회, 그리고 6.25 전쟁의 한(恨)을 승화한 예술적인 정서가 있었기에 이 무명용사를 위한 진혼곡을 의미심장하게 작곡하기에 이른다.